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수 없으리니'(삼상 17:33) 현실은 우리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학벌이, 배경이, 물질이, 심지어
인물이..... 골리앗 앞에 서는 다윗에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어리고, 너는 힘도 없고, 너는
능력도 없으니 '너는 이기지 못할거야'.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말하는 이들은 적군이 아니라
우리편이다. 삶에서도 그렇다. 의지를 꺾고, 의욕을 잃게 하고, 힘이 빠지게 만드는 이들의 대부분은
주변 사람들 그것도 아주 가까운 이들이다. 이때 다윗의 반응이 참 멋지다. '사자의 발톱과 곰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현실적으로 두려워했고 공포를 느낀 그 순간에도 건져내신 분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실것이라고 담대히 말한다. 여기에서 다윗의 관점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이길수 있었고, 하나님이 도우셨기에 물리칠 수 있었고, 하나님이 건지셨기에 지금껏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없다. 오직 하나님만 드러난다. 저자는 이와 같은 다윗의 고백을
'지질하게 (사실 찌질함이 훨씬 맛이 난다)두려움에 떨었던 이야기'라고 말한다. 간증은 이 지질함 속에
함께 하시고 건져 내시는 그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경험은 설득력을 가진다. '무턱대고'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힘이고 능력이다.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삼상18:3) 생명같이 사랑했다는 말은 세상에서 이 보다 더 사랑한 이가 없다는
것이다. 사랑은 학문도 아니고, 이론도 아니고, 경험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실체도 아니다. 말로만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생명같이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참 사랑은 내가 대신 죽는 것이다. '죽을 만큼'이 아니라 '죽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죽기까지 사랑하셨고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다.(롬5:8) 이 시대는
이런 사랑에 목말라 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의 전달자들 이어야한다. 세상의 근심거리가 아니라 세상을
근심하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