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호실의 원고
카티 보니당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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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야기가 진심이냐 거짓이냐는 상관없다. 어느쪽이든 내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고, 지금은 어떤

사람이지에 대해 보여만 준다면, 우리는 때때로 진실을 말하는 자보다 거짓을 말하는 자를 통해

분명히 있으니까.'


피니스테르에 있는 보리바주(Beau rivage)호텔 128호실의 포근한 더블침대 오른쪽 협탁 서랍에서

오래된 원고를 발견한 안느 리즈 브리아르가 원고의 주인인 실베스트르 파메에게 보내는 편지로 부터

시작되는 소설은 시작부터 신선하다. 이야기는 33년전 몬트리올에서 잃어 버린 원고, 그런데

자신이 156 이후를 누군가 이어서 썼고 잃어버린 장소가 아닌 프랑스의 어느 곳에서 발견하게

된다는 미스테리를 가지면서 157 이후의 작가가 누군지에 대한 호기심이 발단이 되어 전개된다.

안느는 원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앞부분은 저를 전율하게 하는 순수함과 감수성을 넣었다면,

뒷부분은 프랑스어 교사에게 기쁨을 선사할 언어적 탁월함을 채워 넣었다고 할까요'. 그러면서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글이 아닌 자신의 글에도 마무리 하라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며 직접

마무리할 권리를 찾으라고 말한다. 


책에는 특이한 점이 몇가지 있다. 첫번째는 발신인의 이름 앞에 붙는 다양한 수식어들이다. '물감으로

뒤덮여서 오늘은 볼뽀뽀를 생략하며, 당신이 길의 끝에 다다르기를 바라며, 당신의 편지를 읽어서

기분이 좋은...' 같은 다양한 수식어들은 편지를 받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고 기분좋게 만들것이다.

생각해보라. 물감으로 뒤덮여 있을 모습과 내가 보낸 편지를 읽고 얼굴에 한껏 기쁨을 가진 모습들을

생각하면 발신인의 이름만 덜렁 있는 것보다 훨씬 정감이 있다. 물론 모든 편지에 수식어가 붙는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작위적 느낌이 강하게 들어 오히려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나는 거의

모든 편지에 추신(PS) 달려있다. 기억이 떠올랐다. 장황하게 글을 놓고는 뭔가 부족하고

아쉬워 PS 붙였던 때가. 그럴거면 편지에 쓰지 말이다. 아무튼 종이 글씨도 편지도 점차

사라져가는 즈음에 편지글로 소설을 마주하게 되니 반갑다. 


길을 돌아 결국 157 이후를   사람을 찾게 되나 실베스트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모습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글로 나머지 부분을 다시 채우기로 한다. 마치 잃어버린 한조각을 찾아 헤매다

만난 조각을 슬며시 내려놓고 다시 길을 떠나는 '이가 빠진 동그라미'처럼.


소설을 읽으며 오래전 기억이 떠올라 어릴적 끄적여 놓았던 습작 노트를 꺼내 보았다. 그때의 감정,

느낌을 그대로 받을 수는 없지만 여전히 나를 미소짓게 만들고 '다시'라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나의 이야기고 나의 삶이기에 그렇다. 실베스트르도 그랬을것 같다. 비록 50 넘은

아줌마의 주책(?, 안느의 가족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에서 시작된 일이지만 그도 자신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고 싶었을 것이다. 아주 오래된 추억을 끄집어 내는듯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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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마법 - 나의 인생을 바꾼 성공 공식 everything=figure out
마리 폴레오 지음, 정미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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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생이라는게 그렇게 복잡하지 않단다. 소매를 걷어 붙이고 적극적으로 뛰어 들면

먹은 일은 뭐든 해낼 있어. 해결 불가능한 문제는 없어'

저자가 억척스러운 엄마에게 들은 말이다. 그리고 그는 자리에 박힌 듯이 서서 희열에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이고 그의 삶의 모토가 되었다. '해결 불가능한 문제는 없다'

말이 쉬워 보일 있으나 결코 그렇지 않다. 이것을 실행하는 여정은 멀고도 험하다.

카를로스 카스타네다(페루 출신의 문화인류학자) '우리는 스스로를 비참하게 내몰 수도

있고 강하게 단련시킬 수도 있는데, 우는소리이든 드는 노력은 같다' 말처럼 용기와

끈기를 가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신념이란 뭔가를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것이며 의식적으로는 무의식적으로든 진실이라고 결론

내린 생각이며 우리의 현실과 결과는 이러한 신념을 뿌리로 삼는다. 신념은 우리의 신체도

통제한다. 뿐만아니라 위기, 기회, 비난 등에 대한 대응 방식까지 통제한다. 신념은 행동을

유발하고 이런 행동들이 쌓이고 쌓여 전체 삶을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신념의 수준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신념에는 결과가 따른다. 이러한 신념은 환경,

경험, 증거, 모범, 마음속으로 그려보기 등으로 형성된다. 마치 마인 루터 목사가 어려서부터 가져왔던 신념을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에서 드러내듯 말이다.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와 아이들이 언젠가는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평가 받는 그런 나라에서 살아가길

꿈꿉니다.'


우리의 삶의 책임은 100% 자신에게 있다.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에서든 자신이 자신의 삶의

책임자다. 말이 식상한가.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 믿음, 행동을 결정할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 당연히 타인의

행동에 대해 언덕에 반응할지도 소관이다. 사실 지속적인 행복은 스스로를 책임질 있을

얻을 있다. 여기서 책임지라는 말은 부당한가요 묵묵히 견디라는 말도 아니고, 스스로를

탓하거나 부끄러워 하라는 것도 아니고, 자책하거나 끊임없이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라는 것도

아니다. 삶을 책임진다는 말은 어떤 감정을 느낄 , 현재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응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결정하는 문제에서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음으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삶의 10%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고 90% 일에 대한 나의 대응 방식이다. 중요한건

시간이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거냐의 문제이다. 


모든 사람은 두려움(fear) 가진다. 두려움은 우리를 넘어지게도 하고 움추려들어 아무개도

하지 못하게도 한다. 삶의   무엇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이해해야 대상일 뿐이다.

이제는 많이 이해하면 만큼 두려움이 줄어든다는 것을 알아야 때이다는 말처럼

우리에게 두려움은 이해해야 대상이지 포기와 공포가 아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두려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일부 사람에게 'fear' 'False Evidence Appearing Real'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 증거) 통하고, 까불거리는 버전으로는 'Fuck Everything And Run'(모두다 집어치우고 도망칠 )으로 통하고, 저자가 좋아하는 진취적이고 멋진 'Face Everything And Rise'(모든 것이 맞서 싸워라) 줄임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도 저자가 좋아하는

'fear' 마음에 든다. 두려움은 피할 대상이 아니라 맞서 싸워서 이겨낼 대상이다. 왕좌의

게임에서 캐틀린 스타크가 말하는 '웃음은 두려움을 잡는 독이다'라는 말과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설 때마다 힘과 용기와 자신감이 길러진다는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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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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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어릴적 가졌던 세계명작동화 전집(100) 한권이어서 의미 없이 읽고

지나갔던 책이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고 지금 다시 마주한 책은 두께에 먼저 압도당한다.

과연 책을 내가 어릴적 읽은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내용이  깊고 각각의 인물의 심리 상태나

감정을 표현하는 섬세함이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비꼬고 지적하고 비판하는 냉철함은

책을 아동도서로 분류하는 것이 맞았을까 하는 의구심 마저 든다.


19세기 영국의 뒷골목 슬럼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올리버 트위스트는 부모를 잃은 고아인 주인공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찰스 디킨스의 장편소설이다. 산업 혁명 이후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대립과 차별, 계급 사회의 강화와 빈부의 격차로 인한 노동력 착취와 범죄의 유혹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역시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어린나이임에도 온갖 노동과 억압과 착취를 당하며 폭행과 폭언을

당하기 일쑤였다. 소어베리라는 장의사의 견습생으로 들어가 정착하는가 싶던 올리버는 자신의

어머니를 모욕하는 소년을 폭행하고 이를 빌미로 이집에서도 학대와 구박을 받다 결국 런던으로

도망가게 된다. 런던에서의 삶도 평탄하지만은 않았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생활하는

빈민굴에 들어가서 소매치기를 비롯한 나쁜짓을 하며 지내게 된다. 이때 은인이자 훗날 양부가 되는

브라운로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만남 역시 순탄하지만 않아서 빈민굴 무리들에게 붙잡혀 다시

빈민 소굴로 끌려가게 되고 빈민굴 악당인 사익스와 페이긴의 브라운로씨 집을 도둑질 하려는

음모에 휩쓸리게 된다. 상황에서 올리버는 총을 맞게 되고 경찰의 추격을 받게 된다. 결국

사익스는 밧줄에 목을 매어 자살하였고, 페이긴은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하게 되며 올리버는

무사히 구출되어 브라운로씨의 양자가 되어 행복하게 살아간다.


책은 영국 산업혁명 시절의 도시 하층 계급의 갈등과 삶을 징글맞을 정도로 표현한 작품이며

영국 문학에서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최초의 작품이다. 사실 작품은 보다는 영화나

뮤지컬로 많이 알려져 있다. 작품 올리버는 자신의 환경에 억눌리거나 주눅들지 않고

따뜻한 마음과 용기를 잃지 않는 의지로 자신의 삶에 당당하게 맞서는 어른스러움과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소설에서 특히나 눈에 들어왔던 것은 창녀 '낸시'였다. 자신만만하고 당당하고 독립적이며

적극적이었으나 내면의 깊은 상처와 아픔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며 사익스에 대한 여성적 감정과

올리브에 대한 모성적 감정을 동시에 지닌 이중적 인물이다. 어쩌면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대표적 인물이 아닐까 싶고 현재의 우리의 삶과도 별반 다르지 않은 인물이다. 좋음과

나쁨의 이중적 이미지를 지닌 낸시를 통해 지금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같은 느낌이었다. 


저자는 사회의 그림자 같은 존재들을 기꺼이 소설에 등장시켜야 한다는 믿음으로 소매치기, 창녀,

장물아비등과 같은 이들이 즐비하게 등장시킨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이들의 입에서 거칠고

모욕적인 표현은 거의 찾아 없고 오히려 부패한 지배층의 입을 통해 악의적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 지배 계층에 대한 풍자와 1834 영국에서 시행한 신빈민구제법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양념으로 소설은 무려 600페이지에 이르는 장편 소설이다. 속에 등장하는 '(gruel,

밀가루나 귀리로 만든 양을 늘리기 위해 물을 많이 넣고 끓인 멀건 ) 그릇 주세요.'

(Please Sir. I want some more' 당시 구율정책의 모순과 실패를 지적하는 표현으로 많은 이들의

입을 통해 회자되고 인용되기도 했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읽는 내내 절묘하게 상황들을 연결하고 전개하는 찰스 디킨스의 글에

매료됐다. 뿐만 아니라 19세기 최고의 삽화가였던 조지 크룩생크의 삽화 24장이 수록되어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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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0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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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은 각각의 사안과 관련해 거기에 내재된 설득력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는 능력이며 진정 설득력

있는 것과 설득력 있게 보이는 것을 구분하는 학문이다. 


말로 신뢰를 주는 방법은 화자의 성품, 청중의 심리 상태, 뭔가를 증명하거나 증명하는것 처럼 보이는

자체이다. 화자의 성품으로 인한 신뢰는 청중이 그를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하도록 화자가 말할

생긴다. 화자의 말을 통해서 얻게되는 신뢰는 화자의 합리적이고 공정한 성품을 기반으로 한다.

청중으로 인한 신뢰는 화자의 말에 청중이 어떠한 감정을 가지냐에 따라 결정된다. 감정은

각기 다른 반응으로 오게 되는데 여기에서 신뢰를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자체로 인한

신뢰는 화자가 각각의 사안과 관련해 진정으로 설득력 있는 요소들 또는 그렇게 보이는 것을 드러낼때

생긴다. 어떤 말이 설득력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설득력 있게 통했다는 것인데, 이는 자체로

설득력 있고 신뢰할 만하거나, 자체로 설득력있고 신뢰할 만한 것에 의해 증명되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갑질' 인해 사회가 고통 받고 있는 우리에게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하는 '' 대한 정의는 의미가

있다. 부의 미덕은 소유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데 있다. 부를 현실화해서 사용하는 것이

부요함이다. 부를 구성하는 요소는 돈과 땅이 많은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개인적으로 소유한

것이어야하며, 안전하고 자유롭고 유용한것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유용하다는 것은 생산적이라는

의미고, 자유롭다는 것은 사용과 관련해서 자유롭다는 것이고, 안전하다는 것은 소유자가 모든 것을

언제든지 자기 뜻대로 사용할 있는 장소에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부의 가치는

가지고 있는것 자체로의 의미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시기는 자신과 대등한 사람이 좋은 것을 얻어 되는 것을 보고 거기서 어떤 이득을 얻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가 그런것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비슷한 부류끼리는

저절로 시기하는 법을 안다' 말처럼 우리는 시간과 장소와 나이와 처지에서 자신과 가까운 자를

기한다. 우리는 만년전에 존재한 사람이나, 이미 죽은 사람이나, 앞으로 있게 사람을 시기하지 않고

지금 주변에 있는것을 시기한다. 또한 우리는 자신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자신이 과거에

갖고 있었던 것을 소유했거나 얻은 자들을 시기한다. 우리는 자신이나 남들이 생각하기에 한참 열등한

자들이나 한참 우월한 자들과는 경쟁하지 않는다. 


문체의 미덕은 명료성에 있다. 연설은 어떤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보이는 것인데 명료하지 않으면 그런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없다. 문체는 저속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고상하지도 않게끔 적절해야 한다.

연설하는 자신의 말이 이색적(크세노스, 일상에서 평소 접하지 못했던 새롭고 낯선것)으로 들리게

해야 한다. 그래야 이목을 있으며 집중시킬 있다. 말을 구성하는 것은 단어와 표현들인데 이를

적절히(가장 어려운 말이다) 사용해서 청중으로 하여금 이색적이고 조화롭게 들을 있게 해야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들과 '시학'에나 등장할 법한 고상한 말들을 적절히

섞어가며 연설할 사람들은 연설에 귀를 기울인다. 


정의와 윤리를 배제한 사람의 감정을 움직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소피스트들과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학을 기반으로 어떤 것이 국가를 위한 것이고 정의롭고 바른 것인지를

증명해낸다. 책은 사실의 개연성을 증명하여 설득하는 '로고스' 중심으로 연설들을 풀어 나가는

1권과 연설가가 청중을 자신에게 유리한 감정으로 이끄는 '파토스'라는 설득 수단, 청중의 성격에

따라 연설 방법을 달리하는 '에토스'라는 연설수단,  '로고스' 대해 이야기 하는 2권과 문체와

배열과 전달의 문제를 다루는 3권으로 되어 있다. 고어와 철학적 용어가 자주 등장하여 읽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곳곳에 산재해 있는 언어의 보고들을 하나씩 발견하는 묘미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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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많이 지쳐 있습니다 - 일, 관계, 삶의 과부하 속 내 마음 회복수업
로라 판 더누트 립스키 지음, 문희경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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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뭔가를 하라'

다양한 삶의 형태와 상황 속에서 반복되는 동일한 질문인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대한

저자의 대답이다. 일상의 과부하와 두려움 앞에 손과 발을 놓아 버리기에 급급한 우리들에게

저자는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 그리고 다시 일어섬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

말한다. 자신을 알아야 문제도 해결할 있고 문제를 해결할 있어야 다시 시작할 있다.

물론 쉽지 않다는걸 저자도 안다. 그럼에도 자리에 주저 앉아 버리기엔 우리네 인생이 너무

아깝기에, 패배자인양 의욕마저 상실한채 멈춰버리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소중하기에

다시 시작해 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아도 버거운 일상에 짐을 하나 얹는 것이 아니라 아직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 있음을 말한다. 


삶을 스스로 책임지려는 의지야 말로 자존감의 원천이다. 어떤 상황에 처하던, 어떤 감정을 느끼던

결국 적절히 행동하는 능력은 우리 안에 분명히 존재하고 자신을 위해 선택하는 크고 작은 순간들이

쌓이면 결국 자유로워 있다. 어떠한 선택이든 상황의 제약을 받고 선택 사이에 긴장이 발생한다.

이때 당장 수면위 물결이 아닌, 속의 고요한 내면을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과부하의 무게를

줄일 있는 방법이다. 문제는 과부하와 나란히 걸어 가느냐, 과부하로 손발을 묶고 재갈을

무느냐이다. 


요즘 우리는 '바빠' 신드롬에 빠져 있다. '요즘 어때'라고 물을 당연하다는듯이 '바빠, 미친듯이 바빠,

죽을것 같아, 나도 그래' 튀어 나온다. 이렇게 대답하지 않으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메세지 처럼 들리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 무슨일을 하고 어디에 살든 일로 과부하에

걸리면 생산성과 행복이 감소하는데 그렇게 바쁜 우리의 대부분은 '행복하게 살려고' 그렇게

한다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문제는 '정말 바쁜가?'이다. 정말 그렇게 돌릴 틈도 없이

바쁠까? 아쉽게도 아니다. 정리되지 못한 일의 우선순위를 찾지 못해, 준비되어 않은 일의 실행,

넘쳐나는 정보에 대한 무차별적 습득등 일로 인해 바쁜게 아니라 외적인 것들로 많이 바쁘고

분주하다. 여기에 눈치도 크게 한다. 바빠 보이지 않으면 '베짱이' 되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모두들 일요일 되면 우울하다. 


온전하다는 것은 완벽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깨진 부분도 오롯이 수용한다는 의미이다. 자기를 수용하고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능력은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한 중요한 포인트다. 이때 자신의 문제를 완전히 흘려

보내지는 못해도 적어도 한동안 떠내려가게 놔둘 필요는 있다. 이는 무의식 중에 선택하고 정신 없이

빠져드는 모든일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멈추고, 알아차리고, 심사숙고해서 선택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이 온전해 지는 방법이다. 


작가이자 사업가인 패리스(Tim Ferris) 말은 책을 덮은 후에도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내가 맞은 거대한 폭풍' 영원하지 않다. 그렇다고 내게 닥칠 마지막 폭풍은 물론 아니다. 앞으로

많은 폭풍이 불어 닥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불을 피워 따뜻하게 유지하면서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우리가 쌓아 놓은 일상과 습관과 인간관계와 대처능력) 있으면 내리는

비를 홍수가 아니라 거름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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