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아이
정광조 그림, 김의담 글 / 작가와비평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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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아이

 

    내 여고 시절을 돌아보면 가장 생각나는 것이 일기장이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까지 그다지 경제적으로나, 공부나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다가 한참 힘든 사춘기를 그렇게 맞게 된  것이다. 친구들도, 가족도, 내 가정의 상황들도 모두가 힘겹기만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책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저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주는대로 느낄 수 있는 단 한가지가 책이었다. 시집이나 소설,  문학전집의  대부분을 그 시기에 읽었다.  그저 무슨 전투를 하듯이, 읽어낸다는데 의미를 두고 뜻도 모른 채 그렇게 읽은 책도 많았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일기장과 씨름했다.   한참이 지나서 언제이던가 그 일기장을 읽으면서 참 많이도 앓았구나 싶어져서 성인이 된 나는 그 시절 내가 안쓰럽고 미안하기도 했었다.

 

   [빨간 아이]는 자꾸 예전 일기장이 생각하는 이야기였다.  출판사 서평에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부분이 더 그런 마음을 들게 했다.  그리고 지금 여고 시절을 보내고 있는, 예전과는 너무도 다른 그저 입시지옥을 경험하고 있을 딸아이를 생각해보게 된다.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마음으로,  절실함으로,  공감으로  그렇게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부분 부분 더 공감이 가고 안쓰러운 장면들을 만날 때마다  그래도 살아있음에,  지금  과거를 돌아볼 수 있음에,  수도 없이 감사한다.  내가 이렇게 늘 감사하며 살아가게 되었듯이 작가 역시 감사한 마음이길 바란다. 

 

  [스물여섯의 그녀]   우리의 시대는,  많은 것들에게 자유를 찾고 풍족함을 누리며 혼돈의 폭풍 속을 질주하는 쾌속의 시대.  그녀의 시대는,  많은 것에  제약을 받아 자유와 욕망이 치욕스러운 과욕으로 정신과 유연성이 사치스런 과민성으로 치부되는 정체의 시대. ( 본문 50 쪽 중에서)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스물의 나이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야만 했던 그녀.  글에서처럼 다른 이들에게는 모든 것을 들춰볼 수 있는 쾌속의 시대가 그때이다.  실수는 용서되고, 다시 용기가 될 수 있는.  하지만  그녀에게  쾌속의 시대는 없었다.  그저  두 어깨에 감당하기 힘든 짐과 함께, 모든 것이 두렵고  힘겨운,  아프다는 말조차 사치스러워야 할 정체의 시대였다.  나 역시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너무도 절실하게 가슴이 먹먹했던 시기가 바로  이 글 속의 문희의 엄마가 겪은 정체의 시기였다.  벌써 마흔을 넘긴지도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한 번쯤은  쾌속의 시대를 살아보라고 위로하고 싶어진다. 

 

  우리는 그랬었다.  조금은 덜하기도 더하기도 하고,  상황이 나름 다르기도 했지만,  문희와 많이 닮은 시대를 살아왔다.  문희와 엄마,  그리고 아빠와 오빠로 이루어진 한 가정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할 수 없는 이  [빨간 아이]는 그래서 더 공감하며, 삶을 돌아보게 한다.  '엄마의 유일한 아킬레스건은 자식들의 상처였다.' 는 글이  내 엄마를 생각하게 하고, 다시  젊은 나를, 다시 내 아이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모두  여인들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나의 글의 중심은 늘 여인이다.' 라고 말하는 그 이유를 나는 안다. 아니 우리는 안다.  그래서 더  많이  서로 안아주고 싶다.  참 많이 애썼다고 말해주고 싶다.  엄마에게도,  문희에게도, 또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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