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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과 21세기 - 영실평원의 독사들
김상태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1년 7월
평점 :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은 시점 자체가 승자의 시각과 승자의 편의에 의해
쓰여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맹점은 기술상의 오류로 명백히 드러난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역모와 의거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다르게 표현하는 것만 봐도 역사가 얼마나 주관적 서술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이 책은 거칠고 규모가 크다'라는 표현을 써서 역사의 맹점을
말하며 '누구에게나 개방된 것처럼 보이는 고조선은 그 주변에 독사들이 엎드려 위장한, 가짜
평원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봉우리와 같다. 그곳은 아무나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고조선 공부는 어렵거나 애매해서 읽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읽는다해도 극단적인 견해차가
난무하다. 우리 대부분은 고조선을 모르고 산다. 단지 그뿐으로 그렇다고 별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 끔찍한 공존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상황을 이야기 하는 저자는 한라산 영실코스
1500고지 쯤에서 만나는 '선작지왓'이라 불리는 완사면을 예로 들며 고조선에 대해 설명한다.
평탄하고 평화로운 대지처럼 보이나 이 평원은 잔디밭이 아니라 키가 작지만 가시가 달린 잡목으로
끝없이 덮여 있어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낫과 괭이를 들고 목숨을 걸고 한 걸음씩
잡목을 헤치며 가겠다고 작정하지 않는 한 그 평원의 1km도 못가서 오도 가도 못한 채, 찢어지고
긁힌 상처투성이로 굶어 죽어야 하는 곳이다. 고조선이 딱 그렇다. '고조선을 얼마나 아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모른다'는 것이자 '앞으로도 영영 모를 것이다'이다. 고조선은 '죽음의 땅'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북경삼걸. 신채호, 이회영, 김창숙 삼인을 일컫는 말인데 사실 신채호를 제외하면 조금 생소하다.
그럼에도 1920년대 북경에서는 전설에 가까웠다. 이들은 정신과 행동과 풍모부터 남달랐고, 철저히
비타협적이며, 어느것에도 굴하지 않았고, 정도가 아니면 눈길 조차도 주지 않았으며, 어떤 고문도
그들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최고의 지성을 지녔으며 누구보다 온화하고 올바른
사람들이었지만 한 점의 오염이나 비굴도 용서하지 않았던 이들이다. 일설에 의하면 백범 김구가
유일하게 두려워했던 인물이 '김창숙'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독립 운동사의 오욕 속에서 기꺼이
그 오욕들과 함께 했으며 그러면서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 오욕에 물들지 않았다. 대한민국
대고조선사의 기틀을 세우고 비조를 만든 이가 바로 서서 세수를 하고, 환영식의 답사를 일어나서
청중을 향한 형형한 눈빛으로 대신하고, 신문 기고로 고달픈 생계를 이어가던 시절 중국인 신문
편집자가 어조사 한 글자를 임의로 삭제했다는 이유로 기고를 중단하고, '조선 사색 당쟁사'와
'육가야사' 만은 조선에서 내가 아니면 능히 정곡한 저작을 못할것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폼생폼사'
북경삼걸의 일인인 신채호다.
저자는 신채호 이후 100여년에 걸친 피와 죽음의 고조선 연구사는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가 출간된
1994년에 대고조선의 완승으로 끝났다고 말한다. 역사가의 임무는 사실 자체를 밝히는 것과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다. 사실 없는 해석 그것은 역사가 아니다. 물론 지금은 수많은 이유와 억압으로
그 진실이 지하속에 유폐되어 있다. 한국과 일본, 중국과 미국이 얽혀 있는 정치 경제 군사는 물론
독도와 동해 표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정치 외교적 문제임에도 말이다. 서로 눈치를 보며 눈 질끈
감고 애써 모른척 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역사는 도도히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