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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사랑하러 갑니다 - 박완서 외 9인 소설집
박완서 외 지음 / 예감출판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지금 나는 사랑하러 갑니다
한 사람이 쓴 장편소설도 좋지만, 여러 명의 여류작가가 쓴 단편들의 모음인 이 책도 아주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너무나 좋아하는 박완서선생님을 비롯해서 여러 작가들의 사랑을 소재로 한 글들은 작가에 따라, 이야기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어떤 것을 먼저다 딱 꼬집어 고를 수 없을 만큼 여러가지 형태의 사랑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아주 좋았다. 그 중에서도 박완서선생님의 그 '그 여자네 집'과 '권혜수'님의 '길은 가야 한다' 를 읽은 느낌은 서로 전혀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 여자네 집'은 아주 잔잔하게, '길은 가야 한다'는 내가 주인공 동은이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처신했을까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여자네 집 : 박완서 작
-내가 곱단이를 그리워했다면 그건 아마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젊은 날에 대한 아련한 향수였겠지요. 아름다운 내 고향에서 보낸 젊은 날을 문득 문득 그리워하는......-33쪽-
'김용택'선생님의 '그 여자네 집' 이라는 시와 함께 시작하는 곱단이와 만득이의 이야기는 아름답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르며 많이 그리워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누구에게나 순수했을 어린 시절은 아름답던 고향을 그리는 선생님의 추억과 함께 아련하게 다가왔다. 누구나 만득이나 곱단이, 글을 쓰신 선생님처럼 그립고, 또 그리운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평생을 남편의 마음속에 그 옛날 이루지 못한 사랑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곱단이의 그림자에 힘겨워했던 순애씨에 대해서도 생각이 깊었다. 아내가 남편에게 갖는 못미더움은 그것이 남편에게 완전히 사랑받고 싶었던 애증의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안쓰러웠다.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하고 산다고 생각하면서 평생을 살았을 여인에 대한. 하지만 노년의 만득이의 말처럼 아내가 줄기차게 일러주지 않았다면 아마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을 거라는 말을 되씹어 보았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일이, 지난 일을 물고 늘어지며 자기 자신을 할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일거라 생각해본다.
*길은 가야 한다 : 권혜수 작
-길을 간다. 폭풍이 불고 파도가 친다. 때로 사랑할 수 없는 것도 사랑해야 한다. 때로는 용서할 수 없는 것도 용서해야 한다. 때로는 증오도 먹고 살아야 한다. 그래도 길은 가야 한다. -182쪽-
살다보면 정말 가고 싶지 않은 길이 자꾸 나타난다. 잠시 비켜서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길이다. 안가고 싶다고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도 없는 길이어서, 정말 그냥 앞으로 가야한다. 바람이 불든, 눈비가 내리든, 싫다고 안 갈수도 없는 길이다.
동은의 길이 그런 길이다. 아버지에 의해 만들어진 너무도 지나기 싫은 길이지만, 그냥 돌아설 수도 없는 그 길에 그 여자가 있다. 함께 안고 걸어갈 수 밖에 없는 길. 힘들고 죽이고 싶은 살의를 느끼지만, 또한 너무도 안쓰럽고 불쌍하기만한 그 사람을 부축하며 함께 해야 하는 길. 안쓰럽지만 내 눈에 그런 동은이의 모습이 대견하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누구보다 힘들겠지만 지금처럼 그냥 그 길을 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