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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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대표지성이라고 하면 으레 이어령 교수를 꼽는다.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 석학이다. 이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현재 88세의 나이다. 그런데 그에겐 암이 함께하고 있다. 소위 암투병 중이다.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암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 뛰어난 석학이라서 다른가? 아니면 무엇이 그의 이런 신념을 만들어 내었을까 궁금하다.

 

 

이 책은 이어령이라는 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가장 지혜로운 이야기이다. 마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처럼 암투병 가운데 죽음을 앞두고 가장 중요한 진실을 얘기해 주고자 한다. 그래서 솔깃하다. 또한 간절하다. 과연 어떤 삶이 가장 중요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이미 받아들여서인가. 그는 죽음을 아주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이미 마음으로 준비를 다하고 있다. 신호만 내리면 냉큼 달려갈것처럼 말이다. 그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는데 이 대목이 너무 멋지다. 그건 죽음은 그만 돌아오라는 엄마의 부름이라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 어릴 때 엄마는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잖아. 이제 그만 놀고 생명으로 오라는 부름이야그렇게 보면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이지. 어머니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이니까.” p154

 

 

그는 또 죽음을 말하기를 "5월에 핀 장미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대낮이 죽음이며, 죽음의 자리는 낭떠러지가 아니라 고향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가 생각하듯 죽음은 그렇게 무서운 존재가 아닐지도 모르다. 가까운 지인 중에 남편이 42세로 림프암으로 세상을 떴다. 얼마 전에는 아버지도 림프암으로 돌아가셨다. 본인 또한 몸이 좋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데 그래서 장례식장에 가면 굉장히 침울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미 울어버려서인지 담담하게 아무런 일 없이 우리를 맞이한다. 이것을 보며 생각했다. 내 아내가 혹시 저러면 나의 죽음은 무엇인가? 너무 쉽게 남편이라는 존재를 떠나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 인간이란 존재는 죽을 사람은 죽는 것이며 산 사람은 살아야 되기에 장례식 가운데 밥을 챙겨먹고 화장실도 가 볼일을 보는 것이다. 혹시나 배탈이 나면 죽은 사람 보다 내 자신의 배탈이 더 중요해 약을 간곡히 찾아 편안함을 찾는다.

 

 

어쩌면 죽음과 삶은 결코 두렵지만 않은 잠시잠깐의 이별인 것인지도 모른다.

 

 

이어령 교수를 안다면 그의 회심 사건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다. 딸 이민아를 통해 신 앞에 무릎 꿇고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말하기를 환생, 부활나는 그런 걸 믿지 않아. 기독교인이니 겉으로는 받아들이지만, 그 부분에 관해서는 사실 낫싱(nothing)이야.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면 삶이 이렇게 절실할까. 끝이라고 생각하니 절실한 거야.”라고 말한다.

 

그렇다. 죽음은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끝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무엇을 지향하며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이 책은 김지수 기자가 묻고 이 교수가 답하는 형식으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관한 책이다.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그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깊은 우물속에 건져내고 있다. 어느 정도 무게가 실렸나하면 그 무게는 상당한 무거움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생에 마지막 수업이 될 수 있음으로, 가장 귀한 것을 주고 싶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나는 이제부터 자네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네. 이 모든 것은 내가 죽음과 죽기 살기로 팔씨름을 하며 깨달은 것들이야. 이해하겠나? 어둠의 팔뚝을 넘어뜨리고 받은 전리품 같은 것이지.”

 

그렇다. “이 책은 죽음 혹은 삶을 묻는 애잔한 질문에 대한 아름다운 답이다.” 삶과 죽음, 사랑, 용서, 종교, 과학, , 돈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면서 인터뷰를 이어가고 있는데 매 쳅터마다 주옥같은 진리의 메세지가 펼쳐지면서 독자를 삶의 진리 가운데로 이끌어 준다. 제자로서의 질문도 뛰어나고 스승으로서의 대답도 무언가 형이상학적이지만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저자가 말하듯 제자들이 길을 헤맬지라도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하길 바라는 이런 스승과 함께라면 어쩌면 우리는 이 불가해한 생을 좀 덜 외롭게 건널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말이 따뜻함으로 지성과 마음, 영혼에게 전해진다.

 

 

한 쳅터마다 읽고 나누고 싶은 주제이다. 죽음은 가장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친절한 철학자이다. 갑작스럽게 죽어 죽음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쓴 글과 책이 많은데 암이라는 죽음을 실제 앞에 두고 말하고 있으니 그의 말에 더욱더 겸허한 자세로서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는 말한다. 자신의 말은 "듣는 귀가 필요하네...왜냐면 나는 은유와 비유로 말할 참이거든" 즉 듣는 다는 것은 죽음을 실제 앞에 두고 들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책에 언급되었듯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라는 사람은 최초로 죽음학을 했고 죽음에 대한 강의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정작 자기가 암에 걸리고는 감당을 못했다고 한다. 한 기자가 물었다.

 

 

"당신은 임종하는 사람을 지켜보며 그렇게 많은 희망을 줬는데 왜 정작 당신의 죽음 앞에서 화를 내고 있느냐?" 로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타인의 죽음이었어. 동물원 철장 속에 있는 호랑이였지. 지금은 아니야.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나한테 덤벼들어. 바깥에 있던 죽음이 내 살갗을 뚫고 오지. 전햐 다른 거야. 전두엽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척추 신경으로 감각하는 죽음은 이토록 거리가 멀다네." p30

 

이 말을 보면서 톨스토이가 쓴 '이반일리치의 죽음'이 생각 났다. 거기에 보면 주인공 이반 일리치 자신도 사실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죽음은 죽어가는 당사자의 고통이며 무게감이다. 아래는 거기에 나오는 글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각자에게 전근과 승진의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과 함께, 가까운 친지가 죽었을 때 으레 그렇듯이,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 모두의 마음속에 '죽은 건 그 사람이지 내가 아니야' 하는 안도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저마다 '그래 그는 죽었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 있잖아!' 하는 생각이나 느낌을 가졌다. (...) 친구들은 예의상 장례식에 참석해 미망인에게 조의를 표하는 따위의 귀찮은 의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으니 '표도르 바실리예비치와 표트르 이바노비치' 였다. 특히 표트로 이바노비치는 이반 일리치와 법률학교를 함께 다녔으며, 그에게 여러 가지 신세를 졌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터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아내한테 이반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전한 다음, 어쩌면 이번 기회에 처남을 이쪽 재판 관할구로 전근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자신의 짐작을 털어놓았다. -이문열의 죽음의 미학 중에서 p27-28

 

죽음, 그것은 우리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이 책은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가 이런 말을 했는데 나도 언제가는 이런 말을 할 때가 올 것이다.

 

 

"내년 삼월이면 나는 없을 거야. 그때 이 책을 내게"

 

 

결론적으로 이 책은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선물'과 같은 책이다.

 

이 책의 한 문장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은 무엇인가요?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요즘 따님 생각을 더 많이 하시겠습니다. 암 선고받은 후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더 생산적으로 시간을 쓰는 까닭도 따님과 관련이 있는지요?

 

 

“(미소 지으며) 우습지만, 성경에는 나중 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이 있어요. 내 딸이 그랬어요. 그 애는 죽음 앞에서 두려워 벌벌 떨지 않았어요. "지금 나가면 3개월, 치료받으면 6개월" 선고를 듣고도 태연하니까, 도리어 의사가 놀라서 김이 빠졌어요. [...] 이혼하고도 편지 한 장 안 쓰던 쿨한 애가, ‘아빠가 예수님 믿는 게 소원이라면 내가 믿어볼 만하겠다, 그렇게 시작했어요. 딸이 실명의 위기에서 눈을 떴을 때 내 눈도 함께 밝아진 거지. 딸이 아버지를 따라가야 하는데 아버지가 딸의 뒤를 쫓고 있어요(웃음).”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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