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김약국의 딸들

 

   박경리'선생님의 타계소식을 듣고 한동안 많이 우울했었다. 그분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학창시절 읽은 [토지]를, 그 또래의 아이를 키우면서 다시 읽고, 또 최근에 새롭게 집필된 작품을 또다시 읽으면서 한 번도 같은 작품을 읽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춘기에 읽은 작품과 사춘기 부모가 되어 읽은 작품, 그리고 이제 아이들이 다 커가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 읽는 작품은 전혀 다른 감동과 함께 과거의 추억까지 떠오르게 하면서 그때그때마다 나를  새롭게 성숙시켜 주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워낙 대하소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여러 작가의 작품 중에 선생님의 [토지]만이 반복해서 여러 차례 읽은 작품으로 내게는 소중하고 남다른 의미를 가진 작품이다.

 

   선생님의 또 다른 작품인 [김약국의 딸들]이 '마로니에 북스'출판사에서 새롭게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그래서 더욱 반갑기만 했다. 사실 토지에 빠져서 선생님의 다른 작품은 그다지 많이 읽지 않았고, 이 책도 마찬가지로 예전에 방송드라마로도 나왔다고 들었지만 그것도 보지를 않아, 처음 접하는 내용이었다.  독서의 시작은 '박경리'의 작품이라는 그것 자체로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한 장씩 책장을 넘기면서 역시 선생님의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인간사의 수많은 굴곡과 번뇌, 생명에 대한 끈끈함, 우리민족만이 가진 그 무엇, 끈적끈적한 애착과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애증이 함께 느껴졌다.

 

'용숙의 집에서 쫓아 나온 한실댁은 망짝골 굿바위에 올라가서 두 다리를 뻗고 울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솔바람에 실리어 멀리 사라진다.' (본문177)

 

  과거에, 아니 지금도 우리네 엄마들은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다섯 딸을 둔 김약국의 안주인인 한실댁도 딸들을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만, 한실댁의 가슴에 그 응어리는 그녀를 한밤중에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두 다리를 뻗고 목놓아 울 수 밖에 없는 그저 나약한 여자일 뿐이다. 그리고 다시 우리들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다른 자식의 그늘을 가려주기 위해  나약함을 숨기고 엄마라는 멍에를 온전히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남편 김약국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그저 여자지만 여자로 살지 못하고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자식으로 인해  삶을 마감하는 모습이 우리네 어머니들의 자화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여러 자식과 남편과의 사이에서  그저 모든 것을 희생하는 그녀의 모습이 쓰리게 아프다. 어머니! 그녀도 나와 같은  사랑받고 싶은 여린 여인일 뿐인 것을...... .

 

 '김씨는 용옥이 한사코 돈을 꺼내는 바람에 달아나듯 가버린다. 상처투성이인 용옥의 마음에 한 가닥 따스함이 지나갔다,' (본문390) 

 

   엄마인 한실댁과 함께 가장 가슴 아픈 사람은 기두의 아내가 된 용옥이다. 어쩌면 엄마 한실댁과 가장 닮은꼴의 삶의 살아갈거라고 소설을 읽어가면서 생각했던 딸이었는데, 그녀의 종말은 어머니의 종말 못지 않게 너무도 안타까웠다.  할퀴고 썩어 문드러진 마음은 그저  남편을 찾았다가 길이 어긋나면서 그곳에서  만남 사람에게 작은 온정을 받는 것만으로 '마음에 한 가닥 따스함'을 느낄 만큼 사랑받는 것에 너무도 목말라있는 여인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아가지만 정작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여인은 불행하기만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이라는 것이...... .

 

   [김약국의 딸들]은 매우 비극적인 이야기의 연속이다.  마을에서 유복한 가정에 지배계급에 속하는 김약국의 가정이지만,  김약국의 부모를 시작으로 김약국, 그리고 그의  다섯 딸들과  아내 한실댁으로 이어지는 운명은  모진 풍파를 만난 난파선처럼  형체도 없이 부서질 대로 부서진 형상이다. 더불어 근대화로 접어드는 격변기 라는 시대적인 배경이 김약국의 집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사건과 함께  다양하게 드러나면서  한 가정만의 문제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그 시대의 사회흐름과 문제점을 함께 생각해보게 된다.  

 

-박경리 문학의 강력한 힘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찬양이고 그것에 대한 자긍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약국의 딸들]과 같은 비극이 파멸과 좌절의 종착역이 아니라 처절한 폐허에서도 솟아나는 생명의 싹을 발견하게 한다.-  (작품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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