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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
이경자 지음 / 문이당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빨래터
*남편이 외로워하는 건, 그리고 소외감을 느끼는 건 타협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타협하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세상과 자신의 불일치를 느낀 것이었다. -139쪽-
너무나 유명하고, 갈수록 더 유명해지고 있는 고 '박수근'화백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났다. 천재적인 그는 너무도 사랑했던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그렇게 빨리 가족들과의, 그림과의 작별을 고했다. 너무 여려서 더 힘들기만 했던 그의 삶은 지금 그의 그림으로 다시 살아서 숨쉬고 있다. 죽음의 순간까지 개인전시회 한 번 열어보지 못했고, 제대로 자신의 그림을 평가받지 못했지만, 언제나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그림세계를 추구했기에 지금 그의 그림들을 통해 우리는 편안함과 천재의 작품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가 그토록 힘들게 살다간 시간들이 너무도 안타깝다.
아내에게 따뜻한 털 속치마를 사주지 못하고 가는 것을 안타까워 하던 사람, 천국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너무 멀다는 말을 남기고 아내의 곁을, 아이들의 곁을 떠난다. 자신의 화풍을 지키고, 타협하지 않고 살기를 그리도 힘들어했던 그가, 그런 방황의 시간을 술에 의지하다가 결국은 간경화라는 병으로 세상을 등지고 만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를 많이도 미워한다. 엄마의 고단함이, 가족의 가난이 모두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아버지가 나가서 막노동이라도 하기를 바란다. 모두를 힘들게 하고 무능력하다고만 느껴지는 아버지였지만, 아버지의 죽음은 그런 아들에게 큰 충격이 되고, 아버지에 대해 새로운 사랑의 마음과 함께 다시 살아난다. 결국 아들은 아버지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둥이고, 나무였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렇게도 아버지의 그림 그리는 모습이 싫었지만, 결국은 아들 역시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도 그리운 아버지만이 아들의 마음속에 남아있을 뿐이다.
화가라는 직업, 어쩌면 창조적인 모든 직업들이 얼마나 그들에게 힘든 고난의 시간들이고, 갈증의 시간일지. 그림을 잘 모르지만 친정오빠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어서인지 너무도 공감하면서, 아파하면서 읽었다. 오빠 때문인지, 박수근의 이야기 때문인지 참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여리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결국은 그저 세상 속에 타협하는 삶을 택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 느끼는 방황은 화가를, 예술가를 아프게 한다. 그들을 그저 온전히 그들이 추구하는 예술 속에서 마음껏 살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비슷하게 찍어내듯 그렇고 그런 창작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상업적으로 전락해가는 예술을 우리가 어떻게 진정한 창작이라 할 수 있을지. 정말 어렵고 또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