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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나날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12
플뢰르 이애기 지음, 김은정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름다운 나날
'플뢰르 이애기'의 책은 처음 읽었다. [아름다운 나날]과 [프롤레테르타 호]모두 한참 사춘기 소녀들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여서 같은 또래의 딸을 키우는 부모입장이 되어 더 관심이 갔다. 그리고 천천히 읽어가면서 내 소녀시절들의 감정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다가도 친구들과의 우정을 되새기고, 끝도 없이 떠들어 대는가 싶다가도 한없이 가라앉기도 했던 시절. 사사건건 간섭하는 부모님의 모든 행동들에 반항심이 생기고, 어른들이 모두 속물로만 보이고 산다는 것에 대해 가장 깊이 방황하던 시절들이. 괜히 일기장을 벗삼아 인생을 토로하고 삶에 대해 진지해지던 그 시절의 낙서들이 살며시 떠올랐다. 하지만 그시절 그렇게 방황하던 모든 시간들이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아름다운 나날]의 '나'는 우울하고 방황하고 슬플 듯 하지만, 그런 일련의 모든 감성들이 사춘기 자기자신을 찾는 성장의 과정이기에 그저 우울하고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든 제일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고,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현재 처해있는 모든 것들이 불만이면서, 내가 아닌 모든 이들이 부러움을 대상이 되는 마음. 불우한 환경이지만 끈임 없는 고뇌 속에 오히려 삶에 대해 갈망하는 진지함이 보인다. 이제 그 나이가 그리운 중년이 되어 어둡고 안타깝기에, 더 많이 아프게 다가왔던 그 시간들 모두가 그립고 사랑스러운 과거로 남아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 중에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슬픈 추억도 더러 있다. 그 순간에는 모두 놓아버리고 싶었던 시간들. 누구나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암담했던 추억이 가끔 오히려 그리워지기도 한다. 아파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담담한 듯 무심한 듯 쓰여진 소녀들의 성장기 이야기는 더 절실하게 삶을 살고 싶어하는 간절함일 것이다. 그래서 지나간 시간은 모두 아름답고 소중하다. 아버지와의 불편하고 힘들었던 여행조차 시간이 지난 후 어느날 갑자기 피를 나누지 않은 아버지일지라도 그의 유골이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처럼. 인생이란 나이가 들어가면서 과거를 추억하고 그리워하게 되어있나 보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영원한 불행의 시간처럼 느껴져, 그저 끝도 없이 미래의 날들을 꿈꾼다. 추억의 그 시절의 막막함이 그립게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는 건 그 만큼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온 나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에는 절대 해가뜨지 않는 추적추적 비가 오는 안개낀 흐린 날씨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시간들의 방황이 무지개처럼 찬란하고 빛나는 시간들임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불행해 보이는 두 소녀들의 이야기지만 내게는 사랑스러운 소녀들의 인생을 향한 몸부림으로, 사랑의 표현으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