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길 - 나를 바로세우는 사마천의 문장들
김영수 지음 / 창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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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백과사전 사기에서 배우는 인간의 도리와 세상의 이치

 

사마천의 사기대해서 들어봤지만 제대로 읽어본적은 없는데 이번 기회에 읽으면서 보통의 책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얼마 전 읽은 책 한비자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고전은 상당히 깊이가 남다르며 인간의 삶을 마치 해부해주듯 세상과 인간의 본질을 통찰하게 해주고 있어 너무 재미나게 읽고 있다. 또한 이 책은 고상한 도덕적 잠언이나 사탕 발린 당의정도 아니요 부드럽지도 고리타분하지도 달콤하지도 않는 책이다. 여기에 나오는 언어들은 때로 냉혹하기 그지 없고, 차갑고 서늘하고 무섭다. 그러나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이 깔려 있어 서늘한 이성과 따뜻한 감성을 겸비한 인간으로 우리를 다듬어주고 있다.

 

 

머리말에 언급되었듯 사기526,500자가 지향하는 바는 '어떻게 살 것인가''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과 답을 주고 있는 책이다. 즉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을 역사를 통해 검증하고 확인하면서 인간의 도리와 세상의 이치를 배우도록 한다.

 

이 책은 네 가지로 분류된다. 1장 어떻게 살 것인가? 2장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3장 나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4장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미 첫 장부터 이 책은 흥미진진한 역사적 얘기가 많아 읽는 재미가 있다. 더군다나 한편의 글들이 두 세장 정도의 글이라 지루하지 않고, 스토리와 더불어 명언과 같은 글이 있어 잠시 멈추고 깊이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처음 와 닿은 내용은 "내 의지대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이다.

 

내 의지대로 산다는 것

 

사마천은 사기열전의 첫 장을 고고한 '정신의 귀족' 백이와 숙제 형제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들은 고죽이라는 작은 나라의 왕자였지만 서로 왕위를 양보하다 아예 나라를 버리고 숨어버렸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두 왕은 주나라의 서백 창이 노인을 공경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 갔다. 그런데 창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 무왕이 아버지 문왕의 위패를 앞세운 채 은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이에 형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붙들고 아버지의 장례도 치르지 않은 채 전쟁을 치르는 것은 불효이고, 신하된 몸으로 군주를 치는 것은 불충이라며 말렸다. 무왕은 끝내 말을 듣지 않았는데 이때 두 왕자는 불충한 주나라 땅에서 나는 곡식은 먹을 수 없다며 수양상에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 먹으며 살다 결국 굶어 죽었다고 한다. 이런 백이와 숙제 형제에 대해 후세인들 갑론을박했지만 사마천은 '백이열전'에서 공자의 평을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공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 같지 않으면 함께 일을 꾀하지 않는다." 이 말은 사람은 각자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한다는 뜻이다. 또한 이렇게 말했다. "부귀란 놈이 구한다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내 비록 남의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이라도 기꺼이 하겠다. 하지만 만약 구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바에 따르겠다"

 

 

무엇을 말함인가? 사마천은 여기서 자신의 말을 덧붙여 말한다. "날이 추워진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아는 이치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래에 나오는 말을 덧붙였는데 상당히 와 닿는 말이었다.

 

"세상이 다 흐려졌을 때 비로소 깨끗하고 맑은 사람이 드러난다. 어째서 세상은 부귀한 사람을 그토록 중시하고, 깨끗하고 맑은 사람을 하찮게 여길까?"

 

세상을 내 의지대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만명 중에 한 명 정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인물 중에 '랄프 왈도 에머슨'이란 분이 있다. 그가 쓴 '자기 신뢰'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이 부분과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서양의 사마천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천재란 무엇인가 할 때 단순히 아이큐가 좋은 자가 아닌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이다.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남의 말에 그대로 순응해서는 안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자기 방식대로 밀고 나가는 사람이다."

 

또한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사마천과 같은 맥을 잇는다. 이걸 보면 위대한 인물에게는 위대한 생각들이 공유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보다 자신의 의견에

별가치를 두지 않는 다는 사실은 참 의아한 일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사기130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열전 70편을 보면 주로 제왕과 제후를 위해 일한 인물들의 전기를 수록하고 있다. 때로 계급을 초월하여 기상천외의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각양 각층의 인물들의 삶이나 그들과 관련된 사건들을 서술하고 평가하고 있는데 이것을 보면 사마천의 역사의식이 매우 뛰어남을 알게 된다. 즉 그의 글은 실화적 얘기이기에 더더욱 와닿는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말 중에 하나가 삶의 통찰을 주고 있어 그 내용을 적어보고자 한다. '영위계수 물위우후'라는 말이 있다. 즉 차라리 닭의 주둥이가 될지언정 소의 똥구멍은 되지 말라는 뜻이다. 흔히 쓰는 말은 이것이다.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낫다'

 

 

그런데 말이다. 사마천은 여기에서 우쭐한 자존심으로 망신을 당하지 말라며 이런 충고를 하고 있다.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221녀까지 장장 550년에 걸친 중국 최대의 혼란기이자 황금기였던 춘추전국시대의 산물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이 '책략가'의 등장이었다. 다른 말로는 모사, 또는 책사라고 불리며 '유세객'이란 특수한 용어로 부른다. 오늘날의 언어로는 세계 정세에 정통한 전문 로미스트라 할 수 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인물이 있으니 전국시대 후기 '합종'이라는 6국 연합정책을 제시한 유세가 '소진'이다. 젊어서 신비한 은둔자 귀족자에게 유세술을 등을 배운 그는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하산했지만 뜻을 못 이루었다. 그런 중에 더더욱 공부에 매진하면서 소진은 연나라 문후를 만나 합종이라는 정책 구상을 펼쳐 보인다. 그리하여 조, , , , 초를 방문하며 6국의 동맹을 성사시키는데 소진이 한나라 혜왕(위나라의 멸망을 자초한 자)을 자극해 진나라를 섬기지 못하도록 설득하는 과정 속에 닭과 소의 똥구멍 얘기가 나온다.

 

속담에 차라리 닭의 주둥이가 될지언정 소의 똥구멍은 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손을 마주잡고 신하가 되어 서쪽의 진을 섬긴다면 소의 똥구멍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대왕처럼 현명한 군주에 강력한 군대까지 있으면서 소의 똥구멍 소리를 듣는다면, 오히려 신이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 말에 혜왕은 소진의 선동에 넘어가 "결코 진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소리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혜왕이 자국의 힘은 고려치 않고 욱하는 감정을 앞세워 소진의 유세에 넘어간 꼴이되었다. 즉 이런 닭 주둥이는 아무도 주둥이로 봐주지 않는다. 한순간 닭의 주둥이가 되겠다고 우쭐거리다 망신 당하기 보다는 그 순간을 참고 소의 엉덩이로 자처하며 훗날을 위해 힘을 길러야 한다. 즉 도광양회(韜光養晦)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자신의 빛을 감춘 채 보이지 않게 실력을 기르며 때를 기다리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시기도 꼭 필요하다. p34

 

책은 한편의 이솝우화처럼 읽는 재미가 있다. 이것을 다시 말함은 이 책은 열 글자 이내의 짧은 고사성어 뒤에 숨은 풍성하고도 흥미진진한 역사적 배경과 중국 고대국가의 흥망성쇠, 영웅들의 다채로운 사연들이 매우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인생 앞에는 수많은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를 거두게 되어 있다. 이때 어떻게 최선의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한데 이 책은 그러한 고민과 갈등에 훌륭한 지침과 지혜를 분명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이 책을 펴낸 김영수(金瑛洙)는 지난 30여 년 동안 사마천(司馬遷)사기(史記), 그리고 중국을 연구하고 25년 동안 중국 현장을 150차례 이상 탐방해온 사마천과 사기에 관한 당대 최고의 전문가라고 한다. 저자는 지금도 사마천과 중국의 역사와 그 현장을 지속적으로 답사하고 미진한 부분을 계속 보완하는 연구를 하고 있는데 그가 꿰뚫은 보배로운 글은 사기에 대해 더욱더 친근하게 해주고 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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