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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본주의와 한국.대만 - 제국주의 하의 경제변동
호리 가즈오 지음, 장지용.박섭 옮김 / 전통과현대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보기에 따라서 대단히 ‘불손하게’ 보일 수 있는 책이다. 일본은 한반도에서 엄청난 압제와 수탈을 강행했으며, 일본의 지배가 한국사회의 내재적인 발달을 막았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근대성과 근대성의 혼란이 탄생하는 온상이 되었다는 기존의 관념들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책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이 불손하게 보일 수 있는 두 번째 이유가 있다. 일본사람들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내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지은 저자가 일본 사람이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겠지만 이 책의 내용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일본이 조선반도에 행한 수탈은 인정하더라도, 일본이 조선반도의 공업화와 근대적인 삶을 이식하는데 끼친 영향은 인정해야 한다는 상당히 ‘불쾌’할 수도 있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리의 근대에 대한 서적이 발간된 적이 있었다. 일제하에서 문화계에서 활동한사람. 기업을 꾸린 사람들 중에서, 그저 평범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전부 친일파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책이었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정치적 상황에 ‘순응했다는 죄’를 지고 있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 중 유명해진 사람은 무조건 죄인인가라는 의문을 던져볼 때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일제 강점기라는 근대의 시기를 보는 관점은 사뭇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내 기억으로 그 책은 그렇게 주장했던 것 같다. 근대라는 것은 그저 근대라는 개념으로만 받아들이자. 우리의 근대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기를 통과하며 존재했었고, 그 시기에 살았던 사람은 일제에 부역했다기 보다는, 일본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근대를 그저 받아들이고 향유했던 보통 사람들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자고 했던 것 같다.
이 책은 같은 이야기를 산업에 대해서 되풀이 하고 있는 것 같다. 한반도의 공업화가 일본이 한반도에서 수탈한 자원을 보다 가치가 높은 것으로 가공하기 위해서였든, 대륙진출을 위한 병참기지로서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던, 일본 강점기에 한반도의 공업화가 상당히 진전되었던 것은 사실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 한국경제의 발전은 한국인의 강렬한 반일의식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산업구조와 산업기술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의 산업구조는 미국보다도 일본과 더 밀접하고, 수출이 늘어나면 대일무역역조가 더욱 고착화되는 과정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자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의 현실을 현실로 인식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