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치는 강가에서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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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밤의 피크닉>을 읽고 반했으며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읽고 온다 리쿠에 가슴 속 깊이 우러나오는 찬사를 바쳤다. 일본에선 무려 100권이 넘는 책을 펴낸 다작 작가라고 하지만, 한국엔 겨우 작년부터 소개된 탓에 출판된 책도 두 권. 그러나 내게 있어서 온다 리쿠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기엔 단 두 권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전 북폴리오에서 <밤의 피크닉>과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펴낼 때, 그녀를 '노스탤지어의 전령'이라 일컬었던 기억이 난다. '이게 무슨 소리지?', 했는데, 이젠, '아 그렇구나', 라고 읊조릴 수 있다. 특히 독자의 공감대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스토리텔링은 그 어떤 작가도 대신 할 수 없는 온다 리쿠만의 고유한 매력이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지나버려서 이젠 언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런 아스라한 그리움들을 하나하나씩 늘어놓는다. 하지만 온다 리쿠의 미덕은 이런 '그리움'들에 대한 감상을 강요하지 않는 데 있다.

"나는 그대들에게 여러 가질 떠올리게 해드리리라. 그러나 그에 대한 감상은 그대들이 알아서 채워넣으시라."

작가가 모든 것을 채워넣지 않고 한명 한명의 독자에게 그 2%를 남겨두는 것, 이게 온다 리쿠가 아닐까 생각한다.(온다 리쿠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의 작품은 너무나도 완벽해서 한 치의 빈틈도 없는 '명작이나 걸작' 따위'보단 약간은 부족하지만, 그래서 더욱 오래 기억될 '잘 된 이야기'에 가깝다)

오만하게도 이전에 읽었던 두 권만으로 온다 리쿠에 대한 각종 환상을 가득 품고 있었다만 솔직히 '온다 리쿠'였기에 겨우 한 가닥의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지, 초반 60페이지까지는 거의 지옥에 가까웠다. 선남선녀 고등학생 다섯이 여름 축제 준비 때문에 강가의 한 집에 모인다는 설정. 지독히 감상적인 언어의 연속. 내가 집어든 책이 삼류 하이틴 로맨스(이건 취향의 문제지만)는 아니었나 착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하나만 생각했지 둘은 생각 못했다. 온다 리쿠는 이야기 구성 능력 또한 정녕 탁월하지 않았던가?

주인공들이 직면하고 있는 큰 사건은 하나에 불과하지만, 각장마다 '좀 더 과거를 많이 알고 있는 인물 순으로' 시점이 바뀐다는 건 크나 큰 매력이다. 예를 들자면, 앞에선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던 부분이 다음 장에선 "어, 이럴수가! "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앞에서 주구장창 언급했던 '노스탤지어'는 이번에도 너무나도 '당연하게' 책 속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기에 <굽이치는 강가에서>의 장르를 딱히 하나로 꼽기가 어렵지 않나 싶다. 초반은 얼핏 하이틴 로맨스를 닮았으나, 그 이후론 처절하게 움직이는 청춘 군상들을 보자면 성장 드라마를 닮았고, 가면 갈수록 책에 몰입할 수 밖에 없게 하는 묘한 구성방식은 미스터리를 닮았다.

<굽이치는 강가>를 읽고 벌써 한 달이 지나가 쓰는 늦깍이 감상문이다만, 책을 덮는 순간 정말이지 어딘가 싸해져오는 그 아스라한 느낌만은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몰입할 수 밖에 없게 하는 묘한 구성방식은 미스테리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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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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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김영하가 3년만에 내는 장편소설이라 그런지, 책을 기다리는 동안 기대는 풍선처럼 점점 부풀어 올랐다. 택배기사가 책을 놓고 갔고 박스를 열어 책을 들어올렸다. 아, 시각적인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멋진 표지. 적절한 두께. 완벽하다.

그리고 읽어내려갔고, 덮었다. 소재는 썩 신선했고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런데 문뜩 2년 전에 읽었던 <아랑은 왜>가 그리워졌다.

태연자약하게 뻥을 치면서 탄탄한 플롯을 짜나가던 그 모습은 어디갔을까. <빛의 제국>은 문학동네에 연재하던 걸 그만두고 다시점으로 재구성하여 다시 써내려간 작품이라 들었는데, 김영하의 고정 독자로서 그건 조금 과한 욕심이었거나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시점의 변화에서 많은 정보를 얻기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에 방해되는 감정의 단절이 더 컸기 때문이다.

아, 이젠 정말로 2년 전에 읽었던 <아랑은 왜>가 그리워진다.

ps. 그렇지만 난 김영하의 작풍이 답보하거나 과거로 회귀하는 건 원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이것이 이야기꾼 김영하의 매력 아니던가. 그러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김영하의 다음 작품을 또 참고 참으며 기다리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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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뽀스 2007-06-08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님 여행기 시리즈로 나오나 봐요.
하이델베르크는 출간되었고 다음편은 도쿄랍니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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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 워낙 충격적이란 리뷰어들의 글을 보고 무더운 여름 밤의 더위도 잠시 잊을 겸, 바로 구입해서 읽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말 그대로 반전은 충격적.

하지만 정말 '반전이 충격적'이란 말 하나 외엔 이 작품을 설명할 길이 없는 듯하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것'을 읽고 나면 뭐라 설명해야 할지 말문이 막힐 뿐이다.

이야기 전개는 지나치게 산만하여 구심점을 잃었으나, 그렇다고 하여 다양한 인물상들이 살아움직이는 작품은 아니었다. 미야베 미유키와 비교하는 건 조금 잔인할까? 수십에 달하는 등장인물들의 시점을 빌어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각각의 개성을 잃지 않은 채 뚜렷한 구심점을 향해 달려가는 그녀의 작품들과 이 소설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처음 책을 사면서 아무래도 결말만 충격적이면 장땡이라고 생각했었으나, 그래도 이건 아니다. 나름대로 사회파 추리소설을 표방한 듯하지만 소재 또한 닳고 닳았는데, 그러고 보면 이 책은 오직 '충격적 반전'이라는 간판을 달기 위해 쓰여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제 아무리 추리소설이 장르문학이라 하지만, '반전'이라는 건 작품을 재미있게 하는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거늘 어찌 그게 주가 되고,소설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다른 수많은 요소가 보조로 전락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힘들다. 대단한 주객전도다. 차라리, 애초에 '반전'이라는 장치를 배제해두고 이야기를 전개했으면 조금 더 나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최근 읽은 추리소설 중에선 그 차이를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현격하게 질이 떨어지는 추리소설이었기에, 그다지 별 감상이 없이 멍할 뿐이다.

짜증나는 소설도 아니고, 화나는 소설도 아니다. 단지, 양장본이 아니라 컵라면 덮개로도 쓸 수 없기에 그 용도를 더욱 더 알 수 없는 '불쌍한 소설'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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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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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여겼던 상식들이 책 속의 한 사내에게 논파당한다. 더군다나 이 사내의 말은 어찌보면 상당히 위험하다. 과연 이 사내의 말을 믿어도 좋은 것인가?

<우부메의 여름>이 '미스테리'라는 장르소설임을 감안한다면, '당연히' 이 사내의 궁극적인 방향은 애초에 귀신의 존재를 강변하는 쪽으로 잡아야 하거늘, 그렇지만도 않다. 상식을 논파하여, 독자들의 뇌 속을 백지 상태로 만드는 데만 무려 120페이지를 할애할 정도면 할 말 다 한 거다. 어쩌자고 한 사내의 장광설을 늘어놓는 데만 그토록 많은 지면을 쓸 수 있는 건가? 이 정도면 독자마저도, 거참- 제대로 끝낼 수 있으려나, 하고 작가의 처지를 걱정하기 마련이다.

허나, 그 '결과'를 놓고 따져봤을 때, 이 작품, <우부메의 여름>은 구조적으로도 흠 잡을 데 없이 잘 짜여졌다. 보통 처음부터 장광설만 늘어놓는 데 수 많은 지면을 할애한 작품 대부분은 앞에서 늘어놨던 말을 모두 활용하지 못해 질질 끌어대고 안달복달 못하다가 막을 내리기 일쑤지만, <우부메의 여름>만큼은 예외다. 지식이 전무한 독자들을 위압하여, 현학적으로, '뭔가 있게 보이려고' 해서가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그 모든 것을 활용하여 충격을 안겨주기 위해서이다.

생각해 보라. 요괴나 귀신. 이 얼마나 진부한 소재인가? 고작해 봐야, '태초에 귀신이 계셨다' , 혹은 신비주의 경향 정도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게 그 소재적 한계다. 이와는 달리, <우부메의 여름>의 작가, 교코쿠 나츠히코는 감성에 호소하여 독자를 공포로 몰아넣는 전략을 취하기보다는 빈틈없이 탄탄한 구조로부터 뿜어져나오는 충격으로 독자를 몰아친다. 하지만, 지극히 '상식'적이지 못한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없는 자에게 그 어떤 이야기를 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간단한 일이다. 그 '상식'을 뒤엎어 독자를 '백지' 상태로 돌려놓는 게 우선일 것이다. 여기서 작가의 기량과 작품의 품격이 우러 나오는 것이다. <우부메의 여름>은 귀신이나 요괴를 완전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그것들은 보는 '주체'에 따라 다르다는, 다소 애매모호한 결론만 던져놓는다.

마지막에 이어지는 꼬리무는 '반전'의 연발에 다시 한 번 감탄이다. 영화든, 소설이든 최근의 경향을 보자면, 한심하게도 '반전을 위한 반전'으로 억지스러운 충격을 강요하는 작품이 상당수인데, 이건 관객과 독자에 대한 일종의 '폭력'이며, 그야말로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앞에서 그 어떤 복선이나 실마리가 없었건만, 무작정 반전이랍시고 아무나 범인이라 외치고, 아무나 죽여대고, 아무나 살려댄다. 그에 반하여, <우부메의 여름>의 반전은 깔끔하고 군더더기기가 없다. 앞에서 살며시 흘려놨던 정보와 의문점을 충실히 활용하여 독자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그야말로 통념 뒤집기의 한판승이랄까? 정말이지 뒷맛이 개운한 미스테리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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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게임 3
아다치 미츠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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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러프>, <미유키>, 등 수많은 히트작으로 인기작가의 반열에 든 아다치. 한 작품이 만화로서 성공하면, 당연하게(?) 아니메 제작으로 이어지는 일본 특유의 구조 때문에 그런지, 아니메화 된 아다치 작품도 꽤나 된다. 그런데 아니메화 된 작품을 보자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물론, 그 어떤 작품이든 다른 매체로 이식될 때 대부분 원작보다 낮은 평가를 받는 게 사실이다만, 아다치 표 만화의 경우는 특히 심하다는 이야기다.나름대로 원작에 충실하게 아니메화 되었다는 <미유키>도 뭔가 '중요한' 게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분명 서사적 구조는 크게 다를 바 없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아다치 만화에는 다른 작품과는 차별화되는 그 뭔가 '중요한' 게 있단 이야기가 된다. 필자는 그 모든 것이 복선과 여운으로 대표되는 연출과 소년의 감수성을 그대로 가진하고 있는 그의 순수함에 있다고 본다. 아무도 없이 덩그러니 배트와 공만 늘어져 있는 저녁뜸의 그라운드. 아무 말 없이 텅 빈 공터에서 캐치볼을 하는 두 남녀. 그외에 온갖 '말없는' 사물과 인물, 배경이 끊임없이 나열되는 장면들.

이런 장면들 앞에서 괜히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진다.

그러나, 아니메화 된 아다치 작품에선 이런 감수성이 상실되고 만다. 흔히 애니메이션을 그림에 혼을 불어넣는 작업이라 하지만, 그 대상이 아다치의 작품이라면 이것만은 예외인 듯 싶다. '정지' 상태이었을 땐 한 없이 감성적이었던 장면들이 '움직이는' 힘을 얻었을 때,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만화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다만, 일본 영화를 세계에 알린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은 '정중동'을 카메라에 담는 데 있어서 최고였다고들 한다. 화면속 모든 것들은 분명 정지해있지만, 카메라가 담은 갖가지 인물, 사물들이 관객에게 전달하는 감성은, 정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평가다. 생각해 보면 만화라는 장르에서 한껏 뽐낼 수 있는 연출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니던가? 텅 빈 그라운드에 널려있는 사물, 아무 말 없는 인물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감수성.

만화든 영화든, 모든 장르를 떠나서, 훌륭한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작품은 정말 많다. 그러나 장르 고유의 매력을 고스란히 풍기면서, 감동 또한 함께 선사하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서사적 구조가 훌륭한 작품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만, '장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후자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아다치 미츠루 또한 '만화'라는 장르를 가장 훌륭하게 이해하고 있는 만화가 중 한 명이자, 그야말로 '장인'이 아닐까? 아마, 아다치 만화를 보고 한 번쯤이라도 '뭉클'해본 독자들이라면 어느 정도는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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