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켰을까? ㅣ 혁명 시리즈
칼렙 에버레트 지음, 김수진 옮김 / 동아엠앤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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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생존은 쉽지 않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인간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문화 속에

이어져 온 지식이며 이 지식에 우리가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언어라고 말한다. 우리는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 끊임없이 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생활에 필요한 행동양식을

배운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화적으로 구체화한 지식이 축적되는 곳은 공동체이지 구성원

개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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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건이 경과한다'라거나, '흘러간다'라고 표현할 때가 많다. 또한 시간이 '천천히' 또는 '빠르게'

움직인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시간은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고 우리 또한 시간을 통해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의 시간을 생각하는 방식은 문화적이고 언어적인 실천의 문제이다. 인간이

시간을 수량화하고 경험하는 순간에 이미 숫자를 부여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시간은 우리의 경험과

별개로 실제 존재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시와 분 그리고 초는 우리가 사는 아 세상과 정신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시 분 초와 같은 시간 단위는 사실 고대 수 체계의 산물이며 사라진 문명 속 언어의 흔적이다.

이 책에는 선사 시대 숫자, 뼈의 수열, 레봄보 뼈, 자라와라족의 셈법, 손의 동굴, 로지타스톤등의 다양한

수표 기법들이 등장하는데 무척 흥미롭다. 이들의 대부분은 인간의 편리와 유용성이 전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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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를 표현하는 재미있는 방법들이 있다. 카리티아나어에서 11은 'myhint yj -piopy oot'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의 발가락 한 개를 가져라'라는 뜻이며, 20진법을 사용한 링컨 대통령은 연설에서 87년 전을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라고 사용했고, 맘부어의 경우 20보다 큰 수량을 나타내는 단어들을 'judo

ngburu reli'라는 표현을 기본으로 하는데 이는 '한 명의 온전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한 사람의 손가락

10개와 발가락 10개를 의미한다. 수에 대한 개념이 정말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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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끊임없이 '수'와 '숫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책장이 쉽게 넘어 가지 않는다. 흥미로

집어든 책이 공부를 하게 한다. '원숭이 수학'이라 명명되는 실험에서 숫자 기호를 학습한 붉은털

원숭이는 화면에 보여지는 1에서 9까지 숫자를 오름 차순으로 짚었고, 이 숫자로 수량을 가르킬 수도

있었고, 다람쥐 원숭이는 덧셈도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 인간 영장류의 수학적 능력은 '거리효과'

(distance effect)와 '크기효과'(magnitude effect)에서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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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언어의 대부분(전부는 아니다) 존재하는 숫자 단어는 수량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숫자

단어와 계산에 익숙한 사람들만이 대부분 수량을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으며 연산과 수학의 세계를

향한 문도 열수 있다. 숫자 단어는 인류의 이야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간의 정신을 담고 있으며

우리의 인지 능력 뿐 어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경험을 형성해 왔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숫자의

발명을 이끈 원동력은 언어와 문화적 배경 뿐만 아니라, 우리가 늘 관심을 가져왔고, 사용을 위해 특별한

기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두 손의 생물학적 대칭이라는 점을 강조 한다. 의심할 여지 없이 숫자와 셈은

인류의 이야기를 변화시켜 왔고 지금도 변화시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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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 보이는 나를 만드는 법
티젠 오나란 지음, 서유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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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정확히 '넘어지기, 일어나기, 다시 게속하기'를 신조로 가진 저자는 무엇이든 빠르고 쉽게

습득하려는 우리에게 자신은 실전 혹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하나씩 터득했음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남이 정해준 대로 살지 말것과 스스로 정하고 말해야 자기도 자신의 말을 신뢰 할 수

있음을 말하며 일단 결정하면 가야 할 방향이 명확해 진다고 방향성에 대한 충고를 한다. 소셜

미디어는 우리 자신을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하고 포지셔닝한다.

​

온라인은 단지 우리가 가진 여러가지 도구상자 중 하나일 뿐이다. 온라인의 영역은 자연스럽게

오프라인으로 확장된다. 이렇게 확장된 포지셔닝은 시간을 거치면서 자신의 브랜딩이 된다. 이때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내가 보는 나와 다른 사람이 보는 내가 다르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부분 때문에 퍼스널 브랜딩을 정할 때 경험이나 이력, 그동안 한 일 보다 자신의 이름을 듣고

사람들이 맨 먼저 떠올리는 생각, 즉 평판을 중요시 한다. 다른 사람들의 머리 속에 무의식 적으로

인식되어 있는 나, 그것이 진정한 나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만의 고유한 특징은 타고난

재능은 무엇인가, 어떤 특별한 전문 지식이나 능력이 있는가, 무엇에 열정적인 관심을 쏟고 있는가의

질문을 통해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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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딩과 정치인의 연설은 묘한 공통점을 가진다. 상대방에게 자신을 인식 시키고, 타인으로

하여금 나의 생각에 동조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이 '반복'이다. 정치인들이

연설에서 매번 똑 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것도 이 때문이다. 적어도 열한 번 이상 들어야 각인된다.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지하듯이 달라이 라마는 몇 년째 똑같은 주제, 똑 같은

내용으로 강연을 하지만 아무도 지루해 하지 않는다. 혹 반복이 지루해진다면 타겟 집단을 확대해야

할 때이든지, 다른 주제를 더 개발할 때이든지, 반복과 다양화를 통해 더욱 꺼리가 다양해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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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특별한 점을 찾을 때 반드시 생각해야 할 부분이 세가지 있다. 별 어려움 없이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을 말하는 타고난 재능과 이력서에 넣을 지금까지의 특별한 성과를 의미하는 능력, 다양한 사고

실험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을 뜻하는 관심사다. 하루 아침에 뚝딱하고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고유한 시각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

공감은 디지털 시대의 핵심 능력이다.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이해하는 능력은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잘 파악하기 때문에 어떤 톤으로

커뮤니케이션 해야 가장 적절한지 쉽게 찾는다. 상대에게 공감한다는 것이 자신의 가치관을 포기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서로 다른 사회화 과정을 겪은 사람들이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데

공감 능력은 이것을 가능케해준다.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교류가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단 공감 능력은 얼마든지 배울 수도 퇴화 할 수도 있는 탄력적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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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누구나 변화를 두려워 한다. 아니 두려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첫걸음이 중요하다. 일단 한발을

내딛으면 그 다음은 조금 수월하다. 이때 뒤에 남겨진 것에 너무 오래 매달리지 않아야 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일 뿐이다. 변화는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간이 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다. 퍼스널 브랜딩은 결국 자신을 상대에게 충분히 각인시켜 얻고자 하는 것을 얻는 방법이다.

스토리텔링과 브랜딩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하는 중요한 열쇠다. 저자는 이 두가지가 성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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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과 21세기 - 영실평원의 독사들
김상태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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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은 시점 자체가 승자의 시각과 승자의 편의에 의해

쓰여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맹점은 기술상의 오류로 명백히 드러난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역모와 의거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다르게 표현하는 것만 봐도 역사가 얼마나 주관적 서술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이 책은 거칠고 규모가 크다'라는 표현을 써서 역사의 맹점을

말하며 '누구에게나 개방된 것처럼 보이는 고조선은 그 주변에 독사들이 엎드려 위장한, 가짜

평원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봉우리와 같다. 그곳은 아무나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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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공부는 어렵거나 애매해서 읽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읽는다해도 극단적인 견해차가

난무하다. 우리 대부분은 고조선을 모르고 산다. 단지 그뿐으로 그렇다고 별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 끔찍한 공존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상황을 이야기 하는 저자는 한라산 영실코스

1500고지 쯤에서 만나는 '선작지왓'이라 불리는 완사면을 예로 들며 고조선에 대해 설명한다.

평탄하고 평화로운 대지처럼 보이나 이 평원은 잔디밭이 아니라 키가 작지만 가시가 달린 잡목으로

끝없이 덮여 있어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낫과 괭이를 들고 목숨을 걸고 한 걸음씩

잡목을 헤치며 가겠다고 작정하지 않는 한 그 평원의 1km도 못가서 오도 가도 못한 채, 찢어지고

긁힌 상처투성이로 굶어 죽어야 하는 곳이다. 고조선이 딱 그렇다. '고조선을 얼마나 아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모른다'는 것이자 '앞으로도 영영 모를 것이다'이다. 고조선은 '죽음의 땅'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북경삼걸. 신채호, 이회영, 김창숙 삼인을 일컫는 말인데 사실 신채호를 제외하면 조금 생소하다.

그럼에도 1920년대 북경에서는 전설에 가까웠다. 이들은 정신과 행동과 풍모부터 남달랐고, 철저히

비타협적이며, 어느것에도 굴하지 않았고, 정도가 아니면 눈길 조차도 주지 않았으며, 어떤 고문도

그들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최고의 지성을 지녔으며 누구보다 온화하고 올바른

사람들이었지만 한 점의 오염이나 비굴도 용서하지 않았던 이들이다. 일설에 의하면 백범 김구가

유일하게 두려워했던 인물이 '김창숙'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독립 운동사의 오욕 속에서 기꺼이

그 오욕들과 함께 했으며 그러면서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 오욕에 물들지 않았다. 대한민국

대고조선사의 기틀을 세우고 비조를 만든 이가 바로 서서 세수를 하고, 환영식의 답사를 일어나서

청중을 향한 형형한 눈빛으로 대신하고, 신문 기고로 고달픈 생계를 이어가던 시절 중국인 신문

편집자가 어조사 한 글자를 임의로 삭제했다는 이유로 기고를 중단하고, '조선 사색 당쟁사'와

'육가야사' 만은 조선에서 내가 아니면 능히 정곡한 저작을 못할것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폼생폼사'

북경삼걸의 일인인 신채호다.

저자는 신채호 이후 100여년에 걸친 피와 죽음의 고조선 연구사는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가 출간된

1994년에 대고조선의 완승으로 끝났다고 말한다. 역사가의 임무는 사실 자체를 밝히는 것과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다. 사실 없는 해석 그것은 역사가 아니다. 물론 지금은 수많은 이유와 억압으로

그 진실이 지하속에 유폐되어 있다. 한국과 일본, 중국과 미국이 얽혀 있는 정치 경제 군사는 물론

독도와 동해 표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정치 외교적 문제임에도 말이다. 서로 눈치를 보며 눈 질끈

감고 애써 모른척 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역사는 도도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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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사 - 조선의 독립운동가, 그녀를 기억하다
권비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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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본명인 김란사보다 당시 선각적인 사고를 가졌던 여성들이 남편의 성씨를 따랐던 것과

자산을 나이 많은 이의 후처로 넘겨버린 아버지에 대한 반항, 그리고 자신을 지극하게 아끼는

남편에 대한 마음에서 남편의 성씨를 따라 '하란사'로 불렸던 신여성이자 최초의 여자

유학생이었던 그녀는 덕혜옹주의 오라버니인 의친왕과 함께 조선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사실 '란사'라는 이름도 본명이 아니다. 이화학당에서 만난 선교사가

낸시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한문으로 바꿔 '란사'라고 했고 본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덕혜옹주의 권비영 작가는 이 인물 하란사를 이화학당 친구인 화영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이다. 내 생각은 그곳에 있다'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란사는 자주적인 사고를 가졌다. 생각의 폭이 넓고 깊어 대중 연설을 하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특별히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적극 독려했을 정도로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다.

빼앗긴 나라의 국민으로 살지만 의기와 희망은 하늘같이 높고 강해 위협 앞에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길을 걸었던 그녀의 삶은 '장부의 삶'이었다.

​

이 책은 소위 '무명'의 사람들과 당시 유학생들의 모습이 묘한 대립을 보이며 비춰진다. 빼앗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생명 마저도 초개와 같이 던지는 기생들과 민초들이 있는가 하면, 선택 받은 자들의

오만함과 거만함, 시대적 상황이 낳은 패배주의적 감성들은 서로의 위치와 역할에서 동떨어진 '그들만의

세상'을 보여준다. 간절함과 절박감을 가진 이들과 누리고 즐기는데 익숙해 다른 이들이 눈에 들어 오지

않는 그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것이 없는 것 같아 씁쓸함 마저 든다. 이곳에 나오는 기생들의

만세운동은 영화 덕혜옹주에도 나온다.

​

그런가하면 참 대단한 인물이 한 명 있다. 란사의 남편인 '하상기'다. '사람이 다 생김새가 다르듯 나라를

위해 해야할 일도 다를 것이오. 당신처럼 총명하고 바지런한 사람은 쓰임이 다른 이들의 몇배 몇십배는

많을 것이오. 부디 공부를 열심히 하여 이 나라를 위해 일해 주시오'라고 말하며 유학을 권하는 하상기의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선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며 결단이었다. 자신의 부인을

이화학당에 보내 신문물을 배우게 하는 것도 쉬운 결정이 아닌데 유학이라니. 어쩌면 그는 란사를

남편보다는 친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였을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 만큼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시대적 상황 속에서 여자 혼자 유학이라니 하는 미심쩍은 부분이 생겼으나 그는

끝까지 란사와의 의리를 지킨다. 란사의 돌발적인 행동들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특히나 그녀의

마음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의리를 지키고 죽은 란사의 흔적을 찾다 죽음을

맞이하는 하상기의 모습을 보며 진한 감동과 여운이 생겼다. 꽤 괜찮은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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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조선 정조 때 나라의 부흥과 민초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을 몸으로 펼쳤던 빙허각

이씨(학자들이 뽑은 한중일 실학자 99인 중 유일하게 여성 실학자. 규합총서등의 저자. 실학자 서유구의

형수이자 스승. 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곽미경, 자연경실)가 생각났다. 그녀도 남편과 시동생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마음껏 의기를 펼쳤으며 남편이 죽은 후 많은 유혹 앞에 끝까지 '의리'를 지켰던

인물이다. 빙허각 이씨와 하란사, 그리고 두 사람의 남편과 남자들, 두 여인을 가까이 한 왕실의 인물들

묘하게 두 책이 하나인듯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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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픽션과 논픽션이 적절히 섞여 있는 소설이다. 란사가 조선 최초의 여자 유학생이자 미국 학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인물이고 이화학당 사감시절 유관순을 만났고 미주 순회 강연에서 모금한 돈으로

정동제일교회에 최초로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1918)한 인물이라는 것은 분명 팩트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캄캄한 밤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막막했을것 같다. 남겨진 자료가

거의 없기에 작가적 상상력에 매달려야 하는데 하란사가 실존 인물이기에 최대한 사실에 입각한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과 고충이 '캄캄한 밤길'이라는 단어에 여실히 드러난다. 훌륭히 그 길을 걸은 작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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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유가 있습니다 : 거룩을 키우시는 하나님의 훈련 - 사무엘상 3 ㅣ 김양재 목사의 큐티강해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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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P89

홀로서기도 오직 하나님의 힘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P188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라는 질문은 삶을 살아가는한 끊이지 않을 질문이며 시련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앞에 우리의 믿음은 여지없이 흔들리고 무너진다. 대체로 우리의 믿음은

상황을 뛰어 넘어 계시는 그 분을 보지 못한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그 일로 죽을 것

같은 그 순간이 하나님과 교제할 가장 좋은 시간이라는 것과 그 고난 속에서 외로움을 경험해

보지 못하면 결코 주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도 이해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훈련이 안된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상황은 난공불락일 경우가 많다. 이런 우리에게 저자는

'하나님의 이유'라는 단어로 도전한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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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싸울 수 없으리니'(삼상 17:33) 현실은 우리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학벌이, 배경이, 물질이, 심지어

인물이..... 골리앗 앞에 서는 다윗에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어리고, 너는 힘도 없고, 너는

능력도 없으니 '너는 이기지 못할거야'.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말하는 이들은 적군이 아니라

우리편이다. 삶에서도 그렇다. 의지를 꺾고, 의욕을 잃게 하고, 힘이 빠지게 만드는 이들의 대부분은

주변 사람들 그것도 아주 가까운 이들이다. 이때 다윗의 반응이 참 멋지다. '사자의 발톱과 곰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현실적으로 두려워했고 공포를 느낀 그 순간에도 건져내신 분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실것이라고 담대히 말한다. 여기에서 다윗의 관점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이길수 있었고, 하나님이 도우셨기에 물리칠 수 있었고, 하나님이 건지셨기에 지금껏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없다. 오직 하나님만 드러난다. 저자는 이와 같은 다윗의 고백을

'지질하게 (사실 찌질함이 훨씬 맛이 난다)두려움에 떨었던 이야기'라고 말한다. 간증은 이 지질함 속에

함께 하시고 건져 내시는 그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경험은 설득력을 가진다. '무턱대고'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힘이고 능력이다.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삼상18:3) 생명같이 사랑했다는 말은 세상에서 이 보다 더 사랑한 이가 없다는

것이다. 사랑은 학문도 아니고, 이론도 아니고, 경험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실체도 아니다. 말로만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생명같이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참 사랑은 내가 대신 죽는 것이다. '죽을 만큼'이 아니라 '죽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죽기까지 사랑하셨고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다.(롬5:8) 이 시대는

이런 사랑에 목말라 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의 전달자들 이어야한다. 세상의 근심거리가 아니라 세상을

근심하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20210723_145831.jpg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운동을 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힘 빼'라는 말이다. 잔뜩 힘이 들어가면 뭔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것

같으나 정작 몸이 굳어서 오히려 움직임이 둔해지고 힘도 제대로 쓸 수 없다. 다윗이 그랬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잔뜩 들어간 힘을 빼길 원하셨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된' 그 때 도망자로 만드신다.

사울의 힘으로, 미갈의 힘으로, 요나단의 힘으로 왕이 되기를 원치 않으셨다.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길 바라시며 그를 도망자로 만드셨다. 우리의 삶에도 이렇게 개입하신다. 조금 더

당신을 향해 다가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광야로 내모시기도 하고 절벽 끝으로 데려 가시기도 한다. 이때

광야는 인내를 배우는 학교가 되고 절벽은 날을 수 있음을 발견하는 뜻밖의 장소가 된다. 다윗에게 그렇게

하신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신다.

세상은 두려움과 환난의 연속이다. 그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윗은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여전히 사울과 아기스의 위협과 블레셋의 침략이 존재함에도

다윗은 건지시는 하나님을 찾는다. 다윗은 형들의 질시와 아버지의 무시, 사울의 살해 위협, 광야 길에서의

가난과 배고픔, 사람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자신을 건지시는 하나님을 높인다. 바른 신앙이

이런것이 아닐까 싶다. 상황을 이기는 신앙, 현실을 뛰어 넘는 믿음, 두려움을 견디는 소망들이 모아져

오롯이 하나님 만을 바라 보는 것, 이것이 신앙이다.

이 책은 신앙의 위기 가운데 있는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다윗에게 험께 하셨던 그 하나님이 지금 이순간

나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광야가 축복의

장소로 변하는 은혜를 누리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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