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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평점 :
소현
우리의 역사에 침략의 역사이야기는 너무도 많다. 과거로 거슬러서 뿐 아니라 지금 이 시간 까지 우리는 늘 불안한 국민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온통 나라가 천암함 사태로 들끓고 있고, 많은 젊은 죽음 앞에 할 말을 잃은 사람들뿐이다. 한 가지씩 사태가 드러날수록 아프고, 또 아프기만 할뿐이다. 역사란, 힘없는 나라란 그런 것인가. 소현을 읽고 나니 또 이런 저런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많은 역사적인 인물들을 만나면서 소현만큼 쓸쓸하고 아픈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내게 그저 비운의 운명을 타고난, 임금이 되지 못했던 안타까운 왕자정도로 알고 있었던 소현세자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한 나라의 세자라는 것이, 그것도 적국의 볼모로 잡혀가 살아야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프고, 또 비참한 일인지 너무 아프게, 슬프게 읽었다.
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백성을 걱정했던 소현세자. 왕이 될 몸으로 적국인 나라에서 8년여 세월을 자식과 떨어져 살며 말 한마디, 행동하나 자유로울 수 없던 그였다. 울고 싶어도 울 수도 없었고, 웃고 있어도 웃는 것이 아닌 세월이었다. 적의 나라에서도, 내 나라에서도 늘 쓸쓸하고, 어찌할 바를 모를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적의 승리를 위해 전쟁터에 종군한 후에 얻은 자유였다. 그렇게 소현은 그리던 내 나라로 갈 수 있는 몸이 되었다. 종군. 적의 나라에서 누구를 위해 전쟁터에서 싸운단 말인가. 그렇게 모질게, 아프게 지켜낸 목숨이었다. 병자호란의 치욕으로 시작되었던 청에서의 세월은, 소현에게는 오래고 오랜 고문의 시간이었다. 한시도, 한 날도 편치 않은 질기도록 아픔의 시간이었다.
긴 세월을 볼모로 지내다 환국하고 조선에서 보낸 시간은 단 2개월이었다. 그토록 그리던 내 나라였고, 그토록 사랑해주고 싶었던 원자와 자식들이 있던 나라, 너무도 사랑하는 백성들이 있는 나라에서 겨우 두 달 간의 삶이었다. ......어쩌면 잠든 원손의 머리를 쓸어주며, 한 번쯤은, 미안하다고 말해주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의 아비여서 미안하다......너를 나의 자식으로 낳아 미안하다...... . 소현은 아들에게도 미안했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도 감히 할 수가 없었다. 어린 원손은 아비가 잠시 환국할 일이 있을 때는 아비대신 청에 볼모가 되어야 했다. 잠시 스치듯, 원손인 아들이 자신의 볼모노릇을 대신해야 할 때, 그렇게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너무 어린 아들에게 소현은 늘 아프고, 미안했다.
병이라고 했다. 소현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내 나라에서, 세자의 몸으로 자유롭게 지낸 시간 두 달만에 학질이라는 병으로 죽었다 한다. 공식적으로 '학질'이라 기록되었다 역사는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함께 볼모로 잡혀 생활했던 봉림세자가 왕이 되었다. 소현이 죽은 후, 세자빈은 사약을 받게 되고, 세 아들은 유배형을 받았다. 세자는 학질이라는 병으로 죽었다 했고, 그의 아내와 자식들도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다. 한때는 원손 이었고, 아비가 임금이 살아 있기만 했다면 세손이 되었을 것이며 임금의 자리에도 올랐을 석철은 그의 동생 석견과 함께 제주에서 굶어 죽었다. 그때 석철의 나이 겨우 열 두 살이었다. 감히 역사를 누가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을까마는 나는 지금도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