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는 심리학 - 복잡한 내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마음의 법칙
장근영 지음 / 빅피시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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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픔도 체면이 있고 자존심이 있다. 출판사 리뷰의 젓 문장이다.

누구나 자존심과 체면 정도는 가지고 있고 지키고 싶어하는

마지노선 과도 같다. 결국 아픔을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의 문제이다.

일부러 과장 할 필요도 일부러 축소할 필요도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의 정직한 자세가 좋은 삶의 태도이다.


인생이라는 여정에 아픔은 피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함께 가야할

동반자이다. 하나의 아픔을 겨우 이겨 냈다 싶으면 저 멀리서 또

다른 아픔이 스믈스믈 일어나 걸어 온다. 서핑이 그렇다. 다가오는

파도를 넘었다 싶으면 이내 다른 파도가 덮친다. 파도를 타고 넘는

것처럼 아픔 역시 지나가면 그만인 것인데 우린 그 아픔에 너무

많이 침잠되어 산다. 저자는 아픔을 '나의 영혼을 노크하는 천사의

부름'이라고 부르며 아픔을 가려주는 어두운 곳은 습한 동굴 안에서

과감하게 나오라고 조언한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라는 챕터와 사랑은 섹스가

될 수 있지만 섹스는 사랑이 될 수 없다는 챕터는 이 시대의 사랑에

대해 지적하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준다. 정신분석학

적으로 '엄마 찾아 삼만리'였던 희대의 바람둥이 돈 주앙의 이야기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모성성의 의존도에 따른 행동의 다양화를 보여

준다.


삶에 명확한 답은 없다. 대부분 각자의 선택에 의미를 두며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내면의 성숙함과 인식이 필요한 이유이다.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이해히고 인정하고 그것을 통한 또 다른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면 지금 보다 나은 미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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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화 잡학사전 통조림
드림프로젝트 지음, 이강훈 그림, 김수경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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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89가지의 이야기와 명화. 이쯤되면 잡학사전이라는 단어가 충분히

이해 된다. 잡학사전이라는 이름은 들어 봤지만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 기대반 설렘 반으로 책을 열었고 이내 왜 이 시리즈가

인기가 있고 재미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작가들이 자신의 그림

속에 숨겨 놓은 비밀들을 찾고 발견하는 묘미는누군가의 말처럼

'해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재미이다.


저자의 글은 첫 장부터 강렬하다. 그동안 수 없이 많은 논란을 제공

했던 농부 부부가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아들을 땅에

묻기 전 슬퍼하는 것이라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주장에

대한 부연 설명이라든지, 마네의 그림 한장으로 프랑스 사회를 발칵

뒤짚어 놓은 사건이라든지,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에 담긴 의미, 에곤

실레와 히틀러의 인생 여정의 싱크로율이 거의 백퍼센트에 가깝다는

등 기존에 가진 통념의 차원을 넘어서는 종교, 철학, 세계사와 신학에

이르는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가득하다. 단순히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의미와 역사적 배경, 철학적 사유등을

다룬다. 여기에 시대 배경과 종교 사회성등 작품을 둘러싼 배경을

풍부하게 알려준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는 말이 있다.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선은 작품을 바라 봄에 있어서도 가능성과 여지르 남겨 놓아

정답이 아닌 그럴수도 있는 것을 상상하고 생각하게 한다. 예술사적

으로만 평가하지 않고 적절한 에피소드가 섞여 있고 보편화된 관점이

아닌 새로운 시선과 해석을 제시해 일반인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폭넓게 보고 읽고 해석하는 경험의 확장을 가져 온다.


이밖에도 옷을 입은 마하와 옷을 벗은 마하의 두 작품이 그의 실제

연인이었던 알바 공작 부인이었다는 설과 설마 자신의 애인의

누드화를 그렸겠냐는 설명은 사실 지금도 논란의 거리이기도 하다.

실제 그녀가 마하와 닮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책 속에 가득한

명화들과 그 배경 이야기들은 휴가 기간에 좀 더 깊이 있게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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탓 - 책임 전가와 피해의식을 끊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다, 2025년 개정판
데이비드 A. 씨맨즈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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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억 속 '만약'은 대부분 부정적이나 막연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읊조림으로 치부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상황을 '탓'이라는

주제로 풀어내며 만약과 만약 사이 그리고 피해자와 피해 의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 탓 하기에 바쁜 우리에게 던지는 저자의 고언은

깊은 울림이 있다.


유행이다. 권력자로부터 민초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남 탓'이다.

심지어 목회자들마저도 '탓의 열병'에 빠져 있다. 심지어 하나님 탓

마저도 서슴없이 한다. 살다 보면 참으로 많은 탓을 하게 된다.

사전의 풀이에서 보듯 ‘탓(주로 부정적인 현상이 생겨난 까닭이나

원인, 구실이나 핑계로 삼아 원망하거나 나무라는 일)’은 상당히

부정의 의미를 갖고 있다. 어찌 보면 자기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고

핑계 대는 일과 비슷하다.


저자는 성경 속 수 많은 억울한 피해자들을 예로 들며 그들에게

피해자 의식(victimization)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꼬집는다.

자신에 의해 일어나지도 혹은 자신이 선택하지도그 상황을 어찌

할 수도 없었고 심지어 자신이 책임질 이유 조차도 없었지만

그들은 피해의식은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실 처음 이 책을

접하면서 피해 의식에 대한 개념이 정확히 잡히지 않아 잠시 길을

잃었었다. 저자는 피해의식을 정확히 '탓'과 연결하여 성경 속

인물들이 과거에 대한 집착과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믿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그 선택은 여전히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을 만큼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서

혼돈과 갈등을 겪고 있다. 온 사회에 만연된 너나 없는 ‘네 탓’ 풍조는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지역사회,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잘못은 오로지 ‘너 때문이야’ 라는 ‘네 탓 타령’으로

일관되고 있는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 던지는

저자의 소리는 묵직하다. 거듭나면 최고 선으로 바라보는 대상만

아니라 그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까지도 달라진다는 팀 켈러의 말이

무색하리만치 우리는 '탓'을 한다. 저자는 믿기만 한다면의 챕터를

통해 어김없이 우리의 믿음 없음을 질타한다.


아주 오래전 김수환 추기경이 타던 승용차 뒷 유리에 붙어 있던 '내

탓이오' 스티커가 생각난다. 그 당시 우리는 '아 결국 저걸 보고 있는

우리 탓이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우리 목회자들이

먼저 읽었으면 한다. 먼저 일고 생각하고 스스로의 행동들을 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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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
리프레시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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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의 본질과 비움의 이치를 알게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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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
리프레시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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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간을 욕망의 동물이라고도 한다. 욕망은 인간을 성장시키는 도구이기도

하나 동시에 망가뜨리기도 한다. 인간의 본성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욕망은 사람을 미치게도 만든다. 그런데 이 욕망의 근원이 칭찬이라는

것이다. 칭찬 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주목 받고 싶고, 잘나 보이고

싶고 이런 생각의 파편들이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덜어낼수록 삶은 깊어진다’는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바탕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과 마주하게 한다. 사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최고의 선이라는 단편적인 지식으로 알고 있는데

그가 말한 쾌락주의는 단순히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와 마음의 평정심(아타락시아, ataraxia)을 목표로 한다. 그는

쾌락을 '신체적 고통이 없고 정신적 불안이 없는 상태'로 정의하며, 이를

위해 정신적이고 지속적인 쾌락을 주장한다. 쾌락을 단순히 억제하고

참는 것이 아니라 나에개 필요한 그것을 골라 내는 능력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흥미롭다.


삶의 본질은 단순하다. 그 단순함은 평범에서 나오고 평범은 삶의 일상에

존재한다. 뜨거운 여름날의 냉수 한 잔, 지인과의 친밀한 대화, 자연스럽게

베어 있는 일상의 루틴등 지극히 작고 평범함 안에 존재하는 자신의

욕망을 다룰 줄 아는 능력에서 기인한다. 여기에 선행되는 '비움'은 물질적

바움을 넘어서 삶의 재구성의 수준에까지 미친다. 책의 말미에 수록된

'에피쿠로스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철학 대담'은 가상이지만 버림과

내려 놓음으로서의 삶의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던져주는 의미가 묵직하다.

자연스레 법정 스님이 떠올랐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는 가짐에 대한 무소유라기 보다는 집착과 움켜쥠에

대한 무소유를 의미한다. 물질의 창고가 아닌 마음의 창고의 비움, 즉

무소유를 말한다. 즉 무소유는 모든 것을 내려 놓는 것도 모든것을 포기하는

것도 아닌 움켜쥔 그것에 힘을 풀고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사람이란 사이와

사이가 흘러가는곳에 머무는 순간의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점에서

에피쿠로스의 비움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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