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 불완전한 삶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
김경진 지음 / 두란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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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임하십니다. P137


사람은 누구나 완벽을 추구한다. 입으로는 '너무 딱딱하고 인간미가 없다' 말하지만 정작 우리는

어느정도 '완벽중독' 빠져있다. 그런 우리에게 '불완전한 ' 이야기하며 '있는 모습 그대로'

전하는 전하는 저자의 글은 반갑다. 곽선희, 김지철 목사님의 뒤를 이은 소망교회 3 목사라는

점보다 그가 예배설교학자라는 점에서 그가 말하는 '불완전함' 의미가 기대된다. 

누구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께 실망할때가 있다. 이때 중요한것은 우리의 반응이다. 성경에 나오는

나사로의 죽음에 대한 마리아와 마르다의 모습처럼 우리의 모습도 분명 갈릴것이다. 오라비 나사로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동일하게 실망하고 아쉽지만 그래도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마르다와 여전히 절망의 자리에서 낙담하며 머무르는 마리아. 둘의 모습에서 세상과

님과의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방황하는 우리의 현실을 본다.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어려움은

자에게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특별히 가족의 죽음은 상실감과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데

이때 우리의 시선이 중요하다. 쉽지는 않겠지만 무엇을 보며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혼자뿐만 아니라

개인의 미래 역시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마르다는 절망의 순간 주님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다시금

희망을 떠올린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필요하다. 바라보는 만큼 꿈꿀 있고 꿈꾸는 만큼 이룰수

있다. 무엇을 바라보며 무엇에 집중하느냐는 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한다. 

저자는 우리의 무분별하고 무지한 '성령받기' 대해 경고하며 '성령 임재의 다양성' 대해 이야기 한다.

성령은 선물이다. 그런데 선물을 자신이 받고 싶은 것으로 받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러다 보니

성령의 다양성에 대해 인정하려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만으로 제한하려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각기 다른 모양으로, 다른 육체로, 다른 속성으로 만드셨기에 어떤이는 극적이고 열광적인 체험을 통해

성령을 허락하시기도 하지만 어떤이에게는 조용하고 잔잔하게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을 경험하게

하신다. 어느것이 정답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자신의 기질과 성향에 따라 성령을 받아 들일

있도록 인도하신다. 


성경은 성령 임재의 다양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마가복음에서의 성령 임재는 예수님을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한 음성을 듣는 것으로 시작하고(1:9-10), 사도행전에서는 성령 받은 사람들이

방언하며 소리치며 밖으로 나가는 모습으로 나타낸다.( 2-3) 곳에서는 '증언'으로 곳에서는

'들음'으로 성령 임재가 나타난다. 들음으로 주님을 만나고 체험한 사람들이 있다. 바울이 그러했고,

어거스틴이 그러했고, 마틴 루터가 그러했다. 그들에게 성령의 임재는 들음에서 시작했다. 


우리는 종종 광야에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다. 광야에서 우리는 배고프고, 지치고, 힘이 빠져있다.

그리고 이상 자신의 능력을 의지할 없다고 선언하며 주를 바라 , 바로 그때 함께하시며 일하시는

성령님을 발견하게 된다. 그곳에 성령이 계신다. 하나님의 성령은 강력한 능력이나, 강력한 소리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마가의 다닥방에서만, 예배 현장에서만, 뜨거운 찬양 가운데만 임재하는 성령이

아니라 힘들게 살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자리에, 사탄이 우리를

넘어 뜨리려고 하는 그곳에도 성령이 함께 계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 우리의 영의 눈을 열어 일하시는

그리고 함께하시는 분을 보아야 것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완전 수는 없다. 당대 의인이었던 노아(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의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6:9) 역시 그랬다. 세상을 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모든 인류가 죽어도

살아 남아야 사람으로 하나님이 의해 선택 노아. 그는 당대에 하나님의 마음에 만큼 경건한

의인이었고 하나님의 기대에 맞게 사람들이 조롱하는데도 불구하고 산에서 방주를 그것도 무려

120여년 동안 만들었을 만큼 신실한 인물이었다. 그런 노아가 홍수 이후 성경에 드러나는 모습은

'노아는 농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포도주를 잔뜩 마시고는 하체를 드러낸채 잠이 들었다' 이야기 뿐이다.

성경은 노아와 같은 위대한 인물, 의인이며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자 당대의 완전한 자였던 노아에게도

실수가 있었다는 것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인간은 여전히 완전할 없는 존재이고 실수하는 존재이다.

완전한 사람도 완전한 공동체도 없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언젠가는' 불완전한 존재가 되고 만다.

실수 하는 인간, 허물 많은 인간, 속에 빠져 있는 인간,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문제는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내탓이요'하면서 상대방을 가르키는 오만함이 아니라 눈물로 마음으로 무릎으로

받아들이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만약 우리가 모두 완전한 사람들이라면 예수는 이상 필요 없는 존재가

된다. 우리의 추하고 부족한 모습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고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덮는 구원의 역사를 감당하셨다. 분은 우리의 수치를 덮어 주시며 여전히 우리에게로 향하신다.

 

책은 '완벽'이라는 허상을 쫓느라 심신이 모두 지쳐있는 우리 청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도 없고 완벽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세상을 향했던 시선이

주님에게로 집중되는 삶을 살아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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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페이지 예술가의 일기장 1
서자현 지음 / 작가와비평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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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앓이' 경험한 중년 작가라는 구절이 자꾸 눈에 밟힌다. 중년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예사롭지 않다. 무언가 책임져야하고 무언가 앞장서야하며 결정적으로 자신에게 부여된 것들에

허덕이며 겨우겨우 버티기에 돌입한 안타까운 인생을 총칭하는 듯한 '중년'


'쉬운건 없다. 다만 피곤할 '

세상사 쉬운게 어디있을까? 어느것 하나 쉽지 않고 어느것 하나 만만한게 없는 것이 인생인데 늦은

나이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보이며 도전하는 저자의 모습은 보기 좋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적기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실상 이론 속의 말일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늦었다고

생각하면 이미 늦은 것이 현실인 상황 앞에 저자는 자신의 꿈을 향해 묵묵히 걸음을 옮기며 힘이

되어주는 옆지기, 지인, 가족들에게 책을 통해 감사를 전한다. 


저자는 반복의 지루함과 처절함을 말한다. 어쩌면 대부분 중년의 그들 모두의 마음일수도 있다.

몇십년을 반복해온 일상의 지루함, 거기서 오는 회의와 매너리즘, 권태, 우울등은 '중년의 위기'

가져오고 많은 중년들에게 아픔을 준다. 그런면에서 저자의 도전과 열정은 부러울 뿐이다. 

물론 우리에게 행복만 있지는 않다. 불안한 시대, 불안한 생각, 불안한 외로움으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의 불안은 어느 누구도 피해갈수 없는 현실이고 인생이고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밑까지

쫓아와 우리를 압박하고 짖누른다. 그럼에도 중년은 해야 하는 것들과 피곤함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민한다. 중년은 '관계맺기' 서툴다. 아니 소극적이다. 그만큼 살아왔기에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감정의 골과 이해의 폭을 동시에 가지기에 마주함이 쉽지 않고 그저 머뭇거린다. 머뭇거림으로 기회를

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극적이고 미온적이다. 이해하는 깊이에 따라 관계도

결정되는 것임을 알지만 이해함에도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머뭇거린다. 가치라는 것은 고통스러움이

따르기에 그만큼 귀하고 어렵다. 그래서 중년은 관계맺기에 서툴다. 


아티스트에게 일상의 기록은 그리는 뿐만 아니라 내리는 모든 기록이 하루의 창작이고 여기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책의 제목인 '163페이지' 성장이 멈춘 저자의 키인 163cm 다양한

자신의 삶이 녹아 있는 163 간의 기록을 적어 놓은 것들이다. 변하지 않는 키의 상징성은 인간 육체의

한계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렇게 벗어나려고 애썼던 사회적 틀과 여러가지 모양과 속에 존재하는

견고한 자아이다. 그리고 자아를 둘러싼 여러 상황들 속에 가족의 사랑을 깨닫고 적어가는 저자의

기록이며 종교적 섬세함의 표현이다. 그런 그의 종교적 결론은 이것이다. '사랑 없을 때도,

사랑할 대상이 아닐때도 더욱 사랑해야 하는 '


어쩌면 저자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면 묵묵히 자기 길을 걷고 있는 것이며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숙제이지만 어떻게든 풀어 보려 애쓰고 매달리는 것이다. 그런 그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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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은 왜 가난한가 - 불평등에 분노하는 밀레니얼, 사회주의에 열광하다
헬렌 레이저 지음, 강은지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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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시대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를 지칭하는 말로 정보기술(IT)

능통하고 대학진학률이 월등히 높다는 특징을 가지나 2009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해

고용감소, 일자리 저하등의 어려움을 겪었고 평균 소득이 낮고 대학 학자금 부담을 안고 있고

이러한 경제적 부담 때문에 결혼, 출산, 내집마련을 미루는 경우가 많은 세대이다. 지난 100년을

통틀어 역사상 가장 가난한 세대라고 불린다. 이와 같은 구조적 문제로 인해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에 실증을 느낀 젊은 세대들 사이에 '마르크스' 부각되는 현실 앞에 저자는 '군살이 빠진'

사회주의를 이야기한다. 


어떤 상상도 완벽하지는 않다. 만약 자신들의 사상이나 이념이 완벽하다고 한다면 광신도이거나

이상주의자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본주의는 위대하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마르크스 주의자들도

수많은, 그리고 엄청난 실수들을 저질러 왔다. 그들의 이념에 반하는 행동들을 서슴없이 저지르기도

했고 심지어 그들은 평등을 주장하면서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태연하게 저질렀다. 다만 그들은 '세상이

위대하다'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이보다 열악한 이상주의다. 막연한 이상을

가졌기에 이상을 꿈꾸며 취하느라 앞에 놓인 현실 상황을 외면하거나 혹은 못본척한다. '개인적

책임' 주장하지만 정작 어느 누구도 책임 지려고 하지 않는 불합리한 구조가 자본주의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세상이 위대하다고 떠들며 꿈을 꾼다. '개인의 책임' 대한 마르크스

주의자들의 주장은 '지금 순간 역사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인간 개개인, 그리고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이다. 


사업을 하는 목적은 이윤이다. 선하게 보이는 이들의 동기도 바로 이윤이다. 자본주의는 물질적 부의

추구를 가장 구체적인 동기로 삼고 움직인다. 결과 지구상의 가장 가난한 절반이 가진 것보다 많은

부를 여덟명이 소유하는 아이러니를 만들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마르크스 주의자들의 사업 역시

이윤 추구가 목적이다. 이론상으로 개인의 이익이냐 공공의 이익이냐가 나뉠뿐 실질적인 목적은 이윤의

극대화이다. 

책은 마르크스 이론의 가장 중요한 부분만을 골라 우리 시대의 언어로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을 전한다.

대학시절 유독 관심이 가던 분야가 마르크스가 이야기 하는 '소외' 관한 부분인데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생산물에서 소외되었기에 이를 소유할 없고, 우리는 우리가

생산하는 것들의 생산양식에 개입하거나 접근하지 못하므로 이에 소외되었고, 우리는 마르크스가

생산자로서 우리의 '정수'라고 (우리 인간은 만들고, 일하고, 계획하는 것을 좋아한다)으로 부터

소외되었으며, 우리는 우리의 동료들과 물리적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그들을 경쟁 상대로 보아야 하기에

동료 노동자들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결국 이와 같은 소외는 자주적 결정권이 박탈 당하며 집단행동에

대한 기본적 의무 마저 꺽어 버리고 결국 물질에 종속되게 만든다. 그리고 그가 180여년전에 예언한

 '소외' 지금 이순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가열차고 집요하게 적용되고 결국 노동이 노동자의

소외를 만드는 슬픈 현실이 반복된다. 희망은 '#희망'이라는 해시태그를 단다고 찾아 오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의 이야기처럼 우리 스스로를 위한 희망을 생산양식에 넣을 비로소 희망을 기대할 있게

된다. 

저널리스트들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진실은 허상에 불과하다. 현재 자본주의

언론에서 '진실' 가장 가까운 내용은 엄청난 이윤을 논하는 금융란이나 어쩌다 나오는 미담에서나

찾을 있고 이마저도 대부분이 허상이다. 민중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면 그들이 일하는 것을

들여다 보아야 제대로 있는데 그냥 밖에서 대충 살펴보고 글을 써대니 기사가 허상일 밖에 없다.

여전히 소외 받은 이들, 여전히 착취 당하는 이들, 여전히 핍박받고 고통 당하는 이들이 존재함에도 이를

묵인하거나 방조 한다면 저자의 표현처럼 쓰레기이며 악마의 똥구멍을 핥는 용도로나 쓰는게 나은

혓바닥이다. 

저자는 자신을 늙고 실패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말하며 밀레니얼들에게 자신들이 평생을 떠들어도 여전히

'철저한 쓰레기'(우리 자신을 '표현할' 필요성, 우리의 경이롭고 경계를 모르는 유동적인 정체성을 선언할

필요성, 우리의 자존감, 우리의 목소리를 전할 필요성) 대해 전하며 진정한 공산주의는 한번도 시도된

적이 없기 때문에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할 없으므로 밀레니얼들에게 공산주의라는 작은 혼란 속으로

도전 것을 권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99% 당신은 100% 세계를 얻을 있다. 

가서 쟁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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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1%의 기적 - 치열하게 살아온 전여옥의 인생후반전
전여옥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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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가치는 엄청나고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만족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 어쩌면 이것이 가장 삶의 가치일 것이다. 인생의 절반을 지나고 '하프타임'

맞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동일하게 느끼는 감정인 이것은 거의 틀리지 않고 저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같다. 


' 프라이버시는 내가 지켜야 한다'

현실 세상에서 절실하고도 절실한 말이다. 나의 절친이 혹은 누군가가 지켜줄것이라고 생각 하는가.

착각하지마라.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조차도 어느새 등에 비수를

꽂으며 득의한 미소를 짓는 세상에서 프라이버시에 성역은 없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알아도 될만한 것을 제외하고는 프라이버시에 대해 스스로 지켜라'


저자는 직설적이고 논쟁적인 사람이다. 예전 어느 포럼에서 만난 그녀는 저돌적이고 도전적이었다.

자신의 것에 대해 공격 받거나 침해받는 것을 못견뎌하며 오히려 공격적인 어조와 어투로 장면을

넘어가던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어서 포럼을 마친 식사 자리에서 이렇게 물어 보았다. '굉장히

공격적이시네요' 그때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저를 지켜야지요' 그럴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방어기제를 가지며 그것은 결정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무기가 된다. 그때 만난

전여옥과 지금 책으로 만나는 그녀는 많이 다르다. 세월이, 세상이, 사람이 그를 다르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느껴지는 기운이 다르다. 예전의 그가 '날카로운 무언가'였다면 지금 만나는 그는

여전히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으나 여간해서는 드러내지 않는 '감춰진 ' 같다. 그러다 보니 글에

따스함과 인간미가 묻어난다. 그런 그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행복은

멀리 있는 파랑새가 아니었다' 아마도 그녀를 아는 사람에게 말은 낯설것이다. 마치 내일 지구의

끝이 오는 처럼 저돌적이고 직설적이었던 그녀가 인생이 멀고 길다고 말하고, 앞에 보이는

이익과 목적을 위해 거친다고 서슴지 않았던 그가 행복은 멀리 있는 파랑새가 아니고 지금 이곳

소소한 일상 속에 있다고 말한다. 


새상에는 가짜가 많다. 가짜가 많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진짜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딘가에

진짜가 존재하기에 수없이 많은 가짜들이 자리를 엿보며 흉내를 내는 것이다. 그러나 가짜는

어쩔 없이 가짜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가짜들의 진절머리나고 어설픈 행동들을 지적하며 우리에게

묻는다. '내가 세상을 속이는 것은 없나?'


남한테 속고 싶지 않으면 나부터 누군가를 속이지 않으면 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부터

속이지 않는 것이다. 넘쳐나는 가짜들 속에서 진짜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나 만큼의

가치가 있는 삶이기에 저자는 넘쳐나는 가짜로 살지 말고 유일한 진짜로 살라고 조언한다.

 

사람은 역시 변하는가보다. 세월이 흐른 지금 부쩍 많이 유해지고 인간미 넘치는 그녀를 책을

통해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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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이 보이는 회계 이야기 - 회계의 탄생부터 이론, 재무제표 속 회계용어를 한 권으로 읽는다
구상수 지음 / 길벗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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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 어렵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저자는 회계학적 사고를 통해 기업의 재무재표 분석과 삶을

살아가는 경제 생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있다고 말하며 딱딱한 숫자 이야기가 아니고 역사,

인문, 사회를 연결해서 쉽고 익숙한 회계의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 '측정하지 못하면 관리하지 못한다'

말에서 있듯이 기업은 현재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정확한 가치와 데이터가 필요하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회계이다. 회계는 재무 정보를 파악하기 위한 재무회계와 세금을 계산하기 위한

세무회계, 조직의 경영자가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회계 정보를 파악하기 위한 관리회계로

나뉜다. 기업은 재무, 세무, 관리회계를 통해 항상 성과를 측정하고 관리한다.


회계는 재무상태를 파악한 시간의 경과에 따라 이것이 어떻게 변동해 가는지를 기록및 관리하는

일련의 작업이다. 기원전 2040년경 메소포타미아 우르 왕조의 재무상태표가 발견됐을 정도로 회계의

역사는 깊고, 13세기부터 복식부기를 사용했다는 이탈리아 상인들 보다 200년이나 앞선 11세기 부터

개성상인들은 '사개치부법'이라 불리는 복식부기를 사용했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 등장하는 개성상인이 선조로 부터 배운 복식부기를 그들에게 알려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책은 회계에 대한 기초부터 고급까지를 망라한다. 그동안 어렵고 복잡하다는 생각에 배울 생각

조차 하지 않았던 복식부기에 대한 설명을 보면서 ' 진작 배우려고 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마저 가질

정도로 쉽다. 차변은 받을 (자산)이고 대변은 갚을 (부채)이라는 파치올리의 도식을 통해 쉽게

이해할 있었고, 차변을 굳이 왼쪽에 두는 이유는 대부분 시계를 왼쪽에 차는 오른손 잡이의 습관처럼

자금의 흐름이 오른쪽(대변)에서 시작(조달)해서 왼쪽(차변)으로 흘러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서 일거라는

저자의 설명이 쉽게 수긍이 간다. 


또한 하나의 상품이라 하더라도 쓰임새에 따라 회계처리가 달라진다는 대목은 눈길을 끈다. 예를 들면

닭이라는 상품이 회사가 식용으로 판매하기 위해 보유한 것이면 재고자산, 달걀이라는 수확물을 얻기

위해 보유한 것이면 생물자산, 동물원 등에서 입장 수익을 얻기 위해 보유한 것이면 유형자산으로

회계처리를 해야 한다. 역시 회계는 어렵다. 친절한 설명으로 조금은 이해하는 싶었는데 여전히

어렵고 복잡하다. 


회계는 차변과 대변의 평형(균형) 추구한다. 그리고 복식부기는 대차평형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 삶도 비슷하다. 알랭 보통(Alain de Botton, 1969-) 그의 저서 '우리는

사랑일꺼'에서 다변하고 급변하는 우리의 모순적인 마음을 차변과 대변에 비유하며 친절하게 설명하고

우리의 삶에도 평형(균형)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차의 균형을 요구하는 회계학적 사고는 인생을 보다

균형적으로 살기 위한 좋은 길잡이가 될것이며 균형을 요구하는 판단과 결정의 순간에 유용한 수단이

될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이것을 '진리의 대차 균형'이라고 말한다. 


책은 어렵다. 비록 저자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친절을 베풀지만 사실 여전히 어렵다. 그런데

읽어보면 술술 읽혀진다. 말은 우리가 굳이 회계사가 되거나 회계관련 업무를 할것이 아니기에

암기를 하거나 완벽한 이해를 요구하지 않고 그냥 읽으면 된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상황적 요구를

알기에 친절하게도 무수한 예와 첨언들을 통해 이해를 돕는다. 책은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경제활동가들이 한번 읽어 보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말을 적어 본다.

'인간은 회계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반성함으로써 종교의 영역에서 계속 머물 계기를 찾듯이,

기업들은 회계를 통해 과거의 성과를 측정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존속할 동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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