도올이 본 제주 4.3과 여순 민중항쟁에 관한 책




나는 본시 우리나라 지성계의 폐단이 파벌의식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체 학벌, 문벌, 지연과 관계되는 모임을 하지 않았다. (.....)
자유로운 독서토론 모임처럼 효율적인 지식축적방법은 없다. 특히 권위 있으면서도 개방적인 중심축이 있을 때는 그런 모임은 아름답게 효율적으로 굴러가게 마련이다. - 18쪽


˝치작˝이란 원래 ˝나이에 다라 작위를 준다˝는 뜻이다. 이것은 원래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봉건제를 폐하고 새롭게 군현제를 만들어 갈때, 새로운 보편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하여 과거의 군공에 의존한 작제를, 동네마다 나이순에 따라 작위를 주는 독특한 콘트롤 시스템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이것은 허작이기는 하지만 전국의 인민에게 질서감과 소속감과 의무감, 충성심을 불어넣는 훌륭한 제도로서 존속되었다. - 19쪽


구례가 비록 우리 현대사에서는, 피아골 공비의 이미지와 겹치는 불운한 벽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문화, 예술의 중심지였고, 당대사를 다룬 걸작 역사서가 탄생할 만큼의 정보가 오가는 물류의 교차로였다는 것이다. 무지한 미군놈들이 함부로 총구를 들이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 27쪽


구례사람들은 ˝구례군민일동˝이라는 이름으로 피아골 연곡사 뒤뜰에 우람찬 의병장 고광순의 순절비를 세웠다. 그 절의를 숭상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전통적 의리를 표방하는 구례사람들의 충정은 오늘의 세태에 비추어 볼때 가히 상상하기 어렵고, 바로 이들이 미군정 하에서 이승만정권의 안착을 위하여 도륙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도무지 끔찍하기 그지없다. - 33쪽


나는 전두환의 폭정 아래서 양심선언을 발표하고(1986년 4월 8일) 당대로서는 세인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고려대학교 ˝정교수직˝을 버리고 대학강단이라는 울타리를 떠났다. 그 이유인즉, 양심 있는 학자로서 어떻게 대학교정에서 학생들이 정당한 사유없이 구타당하고 연행되는 꼴을 좌시할 수 있겠으며, 학자의 임무는 교육인데, 보통사람의 보통스러운 교육조차 허락하지 않는 이 분위기를 어찌 감내할 수 있겠느냐는 항변이었다. 교육자가 바른 교육을 할 수 없으니 그 강단은 떠나는 것이 양심에 떳떳한 길이라는 명분을 밝힌 것이다. - 39쪽


이탈리아의 역사철학자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 1866~1952, 이탈리아 근대정신의 지주라고 불리는 역사주의 철학자, 미학자, 그람시도 그의 제자이다)가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All history is contemporary history)˝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그가 그 말을 어떤 맥락에서 했든지간에 나는 현대사의 확고한 시점이 없는 사상가는 역사를 바라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44쪽


나는 ˝EBS 독립운동사 10부작˝을 만들면서 비로소 철학자로서는 자격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칸트나 헤겔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현대사의 뿌리와 그 구조를 바르게, 폭넓게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어떠한 세계를 나의 의식의 장으로 엮어갈 것인가에 대한 결구구조가 생겨나는 것이다. - 45쪽


마가복음이 661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600개의 문장이 마태복음에 들어가 있고, 350개 정도의 문장이 누가복음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태와 누가는 마가라는 자료를 놓고 각각 자기의 목적에 따라 예수전기를 증보한 것이다.
마태와 누가는 마가의 증보판인 셈이다. 여태까지 우리 신학계는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태, 마가, 누가를 공관의(공통된 관점의) 세 복음서로 무차별하게 취급해왔다. - 51쪽


˝성경˝이란 본시 ˝성인의 경전˝이라는 뜻으로 유교 경전을 가리키는 말로서 옛부터 흔히 쓰이던 말이었다. ˝성경˝이라는 말은 기독교가 유교사회에 침투하기 위하여 유교경전에 못지않은 경전이라는 뜻으로 유교개념을 도용한 것이다. 기실 성경에 해당되는 ˝바이블 Bible˝이라는 말은 희랍어의 ˝비블리온 biblion˝에서 온 것인데 그것은 그냥 ˝종이˝의 뜻이다. 나아가서 ˝책˝,˝두루말이 권˝을 의미한다.
레바논에 ˝비블로스 Biblos˝라는 항구되가 있는데 예로부터 이집트의 파피루스를 희랍세계에 수출하는 항구도시였다. 바이블은 비블로스에서 온 말이며 그것은 ˝파피루스˝가 변형된 것이다.
그러니가 바이블은 ˝성경˝이 아니라 ˝성서˝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일본 기독교는 ˝성서˝라는 명칭을 고집하며, 우리나라 가톨릭에서도 ˝성경˝보다는 원의에 가까운 ˝성서˝를 고집한다. -54쪽


나는 개인적으로 정도전과 깊은 인연이 있다. 그 직계 장손과도 친하게 지냈고, 그에 관해 책도 썼고, 강연도 많이 했다. 그리고 조선왕조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처럼 자격 있는 혁명가를 찾기도 힘들다. 그는 맑스나 레닌과 같은 진짜 혁명가이다. 이론과 실제를 다 갖춘, 혁명을 위하여 자기의 삶을 불사른 멋진 사나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전체대의를 생각해 볼때, 그가 저지른 오류도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오류는 고려대제국의 실태와 그 가치를 근원적으로 훼멸시킨 것에 관한 것이다. ˝고려국사˝는 용서할 수 없는, 왜곡의 사서이다. 그것이 정도전 개인의 오류로 끝났으면 다행이겠지만, 향후 조선민족의 역사인식 전체에 너무도 끔찍한 악영향을 미쳤다. - 74쪽





도올 선생의 진리에 대한 끝없는 갈증과 탐구가
그를 항상 ˝진보˝의 중심축에 서 있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그의 폭넓은 사유와 디테일한 연구, 해박한 지식과 본질에 대한 끈임없는 공부,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늘 마음속에 존경하는 1인으로 새겨져 있다. 이책은 그 기대를 만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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