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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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대표지성이라고 하면 으레 이어령 교수를 꼽는다.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 석학이다. 이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현재 88세의 나이다. 그런데 그에겐 암이 함께하고 있다. 소위 암투병 중이다.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암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 뛰어난 석학이라서 다른가? 아니면 무엇이 그의 이런 신념을 만들어 내었을까 궁금하다.

 

 

이 책은 이어령이라는 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가장 지혜로운 이야기이다. 마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처럼 암투병 가운데 죽음을 앞두고 가장 중요한 진실을 얘기해 주고자 한다. 그래서 솔깃하다. 또한 간절하다. 과연 어떤 삶이 가장 중요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이미 받아들여서인가. 그는 죽음을 아주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이미 마음으로 준비를 다하고 있다. 신호만 내리면 냉큼 달려갈것처럼 말이다. 그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는데 이 대목이 너무 멋지다. 그건 죽음은 그만 돌아오라는 엄마의 부름이라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 어릴 때 엄마는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잖아. 이제 그만 놀고 생명으로 오라는 부름이야그렇게 보면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이지. 어머니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이니까.” p154

 

 

그는 또 죽음을 말하기를 "5월에 핀 장미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대낮이 죽음이며, 죽음의 자리는 낭떠러지가 아니라 고향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가 생각하듯 죽음은 그렇게 무서운 존재가 아닐지도 모르다. 가까운 지인 중에 남편이 42세로 림프암으로 세상을 떴다. 얼마 전에는 아버지도 림프암으로 돌아가셨다. 본인 또한 몸이 좋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데 그래서 장례식장에 가면 굉장히 침울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미 울어버려서인지 담담하게 아무런 일 없이 우리를 맞이한다. 이것을 보며 생각했다. 내 아내가 혹시 저러면 나의 죽음은 무엇인가? 너무 쉽게 남편이라는 존재를 떠나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 인간이란 존재는 죽을 사람은 죽는 것이며 산 사람은 살아야 되기에 장례식 가운데 밥을 챙겨먹고 화장실도 가 볼일을 보는 것이다. 혹시나 배탈이 나면 죽은 사람 보다 내 자신의 배탈이 더 중요해 약을 간곡히 찾아 편안함을 찾는다.

 

 

어쩌면 죽음과 삶은 결코 두렵지만 않은 잠시잠깐의 이별인 것인지도 모른다.

 

 

이어령 교수를 안다면 그의 회심 사건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다. 딸 이민아를 통해 신 앞에 무릎 꿇고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말하기를 환생, 부활나는 그런 걸 믿지 않아. 기독교인이니 겉으로는 받아들이지만, 그 부분에 관해서는 사실 낫싱(nothing)이야.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면 삶이 이렇게 절실할까. 끝이라고 생각하니 절실한 거야.”라고 말한다.

 

그렇다. 죽음은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끝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무엇을 지향하며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이 책은 김지수 기자가 묻고 이 교수가 답하는 형식으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관한 책이다.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그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깊은 우물속에 건져내고 있다. 어느 정도 무게가 실렸나하면 그 무게는 상당한 무거움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생에 마지막 수업이 될 수 있음으로, 가장 귀한 것을 주고 싶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나는 이제부터 자네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네. 이 모든 것은 내가 죽음과 죽기 살기로 팔씨름을 하며 깨달은 것들이야. 이해하겠나? 어둠의 팔뚝을 넘어뜨리고 받은 전리품 같은 것이지.”

 

그렇다. “이 책은 죽음 혹은 삶을 묻는 애잔한 질문에 대한 아름다운 답이다.” 삶과 죽음, 사랑, 용서, 종교, 과학, , 돈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면서 인터뷰를 이어가고 있는데 매 쳅터마다 주옥같은 진리의 메세지가 펼쳐지면서 독자를 삶의 진리 가운데로 이끌어 준다. 제자로서의 질문도 뛰어나고 스승으로서의 대답도 무언가 형이상학적이지만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저자가 말하듯 제자들이 길을 헤맬지라도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하길 바라는 이런 스승과 함께라면 어쩌면 우리는 이 불가해한 생을 좀 덜 외롭게 건널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말이 따뜻함으로 지성과 마음, 영혼에게 전해진다.

 

 

한 쳅터마다 읽고 나누고 싶은 주제이다. 죽음은 가장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친절한 철학자이다. 갑작스럽게 죽어 죽음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쓴 글과 책이 많은데 암이라는 죽음을 실제 앞에 두고 말하고 있으니 그의 말에 더욱더 겸허한 자세로서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는 말한다. 자신의 말은 "듣는 귀가 필요하네...왜냐면 나는 은유와 비유로 말할 참이거든" 즉 듣는 다는 것은 죽음을 실제 앞에 두고 들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책에 언급되었듯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라는 사람은 최초로 죽음학을 했고 죽음에 대한 강의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정작 자기가 암에 걸리고는 감당을 못했다고 한다. 한 기자가 물었다.

 

 

"당신은 임종하는 사람을 지켜보며 그렇게 많은 희망을 줬는데 왜 정작 당신의 죽음 앞에서 화를 내고 있느냐?" 로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타인의 죽음이었어. 동물원 철장 속에 있는 호랑이였지. 지금은 아니야.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나한테 덤벼들어. 바깥에 있던 죽음이 내 살갗을 뚫고 오지. 전햐 다른 거야. 전두엽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척추 신경으로 감각하는 죽음은 이토록 거리가 멀다네." p30

 

이 말을 보면서 톨스토이가 쓴 '이반일리치의 죽음'이 생각 났다. 거기에 보면 주인공 이반 일리치 자신도 사실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죽음은 죽어가는 당사자의 고통이며 무게감이다. 아래는 거기에 나오는 글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각자에게 전근과 승진의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과 함께, 가까운 친지가 죽었을 때 으레 그렇듯이,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 모두의 마음속에 '죽은 건 그 사람이지 내가 아니야' 하는 안도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저마다 '그래 그는 죽었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 있잖아!' 하는 생각이나 느낌을 가졌다. (...) 친구들은 예의상 장례식에 참석해 미망인에게 조의를 표하는 따위의 귀찮은 의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으니 '표도르 바실리예비치와 표트르 이바노비치' 였다. 특히 표트로 이바노비치는 이반 일리치와 법률학교를 함께 다녔으며, 그에게 여러 가지 신세를 졌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터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아내한테 이반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전한 다음, 어쩌면 이번 기회에 처남을 이쪽 재판 관할구로 전근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자신의 짐작을 털어놓았다. -이문열의 죽음의 미학 중에서 p27-28

 

죽음, 그것은 우리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이 책은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가 이런 말을 했는데 나도 언제가는 이런 말을 할 때가 올 것이다.

 

 

"내년 삼월이면 나는 없을 거야. 그때 이 책을 내게"

 

 

결론적으로 이 책은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선물'과 같은 책이다.

 

이 책의 한 문장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은 무엇인가요?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요즘 따님 생각을 더 많이 하시겠습니다. 암 선고받은 후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더 생산적으로 시간을 쓰는 까닭도 따님과 관련이 있는지요?

 

 

“(미소 지으며) 우습지만, 성경에는 나중 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이 있어요. 내 딸이 그랬어요. 그 애는 죽음 앞에서 두려워 벌벌 떨지 않았어요. "지금 나가면 3개월, 치료받으면 6개월" 선고를 듣고도 태연하니까, 도리어 의사가 놀라서 김이 빠졌어요. [...] 이혼하고도 편지 한 장 안 쓰던 쿨한 애가, ‘아빠가 예수님 믿는 게 소원이라면 내가 믿어볼 만하겠다, 그렇게 시작했어요. 딸이 실명의 위기에서 눈을 떴을 때 내 눈도 함께 밝아진 거지. 딸이 아버지를 따라가야 하는데 아버지가 딸의 뒤를 쫓고 있어요(웃음).”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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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 - 모든 권력에 반대한 창조인 아나키스트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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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있으면 자유 없다.” 1921년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표트르 크로포트킨(1842~1921)의 장례식에서 사용된 검정색 만장에 쓰였던 만사다

 

평등 없이 정의 없고,

정의 없이 모럴 없다!

 

오래된 미래를 거부하고 새로운 미래를 제안한 위대한 사상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이 즐겁게 일하고 쉬고 나누는

푸르른 세상을 꿈꾸었던 희망의 아나키스트

 

이 책은 이 한마디가 내 마음을 동요시켰다. 그건 내가 좋아한 톨스토이가 손으로 쓴 것을 크로포트킨은 몸으로 살았다”(로맹 롤랑)는 말이다. 톨스토이는 회심 후 새로운 인생과 삶을 만들어 간 존재이다. 그가 추구한 가치관은 어쩌면 현시대에 맞지 않는 이상적 세계관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어쩌면 톨스토이가 추구하는 무정부적이며 비폭력적인 세상을 꿈꾸고 살고 있다. 톨스토이는 작가이자 기독교 사상가로서의 삶을 살면서 권력·억압·강제를 거부하고 사랑·평화·자유를 받아들이는 사회를 추구한 인물이다. 그가 쓴 책 가운데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라는 책은 톨스토이의 기독교적 아나키즘이 집약된 책이라고 한다. 독자는 그의 소설과 함께 2007년도에 출판된 '인생의 길'이라는 책을 통해 더더욱 톨스토이에게 빠져들었다.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그를 일컬어 가장 위대한 소설가라고 평가했듯이 나는 톨스토이가 쓴 글과 함께 그가 추구한 사상과 삶을 동경한다. 물론 톨스토이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그를 비판적 입장에 보는 분도 있지만 그는 신의 사람이 되고자 고군분투한 인물이다.

 

 

그런 가운데 크로포트킨이란 인물을 접하는 기회를 가지며 그에 관한 평전을 읽게 되다니 독자로선 반가울 따름이다. 정말 폴 애브리치니가 말한대로 크로포트킨은 신 없이도 성인이 되는 과업을 달성한 존재인가? 또한 그는 "지배자 없음"을 뜻하는 아나키즘의 세상을 만들고자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나의 목적이다.

 

 

그에 관한 수식어가 상당히 많다. 영어판 위키피디아에서 보면 아나키스트, 사회주의자, 혁명가, 경제학자, 사회학자, 역사가, 정치학자, 지리학자, 아나르코 코뮤니즘을 옹호한 철학자, 행동가, 에세이트, 조사가, 작가라고 한다. 번역가 박홍규는 여기에 더 보태어 생물학자나 지질학자, 또는 과학자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의 저서 중에서 가장 유명한 상호협력은 진화의 원리에는 생존경쟁만이 아니라 상호협력이라는 측명도 있다고 주장한 생물학책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과학자 아나키스트라는 것이다.

 

그는 학문의 경계를 넘어 실험정신과 도전정신으로 끊임없이 통합적이고 연계적인 사유를 하면서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사회를 추구한 창조의 인간이었다.

 

 

아나키즘이란 부당한 권력이나 권위를 거부하고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살자는 것으로서 스스로 창조하는 정신을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창조력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 민중의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소수의 지배계급과는 거리를 두고 인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 갔다. 젊어서 한때 장교로 복무했지만 역시 인민의 일원으로 살았고, 제대 후에는 죽을 때까지 어떤 권력의 자리에도 오르지 않으며 그저 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의 출생을 보면 러시아 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다. 즉 이런 상태라면 예정된 출세의 길을 가며 기득권적인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는 대신 아나키스트이자 혁명가이자 과학자로서 일생을 바치며 재산과 지위를 버리고 평생을 아나키즘 운동에 헌신하며 살아 갔다. 그래서인지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위해 열정을 불사른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그는 영웅으로 남아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채호(1880!1936)는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이고 혁명가이며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이며 소설가이다. 그는 크로포트킨을 매우 존경했을 뿐 아니라 그의 사상과 행동을 따라 살아갔다. 한 자료에 보면 신채호는 1936년 사망하면서 서적 몇 권을 감옥에 남겼는데, 그 중에는 러시아 아나키즘의 선구자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이 쓴 '세계 대사상 전집'이 있었다.

 

 

그렇다. 크로포트킨은 신체와 지성 전체가 마치 알레르기에 반응하듯 모든 권력에 반대하고, 언제 어디서든 상호협력하는 사상으로 똘똘뭉친 자이다. 어린시절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그러니 서로 공평하게 나누고 도우며 살자"라는 깨달음을 얻은 후 그는 평생 한순간도 잊지 않고 이를 실천하며 살았다.

 

 

세상은 여전히 권력히 존재하며 민주주의 시대이지만 과연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하며 의문을 가질 정도로 아직도 약자는 짓밟히고 아파하고 있다. 현 시대 우리가 뽑은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가장한 얼굴로 국민들 위에서 여전히 약자의 모습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의 귀는 닫혔으며, 그의 눈은 국민이 아닌 그가 생각하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다. 오로지 이것을 위해서 그는 지금 국민을 짓밟고 있다. 사실 그의 정치적 행태를 보면서 아나키즘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가 아닌가 싶지만 아시다시피 아무리 지배자 없는 세상을 주장해도 지배자는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여전히 어떤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기에 그러한 권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에 아나키즘은 여전히 필요하다. 얼마 전 "서울대에서 환경미화원이 사망했는데 사망 원인 중에 한 가지를 보니 청소 업무와는 무관한 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 또는 한문으로 쓰는 시험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개관 연도, 현재 학생수 등 객관식 문제를 주며 누가 몇 점을 맞았는지 공개하며 수치심을 주었다고 하는데 서울대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이다.

 

 

한 자료를 또한 보았는데 서울대학교에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서울대학교 입학의 90%는 부모의 경제력이라고 한다. 또한,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역시, "상위 1%만이 더 좋은 대학과 직업을 구하며, 학생의 고득점은 가족의 경제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시험이란 사실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현실에서는 불평등한 사회의 기득권을 대물림하는 것" 라고 말을 하였다. 즉 현시대는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이다. 북유럽에서의 행복의 비결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대학교에서도 서열화 문화를 만들게 되고 사회 생활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게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권력으로 다른 사람을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다. 지식으로, 얼굴로, 옷차림으로, 생활수준으로, 지역으로, 인종적으로 사람을 차별하며 그들 위에 서고자 한다. 어쩌면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는데 어쩌면 완전한 경쟁 없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은 이상으로서만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상호 협력하며 서로 돕고 나누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상대와 같은 눈높이로 그 영혼을 바라보며 어떤 형태로든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단호히 거부하며 내려놓으려 해야 한다. 그건 바로 '사랑'에 기반한 능동적 실천이다.

 

모든 권력에 반대하고, 언제 어디서든 상호협력하라고 외친 크로포트킨의 외침은 우리 사회를 좀 더 행복한 사회로 만들어 나가게 할 것이다. 끝으로 틀스토이의 글이 좋아 남겨본다.

 

참사랑-톨스토이

 

모든 사람을

한결같이 사랑할 수는 없다

보다 큰 행복은 단 한 사람이라도

지극히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그저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

대개의 경우와 같이

자신의 향락을

사랑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그와의 관계를 끊을 만한

각오가 되어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보라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당신은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의 한 문장

 

누구도 지배자일 수 없고 서로 도와야 한다.

 

모든 권력에 반대하고, 언제 어디서든 상호협력하라!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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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길 - 나를 바로세우는 사마천의 문장들
김영수 지음 / 창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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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백과사전 사기에서 배우는 인간의 도리와 세상의 이치

 

사마천의 사기대해서 들어봤지만 제대로 읽어본적은 없는데 이번 기회에 읽으면서 보통의 책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얼마 전 읽은 책 한비자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고전은 상당히 깊이가 남다르며 인간의 삶을 마치 해부해주듯 세상과 인간의 본질을 통찰하게 해주고 있어 너무 재미나게 읽고 있다. 또한 이 책은 고상한 도덕적 잠언이나 사탕 발린 당의정도 아니요 부드럽지도 고리타분하지도 달콤하지도 않는 책이다. 여기에 나오는 언어들은 때로 냉혹하기 그지 없고, 차갑고 서늘하고 무섭다. 그러나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이 깔려 있어 서늘한 이성과 따뜻한 감성을 겸비한 인간으로 우리를 다듬어주고 있다.

 

 

머리말에 언급되었듯 사기526,500자가 지향하는 바는 '어떻게 살 것인가''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과 답을 주고 있는 책이다. 즉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을 역사를 통해 검증하고 확인하면서 인간의 도리와 세상의 이치를 배우도록 한다.

 

이 책은 네 가지로 분류된다. 1장 어떻게 살 것인가? 2장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3장 나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4장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미 첫 장부터 이 책은 흥미진진한 역사적 얘기가 많아 읽는 재미가 있다. 더군다나 한편의 글들이 두 세장 정도의 글이라 지루하지 않고, 스토리와 더불어 명언과 같은 글이 있어 잠시 멈추고 깊이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처음 와 닿은 내용은 "내 의지대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이다.

 

내 의지대로 산다는 것

 

사마천은 사기열전의 첫 장을 고고한 '정신의 귀족' 백이와 숙제 형제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들은 고죽이라는 작은 나라의 왕자였지만 서로 왕위를 양보하다 아예 나라를 버리고 숨어버렸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두 왕은 주나라의 서백 창이 노인을 공경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 갔다. 그런데 창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 무왕이 아버지 문왕의 위패를 앞세운 채 은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이에 형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붙들고 아버지의 장례도 치르지 않은 채 전쟁을 치르는 것은 불효이고, 신하된 몸으로 군주를 치는 것은 불충이라며 말렸다. 무왕은 끝내 말을 듣지 않았는데 이때 두 왕자는 불충한 주나라 땅에서 나는 곡식은 먹을 수 없다며 수양상에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 먹으며 살다 결국 굶어 죽었다고 한다. 이런 백이와 숙제 형제에 대해 후세인들 갑론을박했지만 사마천은 '백이열전'에서 공자의 평을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공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 같지 않으면 함께 일을 꾀하지 않는다." 이 말은 사람은 각자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한다는 뜻이다. 또한 이렇게 말했다. "부귀란 놈이 구한다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내 비록 남의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이라도 기꺼이 하겠다. 하지만 만약 구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바에 따르겠다"

 

 

무엇을 말함인가? 사마천은 여기서 자신의 말을 덧붙여 말한다. "날이 추워진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아는 이치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래에 나오는 말을 덧붙였는데 상당히 와 닿는 말이었다.

 

"세상이 다 흐려졌을 때 비로소 깨끗하고 맑은 사람이 드러난다. 어째서 세상은 부귀한 사람을 그토록 중시하고, 깨끗하고 맑은 사람을 하찮게 여길까?"

 

세상을 내 의지대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만명 중에 한 명 정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인물 중에 '랄프 왈도 에머슨'이란 분이 있다. 그가 쓴 '자기 신뢰'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이 부분과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서양의 사마천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천재란 무엇인가 할 때 단순히 아이큐가 좋은 자가 아닌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이다.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남의 말에 그대로 순응해서는 안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자기 방식대로 밀고 나가는 사람이다."

 

또한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사마천과 같은 맥을 잇는다. 이걸 보면 위대한 인물에게는 위대한 생각들이 공유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보다 자신의 의견에

별가치를 두지 않는 다는 사실은 참 의아한 일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사기130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열전 70편을 보면 주로 제왕과 제후를 위해 일한 인물들의 전기를 수록하고 있다. 때로 계급을 초월하여 기상천외의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각양 각층의 인물들의 삶이나 그들과 관련된 사건들을 서술하고 평가하고 있는데 이것을 보면 사마천의 역사의식이 매우 뛰어남을 알게 된다. 즉 그의 글은 실화적 얘기이기에 더더욱 와닿는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말 중에 하나가 삶의 통찰을 주고 있어 그 내용을 적어보고자 한다. '영위계수 물위우후'라는 말이 있다. 즉 차라리 닭의 주둥이가 될지언정 소의 똥구멍은 되지 말라는 뜻이다. 흔히 쓰는 말은 이것이다.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낫다'

 

 

그런데 말이다. 사마천은 여기에서 우쭐한 자존심으로 망신을 당하지 말라며 이런 충고를 하고 있다.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221녀까지 장장 550년에 걸친 중국 최대의 혼란기이자 황금기였던 춘추전국시대의 산물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이 '책략가'의 등장이었다. 다른 말로는 모사, 또는 책사라고 불리며 '유세객'이란 특수한 용어로 부른다. 오늘날의 언어로는 세계 정세에 정통한 전문 로미스트라 할 수 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인물이 있으니 전국시대 후기 '합종'이라는 6국 연합정책을 제시한 유세가 '소진'이다. 젊어서 신비한 은둔자 귀족자에게 유세술을 등을 배운 그는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하산했지만 뜻을 못 이루었다. 그런 중에 더더욱 공부에 매진하면서 소진은 연나라 문후를 만나 합종이라는 정책 구상을 펼쳐 보인다. 그리하여 조, , , , 초를 방문하며 6국의 동맹을 성사시키는데 소진이 한나라 혜왕(위나라의 멸망을 자초한 자)을 자극해 진나라를 섬기지 못하도록 설득하는 과정 속에 닭과 소의 똥구멍 얘기가 나온다.

 

속담에 차라리 닭의 주둥이가 될지언정 소의 똥구멍은 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손을 마주잡고 신하가 되어 서쪽의 진을 섬긴다면 소의 똥구멍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대왕처럼 현명한 군주에 강력한 군대까지 있으면서 소의 똥구멍 소리를 듣는다면, 오히려 신이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 말에 혜왕은 소진의 선동에 넘어가 "결코 진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소리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혜왕이 자국의 힘은 고려치 않고 욱하는 감정을 앞세워 소진의 유세에 넘어간 꼴이되었다. 즉 이런 닭 주둥이는 아무도 주둥이로 봐주지 않는다. 한순간 닭의 주둥이가 되겠다고 우쭐거리다 망신 당하기 보다는 그 순간을 참고 소의 엉덩이로 자처하며 훗날을 위해 힘을 길러야 한다. 즉 도광양회(韜光養晦)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자신의 빛을 감춘 채 보이지 않게 실력을 기르며 때를 기다리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시기도 꼭 필요하다. p34

 

책은 한편의 이솝우화처럼 읽는 재미가 있다. 이것을 다시 말함은 이 책은 열 글자 이내의 짧은 고사성어 뒤에 숨은 풍성하고도 흥미진진한 역사적 배경과 중국 고대국가의 흥망성쇠, 영웅들의 다채로운 사연들이 매우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인생 앞에는 수많은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를 거두게 되어 있다. 이때 어떻게 최선의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한데 이 책은 그러한 고민과 갈등에 훌륭한 지침과 지혜를 분명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이 책을 펴낸 김영수(金瑛洙)는 지난 30여 년 동안 사마천(司馬遷)사기(史記), 그리고 중국을 연구하고 25년 동안 중국 현장을 150차례 이상 탐방해온 사마천과 사기에 관한 당대 최고의 전문가라고 한다. 저자는 지금도 사마천과 중국의 역사와 그 현장을 지속적으로 답사하고 미진한 부분을 계속 보완하는 연구를 하고 있는데 그가 꿰뚫은 보배로운 글은 사기에 대해 더욱더 친근하게 해주고 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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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 선택과 결단의 경영자 - 위기에 맞서는 경영자가 배워야 할 쾌도난마의 지혜
한비자 지음, 손영석 엮음 / 스타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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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경영자들이 첫 손에 꼽는 책 한비자

그러면서도 그 사실을 밝히길 원치 않는 책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한 시대로 꼽히는 춘추전국 시대에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가장 주목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한비자》를 쓴 적국 '한비韓非'라고 한다. 한비자의 저술을 읽고는 "이 사람을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전해진다. 그리하여 그는 한나라까지 쳐서 한비자를 손에 놓게 되었다.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 일컬어지며 경영자들의 비밀 문서처럼 여겨지는 고전에 대해 한 번쯤 접하고 싶었다. 철저하게 사람의 본심에서 우러나온 것을 솔직하게 쓴 그의 저작이 궁금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더욱더 독자들의 마음을 끈다.

사람이 움직이게 되는 동기란 무엇인가?

사람은 어느 때 즐거워하고 어떤 때 분노하게 되는가?

사람은 대체 어떠한 때에 협력을 하고 어떤 경우에 배반을 하는가?

남의 윗자리에 앉은 사람으로서 명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한비자가 얼마나 위대하고, 또 위험한 인물이기에 순자 밑에 공부한 이사(李斯/진시황의 천하통일을 도운 첫 번째 공신)는 자신의 지위가 위협해진다 생각하여 그를 제거하고자 했는가?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한비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학식이 풍부했으나, 말을 더듬는 약점 탓에 정치에 발탁되지 못하자 방향을 틀어 자신의 정치 이념을 여러 글로 담아냈다고 하는데 이러한 한비에 대한 배경이 몹시 이 책을 읽게 하도록 나를 채근하고 있다.

일단 책은 읽기가 수월하다. 가독성이 있으며 지루하지 않다. 일단 철저하게 이 책은 경영자의 삶을 조율해 주는 책이다. 경영자들은 부하 직원이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클 것으로 본다. 나쁘게 말하면 부하 직원을 다루는 기술을 이 책에서 배우게 된다. 이 말은 경영자 밑에 있는 자들이 이 책을 통해 경영자 이상의 눈을 가지고 오히려 경영자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본다. 조선시대 왕들이 몰래 읽었다는 이 책은 어찌보면 인간을 요리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수단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은 정치적이기에,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므로, 이것을 통해 인간의 심리 이면을 제대로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저자가 서문에 남긴 글 하나를 보자.

인간은 겉으로 내세우는 원칙만 갖고는 움직이지 않는다. 욕망이 사람의 행동을 지배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한다면 이 본심, 다시 말해 속마음을 읽고 통달해야지 그렇게 하지 않는한 영원히 남의 마음을 움직일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참으로 이 책은 독재자에게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한비자』의 핵심 사상은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므로, 리더는 무엇보다 법과 원칙으로 엄격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의된다고 하는데 그만큼 무섭기도 하면서 또한 몹시 궁금하기도 하다. 바라기는 현대인들이 이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을 통솔하거나 이용하려는 것으로 사용하지 말고, 한비자가 가르친 결정적 순간의 선택과 결단의 경영 노하우를 통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데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이다. 경영자와 각 기업의 직장인들간에 서로가 서로를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윈윈하는 책으로 이 책이 우리 곁에 머물기를 원한다.

본 책은 관련 주제를 총 19장으로 나누어 권력의 핵심을 잡기 위해 필요한 법(法)·술(術)·세(勢)의 세부 사항을 자세히 풀어놓고 있다. 또한 각각의 주제에 맞는 <한비자>의 원문을 해석한 글과 함께 원문을 실어 두었고, 이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 맞는 예시와 설명을 소제목 아래 매우 정갈하게 글을 싣고 있다.

개인적으로 경영자의 위치에 있어 이 책이 주는 글을 따라 가다 보며 무엇이 나에게 부족한 것인지, 왜 그때 그것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잘 알게 되는 기회가 되고 있다. 한비자는 이 책을 통해 말하기를 "군주의 능력만으로 나라가 영화를 누릴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신하의 능력만으로 나라가 부강해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리더가 부하들을 제대로 이끌기 위해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며 적재적소에 이용할 안목과 배짱이 있어야 하듯, 부하들 역시 혜안이 있다면 그 안이 채택될 수 있도록 리더를 설득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부하가 지도자의 역린(逆鱗; 노여움)을 건드리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면 그는 성공의 문에 지금 들어온 것이다.

이 책은 사실 19장 전체가 하나라도 불필요한 이야기가 없다. 읽으면 읽을수록 한비자는 인간 심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한비자의 글과 그것을 현실속에 적용하며 풀어낸 글은 마치 이솝우화처럼 달콤하게 느껴지며 읽는 재미가 난다.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남는 글 하나를 보자. 08. 본심을 꿰뚫어 본다 - 「세난(說難)」편에 나오는 글이다.

제목: 사람의 마음처럼 불안정한 것은 없다.

옛날, 미지하는 위나라 임금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위나라 법으로는 허가 없이 제 마음대로 군주의 수레를 탄 자는 다리를 자르는 형벌을 주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자하의 모친이 병이 나자 그 사실을 알게 된 어떤 자가 밤에 미자하에게 귀뜀해 주었고, 미자하는 왕명을 사칭하여 임금의 수레를 타고 나갔다. 임금은 그 사실을 듣자 형벌을 내리기는커녕 "효성이 지극하구나. 아픈 어머니를 위해 다리가 잘리는 형도 무서워하지 않다니"하며 크게 칭찬을 했다. 또 어느 날 과수원에서 임금을 모시고 놀고 있을 때 복숭아를 따먹오 보니 달았다. 그래서 반을 잘라 임금에게 주었다. 왕은 말하기를 "그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극진하구나. 그 단맛을 모두 탐하지 않고 짐에게 먹어 보라고 한 것을 보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자하의 용모가 시들고 군주의 총애도 흐려지게 되자, 이번에는 죄인 취급을 하며 군주는 "이놈은 왕명을 사칭하여 마음대로 내 수레를 타고 나가고, 또 언제는 먹다 남은 복숭아 같은 것을 임금에게 먹이곤 했다"고 꾸짖었다고 한다. 여기서 보면 미자하의 행동은 처음부터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전에는 현명하다고 평가된 것이라도 나중에는 죄인 취급을 받게 된 이유는 군주의 사랑이 식음으로 인해 그의 마음이 변한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제 풀어쓴 저자의 얘기를 들어 보자. '군자는 하루에 일곱 번 표변한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위에 언급한 군주의 모습에 대해 어떤 이는 흥분을 할 것으로 보는데 그러나 이런 일은 현실에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예컨데 어떤 벤처기업 창업자의 끈질긴 요청으로 그 회사의 2인자로 취임한 엘리트 비즈니스맨이 있다. 그러나 이 신임 임원은 채 1년도 되지 않아 쫓겨나게 되었다. 이유가 뭔가? 그때까지는 밀월을 즐기듯 사이좋게 일을 하였으나 임원이 되어 회사를 꾸려 나가면서 이 사람이 하는 모습을 지그시 살펴보니 창업자는 '이 친구가 점점 내 뜻을 어기거나 무시하게 되었다'고 느끼게된 것이다. 허니문은 이렇게 끝나 버렸다. 그런데 말이다. 이 경영자에게서 볼 수 있듯이 이런 경우는 독불장군형 사장에게 흔히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아래 직원은 일인자에 의해 캐스팅되었다는 사실에 자만하면서 자신의 직분을 망각하였다. 결코 드문 일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한비자는 사람의 마음처럼 변가기 쉬운 것은 없다는 말을 새겨듣고 자신의 자리가 확실히 정착될 때까지 상대를 자극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능숙한 일처리로 갈채를 받더라도 정작 자신에게느 상의도 없이 업무를 척척 처리해 버리면 울컥 화가 치미는 것이다. '한 마디라도 해 줘야 맞는 거 아니야?' 하는 섭섭한 마음이 몇 번이고 지속되면 서로 간에 불신이 생기는 것이다. 결국에는 대립으로 이어지고, 해임의 결과과 따르게 된다. 『한비자』는 이렇게 리더와 상사의 판단 기준을 터득하게 하여 사회생활을 탁월하게 하도록 한다.

리더에 대해 본심을 드러내지 말라는 조언과 철저하게 부하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어라는 조언 또한 경영자에게 놀라운 혜안을 주고 있다. 즉 리더는 권력의 핵심만 잡고 있으면 된다. 부하에게 맡겨도 될 일까지 직접 하려고 하면 피곤해지며, 부하의 잠재력 또한 유용하게 사용하지 못한다. 경영자는 경영자의 위치에 서 있으면 되고 실무는 오히려 그들이 더 전문가이기에 정주영 회장처럼 잘 맡기는 능력이 리더에게 필요하다.

읽으면서 참 좋다! 라는 말을 하며 읽고 있다. 진작에 이런 부분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인간 경영을 더 잘하며 조직을 유용하게 관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 고전이라면 삼국지 밖에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처세술에 능하며 리더십에 강자인 한비자를 꼭 읽기를 바란다. 사람을 보는 눈만 아니라 조직을 보는 눈도 훨씬 지혜로워질 것이다. 이 땅의 모든 경영자, 그리고 직장인들이여 이 책을 통해 인생의 경영 노하우를 배우지 않을 것인가? 실망하지 않는 책임을 보증하는 바이다.

이 책의 한 문장

독재형 인간일수록 우수한 사람보다도 자신을 배반하지 않는 사람을 총애하게 된다. p.126

군주가 좋고 싫은 기색을 밖으로 내보이지 않으면 신하는 본래 자기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군주가 지혜와 기교를 버리고 대하면 신하는 자기 스스로 준비하고 공부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명군은 지식이 있어도 그것을 과시하거나 그로써 자신의 생각을 짜내거나 하지 않고, 모든 신하들이 본분을 알고 처신할 바를 스스로 깨닫도록 합니다. 현명함을 갖추고 있어도 그것을 과시하지 않고 신하 스스로가 일할 근거를 살피게 합니다. 용기가 있어도 스스로 떨쳐 일어나거나 하지 않고 여러 신하들에게 그들의 무용을 힘껏 발휘하게끔 합니다. p.34

옛 사람은 자기 눈으로 자신을 볼 수 없었기에 거울로 보았스니다. 지혜만으로는 자신을 충분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도道로서 자신을 바로 잡았습니다. 거울이 흠을 비춰 보였다 하여 죄가 될 리 없고, 도가 잘못을 밝혀냈다고 하여 원망할 일도 아닙니다.

목실경 칙무이정수미 신실도 칙무이지미혹 目失鏡, 則無以正鬚眉 身失道, 則無以知迷惑.

눈이 있어도 거울이 없으면 수염과 눈썹을 바로 다듬을 수 없고,

몸이 도에서 벗어나면 바로 헤매게 되어 자신의 미혹을 알 수가 없습니다.

위나라의 서문표는 자신의 성질이 급한 것을 알고 부드러운 가죽끈을 차고 다니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렸고, 진나라의 동안우는 자신의 마음이 느긋하였기에 활시위를 허리띠로 하고 다니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러기에 넉넉하게 남은 것으로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하고 장점으로 단점을 잇습니다. 이렇게 하는 군주를 명군이라고 합니다. p.64-165

삼류 경영자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고

이류 경영자는 남의 힘을 이용하며

일류 경영자는 남의 능력을 이용한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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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아들 예수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김근수 지음 / 클라우드나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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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전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에 도전하는 안산 선수에 대한 페미니스트 논쟁이 불거짐으로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CNN 2019.10.22> 자료를 보니 "한국의 젊은 남성들, 페미니즘과 싸우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일본, 아사히 신문>에서도 "남녀 분단국... 남녀 대립의 첨예화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오늘날 우리는 사상적 대립이 첨예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신에 대한 찬반론도 이제는 의학을 넘어 사상적 대립이 되기까지 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정치적인 것이 들어가 있어 우리의 뇌를 갉아먹는 가운데 서로가 적대적이 되어 버렸다. 누군가 악한 의도로 무언가를 실행한다면 당연히 거기에 관한 엄중한 법적 제재를 받아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세상을 공정하게 바라보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공정(公正)하다 생각한 것이 잘못된 지식에 근거한 경우도 많다. 다들 자신들 입장에서 보면 다 공정한데 그러나 어느 쪽은 분명 무지해서 또는 악의적으로 공정하지 못한 세상을 만들어 간다.

그런면에서 오늘 독자가 보고 있는 이 책은 여성에 대한 공정한 시선을 요하는 책이다. 저자는 제목을 "여성의 아들 예수"라고 뽑았다. 페미니즘에 대해 민감한 사람은 일단 무언가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어쩌면 거부할 수도 있고, 편견된 눈으로 이 책을 대할 수도 있다. 물론 나는 어떤 주의도 아니다. 다만 내가 이 책을 보고 공정하게 여성(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한 사람의 국민이다.

먼저 페미니즘을 정의해 보자. 페미즘이란 국어사전으로 보면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나 사상'을 뜻한다. 하지만 어떤 분의 말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페미니즘 뜻 자체가 변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평등이 아니라 혐오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소위 페미라는 말을 하는 분들에 의하면 페미니스트들은 양 성별간의 혐오를 일으키고 있는 운동을 하거나 선동을 하는 등의 사회적인 활동으로 혼란을 야기시킨다는 것이다. 오히려 역차별적 요소를 가지며 남성을 억압한다는 것이다.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이 책이 그러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이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책의 서문을 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영화 〈자산어보〉에서 가거댁이 한 말이다.(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봤다) "씨만 중허고 밭 귀한 줄은 모르는 거 말이여라. 씨 뿌리는 애비만 중하고 배아파 가꼬 낳고 기른 애미는 뒷전인디. 인제 자식들도 애미 귀한 줄 알아야 써"

여기서 가거댁은 당시 기준으로 보면 차별적 시대를 살아간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외친 한 마디는 저자가 언급하듯 이렇게 정의된다.

"흑산도 여인 가거댁의 모습에서 나자렛 여인 마리아가 떠올랐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며 신분 사회를 비판하는 가거댁은 가부장주의에 저항한 예수 어머니 마리아를 닮았다. 역사의 마리아는 겸손과 순종의 모범이 아니라 불의에 저항하는 당당한 여성의 대표였다. 가거댁의 삶을 보녀 사회질서에 의문을 품고 평등한 사회를 꿈꾸던 정약전은 나자렛 예수와 잘 연결된다. 여성을 존중하는 정약전은 가부장주의에 저항한 예수와 많이 닮았다." -서문에서

예수의 어머니가 불의의 저항하는 당당한 여성의 대표였다라는 말이 조금 의아하지만 일단 저자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 의도를 알면서 계속 책을 읽어 나갔다. 저자는 또 말하기를 "예수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와 권력자와 종교인에게 무시당하는 모습을 참지 않았다. 그는 부자와 권력자에게만 저항한 것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에게만 관심을 둔 것 또한 아니다. 가난한 사람 중에도 가장 가난한 여성을 예수가 돌아보지 않을리 있겠는가. 예수는 인간을 좀먹는 근원 중 하나가 가부장주의라고 생각했다. 예수는 여성이 남성에게 무시당하는 상황을 구경만 하지 않았다."고 매우 강력히 말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예수는 이렇게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주의를 아주 싫어했으며 가부장주의를 끝장내고 싶었다고 하니 여기서도 과연 그럴까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단 또 읽어나갔다.

한 번씩 멈추게 되고 의문을 품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가부장적인 사고가 있는 것일까하는 마음도 가지지만 신학적인 부분에 있어서 성경을 보는 것에 대해 Queshion mark가 생겨서이다. 물론 이것 저것을 떠나 처음 언급했듯 공정(公正)하게 보려고 한다.

그렇다 이 책은 여성 신학 전체를 소개하지는 않으며 또한 여성이 사회와 교회에서 겪어온 고통을 설명하고 해답을 제시하지도 않고 있다. 소박한 의도로 "예수는 여성의 삶과 고뇌를 어떻게 알아가고 이해했는지... 예수는 여인들과 만남에서 삶을 어떻게 돌아보고 자기 생각을 바꿨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특히 여성을 위로하는 예수보다 여성에게 위로받는 예수, 여성을 가르치는 예수보다 여성에게 배우는 예수, 하느님의 아들 예수보다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하여 사람의 아들 예수보다 여성의 아들 예수를 이 책은 보게 될 것이라고 하니 새로운 시선으로서의 예수가 점점 궁금해지고 있다. 책 소개에 보면 "20세기 해방신학은 ‘해방자 예수’라는 칭호를 만들어 내었고, 21세기 한반도에서는 ‘여성의 아들 예수’라는 칭호를 선사했다"고 말하는데 저자의 말인지 출판사의 말인지 모르지만 이 책의 의도를 분명하게 접하며 예리한 눈으로 이 책을 점점 대하게 된다.

책은 다섯개의 파트로 되어 있다. 1장 예수를 만난 여성에 대해 2장 예수를 가르친 여성에 대해 3장 예수의 여성 비유에 대해 4장 예수를 따른 여성에 대해 5장 예수 탄생과 여성에 대해 다룬다. 특히 독자가 눈에 가는 것은 2장 예수를 가르친 여성에 대해서이다. 여기서 여성들이 어떻게 예수를 가르쳤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라 눈여겨 보았다.

시몬의 장모를 고치는 부분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시몬의 장모가 시중들었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동사 '시중'은 그때 한 번 시중들었다는 말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시중들었다는 뜻이다. [...] 예수도 시몬의 장모처럼 시중들러 세상에 왔다. 시몬의 장모가 예수에게 모범을 보였고, 예수는 시몬의 장모에게 시중드는 것을 배웠다. 「마르(마가복음)」에서 천사, 여성들, 사람의 아들 예수만 시몬의 장모처럼 봉사했다. 예수의 제자들은 봉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경고받았을 뿐이다. 시몬의 장모는 진정한 예수 따르기와 제자의 본보기다." p 85

아뿔싸... 예수가 시몬의 장모에게 시중드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과연 배운 것인가? 물론 우리는 타인을 통해 배운다. 그러나 과연 예수가 시중드는 것을 배웠다라는 말을 굳이 과한 해석까지하며 그렇게 정의내릴 수 있는가?

시로페니키아 여인에 대한 부분을 본다. 여기서 예수는 자신의 딸을 고쳐 달라고 할 때 그 여인을 향해 개로 비유하여 말했다. 물론 이 부분은 유다인들의 문화적 사고에 기인한 것이다. 당시 "유다인은 자신을 하느님의 자녀로 보고 이방인을 개에 비유했다." 여기서 예수는 유다인 아닌 사람을 무시한 것이 아닌 당시 통용되던 언어 습관을 빌린 것으로 본다. 아무튼 여기서 여인은 그 말을 듣고 "강아지로서의 구원을 요청한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예수가 논쟁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졌다고 말한다. 그것도 기쁘게 졌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예수가 여인의 말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며 생각을 바꿨다는 것이다.

"용기 있는 이방인 여성의 당당함 덕분에 예수의 생각이 더 부드러워지고,

시야가 더 넓어졌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p 90

음...내가 잘못된 것인지 저자의 해방신학적 사고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나 여기서 예수에 대한 시각 또한 그 여인의 말을 듣고 바꾸었다기 보다는, 예수가 가진 의도가 이 안에 내포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다고 본다. 인간적인 예수로 볼 때에는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신적 예수로 볼 때에는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가 단지 그 여성의 대화로 시야가 더 넓어졌다고 보기는 어려운거 같다.

이렇게 저자는 이 책에서 해방신학적인 관점에서 예수를 보고 여성을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 입장에서 새롭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단순한 해석으로 본질을 놓치면 안 될 것이다. 여성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평가가 새롭게 평가되며, 성별로 인해 발생되어지는 차별이 개선이 되어져야함은 독자 또한 크게 바라는 바이다. 가부장적인 사고로 인해 나의 어머니 또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외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알아주는 유지(有志)였지만 자신의 딸에게만은 구시대적인 사고로 젖어 있는 어르신이었다. 분명 이런 점은 개선되고 차별적 요소가 제거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성을 위한 여성적 권리를 통해 오히려 역차별적인 요소로 나아간다면 이 또한 사회의 병폐가 되고 문제가 될 것이다. 한 자료에 의하면 20대 남성들의 과반수는 역차별을 생각한다. "여성 우월주의자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성이 오히려 남성을 향해 차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 남성만 군대에 간다

· 남성이 위험 노동을 전담한다

· 남성이 데이트 비용을 낸다

· 남성이 가정을 부양한다

여기서 볼 때 남성이 위험 노동을 전담하고 데이트 비용을 내며, 가정을 부양하는 것은 어쩌면 20대 남성들에게는 역찰별로 생각되는 바가 없잖아 있는거 같다. 이것에 대해 다룬다면 아마도 소모적인 논쟁으로 시간을 낭비할 것이기에 여기에서 그친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의 요지는 여성이 대우를 제대로 누리도록 하자는 것이다. 물론 남성을 대우하면서 말이다. 결국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고 사랑 받아야 한다. 독자인 나는 그렇게 좋은 뜻으로 이 책을 대하고 싶다. 다만 예수에 대한, 그리고 성경에 대한 과도한 해석이 조금은 고민을 하게 만들지만 말이다. 이 책을 대하는 독자에 따라 이 책을 반기기도 하고, 거부감도 들것으로 본다. 책은 줄기차게 여성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도록 한다. 이 책을 통해 여성에 대한 시각이 크게 바뀐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지만 그것 또한 보는 이에 따라 다르리라 생각된다. 다만 저자의 눈으로 조금은 여성의 입장을 살피는 기회가 되었음을 감사하고 있다. 모든 이가 서로 존중하는 세대가 속히 오기를 간절히 고대하며 서평을 마친다.

이 책의 한 문장

이 책은 모든 여성, 어머니와 딸과 자매와 누이가 여성의 아들 예수에게 위로를 받기를 원하고 있다. 여성의 아들 예수를 보며 용기 있고 당당하게 살기를 바라고 여성의 아들 예수와 함께 걸으며 여성과 남성 모두 자유와 해방을 얻기를 바란다. 진정한 해방은 여성과 남성이 서로 존중하며 따뜻한 마음을 지닐 때 올 것이기 때문이다.

- 서문 중에서

예수의 남성 제자들은 예수 십자가 죽음 장면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남성 제자들은 예수가 체포될 때 모두 달아났다. 베드로도 [...] 사라졌다. 예수가 힘든 순간에 그 곁에는 여성 제자들만 있었다. 그전에 남성 제자들은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다퉜다. [...]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권력 다툼과 배신에 바쁜 사람은 누구인가. 남성 제자인가, 여자 제자인가? 오늘날 교회와 성당에서도 권력 다툼과 배신에 바쁜 사람들은 누구인가.

예수를 따라 다닌 여자들은 충실했다. 복음서에서 예수를 배신한 여성은 아무도 없다. 남성 제자 가운데 배신하지 않은 사람은 찾이 어렵다. 여성 제자들은 예수 따르기와 같음을 보여줬다. 여성 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끝까지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p 191, 194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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