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란 신기하지.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 받아.˝- 모래로 지은 집 179쪽
˝난 무정하고 차갑고 방어적인 방법으로 모래를 사랑했고, 운이 좋게도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았다.˝-
모래로 지은 집 181쪽
최은영의 소설 속 여성주의는 이렇게 국적을 넘어 약자로서의 남성과 연대하며, 인간이라는 종을 넘어 다른 생명체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 316쪽 <해설>중에서
산다는 건 이상한 종류의 마술 같다고 혜인은 생각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존재가 나타나 함께하다 한순간 사라져 버린다.-223쪽 <손길>중에서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위태롭고 위험한 것인지 여자로부터 배운 셈이라고 혜인은 종종 생각하곤 했다. 사람은 그런 식으로 쉽게 행복해 질 수 없는 법이라고. -226쪽 <손길>중에서
언니, 어두운 쪽에서는 밝은 쪽이 잘 보이잖아. 그런데 왜 밝은 쪽에서는 어두운 쪽이 잘 보이지 않을까. 차라리 모두 어둡다면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서로를 볼 수 있을 텐데. -235쪽 <손길>중에서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오래도록 나는 그 사실을 곱씹었다. 의도의 유무를 떠나 해를 끼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나,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는 나, 때때로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무심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 나, 내 마음이라고, 내 자유랍시고 쓴 글로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봐 두려웠다. 어떤 글도, 어떤 예술도 사람보다 앞설 순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지닌 어떤 무디고 어리석은 점으로 인해 사람을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겁이 났다. -324쪽 <작가의 말>에서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마들렌을 입에 무는 순간에 어린 시절이 끝없이 흘러나오듯, 최은영의 소설에서 누군가 고개를 떨어뜨리거나 한숨을 내쉬는 순간에 세계는 온통 뒤흔들리며 멈춰 선다. 많은 이들이 최은영의 소설에서 감지한 다정함은 누구나 한 번쯤 베인 적 있는 상실의 감각에 대해 예민한 촉수로 그려내는 것을 넘어서, 거대한 세계와 사소한 개인 사이의 위계를 무너뜨려 버린다는 데 있을 것이다. 작가는 다만 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혼돈일지라도 그것이 세계 종말 이상의 사건이 될 수도 있음을 전제한 채, 나비가 날개를 파닥이듯 얇게 흔들리는 마음의 무늬들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 304쪽 해설중에서
두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은 가장 맑으면서도 미숙한 시기인 십대와 이십대 초반의 인물들을 스쳐가는 우정과 사랑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들의 감정이 어떤 조건도 걸지 않는 순연한 것인 만큼, 그것이 어긋날 때 이들은 더 깊이 서로를 베며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힌다. 그리고 이들은 그 기억과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마음 깊숙이 그 시절을 품은 채 살아간다.- 305쪽 해설중에서
자신이 느끼는 안도와 행복의 풍경이 언제나 상대의 외로움과 아픔을 철저히 밀봉했을 때에야 가능한 것임을 선연하게 의식하는 예민한 윤리, 이 서늘한 거리 감각이란 최은영 소설의 요체이자 매력이다. 이것에 대해 알고 나면 왜 인물들이 쉽게 눈물을 흘리는 대신, 끝내 울음을 참아내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어떤 눈물도 결국에는 자신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나르시시즘에 대한 날 선 경계가 여기에 있다. 단시간에 빠르게 솟구쳐 상대에게 범람하고 금세 소진되는 열정과 달리, 상대를 손쉽게 이해해 버리지 않으려는 배려가 스며있는 거리감은 가늘게 반짝이는 빛처럼 오래 유지된다. - 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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