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하얼빈의 11일
원재훈 지음 / 사계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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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하얼빈의 11일

 

  부유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 나라를 위해  서른 두 해의 삶을 살다간 안중근의사.  '하얼빈' 역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애국자. 이렇게 나는 다 안다고 생각했다. 학창시절부터 자주 들어왔던 위인의 한 사람. 작년에 서거 100년을 맞아 이런 저런 행사가 있었다는 것까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분이었지만, 정말 너무 모르는게 많다는걸 이번에 새삼 알게 되었다.  그 분에 대해서도, 그 가족에 대해서도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으로 참 많이 울었다. 고마워서, 감격해서, 안타까워서......

 

  '안중근'과 '우덕순'의 거사를 앞두고 쓴 글을 시작으로 감정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100년전 그 11일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분연히 떨쳐 일어나 나가니 반드시 목적을 이룰 것이다...동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지어다... 안중근의 '장부가'를 읽으니 가슴이 벅차 오른다. ...우리 민족 2000만을 멸망 까기 시켜 놓고, 금수강산 삼천리를 소리 없이 뺏느라고...네 뿐인 줄 알지 마라. 너의 동포 5000만을 오늘부터 시작하여 하나 둘씩 보는 대로 내 손으로 죽이리라. 우덕순의 글을 읽으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를 갈고, 피눈물을 흘리며 써내려 갔을 '하나 둘씩 보는 대로 내 손으로 죽이리라.' 어찌 자랑스럽지 않은가. 

 

  안중근이 거사를 계획하고 하얼빈에 도착한 1909년 10월 22일 부터,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를 죽이고 거사에 성공과 함께 체포. 그리고 다음날 안중근의 아내와 아이들이 하얼빈 역에 도착한 일과 1909년 11월 1일 뤼순 감옥으로 이송되기까지의 11일의 기록들.  그리고 거사 후 1910년 3월 26일 순국의 날까지......장소는 바뀌고, 사람들은 바뀌지만 여전히 안중근은 꼿꼿한 모습으로, 성인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는다.

 

  안중근은 거사 당일 '유동하'의 죽으러 가는 길을 어찌 살길이라고 하느냐는 물음에  "나의 죽음은 이제부터 벌어질 대일 항전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일제의 만행을 온 천하에 알려 살아남은 자들의 정신에 스며들 것이다." 라는 말로 자신의 심정을 말한다. 죽으러 가는 그 길은 결국은 우리 민족이 다시 뭉쳐 일어나는 길이 될것이니, 내 한몸은 죽겠지만 그것은 죽는 길이 아니라 살길이라 말한다. 그리고 하얼빈 역으로 이토를  저격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이토가 탄 기차는 오전 9시 하얼빈 역에 도착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는다. 거기에  안중근도 함께 있다. 불과  이토를 저격할 당시의 거리는 5m. 3발을 이토에게, 그리고 나머지는 이토의 얼굴을 정확히 모르는 터라 주변의 다른 일본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향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러시아말로 '코레아 우레'를 크게 세번 외친다. 이토는 저격 후 30분 만에 숨지고, 다른 사람들도 중상을 입었다. 그리고 안중근은 그 자리에서 체포된다.

 

  많은 나라에서 안중근의 거사는 큰 관심거리였고, 고종은 안중근을 살리기 위해 구출작전을 펼친다. 하지만 일본은 결국 자기들 마음대로 재판을 하고 안중근을 사형에 언도한다.  안중근은 이미 사형이 언도된 자신의 처지를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큰 죄인이다. 내 죄는 다른 죄가 아니라 어질고 약한 한국민으로 태어난 것이다.' 자신은 당연히 죽어야 할 사람을 죽였고, 국제법에 따라 재판을 받기를 원했지만, 결국은 일본인들의 처음 계획대로 사형이 내려진 것은, 약한 한국민으로 태어난 죄를 지었기 때문인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약한 한국인으로 태어나  일본 낭인들의 칼에 왕비를 잃고,  임금은 폐위되고, 애국자들은 고문과 함께 무수히 죽어간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일제치하의 지옥같은 날들을 지내게 된것이다.

 

  이토를 저격하고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뤼순' 감옥으로 옮겨지고, 재판을 받고 5개월만인 3월 26일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하얀 수의를 입고 죽음을 맞는다. 시간이 되었다는 형무소장의 말에 교수대에 선 안중근은, 우렁찬 목소리로 마지막으로 "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다.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여사는 아들의 마지막 수의를 지어 보내며 이렇게 아들에게 말한다.

 

 
"행여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대장부로 태어나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였으니 이것은 가문의 큰 영광이다. 살아서 나라와 민족에 욕을 보이는 때에는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죽음으로 자신의 이름과 나라의 이름을 빛낸 충신 열사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사형선고를 받거든 당당하게 나아가라. 이 모진 세상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라. 그곳에서 우리 모자 상봉하여 이승에서 못 나눈 정을 천년만년 나눌 것이다. "

 


 

 



-순국 직전 마지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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