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먼저 저자의 프로필을 넘어 화려한 저술 활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저자가 집필한 책만 하더라도 공저 포함해서 알라딘 공식 자료에 의하면 214종이나 된다. 번역한 책만해도 18권이 넘는다. 한 마디로 괴물이다. 단 한권의 책을 만들어 내는 것만해도 쉽지 않건만 어떻게 저자는 이러한 방대한 지식의 향연을 펼치는지 입을 다물지 못하겠다.
이 책은 인문의 출발과 고대의 인문 이야기인 『인문학의 거짓말』에 이어지는 중세의 인문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인문학의 거짓말』에서 고대 인문에 대해 쓰면서 부처나 예수도 아나키스트라고 불렀다. 반면 서양의 주류 사상인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지 않다고 비판했는데 그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 관심이 가졌다. 그리고 그들과 대립한 사상가로 오쇼 라즈니쉬와 알렉산더 대왕을 통해 알게 된 디오게네스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즉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과 대립한 사상가로 디오게네스를 내세운다. 괴짜 철학자인 디오게네스는 예수로 이어졌으나, 예수의 아나키즘은 바울과 콘스탄티누스 등에 의해 배신당하여 서양 중세 1,000년의 세월 동안 왜곡되었다는 그의 주장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서양이 자신들의 종교였던 기독교를 아나키스트 예수의 믿음으로 되돌려야 그 제국주의를 끝낼 수 있다는 그의 논지가 이 책을 통해 펼쳐지게 된다. 책 머리(프롤로그)에 나오는 그의 글을 통해 나오는 부분을 정리했는데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책에 대해 홍보를 다했다고 본다.
이어서 저자는 흔히 생각하는 중세에 대한 얘기를 서양 중심이 아닌 인도, 이슬람, 중국, 한반도의 중세 중심으로 이 책을 펼쳐나간다. 서양 중세는 이 책에서 4분의 1정도 언급되었다. 특히 암흑시대라고 알려진 서양 중세와는 달리 비서양 중세는 개명시대였음을 새롭게 주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한국사에서도 삼국시대와 고려시대가 가장 찬란한 개방(개명)적 시기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비서양 근대가 암흑기가 찾아옴에 있어 서양 근대의 제국주의 침략으로 암흑시대로 전락했다고 하는데 이들의 영향은 즉 서양 중심의 근대는 2019년 '코로나 19'라는 결과를 결국 맞이하게 했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조금 더 길게 보면 16세기부터 시작된 제국주의 침략의 결과라고 하는데 이런 그의 주장이 더욱더 이 책을 읽게 만드는 요소인거 같다. 그래서 그는 흔히 신대륙 발견을 말할 때 '지리상의 발견'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이것을 '지리상의 침략'으로 본다. 즉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서양 중심의 중세 인식을 비틀어 보고자한 것이다.
이것에 대한 저자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자. 저자는 1983년에 일본에 공부하러 간 이유 중에 하나가 노동법의 선배 교수로서 일본 교수들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일본의 역사학자로서 역사 교과서 논란을 일으킨 '이에나가 사부로'가 쓴 "일본 문화사"를 보면 적어도 우리가 아는 상식인 일본 중세 문화는 한반도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음을 발견했다. 또한 미국에 가서도 일본 문화사에 대한 책을 읽어 보니 당시 유명했던 '폴 발리'의 '일본 문화사' 또한 한국에 대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미국 책만 아니라 서양 책 모두가 그러하고, 여기에는 한국만 아니라 비서양이 존재하지 않았다. 즉 세계사 속에 중세란 오직 서양 중심의 중세였다. 비서양의 중세가 있지만 그러나 그건 서양이 바라본 중세였다는 것이다. 아니 세계사가 서양사였다. 조금 거기에 무엇을 보탠다면 중국사나 일본사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서양 중세를 암흑기라 보지 않으려고 하는 최근의 경향에 반론을 제기하고 반대로 인도, 이슬람, 중국, 한국의 중세를 그 각각의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개방적 시기로 새롭게 보고자 한 것이다. 한 마디로 근대가 시작하면서, 즉 서양이 세계를 침략하기 시작하면서 비서양은 몰락하기 시작했으며 여전히 포스트모던이즘이니, 세계화니 라는 말이 나와도 서양 근대의 제국주의는 살아서 움직이고 있음을 이 책은 끝으로 말해주고 있다.
암튼 이분은 대단한 학자이며 범접할 수 없는 인문학자임은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