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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 ㅣ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여겼던 상식들이 책 속의 한 사내에게 논파당한다. 더군다나 이 사내의 말은 어찌보면 상당히 위험하다. 과연 이 사내의 말을 믿어도 좋은 것인가?
<우부메의 여름>이 '미스테리'라는 장르소설임을 감안한다면, '당연히' 이 사내의 궁극적인 방향은 애초에 귀신의 존재를 강변하는 쪽으로 잡아야 하거늘, 그렇지만도 않다. 상식을 논파하여, 독자들의 뇌 속을 백지 상태로 만드는 데만 무려 120페이지를 할애할 정도면 할 말 다 한 거다. 어쩌자고 한 사내의 장광설을 늘어놓는 데만 그토록 많은 지면을 쓸 수 있는 건가? 이 정도면 독자마저도, 거참- 제대로 끝낼 수 있으려나, 하고 작가의 처지를 걱정하기 마련이다.
허나, 그 '결과'를 놓고 따져봤을 때, 이 작품, <우부메의 여름>은 구조적으로도 흠 잡을 데 없이 잘 짜여졌다. 보통 처음부터 장광설만 늘어놓는 데 수 많은 지면을 할애한 작품 대부분은 앞에서 늘어놨던 말을 모두 활용하지 못해 질질 끌어대고 안달복달 못하다가 막을 내리기 일쑤지만, <우부메의 여름>만큼은 예외다. 지식이 전무한 독자들을 위압하여, 현학적으로, '뭔가 있게 보이려고' 해서가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그 모든 것을 활용하여 충격을 안겨주기 위해서이다.
생각해 보라. 요괴나 귀신. 이 얼마나 진부한 소재인가? 고작해 봐야, '태초에 귀신이 계셨다' , 혹은 신비주의 경향 정도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게 그 소재적 한계다. 이와는 달리, <우부메의 여름>의 작가, 교코쿠 나츠히코는 감성에 호소하여 독자를 공포로 몰아넣는 전략을 취하기보다는 빈틈없이 탄탄한 구조로부터 뿜어져나오는 충격으로 독자를 몰아친다. 하지만, 지극히 '상식'적이지 못한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없는 자에게 그 어떤 이야기를 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간단한 일이다. 그 '상식'을 뒤엎어 독자를 '백지' 상태로 돌려놓는 게 우선일 것이다. 여기서 작가의 기량과 작품의 품격이 우러 나오는 것이다. <우부메의 여름>은 귀신이나 요괴를 완전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그것들은 보는 '주체'에 따라 다르다는, 다소 애매모호한 결론만 던져놓는다.
마지막에 이어지는 꼬리무는 '반전'의 연발에 다시 한 번 감탄이다. 영화든, 소설이든 최근의 경향을 보자면, 한심하게도 '반전을 위한 반전'으로 억지스러운 충격을 강요하는 작품이 상당수인데, 이건 관객과 독자에 대한 일종의 '폭력'이며, 그야말로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앞에서 그 어떤 복선이나 실마리가 없었건만, 무작정 반전이랍시고 아무나 범인이라 외치고, 아무나 죽여대고, 아무나 살려댄다. 그에 반하여, <우부메의 여름>의 반전은 깔끔하고 군더더기기가 없다. 앞에서 살며시 흘려놨던 정보와 의문점을 충실히 활용하여 독자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그야말로 통념 뒤집기의 한판승이랄까? 정말이지 뒷맛이 개운한 미스테리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