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새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5
마르턴 타르트 지음, 안미란 옮김 / 들녘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미스테리 소설, 혹은 추리소설. 혹은 심리적인 추리소설. 또는 썩 내키지는 않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기막힌 구성을 가지는 추리소설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다. 추리소설 독자들이 좋아하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를 썩 내켜하는 이유는, 그런 이 책에 대한 정당한 표현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정당하게 찬사받아야 할 권리를 감출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은 내내 내 마음에 큰 감동을 준 소설이다. 추리소설이 재미가 있으면 되었지 감동까지 줄 이유야 없지 않겠는가. 추리의 구조가 너무 섬세하고 읽는 이의 지적인 능력을 뛰어 넘어서 주는 감동이라면 찬사의 대상이지 굳이 내켜하지 않아야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사실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인 구조를 가진 독자의 추리능력을 넘어서는 대단한 구조를 가진 미스테리 스릴러 추리 법정소설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감싸 않고 있는 책이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빈 본격소설이라고 할까. 그래서 본격소설을 잘 읽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라고 할까. 책의 중간중간에 부담스럽지 않게 배치된 삶의 깊이에 대한 작가의 통찰은 일견 쉽게 읽고 넘어 갈 수 있다. 추리를 이어가는 양념역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그냥 책장을 넘길 수도 있는 부분들이다.

 

그러나 예민한 후각으로 이 책에는 뭔가 남다른 것이 들어 있는 것 같다는 것을 느끼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의 곳곳에서 배어나오는 그 미묘한 느낌들을 하나로 묶고 연결시키면서 이 책이 말하는 또 하나의 주재. 삶과 아픔과 존재에의 의지와 그것에 대한 조롱과, 자살에의 끈질긴 충동, 그러나 끝내 삶을 참아내어야 하는 것에 대한 타협, 그리고 그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도록 인간들이 만들어낸 온갖 지적인 위로들에 대해 풍부한 자양분을 동시에 음미할 수 있는 책이다. 살인사건을 쫒는 추리소설로 읽혀지는 책의 행간에는 상당한 수준의 본격소설 조차도 감히 다다르지 못한 인생의 심연에 대한 통찰이 통렬하게 들어 있다. 물론 흥미로운 플롯만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전혀 표시가 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 나타나는 많은 문장들은 이 세상을 살아간 사람들의 머리를 빌려서 나온 것들이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자연스러운 대사들과 이야기구조들 속에는 세익스피어에서부터 니체에 이르기까지. 또 위대한 음악가들이 만든 음악에 나오는 삶에 대한 음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류의 경구들이 숨어 있다. 살인을 쫒아가는 숨막힌 두뇌 싸움이 진행되는 한가운데에서 그런 삶의 보물들을 하나씩 음미하면서, 인생의 깊은 의미에 대해서 동시에 생각해볼 수 있는 무척 흥미로운 책. 대단한 작가의 역량이 느껴지는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수많은 독서 경험중에서도 그리 흔하지 않은 소중한 시간들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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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9-09-28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님의 리뷰를 보고.. 바로 보관함에 슈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