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따라 걷습니다 - 내 영혼의 산마루에서
이주연 지음 / 두란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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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안에서의 자유는 풍족한 삶 만이 아니라 비천한 삶도 기꺼이 살아 내는 능력입니다. P69

그리고 행하십시오. 행하였다면 오래 참고 기다리십시오. P95

몇 년전 산마루교회에 방문할 기회가 있있다. 그때 2006년부터 서울역 주변의 노숙인들을 돌봐온

저자와 나눈 대화 중 '연습'이라는 단어가 오래도록 남았다. 우리는 스스로 오직 예수의 삶을

따라가기를 연습해야 한다는 말이었는데 나도, 함께 간 다른 분들도 모두 공감하며 이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우리의 의지로는 안된다. 안되지만 끝없이 노력하고 훈련하고

연습하다보면 조금 이나마 흉내는 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 때 만난 이주연 목사는

정말 예수로 똘똘 뭉친 분이었다. 그런 이가 펴낸 묵상집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더 이상 덜어 낼 수 없을 때까지 덜어 내고 남은 마음이 진실이며, 더 이상 낮아질 수 없을 때까지

낮아진 마음이 겸손이며, 더 이상 줄 수 없는 데까지 자신을 내어 주는 상태가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실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 앞에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이 문장이

우리가 배워야 할 사랑의 전부인것 같다. 진실을 담아 덜어 내었기에 더 이상 덜어 낼 것이 없고,

더 이상 낮아 질 수 없을 만큼 몸과 마음으로 낮아지셨기에 겸손의 왕이셨고, 죽음으로 이를

완성하셨기에 더 이상 내어줄 것이 없으셨던 그 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문제는 여기에 있다. 머리로는 공감이 되고 감동도 온다. 그런데 몸이 안 움직이진다. 뻣뻣하게

굳어서 도무지 발을 안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세상은 우리에게 '말 뿐이다'라는 조롱을 쏟아낸다.

주님은 단 한번도 당신이 하지 않은 일을 하라고 하시지 않았는데 말이다. 행함이 순종이고 순종은

사랑의 열매이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주님은 기다리신다. 우리가 주님께 등 돌리고 있는 순간에도 우리의 등이 돌려지길 기다리고 계신다.

집을 뛰쳐 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 오기를 기다리며 매일마다 동네 어귀를 바라 보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처럼 언젠가 돌아 올 우리를 기다리신다. 저자는 이에 대해 '끝까지 놓지 않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기다림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언제일지 모르기 때문에

인내로 견뎌야 한다. 신랑이 오길 기다리다 지쳐 버린 다섯 처녀와 같이 어리석은 판단과 행동이

생기지 않게 잘 견디고 참아야 한다. 인내는 긴 시간을 통과하지 않으면 형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내를 갖추면 모든 것을 이루는 근본을 얻는다. 인내를 갖춘 이는 어려움이 연단이 되고 이로

말미암아 소망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삶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 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믿음 가운데서 묵묵히 기다리는 인내 가운데 이루어진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이 책의 마지막 테마인 '절제' 부분에 도달하면 이주연 목사의 인생 철학과 신앙관이 나온다. '이루시는

이가 하나님이신 줄을 알고 지어 가시는대로 자신을 맡기는 깊은 삶으로 나아가십시오.' 우리의 삶도

이래야 할 것이다. 알고 맡기고 나아가는 삶. 어쩌면 이런 삶이 우리가 결국에 이루어야 할 삶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은 사역 현장에서 분투하는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다. 말로만 하는 맡기는 삶이

아니라 정말 모든 것을 걸고 걸어 볼 가치가 충분한 사역을 하고 있음을 알고 다시 힘을 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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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작아지고 싶어 한다 - 뇌과학으로 풀어보는 인류 행동의 모든 것
브루스 후드 지음, 조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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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만화를 보면서 과학자나 똑똑한 사람을 표현할 때 유독 머리를 크게 그려놓은 것을 보며

'왜'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이때 외계인의 머리는 항상 커다란 전구 모양이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가진 똑똑한 사람은 머리가 크다라는 문화적 고정관념에서 온 오류인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지난 2만여년 동안 인간은 테니스 공 하나 정도의 뇌를 잃었다고 말하며 기존의 생각들을

뒤엎는다.

​

인간의 뇌는 우리를 사회적 인간으로 만들도록 진화했다. 인간이 사회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어 생각과 행동도 바꿔야 한다. 한 종으로서의 이러한 길들이기는 인류가 진화하는

동안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행동과 기질을 형성하는 '자발적 선별 장치'(self-selecting

Mechanism)로서 발생한다. 개인은 여전히 살아가면서 평생 자신을 길들인다. 유년기라는 자기

형성기에는 특히 더 그렇다. 현생 인류 중 성인의 뇌는 몸무게의 1/50밖에 되지 않지만 총 필요

에너지의 1/5를 사용한다. 근육보다 단위 질량당 8-10배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의 약 3/4을 신경세포, 즉 뉴런(Neuron)이 사용한다. 뉴런은 뇌에서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하는데, 뉴런 1개는 마라톤 시 다리 근육 세포 1개가 사용하는 만큼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리고

뇌의 전원은 절대 꺼지지 않는다.

​

심리학자 닉 험프리(Nick Humphrey)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으로 미루어 우리 종을 '심리적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프시코로지쿠스'(Homo Psychologicus)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심령술사의 초자연적 기술이 아니다. 그저 상대가 무엇을 생각할지 상상하고,

무엇을 할지 예측하는 것이다. 자신과 자식을 위한 자원을 충분히 마련하려면 다른 구성원들의

의도와 목적을 이해하고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속임수를 쓰고 정치적으로

연합하는 영장류는 더더욱 그렇다. 이것을 '마키아벨리적 지능'(Machiavellian Intelligence)이라고

하는데 이는 간계와 전략을 이용해 타인을 지배하는 방법을 설파한 중세 이탈리아 학자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

누구도 남이 자기에게 거짓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은

'상황을 조작하기 위해 거짓 믿음을 끌어내려는 의도적인 시도'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중요한 정보를 말하지 않거나, 속임수를 써서 잘못된 정보를 준다. 저자는 이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인간이 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진실은 좋은 것이지만 항상 진실을 말한다면 남에게

수치를 줄 수도 있고, 결국 관계가 깨지면서 사회의 결속력은 급속도로 허물어질 것이다. 사실 거짓말의

목표는 '스스로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타인이 나를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또 거짓말을 한다. 이러한 거짓말을 들켰을 때가 항상 문제가 된다.

거짓말을 들키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가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는 '자기기만 (self-Deception)'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다. 남을 더 쉽게 속이고 진실과 거짓을 동시에 유지하기 위해 자기기만은 반드시

필요하다. 아예 자신까지 속여 버린다면 남을 더 잘 속일 수 있다.

​

우리의 길들여진 뇌는 인간이 집단으로서 함께 살아가며 번성하는 동물이 되게 해 주었고, 기술의

발전으로 집단의 크기는 지리적으로나 시간 상으로 제한이 없게 되었다. 물론 이 안에서 개별 집단의

통합도 일어날 것이고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문화 충돌도 일어날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를

갈라놓는 집단 정체성과 편견이 사라지는 것은 자원이 한정된 지구에서 협동하고 협력하여 동거하는데

필요한 해결책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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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드시는 하나님 세우시는 하나님 - 팬데믹 이후, 인생 재편의 시작
박종렬 지음 / 패스오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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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은 굴곡의 연속이고 시련과 환란은 예고 없이 엄습한다. 충분히 버틸만 하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 닥쳐오는 그것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비빌만한 든든한 언덕이라 생각되던 기반 조차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리고 뿌리째 뽑히기도 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하나님이 우리를 흔드시는 이유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기초를 세우시기 위함이다'라고 말하며 전하는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의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열심히 사는 자들에게는 함부로 고통을 주어선 안된다. 고통을 당하는

순간, 녀석들은 자기 삶을 돌아보게 되거든. 우리는 그저 고통 없이 열심히 살게 하다가 저놈들을

한방에 날려 보내야 해'.

​

인간은 누구나 고통을 좋아하지 않기에 호시탐탐 고통에서 벗어날 기회를 노린다. 저자는 이것을

'위대한 전환점'이라 부르며, 고통 앞에 마주하길 요구하며, 관점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도 하나님 앞에 제대로 쓰임 받은 사람이 없음을 말한다. 고난을 겪으면 스스로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망상을 포기하게 되며, 이때가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질 시기인 것이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

문제 자체와 씨름하기 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줄 알아야 한다. 다윗은 끝없는 고통과 고난을

만나면서도 먼저 하나님께 피하고 그분이 주실 기쁨을 붙들었고, 바울은 복음 증거라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수없는 고난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모든 고난을 자기 안에 계신

그분과 하나되는 시간으로 만들었고 고통하는 인생을 위로하는 사람이 된다.

​

예전에 '예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오랫동안 멈춰있었던 적이 있다. 예배의 자리는 가득차 있지만

뭔가 공허하고 뭔가 허전한 마음에 한참을 그 질문과 씨름을 했다. 분명 찬양도 열심히 하고 말씀도

잘 듣는것 같은데 정작 그 예배의 주인은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 저자도 그랬던것 같다. 그리고

발견한 '하나님 나라'는 단순하지만 우리가 너무 무감각하게 넘겨 버렸던 '하나님이 주인이 되고 다스리는

그 곳'이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예배는 그 하나님 나라를 우리 안에, 우리 가운데

세우는 가장 기본적인 영적 태도이다. 예배는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그 분 앞에

내 삶을 드리는 헌신이며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우리 믿음의 고백이다.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시 새롭게 하신 그 모든 일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고백이 예배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에 대해 갈망하는 것이다.

​

저자는 '섭리'와 '예비하심'에 대한 확신이 있다. CGN TV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나 일본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일본인들에게 많은 도전과 감동을 안겨준 '러브 소나타'가 되어져 가는 일들은

'섭리'가 아니면 설명 할 수가 없는 일들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섭리와 예비하심'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의지와 생각은 내려놓고 그분의 방법과 그분의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다.

\조금 더디게 보일수도, 조금 힘겨워 보일수도, 조금 먼 길을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길이

옳은 길이고 그 길이 주가 가신 길이라면 그렇게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걸음이다.

​

영생이란 영원이라는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고 그분과 누리는 삶 전체를 말한다. 참된

진리의 길, 진리 되신 생명, 생명 되신 빛 안에 거하는 삶이다. 예수 안에 거하는 것, 예수를 믿는 것,

예수와 함께하는 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삶이다. 그리고 그 분을 믿으면 이 영생을 얻는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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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도 배워야 합니다 - 평범한 일상을 바꾸는 마법의 세로토닌 테라피!
이시형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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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토닌(serotonin)은 세포막에 위치한 세로토닌 수용체에 작용하여 효과를 나타내며 잘 살기

(well-being)와 행복감을 느끼는데 필요한 요소로 주로 우울증이나 불안 증세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세로토닌이 만들어 지는 부위에는 보행, 호흡, 저작 등 사는데 필요한 기본적 운동을

담당하는 중추가 있어서 세로토닌은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본능

호르몬이라는 별명을 가진다. 저자도 밝혔듯이 그간의 책이 세로토닌의 이론에 취중했다면 이 책은

사람들의 호소를 듣고 정신과 의사로서 권하는 처방전의 형식을 띠며 '평범한 일상을 바꾸는

마법의 세로토닌 테라피'라는 부제를 가지고 잘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

요즘 많은 이들이 '감정에 메마른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삶에 지쳐 감정을 추스릴 여유도, 감정을

챙길 정신도 잊고 그냥 살아가다 보니 서로가 '감동결핍증'에 빠져 있다. 여기에 대해 저자는 '작은

일에도 감동하세요'라고 주문한다. 그냥 '작은 일에'가 아니라 분명하게 '작은 일에도'이다. 뇌 피로에

감동 만큼 좋은 묘약은 없다. 특히 감동할 때 흘리는 눈물은 웃음 보다 6배 강한 힐링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감동은 인간 만이 가지는 고급 감정이며 전신, 전 뇌의 반응이지만 특히 인간 최고의 사령부

전두엽에 가장 강하게 반응한다. 감동은 사전에 '느껴서 마음이 움직인다'로 풀이되는데 아쉽게도

영어에는 적절한 단어가 없이 Touched(느낌) & Moved(동,움직이다) 정도로 표현된다. 감동에는 주로

세로토닌이 분출되는 잔잔한 감동과 여기에 긍정 감정이 더해져서 세로토닌뿐만 아니라 도파민,

엔도르핀 등이 함께 분출되는 벅찬 감동이 있다. 감동은 우리에게 삶의 환희, 사는 맛, 보람, 멋 등을

제공하고 벅찬 감동은 사람을 바꾸게 하는 강력한 모티브를 제공한다. 그래서인지 아인슈타인은 감동

없는 삶은 인생이 아니다고 말했다.

​

테라피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에 있고 세로토닌을 행복 호르몬이라 부른다. 마음 상태가 행복해지기

위해선 어느 한 가지 방법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뇌 전체를 힐링 상태로 만드는 긍정사고, 긍정정서,

재미, 즐거움, 기쁨 등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때 세로토닌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의 역할을

한다. 행복은 우리가 추구한다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편하고 덧없이 좋은 상태에

놓일 때 그 결과로 오는 것이다. 전두엽이 있어 인간이 인간다워진다고 할만큼 전두엽은 대단히

고급스럽고 민감한 부위인데 세로토닌이 이 전두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쯤되면 이 책의

제목인 '행복도 배워야 합니다'가 이해가 된다. 세로토닌을 활용해 전두엽을 자극하고 이를 통해

뇌 전체에 편안함을 주어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그렇게 얻게된 마음의 평화가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다.

​

우리는 지금 절제와 균형을 아는 생활, 삶이 무엇인지, 삶의 질이 어떠한지가 더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치열하게 경쟁하되 삶을 즐길 줄 아는 세로토닌적 라이프 스타일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절제와

균형, 치열하게 살되 결코 도를 넘지 않고 여유를 즐길 줄 아는 라이프 스타일. 바로 Work Life Balance,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이상이며 삶의 목표인 것이다. 세로토닌형 인간에겐 분명한 목표가 있다. 목표가

분명하면 웬만한 고충이나 갈등, 스트레스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국엔 '거기에 가게 된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앞을 향해, 위를 향해 꾸준히 밀고 나간다. 이들은 쓰라린 경험에서 교훈을

얻는다. 세상이 끝장날 것 같은 절망감을 맛보더라도, 세월이 흐르면 그리 절망적이지 않았음을

깨닫는 복구력(Resilience)을 가진다.

​

바로 지금이 이런 삶이 필요한 시기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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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할 것, 남겨야 할 것 - 피할 수 없는 변화에 무력감이나 상실감을 느끼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심리학 조언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박제헌 옮김 / 걷는나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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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것인가? 변할것인가?'는 우리의 젊은 시간을 관통했던 화두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회피한다. 변화는 익숙함을 버려야 하거나 가깝고 익숙했던 것에서 멀어지는 것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건강이 나빠지고 마음이 약해지는 몸과 마음의 변화도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놓아주기'와 '머무르기'라는 기술을 제안한다.

쉽게 얘기하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내려놓고, 강하게 만드는 것은 제대로 움켜쥐면 된다.

변하는 것은 놓아주고 목표나 소망, 행동 능력 등은 고수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인 헤라클레토스(Heraclitus)가 자신의 철학을 '판타 레이(panta rhei)'라고

말했듯이 만물은 흐른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간 역시 변화와 창조의 과정 속에 있을

뿐이다. 결국 삶이란 끊임없는 변화와 지속적인 진화 과정이다. 현재의 편안하고 익숙한 것에만

집착하는 이들은 과거에 갇힌 채 타성에 젖어 자신의 사고방식만을 고집하고 유연하지 못하다.

우리는 살아가는 매 순간 변화와 혼돈을 맞닥뜨리며, 우리 인생은 그것을 받아 들일 것인가의

여부에 의해 정해진다. 과거의 경험에 집착하는 사람은 향수에 젖어 처음에 느낀 즐거움을 다시

경험하고 싶어 하지만 이런 기대는 물거품이 될 뿐이다. 과거와 똑같이 머무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변화에 한꺼번에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이럴때는 무작정 행동에 나서기보다 생각과 행동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지금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인지할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보통 겉만 번지르르한 말뿐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 와 닿는, 진심으로 성취하고 싶은 확고한

목적이 있을 때 변한다.

​

변화는 이성적인 결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의식적으로 행하기보다 자신이 누구인지 깊이

깨닫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낄 때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이다. 내 모습이 아닌 것이 되려고 노력할

때는 올바른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없다. 진정한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현재의 자아에 온전히

자신을 맡겼을 때, 오직 그때만 우리는 변할 수 있다. 변한다 해서 우리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인격을 갈고닦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완전한 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변화의

본질이다. 우리는 계속 존재해야 하는 것과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 사이에서 방황하지만 인간은 결코

어느 한쪽만 유지할 수 없다. 이 둘이 서로 교류할 때 '온전한 나'를 만날 수 있고 이것이 변화의

완전성이다. 경험은 흩어진 조각과 자신을 동일시할 때 일어나는 융합 현상을 보여준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완전히 알고 나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변화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다.

​

'적응력'은 새로운 것은 받아들이고 변화 과정을 따를 채비가 된 상태, 즉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능력을 말한다. 능동적 적응이란 새로운 현실에 순응하며 행동에 개입하고

변화를 가능한 구체화한다는 뜻이다. 놓아주기와 머무르기의 원칙도 이와 마찬가지다. 놓아준다는

것은 '변한 여건에 적응하기 위해 과거로 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행동이며', 머무른다는 것은 '새로운

상황에 필요하고 가능한 일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적응력'의 또 다른 개념은

'변화 관리(Change Management)'로 주로 조직 내 변화 과정을 가르키는 말인데 변하는 조건에

대응하고 목표 및 접근 방식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기본적 변화 과정에서는 '사건',

'저항', '혼돈', '해결 중심적 사고', '융합'의 단계를 거치는데 저자는 변화에 시간이 필요함을 인식해

여기에 '시간'이라는 단계를 더한다.

​

사회적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저자는 심지어 무너진다고 표현한다) 숨가쁘게 바뀌는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깊은 절망과 어리석은 행동에 빠지지 않게 도와줄 버팀목이 필요하다. 잠시 휴식을 주고

길을 알려주는 '디딤돌'이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 외에도 빅터 프랭클의 말처럼 '그럼에도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아가자'는 생각도 필요하다. 그가 수용소의 지옥 같은 생활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좌절할 동안에도 꿋꿋하게 버텨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스스로 의미를 찾는 일을

발견하려 했고, 소소한 긍정적 경험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에겐 이것이 디딤돌이었고 버팀목이었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이러한 공감이 우리를 버텨 줄 것이고, 디디고 일어설 발판이

되어 줄 것이다. 찰스 다윈의 말이 생각난다. '살아남는 것은 가장 강한 종이나 가장 똑똑한 종이 아닌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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