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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뜨거워 Heat
빌 버포드 지음, 강수정 옮김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남자가 요리를 하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뜬금없이 20년도 더 전에 본 그 영화의 한장면이 이 책을 보면서 생각이 났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그 영화속의 장면은 2차대전 중 악질적인 독일군의 모습이었다. 힘들게 연합군 사냥을 한 독일군 장교가, 저녁에 느긋하게 음식을 손수 만들어 먹어면서 인질로 잡은 미군에게 희롱을 하는 장면이었다. 당연히 나쁜 감정을 가져야 할 그 장면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요리를 만드는 그 독일군 장교의 손놀림에 반하고 말았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나와 같이 영화를 보러갔던 남자친구도 그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었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 뒤로 우리둘은 한동안 그 영화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난다. 그러나 나는 음식을 전혀 할줄 모른다. 내가 할수 있는 것은 라면 끓이는 것과 계란 후라이 정도. 그 정도이다. 식성은 엄청나게 좋다. 무엇을 가져다 주어도 맛이 없어서 먹지 못하는 경우나, 음식의 맛을 가지고 투정을 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니 나는 미식가하고는 거리가 멀다.
이 책에는 세계의 중심 뉴욕에서도 잘 나가는 기자가 나온다. 그는 요리 또한 잘한다. 멋있는 성공한 뉴요커라고 할만하다.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나는 제외이다)들이 선망할만한 그런 사람이다. 그가 밥보라는 뉴욕 최고의 음식점의 주방장을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그의 친구를 통해서다. 그리곤 그의 요리에 대한 자손심에 상처를 입게된다. 그리고는 진정한 요리의 장인이 되기 위해서 머나먼 여정을 떠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장점은 그 스토리를 이루는 과정의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에 들어 있다. 그가 단순히 주방 도제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불만이 새로운 깨우침과 마주치면서 진정한 음식에 대한 사랑으로 변해가는 과정들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이 책을 가치롭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 지루하고 힘들며 무의미해보이는 도제생활을 통해서 요리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나가게 된다. 그래서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들게 되는 거이 아니라, 음식과 교감하며 음식을 진정으로 느끼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야기 한다. 요리는 단지 혀끝에 닿는 맛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손끝의 기술에 관한 것도 아니다. 그 음식의 식재료가 태어나고 숙성되는 산지의 햇살과 빗물, 그것들을 기르고 수확하는 사람들의 정성, 그리고 그 소중한 식재료들을 다루고 연마하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한 최종산물이다. 그러므로 음식은 그것을 먹을때 혀끝에 느겨지는 말초적인 감각이 아니라, 음식에서 느껴지는 풍부한 디테일과 이야기들을 읽을수 있을때 진정한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그래서 뉴요커 출신의 지식인이 오랜 산고를 거쳐 새로이 변신한 요리 장인으로서의 사색의 과정이 이 책을 가치롭게 하는 진정한 요소인 것이다. 아울러 그 요리를 전수해준 장인들의 요리에 대한 사랑과 애착, 평생을 그런 식재료를 만들면서 살아가는 삶. 그들의 어께위에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살과, 느긋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 바로 그런 것들이 진정한 음식의 의미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바쁘게 살아가는 뉴요커의 삶과는 다른 삶. 그런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