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루라도 원없이 책만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을게다.

나 또한 고질병이라 틈만 나면 언젠가는 평소 버퍼링없이 읽고 싶었던 전집류나 세트도서를

한가방 가득 싸들고 가서 공기좋은 산사에 틀어박혀 유유자적 선비흉내를 내보리라 유쾌한 상상을 해보곤 한다.

 

올 한해 상반기는 유난히도 업무때문에 바쁘고, 육아, 집안일, 대소사 등으로 책 읽을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전자책을 구입하면서 틈틈이 짬을 내어 버려지는 시간 등을 활용한 게 나름 다행스럽다고 해야하나.

그래도 역시나 책은 한 자리에서 어느 정도의 분량은 읽어줘야 그 맛에 취하는 법이다.

잠시라도 짬이 날때 그 시간을 놓쳐버리면 언제 또 책을 들수 있는 기회가 올지 기약할 수 없다는 마음에 우짜든동 찔끔찔끔 읽는 습관이 과연 내가 추구하는 독서의 방향인가 하는 회의가 들때도 있다.

독서의 양과 질에서 볼때 내가 처한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문어발식으로 이책 저책 찔끔찔끔 읽어대는 이 독서스타일이 때론 맘에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쨌든 앞으로는 많은 책을 읽고도 싶지만, 좋았던 책을 깊이 고민하면서 다시 읽어보는 쪽으로 실천을 하고 싶다.

 

9권 중에 최고를 고르라면 고골의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를 꼽고 싶다.

 

 

 

 

1. 달콤쌉싸름한 초콜릿(라우라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사랑은 오감중에 미각과 닮아 있다라는 생각을 한 책

사랑은 미친 짓이다. 라는 경구가 사랑이란 건 해봤자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고,

사랑할 땐 우리모두 반쯤 미쳐있는 것이다 라는 뜻으로 해석해 봄직한 내용.

야하고, 감각적이고, 무엇보다 자~알 읽힌다.

 

 

 

 

 

 

2. 빼쩨르부르그 이야기(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5편의 단편집 모음

코, 외투, 광인일기, 초상화, 네프스끼 거리

이 단편집에서 고골에 반해버렸다.

특히나 <코>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집에 실려있는 동명의 소설 스님의 <코>와 비교해 읽어보면 웃음속에 담긴 인간의 비루한 욕망이 짧은 소설속에서도 얼마나 길게 여운을 남기는지 알 수 있다.

류노스케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3. 검찰관(니콜로이 고골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고골의 단편집을 읽고 반해서 바로 읽어버린 책

첫문장 "제 낯짝 비뚤어진 줄 모르고 거울만 탓한다"라는 러시아 속담으로 시작하는데,

우리 속담으로 하면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보고 나무란다"와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역시 고골은 천재인가보다. 아래 글을 읽고 한동안 외우고 다닐 정도로 좋았었던 기억이.

 

"고골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인류전체가 풍자의 대상이 되는 셈이나, 독자는 그 순간만은 그 풍자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기이한 착각에 사로잡혀 풍자가와 더불어 자기자신이 소속된 인류를 비웃는 것이다"

 

 

 

 

 

4. 만화 박정희1,2(백무현 지음, 박순찬 그림)★★★★★

 

 

 

고(故) 백무현님의 시리즈 중 박정희 편

만화라는 재능을 현대사에 아낌없이 털어주고, 2016년 4월 총선 여수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한 후 위암으로 사망하신 안타까운 작가.

전두환, 김대중, 문재인,정주영,노무현 등의 세트도 읽어보고 싶은데,

언젠가는 연이 닿겠지.

평소에 알지 못했던 박정희의 출생부터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의 스토리가 공부가 된 책.

 

 

 

 

 

 

5. 일리아스(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그리스 문화의 원형이자 서양 정신의 출발점인 호메로스의 대표작으로, 그리스 문학이 전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자 유럽 문학의 효시이다. 신의 뜻에 따라 트로이 전쟁을 수행하는 그리스군과 트로이군의 비극적인 운명, 즉 전쟁과 죽음과 삶에 대한 인간의 통찰을 15693행에 담고 있다. 거대거대하지 않은가.

 

이 책은 유명세에 비해 완독한 사람이 많지 않을 듯

영화 <트로이>와 함께 하면 진도가 잘 나가지 않을까.

학창시절 셤 잘 쳤다는 예감이 들때 그날은 실컷 오락실에 가는 날(당시는 PC방이 없었다-_-)

바로 그날 마음처럼 다 읽었을때 큰 숙제를 해치웠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워낙 다른 작품에 일리아스의 많은 문장들이 인용되기에 앞으로의 독서에 많은 도움을 준다.

 

 

 

 

6. 대머리여가수(외젠 이오네스크 지음, 오세곤 옮김)

 

 

아는 지인이 아끼는 책.

막말 대잔치

남성을 상징하는 대머리와 여가수를 결합한 역설적인 제목이 암시하듯 피상적이고 진부한 언어표현들을 비논리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진정한 대화가 단절된 인간관계, 인간들이 사물에 종속된 소외상황, 일상의 표면적인 평온속에 내재한 불안 등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비극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이 책은 사뮤엘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연달아 읽으면,

입에서 욕좀 튀어나오지 않을까. 이거 뭐지?

 

 

 

 

7. 100도씨(최규석 지음 / 창비)

 

 

영화 <1987>과 함께 봐야 된다.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우린 지금 99도씨까지 끓어 있다는 걸 잊지 말고, 부당한 권력에 대해선 계속 싸워나가야 된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 손으로 만드는 것인데

그 "우리"에 내가 한번이라도 있었던가..라는 일깨움을 준 책

 

 

 

 

8. 공리주의(존 스튜어트 밀, 서병훈 옮김)★★★★★

 

 

요즘으로 치자면 밀은 타고난 엄친아다.

요근래 복면가왕에 김구라의 아들 MC그리가 나와서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것을 두고 시청자들의 반응이 각양각색이다.

아마 MC그리는 대견스럽다는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진정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그 뜻을 실천하자면 아버지를 뛰어넘고 싶다는 욕심뿐만 아니라 뼈를 깎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애초에 아버지 그늘의 혜택을 받고 시작한 동현이가 과연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밟아왔는가를 생각해보면 글쎄다.

대한민국의 신음하는 수많은 청년들에게 가진 자들의 진정성 없는 공허한 다짐은 외면받는다.

 

 

그에 반해 밀은 아버지 그늘을 완전히 벗어났다.

아버지 제임스 밀과 벤담이 합작으로 이룩한 전통적 공리주의의 이론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노력이

아버지 이름은 몰라도 존 스튜어트 밀은 영원히 역사에 남았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자기 발전을 도모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지녔다고 주장하며 행복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로 파악한 그의 이론은 그의 저서 <자유론>과도 뿌리를 같이 하며, 말년의 <여성의 종속>에 가 닿는다.

 

고전사상같은 책은 아무래도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고통의 시간을 투자하면 반드시 그 이상을 돌려준다.

 

 

 

 

9. 에티카(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조현진 옮김)★★★★★

 

 

 

 

 

 

 

  

 

 

 

 

 

이 책은 강신주의 강의와 함께 했다.

무신론자이면서 동시에 신에 취한 유대인 철학자. 게다가 유대교에서 파문당하며 바티칸 최고의 금서목록이기도 한 책

전공자가 아니라면 이 발췌본 정도로만 읽어도 괜찮다.

욕심을 부리고 싶다면 라틴어 원본을 번역한 유일한 판본이 서광사에서 나왔다.

이 책은 에티카(윤리학)를 쓴 스피노자의 사상을 알 수 있다.

특히나 당시에 신을 부정하고 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은 가히 놀랄 만하다.

니체가 300년 후에 "신은 죽었다" 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스피노자의 선물 때문 아니었을까.

 

철학은 건물을 짓기위해 시작하는 기초공사일 것이다.

땅이 잘 다져지면 건물은 수월하게 올라간다. 독서에서 철학은 튼튼한 지반구실을 한다.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선, 영화의 프리퀄처럼

그 원류를 짚어나가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첨엔 포스팅을 상반기 전체로 할려고 했는데, 백만년후나 완성될 것 같아서 1월에 읽은 책으로 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열심히 쓰시는 분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2월에 읽은 책을 포스팅하는데는 50만년 후나 되지 않을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8-09-08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프리쿠키님은 얼마나 찰진 책만 읽으시는지~옛날에 초딩때 오락실이 50원이었는데 울동네 20원이어서 엄청 많은 애들이 방문해줬다는...ㅋ 보고 도전받고 가요 ^^

북프리쿠키 2018-09-09 00:00   좋아요 1 | URL
ㅎㅎ 찰져보이나요.
카알님 예전에 읽으신 책들 이제서야 읽는데요~
오락실 50원ㅎ 그땐 겔라그도 엄청 재미있었지요. 물결공격에 딸려올라가면 그거 살려내야한다는 ㅋ

2018-09-15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0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