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4.

나의 병은 나의 모든 습성을 바꿀 수 있는 권리를 나에게 부여하였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p5.

병처럼 낯설고 병처럼 친숙한 존재가 있을까.

병이 없는 일상은 생각하기 어렵다.

(...........)

병은 저 먼곳에서 우연히, 실수로 들이닥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한 메시지를 들고 찾아오는 전령사라는 것을,

하지만 이제껏 나는 그 봉인조차 뜯어 보지 않고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는 것을.

(..........)

살만하다,는 게 늘 문제다.

계급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웬만큼 살 만하면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얼마나 게으른가를 정직하게 볼 기회를 놓쳐 버린다. 그래서 아파야 한다. 아파야 비로소 '보게'된다.

 

 

 

p6.~p7.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다 보니 몸이야말로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고스란히 담지하고 있는 보고(寶庫)임을 깨닫게 된다

(..........)

그런데 정말 변하지 않는 것은 따로 있다. 사람의 습관이다.

습관처럼 지독하고 습관처럼 확고부동한 것이 또 있을까.

어떤 이념과 명분도 이 습관의 중력장을 해체하지는 못한다.

어떤 논리와 이성도 습관의 리듬을 절단하기란 거의 물가능하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런 탄식이 터져 나온다. "사람이 어떻게 변하니?"

처음엔 타자들의 몸에서 그걸 발견한다.

그런데 점차 그 거울에 내 모습이 투사되기 시작한다.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타자들의 욕망과 습관이 전부 내 안에 있다.

아니, 내 몸이 저토록 무겁고 저토록 끔찍한 존재였다니.

(.........)

니체가 왜 습속의 혁명을 부르짖었는지, 루쉰이 왜 중국에선 의자 하나를 옮기는데도 조물주의 채찍이 필요하다고 절규했는지를 결코 실감하지 못했으리라.

습관의 거처가 몸이다. 공동체란 이 이 몸들이 자신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격전지다.

 

 

 

p.8

그만큼 <동의보감>으로 가는 입구는 매끄럽다

하지만 그 입구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눈앞에 엄청난 고원이 펼쳐진다.

병은 하나의 단서에 불과하다. 거기에는 몸과 생명, 그리고 자연과 우주가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하여, 그것과 접속하는 순간, 앎의 모든 경계는 해체되고 만다.

<동의보감>을 만나고 내게 벌어진 최고의 사건은 바로 그것이었다.

천문학과 물리학, 불교와 인류학, 고대 그리스철학과 생물학 등 이 모든 것에 대한 '앎의 의지'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모든 앎들 사이의 견고한 장벽이 눈녹듯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아는 만큼 들리고, 아는 만큼 느끼고 아는 만큼 살아간다.

 

고로, 앎은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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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님의 2번째 책이다.

 

꾸준히 좋지 못한 신호를 주는 건강검진 결과에 대해 합리화하고,

나태와 게으름으로 동글동글하게 되어버린 몸의 모양에 대해 지극히 관대하고,

질병으로 힘든 싸움을 겪는 이들에게 평소에 건강좀 챙기지.라고 내로남불의 전형이 되어버린 나를,

 

이제는 아끼자.

그리고 외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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