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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독 :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 자서전
필 나이트 지음, 안세민 옮김 / 사회평론 / 2016년 9월
평점 :
슈독 Shoe Dog in 2016
지은이: 필 나이트 Phil
Knight
옮긴이: 안세민
출판사: 사회평론 /
2016-06 / 552쪽 / \22,000
* 슈독(shoe dog)
신발의 제조, 판매, 구매 디자인에 전념하는 사람, 오로지 신발만 생각하는 사람. 신발 마니아로서 심리 장애 증세가 뚜렷한 사람. - 269쪽
나이키 창업자인 필 나이트의 자서전입니다. 1938년생으로 육상
선수 출신인 저자가 신발에 미쳐 신발 산업에 뛰어들었고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연도별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당시 아디다스가 장악하고 있던 스포츠화 시장에서 일본의 타이거(현재, 아식스) 제품을 미국에 들여와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한 다음 전세계적으로
제조공장을 만들어나갔고 1980년 기업을 공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상장 이후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얘기는 '해질녘'으로
제목을 붙인 마지막 장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 친 문장을 옮기는 형식으로 저자의 경험을 같이 느껴봅니다.
1962년, 스스로에게
선언하다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멈추지 않고
계속 가자. 그곳에 도달할 때까지는 멈추는 것을 생각하지도 말자. 그리고
그곳이 어디인지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말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멈추지 말자.
안정된 잡지회사 발행인인 아버지는 오리건대학교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학교
MBA로 좋은 직장에 취직할 자격이 있는 유일한 아들, 필 나이트가 신발 장사를 하겠다는
것을 못마땅해하지만 (결혼한 남편들 대부분이 공감하듯이 항상 아이들의 편인)어머니의 지원을 받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배낭 여행
- 신발 수입처로 삼은 일본이 가장 중요한 목적지
1962년 9월 7일, 여행 파트너로 선택한 친구 카터와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첫 여행지인 하와이에서 카터의 제의로 몇 달 체류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을 갖기도 하는데요. 11월 추수감사절에 (하와이에 더 머물겠다는) 카터를 남겨두고 1년 동안 이용할 수 있는 오픈티켓을 구입해서 도쿄로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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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1944년 여름, 미국은 B29 폭격기로 도쿄에 융단 폭격을 가했습니다. 소이탄 340톤을 퍼부었다고 하는데.. 30만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 투하로 사망한 사람보다 네 배 많은 숫자라고 하네요.
도쿄에 있는 아버지 지인들을 만났고 이들로부터 <임포터 Importer>라는 월간지를 발간하는 미군 출신 2명을 소개받습니다.
- 2명은 미 군정기 일본에 주둔하면서 일본 문화, 음식, 여자에 매료되어 머물게 되었다고 했는데, 이들로부터 일본 사람들과 사업하기 위해 알아야 할 조언을 듣습니다.
수입처로 염두에 두고 있던, 고베에 있는 '오니쓰카 타이거' 회사를 방문합니다. 간부진과 만난 나이트는 타이거 신발을 미국에서 팔고 싶다고 제의했고 회사에서는 (당연히) 어떤 회사인지 묻습니다.
- 언뜻 생각난 것이 육상 선수 시절에 영예로 받은 블루 리본이
떠올라서,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블루 리본 스포츠를 대표한다'고
‘뻥’을 칩니다.
- 스탠퍼드 재학시절 세미나에서 (신발 사업에 매력을 느낀 계기가 된)발표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덧붙이기를, '미국 신발 시장은 거대하고 아직 개척되지 않았다. 오니쓰카가 미국에
진출해 타이거를 미국 운동선수들이 주로 신는 아디다스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다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설명합니다.
- 오니쓰카는 이미 미국 북동부 지역에서 레슬링 슈즈를 판매하고
있다고 하면서 불루 리본에서 타이거의 미국 시장 판매를 맡아줄 것을 제안했고 나이트는 이를 받아들이고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샘플 대금으로 50달러를 송금합니다.
-> 고 정주영 회장이 조선소 없이 배를 수주한 것에 비하면
덜 하지만 사업가는 사기꾼과 가까운 듯.
*
세계 여행
- 오니쓰카와 계약을 맺은 후 본격적인 해외 여행을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홍콩으로 가서 혼잡한 거리를 걸었고 -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가 멀리 중국 땅을 바라보면서 대학 시절에 읽은 공자 말씀을 떠올립니다. '산을 움직이려 하는 자는
작은 돌을 들어내는 일로 시작한다'
다음은 필리핀에 갔는데, 홍콩과 마찬가지로 혼잡했고, 홍콩보다 훨씬 더 가난한 나라 - 이어서 평온한 불상의 나라, 태국 - 전운이 감도는 베트남 -
인도에서는 갠지스강의 캘커타, 카트만두에서 히말라야 산을 오르고 몸바이를 배회 - 피라미드의 나라 이집트 - 에루살렘 - 터키 이스탄블 - 이탈리아, 로마, 피렌체, 밀라노, 베니스 - 프랑스 파리 - 독일, 뮌헨, 베를린 - 커피향이 가득한 오스트리아 빈 - 영국 런던
마지막 여행지는 그리스, 왼쪽에는 파르테논 신전 오른쪽에는 아테나
니케의 신전
- 신전에는 승리(nike)를
전해주는 아테나 여신을 묘사한 아름다운 프리즈 장식
1963년 2월 24일, 25번째 생일날, 집으로
돌아옵니다. 울음을 터뜨리는 엄마, 무덤덤한 쌍둥이 여동생
그리고 와락 껴안아주는 아버지.. 아버지에게 던진 질문은, '아버지, 신발 왔어요?'
타이거 신발 도착
회계법인의 작은 지점에서 회계사로 일하던 중, 1964년 첫
주에 드디어 일본 타이거 신발 12컬레가 도착합니다.
-> 샘플 대금 50달러를
지급하고서 1년하고도 몇 달 더 지난 다음에야 샘플이 도착했다는 얘기!
바우어만 코치와 동업
우선 오리건대학에서 육상선수 시절, 코치였던 빌 바우어만에게 2컬래를 보냅니다.
- 바우어만 코치는 나이트가 신발에 관심을 갖도록 해준 일화들이
소개됩니다.
- 1964년 1월 25일, 바우어만 코치의 연락을 받고 만난 자리에서 동업을 제안받습니다.
- 신발이 맘에 들어서였는데,
필 나이트로서는 스승의 제안에 감동했고요.
- 1차로 각자 500달러씩 1,000달러를 투자하기로 합니다.
- 며칠 후 바우어만 코치는 친구인 자쿠아 변호사와 같이 만나
정식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지분율을 51:49로 해서 경영권을
나이트에게 양보합니다.
믿음 + 좋아하는 일
필 나이트의 독백: (하와이에서의 경험으로) 나는 백과사전을 제대로 팔지 못했다. 게다가 그 일을 싫어했다. 그나마 뮤추얼펀드는 좀 더 많이 팔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일도 싫었다. 그런데
신발을 파는 일은 왜 좋아하는 것일까?
그 일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 나에게는 달리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 나는 사람들이 매일 밖에 나가 몇 킬로미터씩 달리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 그리고 내가 파는 신발이 달리기에 더없이 좋은 신발이라고
믿었다.
- 사람들은 내 말을 듣고 나의 믿음에 공감했다.
회계사로서의 경험
- 운용 자금 부족을 메우기 인해 회계사로 일하기도 합니다.
나는 CPA 시험에서 네 개 부문에 합격했다. 시험 결과와 이력서를 몇몇 회계법인에 보내고 서너 군데에서 면접을 치른 뒤,
프라이스 워터하우스(Price Waterhouse)에서 일하기로 했다. 그 해 세금 신고서에 내 직업은 자영업자 혹은 기업가가 아니라 '회계사'로 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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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망하는 주요 요인은 자기자본 부족!
프라이스 워터하우스의 거래처에는 내가 관심을 가질 만한 신생 기업과 이미 자리를 잡은 기업이 섞여 있어
고객층이 다양했다. 고객 기업들은 목재, 물, 전력, 식품 등을 포함해 온갖 종류의 제품을 판매했다.
나는 회계 장부를 통해 고객 기업들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어떻게 어려움에 처했는지, 어떻게 어려움에서
빠져 나왔는지도 배웠다. 나는 무엇이 기업을 움직이게 하는지, 무엇이
기업을 망하게 하는지 자세히 기록했다.
그러면서 자기자본 부족이 기업이 망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 그럼에도 나이키가 상장하기 전까지 10년 이상을 자금 부족에 따른 경영의 어려움은 계속 됩니다.
배신하는 일본인 - 새로운 도우미, 일본인
거래은행인 퍼스트 내셔날로부터 홀대를 받고 있던 중 (1970년,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의 종합상사 중 하나인 닛쇼 이와이(日商岩井)의
무라카미를 도쿄은행을 통해 소개받고 자금 대출도 약속받습니다. 그리고 오니쓰카의 배신이 시작됩니다.
- 자금부족으로 힘들어하는 나이트에게 오니쓰카는 블루 리본의
지분 51%를 사겠다는 제안을 했고 이를 거절하면 블루 리본보다 더 나은 판매업자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최후통첩을 합니다.
- 나이트는 니쇼 이와이에 도움을 요청했고 니쇼는 블루 리본
편에 서서 오니쓰카를 설득하지만 거절당했고, 니쇼는 블루 리본과 함께 일본의 다른 신발 제조업체를 찾기로
합니다.
나이키의 탄생
멕시코 중부에 있는 공장, '캐나다'에서 신발을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 로고는 프틀랜드주립대학교에서 만난 젊은 화가인 캐럴린 데이빗슨에게
의뢰하면서, '동적인 느낌'을 표현해달라고 요구합니다.
- 두 번째 작업물에서 '날개처럼
보인다', '육상 선수가 지나간 자국 같다'는 느낌을 주는
로고로 결정했고 대가로 35달러를 지불합니다.
- 브랜드 이름은 '팰콘, 뱅골, 디멘션 식스' 등
고민하던 차에 경영진 중 한 명으로 또 하나의 편집증 환자인 제프 존슨이 꿈속에서 제시 받았다며 '나이키'를 제안합니다.
척 로빈슨의 도움
닛쇼를 믿어도 될지 고민하던 나이트는 자쿠아 변호사로부터 그의 처남인 성공한 사업가 척 로빈슨을 소개받습니다.
- 그는 일본의 8대
종합상사 모두 그가 보유한 마르코나 광산 중 한 곳과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을 정도로 일본 종합상사 전문가였는데요.
- 샌프란시스코 사무실에서 만난 척은 '일본 종합상사가 자네의 원칙을 잘 이해한다면, 그들은 자네에게 가장
좋은 파트너가 되어줄 걸세'라며 안심시키고 용기를 줍니다.
나이키 출시
니쇼의 스메라기와 함께 일본 신발 제조공장을 둘러보던 중 벳푸 외곽의 구루메에서 '니폰 리버 Nippon Rubber'라는 회사를 발견합니다. 샘플 제조를 하면서 요구 조건에 대한 빠른 대응과 품질도 좋았고요.
- 1972년 시카고에서 미국 스포츠용품협회에서 주관하는 전시회가
열렸고 처음으로 나이키 제품이 소개됩니다. (전시장에서 처음 본) 니폰
리버에서 납품한 신발은 타이거 품질에 미치지 못했고 일본에서 만들었던 샘플보다 좋지 않아 실망하게 되는데요.
- 하지만 자신을 잃었던 그들과 달리 전시장을 방문한 영업맨들은
오히려 호평하면서 많은 제품을 주문합니다.
러닝화의 대중화
1973년 러닝화 업계가 직면한 수요/공급의 문제는 해결하기가 아주 까다로웠다.
- 온 세상 사람들이 갑자기 러닝화를 갖고 싶어했다.
- 이에 반해 공급은 단순히 수요와 일치되지 않는 수준이 아니었다. 공급은 수요를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도매점이나 소매점에는 러닝화가
항상 부족했다.
오니쓰카와는 재판으로 결별
본 법정은 보스턴과 코르테즈 브랜드에 대한 모든 권리는 블루 리본에 있는 것으로 판결합니다. 또한 오니쓰카는 블루 리본의 상표권을 유용해 블루 리본에 사업상의 손실을 발생시켰습니다.
- 손실 합의금은 40만
달러
돈은 우리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
돈은 우리의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우리의 목표가 무엇이 됐든 간에 돈은 우리가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 돈이 굴러 들어오면서, 돈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돈만 추구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기 때문에
돈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고,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다.
- 그러나 돈에는 다음과 같은 본질이 있다. 많든 적든,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돈은 당신의 일상을 정의한다. 우리의 과제는 돈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 주식
상장 후
상호 변경(1976년):
블루 리본 -> 나이키
이제 나이키는 누구나 아는 이름이 되어 브랜드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회사 이름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는 블루 리본이
자연스럽게 사라져야 할 시점이 됐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나이키사(Nike Inc.)를 설립했다.
바우어만 코치가 행복해야 한다!
우리는 바우어만 코치가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바우어만
코치가 행복하지 않다면, 나이키도 행복할 수 없었다.
- 나이 든 바우어만 코치의 어깃장을 보면서 나이트가 하는 말인데요. 책 읽는 내내 나이트의 정의감, 의리, 배려심 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압축 에어백
- 에어 조단: 광고에서
보았던 하늘을 나는 듯한 농구 스타 조단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항공우주 공학자 출신, 프랭크 루디가 개발해서 가져왔고 이미
아디다스로부터 퇴짜맞은 상태였는데, 나이트의 경영진은 대박이 날 것으로 판단합니다.
- 우리는 러닝화에 공기를 주입하는 방법을 고안해냈습니다.
- 쿠션을 강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발을 더 많이 지탱해주기 위한 것이죠.
한국의 신발 공장
한국에는 예전부터 5대 신발 공장이 있었는데, 이들 간의 경쟁이 너무나도 치열한 나머지 곧 공장 문을 닫아야만 할 것 같았다.
- 나는 나이키 브루인을 스우시 상표를 포함해 완벽하게 복제한
제품을 본 적도 있다. 모방은 선망의 표현이라는 말도 있지만, 모조품은
사악한 절도에 불과하다. 다만, 모조품을 제작하면서 우리
직원에게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고도 뛰어난 솜씨를 발휘한 것이 아주 놀랍고도 인상적이었다.
- 나는 이 공장의 대표에게 편지로 모조품 제작을 당장 중단하라며, 그렇지 않으면 100년 동안 감옥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우리와 함께 일할 생각이 있는지도 물어봤다.
- 그리하여 1977년
여름, 우리는 그 공장과 계약을 체결해 모조품 문제를 마무리했다.
-> 숙향은 1978년
10월부터 5대 신발 회사 중의 한 곳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요. 당시 종합무역상사 중의 하나인 이 그룹 전자 사업부에서 일했고 1979년 오일 쇼크 영향으로 파산하는 통에 군복무를 위해 논산훈련소로 떠났습니다.
주식 공모에 대한 거부감
- 나이트는 여러 차례 주식 공모에 대한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주식 공모를 하면 순식간에 많은 돈이 들어온다. 그러나 주식
공모는 때로 회사에 대한 통제력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기도 하다. 이는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식 공모는 하루아침에 우리가 싫어하는 일, 지금까지 피하려고
했던 일을 하게 만들 수도 있다.
- 주식 공모를 하면 자본을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다. 그 돈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렇게 하고 싶었다. 공장을
임대할 수도 있고, 유능한 사람을 고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주식 공모를 하면,
기업 문화가 바뀌게 되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게 되고, 지배구조가 변하게 된다.
- 성장이 계속되지 않으면, 우리는
생존할 수 없다. 우리가 주식 공모에 대해 갖는 두려움, 위험, 단점에도 불구하고, 주식 공모는 성장을 이어가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었다.
*
척 로빈슨의 조언
주식 공모는 선택이 아닌 필수. 나이키는 현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회사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나이키는 1980년 12월 2일 공모합니다.
- A등급 주식 2천만주, B등급 주식 3천만주 발행.. 1주당
발행 가격은 22달러
- 나이트가 우려했던 경영권에 대한 문제는 주식 의결권에 차등을
줌으로써 해결했습니다.
2007년 크리스마스
우리는 영화 보기를 좋아한다. 주로 아내인 페니가 좋아하는 액션
영화를 봤는데, 그날 밤에는 뭔가 새로운 장르의 영화를 보고 싶었다.
- 코미디 영화가 괜찮을 것 같아서 신문을 뒤적거려, '센추리 극장'에서 하는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 주연의 <버킷리스트>를 골랐다.
- <버킷리스트>는
코미디 영화가 아니었다. 죽음에 관한 영화였다. 니콜슨과
프리먼은 말기암 환자인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몹시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면서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로 결심했다.
당신에게 영향을 받고 당신을 기억하는 이들이 당신의 삶을 말해준다.
- <버킷리스트>의
대사 중
팜스프링스와 가까운 커시드럴 시티 중심부에 위치한 이 극장에는 스크린이
16개나 있었다. 로비를 걷는데, 아는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었다. 우리는 함께 걸었다.
- 두 사람과는 사교 모임이나 컨퍼런스에서 몇 번 만나 친목을
다진 적이 있었다.
우리 뒤에서 누군가가 "이봐, 버핏과 게이츠는 알겠는데, 저 남자는 누구지?"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당시 나는 100억 달러의 자산가였다. 버핏과 게이츠는 나보다 대여섯 배 정도
재산이 많았다.
책을 읽으면서 ‘이 기업에 왜 버핏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여러 차례 하곤 했는데요.
- 책 끝 ‘해질녘’에서 에피소드 하나로 깜짝 등장하는데,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연은 우연 이상의 것
오리건 주의 어느 동굴에서 발견된 6천년 전의 샌들 한 컬래가
지금까지 발견된 신발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이 단지 지리적인 우연에 불과할까? 이 샌들이 발견된 1938년에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도 단지 우연에 불과할까?
*
오래된 오솔길: 개척자 정신 - 필 나이트의
오리건주에 대한 자부심
이 오솔길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권리, 기질, 운명,
DNA라고 할 수 있지. 겁쟁이들은 올 생각조차 못 했어.
약한 사람들은 도중에 죽었지. 이렇게 해서 살아남은 자들이 바로 우리 오리건 사람들이야.
- 나이트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 자주 들려줬다고 하는데, 시작하는 글, 동틀 녘에 나오는 말입니다.
무역 vs 전쟁
상품이 국경을 넘어가지 않으면, 군인들이 넘어갈 것이다
- 오리건대학 경제학 교수들에게서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격언.
사업을 총탄 없는 전쟁이라고도 하는데, 실제로 사업은 전쟁을
막는 훌륭한 방어벽이기도 하다. 무역은 공존과 협력으로 가는 길이다.
평화는 번영을 먹고 자란다.
-> 나아질 기미가 없는 미국의 중국 견제에 따른 무역
전쟁이 피곤하기만 합니다.
후회
신이시여, 어찌 감히 처음부터 다시 살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 그렇게 하지 못하는 대신,
나의 경험과 인생 역정을 많은 젊은이와 나누고 싶습니다.
- 그리하여 그들이 시련을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와 위로가 되고
싶고, 때로는 충고가 되고 싶습니다.
젊은이에 대한 바람
젊은이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돕는 것은 보람찬 일이다. 나는
그들에게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앞으로 40년 동안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누구하고 함께 쓰고 싶은지 깊이 고민해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20대 중반의 젊은이들에게는 직업에 안주하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천직을 찾으라.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더라도, 계속 찾도록 노력하라. 천직을 찾으면 힘든 일도 참을 수 있고, 낙심하더라도 금방 떨쳐버릴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성공에 이르면
지금까지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업가: 때로는 포기가 필요하지만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된다
기업가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한마디로 사기꾼이다. 기업가는 때로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포기해야 할 때를 알고, 다른 것을 추구해야 할 때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포기는 중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업가는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된다.
성공에는 행운도 큰 역할을 한다
나는 행운의 위력을 공개적으로 인정한다. 운동선수, 시인, 기업가에게는 행운이 따라야 한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고, 머리도 좋아야 하고, 결단력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행운이 결과를 결정할 수도 있다.
자신만의 믿음
당신 자신에게 믿음을 가져라. 이런 믿음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져라. 믿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이 정의하는 믿음이어야 한다. 믿음
그 자체는 당신의 마음속에서 정의된다.
제가 제대로 읽었다면 2007년 크리스마스 때 극장에서 나오다
버핏과 마주친 일화가 가장 최근 얘기입니다. 한데 원서는 2016년
출간이라고 하네요. 구글로 검색하다 금방 포기했습니다. 뭐가
중헌디^^
성공한 사업가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사업을 시작하고서 10년이 넘도록 나이트는 너무 힘들어 보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처지에 몰입하게 될 때면 저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짜증이 나고 피곤함까지 느꼈는데요. 해피앤딩으로 끝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덮으면서 떠오른 생각은, 저는 상장기업에 투자하는 주식투자자
입장으로서 성공한 사업가의 도전 정신과 결단력에 감탄하는 한편, 사업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닥치게 되는 수많은 시련을 이겨낼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새
사그라든 ‘열정’을 찾아와야겠다는 마음도 들었고요.
사족:
1. 이 책은 지난 주(6/17~20)
일본 홋카이도 패키지 여행할 때 동행했습니다. 마침 가이드가 일본의 고무 산업의 발전과
일본 종합상사들의 원자재 확보 등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는데, 책 내용과 겹치는 게 많아서 재미있었습니다.
일본의 타이어 제조업체, 브리지스톤(Bridgestone)이 버선 만드는 회사였는데, 버선 신은 발이
다다미방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버선 밑바닥에 고무를 부착했다고 하네요.
버핏이 일본 종합상사 주식에 투자한 것과 관련해서 제가 아는 것과 너무 다른/과장된 얘기를 하길래 어쩔 수 없이 반박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잠깐
머쑥했던 순간도 생각납니다. 패키지 여행 때 가이드의 설명에 이유를 달면 안 된다는 것은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죠^^
2. 귀국하기 위해 치토세 공항으로 가던 버스가 잠깐 신호등에
걸려 멈췄을 때, 차창 밖으로 '북앙신용조합'이 보였는데 벽면에 게시된 광고문이 눈에 띄길래 휴대폰에 담았습니다.
- 정기예금: 5년 0.5% / 3년 0.3%
- 특별금리 (적용은) 10/31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