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표류도 박경리 장편소설 5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6월
평점 :
판매중지


표류도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학창시절부터 반복해서 여러차례 탐독했던 [토지]와 최근에 읽은 [김약국의 딸들] 과는 확연히 다른 작품으로,  다른 느낌으로 [표류도]를 읽었다.  [표류도]는 박경리 선생님의  두 번째 소설로 1959년에 출간되었다. 선생님이 1926년생이니 나이를 따져보면 30대 중반이던 나이에 쓰여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망인 여자 주인공인 '현회'의 나이와 비슷하다.  선생님의 작품에는 여전히  여인이 등장한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몇 안되는 작품에서도 공통적인 특징이다. 그 여인들은 모두가 끈질긴 생명력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진 여인들이다.  전쟁을 끝내고 개화되어 가던 시기에 그녀들은 또 닥친 시대에 맞춰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여주인공 '현회' 의 직업이 다방마담인 만큼, 그곳에도 수 많은 인간군상들이 드나든다. 

 

  나름 잘나가는 대학 강사부터, 출판사, 신문사, 등에 종사하는 지식인 직업군과,  여러 예술가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일명 레지라는 여인들까지  각각의 당자들은  시대와  상황에 의해 이런 저런 모습으로 그려진다.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의 뒷모습과  무시당하는 일이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의 또 다른 일면,  그 시대는  전쟁이후 이런 저런 일들을 겪었던 사람들이 급격히 변모해가는 사회 혼란기로  제도와 관습의  변화를  맞아  사람들의 각자의 사고와  기본 인격을  만들어가며 여러 모습으로 변화해 간다.

 

 

'넌 아직 이 세상에 대한 희망과 미련이 있어. 그래서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미련이 있는 이상 죽는다 산다 수선을 떨 필요는 없어. 그야말로 연극에 지나지  못해.' (170쪽)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연모함을 알면서 그에게  순결과 함께 모든 것을 바치지만 결국 그는 떠나가고 남은 여인은 자살을 생각한다. 그런데  주인공 '현회'는 자신에게  자살에 대해 애기하는 그녀에게 아직  삶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고, 진짜  죽을 결심을 한 사람이라면  주변에 자살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30대 중반이었던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삶에 대한 끈질긴 생명력은 박경리 선생님의 작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생명사상'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존엄함과  모든 것에 평등함은 선생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사상이다.  이 작품에서도 그 생명사상을 여지없이 느낄 수 있다. 늘 그렇듯이  작품을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 나는 '우리가 왜,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여주인공 '현회'는 명문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사랑하는 남자는 먼저  사망하게 되고, 그녀는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사생아 딸아이를 낳게 된다.  그리고  억척스럽게 고학생으로 공부하던 그녀는 이제 친정엄마와 배다른 남동생, 그리고 딸아이를 책임져야 할 가장이 되었다.  당시로는 흔치않은 지식인 여성이자, 신여성으로 그녀의 직업은  길목좋은 다방의 마담이다.  빛으로 시작한 것이기에 늘 생활과 이자에 시달린다.  하지만 밤이면 아르바이트를 하며 밤일을 하기도 하는데,  그녀의 밤일은 번역을 하는 것이다.  낮에는 당시의 사회적  시각으로는 그리 좋게 보아주지 않는 직업을, 밤이면 자신의 지성을 조금이나마 담아내는  것이  그녀의 생활이자,  그녀의  사고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확실히 이곳에 와서 내가 지닌 거죽을 한 꺼플 벗었다. 오만과 묵살과 하찮은 지혜에 쌓였던 한 꺼플의 옷을 벗어 던졌다. 이제 인간의 비극이 내 머릿속에 있는 추리의 세계가 아니요, 내 말초신경의 진동도 아니다. 내 피부에, 내 심장에 불행한 인간들은 다정한 친구처럼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 268 쪽)

 

  조용하게 진행되어가던  소설은 중반부를 지나면서  '현회'의 감정변화와 함께 급속하게 변해간다.  중대한 사고인 그것 역시 그녀가 그저 평범하게 살기위해서만 다방의 마담이 되었을 뿐, 그녀  내부에 담겨있는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얼마나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잘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언제든 우리는 다시 살아가게 되어있다. 그것이 어떤 비극이나 슬픔,  아픔으로 다가와도 견뎌낼 또 다른 힘이 되는 것이다.  제목처럼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늘 이리저리 흘러가는 '표류도'이기에  서로를 의지하기도 하고, 배신을  하기도 하나.  또 각자는 모두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바로 그 속에서 우리는 끈질기게 삶을 향해 표류하고 있다.

 

'상현이는 감정의 대상이요, 찬수는 지성의 대상이요,  환규는 의지의 세계를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의지의 세계를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애정이나 일이나 죽음까지도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28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