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4 - 386세대에서 한미FTA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4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mbc에서 방영하는 <선을 넘는 녀석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편에서 설민석은 인생의 버킷리스트인 유발하라리와의 만남을 이루었다.
그 장면에서 설민석의 당황하는 모습과 벅찬 감동이 섞여있는 표정은 묘한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세계 최고의 대학중 하나인 히브리대학의 교정에서 설민석,이시영과 유발하라리 세 사람의 담소는 나의 눈과 귀를 TV에서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든지, ˝대한민국 분단의 현실에 대해 조언할 말은 없느냐? 라는 설민석의 질문에 유발하라리의 답은 역시나 그뤠잇~이었다.
(대답은 찾아보시길^^)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역사의 감옥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이다˝ 라는 하라리의 말이 대한민국 현대사를 치열하게 써온 한홍구 교수의 신념이 아닐까 하는데,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배움으로써 과거의 역사에서 반드시 자유로워져야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특히나 대한민국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4권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잘못한 일들에 대해서도 설득력있는 비판을 다뤘다.
아마 이 책의 별점을 높이 평가한 점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한다. 아래 문장을 읽으면서 너무 반가웠던 마음이 드는 건 한홍구 하면 빨갱이고, 이 책이 한겨레에서 출판한 책이라 너무 좌편향되지 않았나 하는 심리적 불편함을 다소나마 해소해 준 이유 아니었을까?(물론 개인적으론 한홍구교수의 현대사를 그나마 객관적이라고 자평하긴 하지만 말이다)


[IMF사태는 위기였지만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은 이를 개혁의 기회로 보지 않고, 위기를 벗어나는 데 급급하여 신용카드를 남발하는 등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함으로써 조기 졸업을 선언했다. 결국 IMF 위기를 불러온 재벌과 관료는 여전히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무기를 통해 시장만능주의와 세계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전도사로 부활했다. 김대중 정권이 위기 상황에서 강요받은 미국식 신자유주의는 이 땅에 든든하게 뿌리를 내렸고, 노무현 정권이 반환점을 돌면서 부족한 대로 정권 내에서 균형을 잡아주던 인물들이 사라지자 마침내 노무현을 지배하면서 한미 FTA를 추진하고 있다.IMF와 탄핵사태라는 두 차례의 진정한 개혁기회를 허망하게 날려보낸 한국 사회는 지금 신자유주의의 공세 속에 ‘낯선 식민지‘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57쪽]





몇달 전 직장에서 후배와 점심을 먹으며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다.
그 후배도 나름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정치적 성향도 진보쪽이라 말도 잘 통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에 대해선 확연히 갈렸다.
나 :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후배 : 아니예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과연 우리나라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았을까요?
지금도 필요한게 국가보안법입니다.

그때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한다.라고 후배에게 이야기했지만, 국가보안법의 뿌리와 과정, 그리고 그 명문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못한게 내내 창피하고 쑥스러웠던 기억이 남아있다.
드뎌 이 책 2부에서 국가보안법을 만났다.
몇번을 읽고 생각하고 낭독했던 부분이다.
바로 이렇게 시작한다.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아직 대한민국의 형법을 마련하지 못한 채 일제가 쓰던 옛 형법을 그대로 물려 쓰던 시절인 1948년 12월에 태어났다.
법률 10호이니, 국가를 운영하는 데 꼭 필요한 각종 기본법에 앞서 국가보안법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그때는 전문 6조에 최고형도 무기형으로 단출했지만 지금은 전문 25조에 사형이라는 말도 여덟 번이나 나오는 무시무시한 법률로 변했다. 그나마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다섯 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손톱, 발톱을 뽑지는 못했어도 조금 다듬어 이 모양이다 -75쪽]

이 법의 모태는 바로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한 것이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고자 예비음모하거나 그것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예비음모한 자까지 처벌하도록 되어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예비의 예비까지 처벌하는 법 앞에서 근대 형법의 기본원리인 죄형법정주의는 어디 가서 찾으리오?]

예비의 예비까지 처벌하고, 예비의 예비의 예비까지..끝이 없는 얽어매기법이다. 게다가 연좌제까지 적용시키니. 마치 어벤져스 인피니티워의 타노스 손가락 튕기기 스킬에 비견될 만큼 막강하지 않나.

[두고두고 문제가 된 것은,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자백의 증거능력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사건에 대해 예외 조항을 둔 것이다. 피고인이 법정에서 1차 수사기관에서 행한 자백을 부인할 경우 당시의 형사소송법은 이를 증거로 채택할 수 없게 했는데, 특별법 성격을 지닌 국가보안법에서는 이에 대해 예외를 인정한 것이다. 이제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자백은 ‘증거의 왕‘이 된 것이다. 공산주의란 원래 교활해서 증거를 남기지 않는 법인데 자꾸 증거를 대라니 답답할 뿐이라던 ‘공안족‘들이 이제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국가보안법 수사에서 널리 행해지던 고문과 가혹행위가 국가에 의해 묵인돼온 것이라면, 이 조항을 개정함으로써 이제는 법적으로 조장하고 장려하게 된 것이다-85쪽]

와이프와 함께 영화관에서 본 <남영동1985>는
나에게 2가지 충격을 주었다.
하나는 김근태의원이 고문기술자 이근안에 의해 칠성판 위에서의 전기고문이 마치 내가 고문을 직접 당하는 착각을 일으킬만큼 리얼하다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제발 이따위 영화 추천하지 마라고 참다참다 못해 뛰쳐나간 와이프의 행동이었다.
온몸에 소금을 발라 전기를 흘려놓고 이근안은 김근태의 회음부 아래를 살피는 것이었다. 인간의 몸에서 실핏줄이 가장 먼저 터지는 곳이라나. 죽음의 바로 문턱까지 전기를 흘리고, 다시 회복시키고, 다시 반복하는 정교한 의학적 수법이었다.
바로 이러한 고문에서 자백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가 한 행위가 아님에도 A4용지 20여장을 빼곡하게 채운 가공의 스토리를 달달 외우게 만드는.


1987년 6월항쟁을 거치면서, 1990년 헌재의 한정합헌 판결, 1995년 유엔 인권위원회의 폐지 권고 등을 거치면서도 끈질기게 목숨을 지킨 국가보안법은
왜 이리도 끈질길까? 그것은 국가보안법이 국가의 안보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지만 누군가의 철밥통을 유지하는 데에는 매우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특히나 이미 재판을 받은 사건에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한 발언조차 다시 국가보안법 위반행위로 처벌한다니.
특히나 인권 대통령을 표방한 김대중 정부에서도 법정에서의 최후진술 내용을 두고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구속한 것이다.

[최후 진술문의 내용 중 경찰이 문제 삼은 부분은 두 곳인데, 하나는 ˝자본주의는 영원불변한 체제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사회를 통제하고 운영하는 더 발전된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밝힌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정리해고제 폐지와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고 행동에 옮길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인권 대통령을 자처하는 것은 너무나 위선적˝이라고 비판한 대목이다-93쪽]

이쯤 되면 막가자는거죠?



이 책에는 반가운 책들도 많이 언급된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금서는 역시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인데 이 책은 처음에는 판매금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시위하다 잡혀온 학생들마다 이 책을 읽고 눈을 뜨게 되었다고 진술한 덕에 뒤늦게 판매금지 도서가 되었다.-112쪽]

[전두환 정권은 출발부터, 1,000여명의 언론인을 해직하고, <창작과 비평>,<문학과지성>,<뿌리깊은 나무> 등 172종의 정기간행물을 폐간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116쪽]

[학생운동 진영이 처음으로 커리큘럼을 만들어 의식화 교육을 시작할 무렵, 대학가에서는 아직도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존 롤스 같은 보수 사상가의 <정의론>, 얼마 뒤 전두환의 비서실장이 되는 이규호가 쓴 <사람됨의 철학>등이 세미나 교재로 이용됐다.-128쪽]

근래 제주도 예멘 난민의 유입으로 인해 썰전에서 유시민이 언급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꼭 한번 읽어보고 싶다.
개인의 이타성이 사회, 국가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책으로 알고 있다. 난민은 약자이고 품어야할 대상이지만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입장에서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가..라는 어려움을 통찰해 볼수 있지 않을까.



2005년 또 하나의 거대한 태풍을 겪었다.
황우석과 인혁당, 조작의 재상산으로 명명한 챕터였다.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8명이 사형당할 때 언론은 침묵을 지켰다. 아니, 조작된 정보, 예컨대 사형선고를 당한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에도 적화통일을 바라고 있다는 식의 조작된 유언을 버젓이 전해, 일반 국민들에게 ‘아, 저들은 진짜 빨갱이구나‘하는 잘못된 의식을 갖게 했다. 그러나 독재정권이 처음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조작하던 1974년은 상황이 달랐다. 젊은 기자들이 할 말을 하고자 했고, 지금과 사뭇 논조가 다르던 <동아일보>는 유신독재를 비판하는 선봉에 섰다. (...) 그러나 1975년 3월에 유신정권의 압력에 결국 무릎을 꿇었고, 100여명의 기자를 내쫓았다. <조선일보>도 30여 명을 해직했다(이때 해직된 분들이 뒤에 <한겨례>를 만드는 주축이 되었다)-149쪽]

[황우석이 조작을 지시했을 때 연구원은 잘못인 줄 알면서 지시를 따랐다. 연구실은 군대보다 더했다고 한다.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비민주적인 분위기에서 절대권력자의 지시에 따라 조작은 이루어졌다.- 151쪽]

30년의 차이를 두고 이 둘을 엮은 이유는 그 방식은 똑같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게다.
1975년을 뒤흔든 반공궐기대회 같은 푸닥거리 대신에 2005년의 언론은 ‘국익‘을 내세워 다른 생각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황우석을 의심하는 자는 매국노였다.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애국주의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어처구니없는 한판의 잔치였다.

황우석을 비판하는 기사에 달린 아래의 댓글은 이 사건이 어떤 연유에서, 그리고 어떤 결과로 끝났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언론의 진실규명도 나라가 있고, 민족이 있은 다음에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번 일처럼 ‘나라와 민족‘을 무시하고 오직 개인적인 ‘진실규명‘만을 중시하는 태도로 언론이 나아간다면, 우리나라와 민족의 미래는 없습니다. 일본놈들은 난징대학살이나 종군위안부와 같이 피해자들이 버젓이 살아있는 사항에 대해서도 온갖 핑계를 대며 부정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우리나라 학자의 작은 잘못하나 감추어주지 못한 단 말입니까? 당신들은 우리나라보다 미국이나 일본을 더 사랑하십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매국노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국익을 위해선 때로는 ‘진실‘이 감추어질 필요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저의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리켜 ‘파시즘‘이라고 매도하신다면 저는 기꺼이 ‘파시스트가 되겠습니다.되고 말고요˝-150쪽]




책의 중반에서는 중정부장 김형욱이 김종필과 경쟁하며 의문사로 남겨질때까지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김진명의 소설 <1026>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것도 김형욱이다.


그리고 꼭 알아야할 또 하나의 사건이 나온다.
바로 부일장학회다.

[부일장학회 등 사건은 1962년 당시에 첫손에 꼽히던 재력가인 김지태를 사소한 혐의로 구속시켜놓고 부일장학회 명목으로 그가 소유한 토지 10만 평과 <부산일보>,한국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의 주식 100퍼센트를 헌납받고 풀어준 사건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박정희가 김지태에게서 빼앗아 5.16장학회로 넘긴 재산의 성격을 보면 잘 나타난다. 김지태는 그 당시에 수십억 대의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김지태가 구속됐다가 풀려나는 과정에서 왜 하필이면 언론3사의 주식을 ‘헌납‘하였는가? 바로 박정희가 언론사를 원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사후에는 이름마저 박정희와 육영수에서 한글자씩 따서 ‘정수장학회‘로 바꾼 채 박정희 유족들에 의해 운영됐다. 국가에 바친 재산이 이렇게 사유화됐으니 ˝짐은 곧 국가˝라 할 밖에...-177쪽]

도둑놈이 따로 없었다.
이건 뭐 시정잡배보다 더한 행패가 아닌가.

[<경향신문>을 인수하는 데 실패한 뒤 이병철은 <중앙일보>를 창간했지만, 박정희는 중앙정보부를 동원해 끝내 <경향신문>을 빼앗아버렸다.-182쪽]

[김지태에게서 언론3사를 빼앗고, 1962년에 인수하려다 실패한 <경향신문>도 결국 손에 넣고, 영남대학까지 갖추었으니, 박정희여, 그 얼마나 청렴한고? 이처럼 노후대책을 든든하게 마련해놓고도 무엇이 부족해 권력에 그리 연연하다가 총을 맞아야 했을까?]

그 아버지의 노후대책 노하우는 순실이가 배우고, 503은 돈한푼 받아먹은 적 없다하니 참으로 떳떳한지고.

후반부에서는 신영복 교수의 짧은 일대기가 소개되고, 저자의 서울대 대학동기인 유시민과의 일화도 나온다.
<썰전>과 <대한민국사>는 이래서 닮았는가 싶기도 하다.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한겨례21에 연재하여 매진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수구 보수언론의 공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베의 무수한 악플은 덤이었을 것이리라.
그래도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미워해야 마땅할 자들에 대해 정당한 공분을 불러일으켜 분노했다는 독자가 많았다니 그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지만, 우리가 당한 것에 대해서만 썼지 저들과 싸워 어떻게 이겨왔는가를 그려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대답은 서두에서 소개한 유발하라리가 말하고 있지 않은가. ˝과거의 역사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
바로 촛불의 힘이 이끈 지금의 대한민국이 과거의 역사에 매여 아파하지 않고 자유로워지고 있지 않은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7-14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5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7-14 0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며칠전 김어준 뉴스공장을 듣는데, 한홍구 님이 혀짤배기 소리를 내는 걸 듣고 깜.놀.했어요.
나중엔 오히려 강력하게 어필하는 힘이 있었지만 말예요.
요즘 ‘반헌법열전‘이라는 이름으로 한홍구 교수님을 응원하는 방법이 있더라구요~^^

북프리쿠키 2018-07-15 09:05   좋아요 0 | URL
아..그러고보니 한홍구님의 저서를 꽤 읽어봤는데 실제로 강연은 한번도 못 들어봤네요..
혀짤배기라..ㅋ 어울리지 않는 걸 한꺼번에 갖추셨네요..
‘혀보다 펜이 강하다‘라는 걸 몸소 실천하신...ㅎㅎㅎ

반헌법행위자열전 책임 편집인을 맡고 계시네요.
와~이런거 참 좋습니다. 헌법파괴자 명단 만드는거네요. 현재의 양승태도 꼬리표가 2개나..ㅎㅎ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18-07-14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책에 감명을 많이 받았나 봅니다.
근래들어 가장 긴 리뷴데요?ㅋ
쿠키님 이리 쓰시니 저도 마구마구 읽어보고 싶네요.

국가는 국민에게 어떤 의민가 싶기도 해요.
무조건 어느 특정 대통령을 맹신하고 맹종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구요.

저도 어제 몇주만에 <선을 넘는 녀석들>봤는데
설 선생 유 교수 만나는 거 봤어요.
근데 하필 그 시간 깜빡 졸아서 뭔 얘기를 했는지 기억에 없더군요.
이 프로 좋은 거 같은데 언제고 각잡고 TV 다시보기로 봐야할 것 같아요.ㅋ

북프리쿠키 2018-07-15 09:20   좋아요 1 | URL
아..제가 길게 쓰는 건 감동의 깊이가 아니라..
겨우 짬을 냈을때..죠..ㅎㅎㅎ

사실 제가 역사관련, 특히나 한국현대사 분야를 읽을때
아주 신중하게 책을 고르는데요. 물론 제 입맛이겠지만.
전. 좌편향도 싫구요, 우편향은 더더욱 싫답니다.
그렇다고, 너무 담백하고 객관적인 사실만을 나열하는 식도 싫구요...ㅎㅎ 까다롭다.

물론 여기 계신분들 대부분이 저보다 더 신중하고 깊이있게 책을 선정하고 읽고, 감상을 남기겠지만,
제 자신이 누군가에게 명확히 규정지워지긴 싫으네요.
제 안에 왼쪽에서 오른쪽 끝까지..하루에도 수십번 들락날락하니까요.
이런 모순을 한홍구 교수의 책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태도, 공부하는 자세, 그리고 공과에서는 이념을 배제한 중립 등..
모든 면에서 준거를 제시해 준 사람이었다고나 할까요.

선을 넘는 녀석들은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제 마음속에 항상 아픔으로 남아있는 이,팔 관련이라 더 신선했습니다.
프로그램의 취지는 정말 좋았는데요.
조사코의 만화<팔레스타인>에 나오는 통곡과 분노는 외면하더군요. 그럴수 밖에 없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