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황제 -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의 도쿄 방문기
박영규 지음 / 살림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길 위의 황제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 명성황후나 대원군, 고종에 비해  그동안 순종임금에 대해서는 많이 거론되지 않아왔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이 번에 [길 위의 황제]라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고종과 명성황후의 아들 순종에 대해 새삼 공부가 되는 시간이었다. 나라가 힘을 잃고, 일제에 의해 합병이 된 이후 우리 백성은 광복의 순간까지 암담한 세월을 살아야 했다.  젊은 청년들은 군대에 끌려가야 했고, 젊은 처자들은 그들의 성적 노리개인 위안부가 되어야 했다. 쇠붙이부터, 곡식까지 모두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그저 목숨만 부지해야 했던,   살아있어도 살아있었다 말할 수 없는 시대였다.

 

  나라를 잃은 힘없는 나라의 백성의 삶이 이러할진대,  나라를 잃은 허수아비와 같은 황제.  대한민국이 수립되기 이전 일제 강점기의 군주인 고종과 순종. 특히 마지막 황제 순종은 자신의 후손도 보지 못한 채 그렇게 힘없는 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글 속에서 그가 말하듯이 평민으로 살고 싶어도 평민으로도 살 수 없는 처지였고, 울고 싶어도 울 수도 없는 처지였다. 뻔히 자신이 다스려야 할 나라가, 백성이, 유린당하는 모습을 봐야 했던  그의 마음은 늘 가위눌리고,  나쁜 악몽에 시달린다.

 

   [길 위의 황제]는 순종이 1917년 6월 일왕인 '요시히토' 왕을 알현하기 위한 도쿄 방문 일정으로 글이 시작된다. 한 나라의 왕이 자신이 다스려야 할 나라를 짓밟은 나라를 직접 찾아가  그 나라의 왕앞에 나아가 속국으로 보살펴 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함을 표해야하는 굴욕적인 일이  도쿄 방문의 주된 이유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스리게 된 조선의 황제에게  자신들을 찾아 알현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을 누차  지시했고, 결국  수많은 날을  고민한 끝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정을 할 수 없었던  처절한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세상의 어떤 무기보다 힘 있는 무기는 바로  생명이다.  그 어떤 것보다 끈질긴 것이 바로 목숨이다.  나의 목숨이 다하면 너의 목숨이 있고, 너의 목숨이 다하면 은이의 목숨이 있다.  은이의 목숨이 다하면 은이의 자식에게 희망을 걸 수 있다. 그러니 살아남아야 한다. 목숨을 지켜야 한다. 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똑똑히 두 눈 부릅뜨고 적들에게 너의 숨소리를 들려줘라.'

 

  고종은  아들  척과 은에게 살아있어야 함을 늘 강조한다.  그들에게  우리가 아직 숨쉬고 있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살아남는  방법으로 그들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들 앞에서, 그들이  만들어 둔 일정과  그들이 써준  일왕을 알현할 때  낭독할 글을 읽어내면서,   무수하게 많은 밤을 앓아 누워야 했다.  비가 쏟아지는 날 빗소리에 감춰가며  왕은 서러운 울음을 토해내야 했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황제,  왕실이 아닌 길 위에서의 황제,  나라가 없지만 아직  왕의 자리에서  비참함을  버겁게 이겨내며,  살아 숨쉴 수 밖에 없었던  마지막 왕의 모습이었다.

 

'성상  폐하, 신  이척 지금에서야 용안을 뵙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알현하여 신하의 예를 갖춰야 했지만 육신에 숙병이 있어 먼 길을 나서지 못한 까닭에 본의 아니게 불충을 저질렀나이다.  ...  이제 감히 오늘 황국에서 천황 폐하의 존안을 뵙고, 신 이척은 작은 가르침이라도 얻고자 하오니, 부디 성가시다 마시고 가르쳐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다시 한 번 신 이척 성상 폐하의 융숭한 대접에 송구스럽고 감격스런 마음 전해 올리며, 삼가 감사를 드립니다.' ( 185 쪽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