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버지의 정원 - 어느 미술사가의 그림 에세이
정석범 지음 / 루비박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아버지의 정원
( 어느 미술사가의 그림 에세이 )
- 추억을 따라 그림 여행을 떠난다 -

늘 알 것 같으면서도 어렵기만 한 그림들에 대해, 잔잔한 추억담과 함께 그림을 이해할 수 있어서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만나는 옛날 이야기들은 다 내 어릴 적 추억과 같았다. '꼬맹이들의 습격' 편의 동네에 한 대밖에 없는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동네 아이들이 모여드는 풍경이나, '서울내기의 비애' 편의 대구 살이 이야기는 나 역시도 결혼과 함께 대구에서 20여년을 생활하다 다시 올라온 경우라 많이 공감이 되었다.
미술사를 공부하신 분에게 듣는 미술이야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과거와 함께 자연스럽게 미술사가 연결되어 아주 편안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들리던 돼지 잡는 소리에 대한 ' 돼지 멱따는 소리' 를 통해 돼지의 비명소리를 기억하면서 저자는 '뭉크'의 그림 '절규'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뭉크의 공포에 대한 설명에서 '우리가 산업사회 속에 발을 딛고 있는 한 짊어지고 가야할 멍에와 같은 것' 이라고 말한다. 여러가지 미술 관련서 에서 늘 봐왔던 뭉크의 절규가 더 가깝게 이해가 된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전곡, 원주, 대구, 비아 등을 이사 다니면서 그 때마다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기 위해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저자에게 음악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했던 아버지는 지금의 그를 있게 하신 뿌리였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 '아버지의 정원'은 '어린 시절 당신의 정서적 씨앗을 내 마음의 밭에 뿌려놓았던 아버지. 이 책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의 씨앗이 거둔 작은 열매' 라고 말한다.
아, 내가 열 한 살의 가을 날 박 상병의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가면서 본 병영의 꽃밭은 아버지의 정원이었다.
그것은 오직 명령과 복종만이 진실인 그 삭막한 인위의 공간에서 잃어버린 자연의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정신적 출구를 찾으려 했던 아버지의 소리없는 절규였다.
- 182쪽 '에필로그' 중에서 -
군인이 직업이면서도 아름다운 감성을 지닌 아버지께서는 병영 안에 자비를 들여 수만 그루의 꽃을 심으시고, 부대의 산림녹화에 앞장서셨다. 따로 국화 동산을 가꾸기도 하시면서 저자의 말처럼 군인이기에 더 힘들었을 자신의 정신적인 자유를 꽃밭을 통해 만들어 내신 분이다. 절절한 그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와 가족,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그림까지 함께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기억되는 것들은 그립고 아련한 추억일 것이다. 때로는 당시에는 힘들었을 순간들 까지도, 지나고 나면 모두가 그립기만 하다. 미술사학을 공부하신 저자는 어린 시절의 기억 중 최초의 기억이 떠오르는 4살무렵부터 12살 소년기 까지의 기억을 쫓아 추억의 에세이와 함께 자연스럽게 그림과 연계시켜 미술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