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재즈를 듣게 되었습니다 - 인문쟁이의 재즈 수업
이강휘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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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는 어렵다. 우리의 통념이다. 아니 정말 어렵다. 클래식 만큼이나 어렵다. 듣기 좋고 부르기

편하라고 만든 곡이 점점 어려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재즈와 거리를 두게 되고 나라의

음악이 되어 버렸다. 그런 우리에게 인문쟁이 선생님이 제목도 그럴싸하게 '어쩌다 보니 재즈를

듣게 되었습니다'라는 책을 출간했고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고 이해시킬지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들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재즈를 이해하기 위해 미국의 역사와 상황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는 말부터 마음에 들고, 'Jazz'가는 단어가 얼마나 매력적으로 생겼는지 모른다는

설명도 마음에 든다. 그런 그가 소개하는 첫번째 뮤지션은 바로 '욕쟁이 거장'이다. 


우리는 흔히 거장이라면 이름에 걸맞는 품격과 지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욕쟁이는

우리의 그런 기대를 여지없이 부숴버린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1926-1991) 그런 인물이다.

재즈가 방향성을 잡지 못해 갈팡질팡 당시 비밥, 재즈, 하드밥, 퓨전 재즈라는 장르를 사람의

경력으로 모두 설명 가능케한 인물이 바로 그다. 그래서 세인들의 그를 '재즈의 (King of Jazz)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의 삶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당시 예술가의 전형적인 삶을 살았다고 하는

부류도 있고 오만하고 괴팍하고 욕을 입에 달고 살았던 약쟁이라고 폄하하는 부류도 존재한다.

음악적인 면에서도 그의 트럼펫은 분명 찢어질 날카로운 음색을 가져 처음 듣는 이들에게는

거부감을 수도 있지만 정적인 즉흥 연주와 만난 욕쟁이 트럼펫터의 날카로운 음색은 마일스

데이비스만의 서정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이런 거장 마저도 페르소나(Persona, 가면) 써야 했다.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 흑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시절에 그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거칠게 보이는 방법을 택했고, 흑인이 만들어 재즈라는 장르를 백인들에게 빼앗기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오만이라는 가면을 선택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이 '가면을 정체성' 만이

살아남은 시대, 페르소나의 시대이듯 당시의 그들도 그렇게 격렬하게 살아냈다. 


하나의 음반을 만난다. 저자의 맥주캔을 개나 따게 만든 에번스(Bill Evans, 1929-1980) 트리오의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이다. 피아노와 베이스가 경쟁을 벌이는 듯한 연주라든지 현장감을 너무

살려 어쩌면 오히려 손해를 수도 있는 현장 녹음이라던지 대체로 트리오에서 피아노가 전체를

리드하기 마련인데 베이스에게 길을 열어주는 느낌의 연주등은 재주를 좋아 하는 사람 대부분이

에번스를 좋아 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변화무쌍한 에번스의 피아노 연주는 원곡의

궤를 뛰어 넘어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수준이고, 과감한 스콧 라파로(Scott LaFaro) 연주는

보통 피아노 뒤에서 백킹(Backing)으로 리듬을 이끌어 가는 베이스의 역할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자신만의 연주 세계를 유영한다. 아마도 둘만 있었다면 서로간의 치열함이 너무 강해서 음악적으로

많이 부딪쳤을텐데 여기에 절묘하게 드러머 모션(Paul Motian) 자리하면서 서로의 치열함을

연합으로 이끌며 조화를 이루어 낸다. 특히나 그의 브러시 연주는 베이스와 피아노의 치열함을

'착착'하는 소리로 감싸 안으며 산으로 가려는 배를 수면 위로 향하게 한다. 그러나 정작 앨범의

진가는 관중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에 있다. 'Alice in Wonderland' 듣다 보면 쉴새 없이 잡담 소리가

들리고 심지어 어떤 여성은 고성을 지르기도 하고 어떤 관객은 기침으로 박자를 맞추기도 하는데

이게 연주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저자는 이게 재즈의 진면목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재즈는

점잔을 떨면서 고상하게 듣는 음악이 아니라 지친 노동자들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편하게 듣던

음악이다. 연주자는 연주자 나름대로 '그래. 너네는 떠들어라. 우리는 우리것을 하련다'하고 연주를

했을것이고 관객들은 연주를 안주 삼아 하루의 피로를 날리는 수다에 집중했을 것이다. 생생한

현장감을 담은 음반은 소장할 가치가 있다. 


인문쟁이 국어 교사의 재즈 수업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택한 저자의 접근이 신선하다. 딱딱하고 지루하고

어려운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복잡하고 난해하고 어려운 재즈를 가르친다는 편견과 선입견을 저자는

여지없이 깨버린다. '재즈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말처럼 그냥 있는 그대로 느끼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독특한 세계에 도달하게 것이고 그로인해

재즈라는 음악을 접하는 귀와 마음이 넓어지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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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 물욕 먼슬리에세이 1
신예희 지음 / 드렁큰에디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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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우 작가의 프리뷰 처럼 나도 정확하게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뚜렷한 관점으로 사실을

직시하며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표현한 글을 읽을 나는 희열을 느낀다. 신예희 작가가 '지속

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에서 보여준 글이 그랬다. 낭비 없는 동작으로 목표물을 조준하고

가성비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 낸다. 그런 그가 없는 것이 많고 필요한 것은

널려 있고 사고 싶은 것은 부지기순데라고 말하며 돈지랄에 대해 말한다. 기쁨과 슬픔에 대해.


돈지랄. 

우리에게 말은 좋은 의미 보다는 착한 소비나 현명한 소비의 반대되는 정도의 부정적 의미로

사용 됐다. 저자는 출발부터 다르다. 돈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쓰는 것이고 돈지랄은 '가난한 기분을

돌보는 '이라는 타당성 마저 들이댄다. 그래서 자신의 돈지랄을 넘어서 제대로 현명한

돈지랄을 시작한다. 책은 그런 책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솔직하게 말한다. '보여주고 싶고

티내고 싶고 자랑하고 싶다.'


'아끼면 된다' 나의 지론이기도 하다. 정말 그렇다. 괜히 이건 좋은거니까 나중에 라든지 이건 맛있는

거니까 나중에 라는 어설픈 쟁여두기로 버리고 망치고 손해 본게 두번이 아니다. 그냥 괜히 아끼다

똥이 되어 버리면 버릴 배의 아픔이 찾아 온다. 사실 아낄 물건은 아끼고 후딱 써야 물건은 얼른

써야 하는데 우린 반대로 때가 많다. 지금이 제일 맛있고 지금이 제일 예쁜데 아껴서 똥을 만든다.

물론 똥을 폄하 하거나 똥의 기능과 효용 가치를 절하 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냥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져

버린다는 의미다. 언제 올지 모르는 나중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말자는

말이다. 


저자와 나는 여행 패턴이 비슷하다. 20대에 잠만 자는 숙소 비용이 아까와 유스호스텔이나 난장도

불사했던것도, 30대엔 그나마 조금은 사람 사는(?) 공간 같은 저렴한 호텔을 사용했던 것도, 40

넘은 후론 독립적이고 편안한 집과 같은 레지던시나 아파트 같은 곳을 찾게 되는 것도 그렇다. 커피를

유난히 좋아 하는 나도 여행지 숙소의 선택 고려 사항 하나가 '스타벅스'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와

숙소 주변에 맛있는 커피집이 있느냐다. 맛있는 커피 잔이 주는 행복감은 하루의 컨디션을

좌우하기에 더욱 그렇다. 내가 여행에서 누리는 최고의 사치는 아마도 '커피' 것이다. 


세상에 '절대' 없다. 절대하지 않을거야라고 했던 말들 과연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나의 기준도 변한다. 결코 절대는 없다. 취향이란게 유행이라는게

원래 돌고 도는 것이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그냥 변하는 것에 맞춰 순응하면 된다.

억지로 벗어나려고 발버둥칠 필요도 몸부림칠 이유도 없다. 그래봐야 본인만 힘들고 지친다. 그냥

흐름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즐기면 된다. 저자의 마지막 말이 기분 좋다. 

'오늘도 내일 좋은 것을 욕심내며, 기쁘게 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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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많으니 그냥이라고 할 수밖에
을냥이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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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두려워 하지 . 단순하게 생각해. 실패하면 하면 되고 안되면 마는 거지 '

묘생 9년차의 말이다. 그만큼 살았으니 아는 것도 많고 지혜도 깊을텐데 어째 잔소리처럼 떠드는

어떤이들의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가? 인생에서 한번 실패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몰라서 그러는 걸까, 온갖 생각이 든다. 삶은 타워에서 떨어지는 것이나 울어 대는

새를 잡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과는 다른데라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책이 자꾸 책상의 구석으로

밀려난다. 이러다가는 언제 손에 잡힐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시금 집어 들자 내가 좋아 하는

'그냥'이라는 단어가 눈이 계속 밟힌다. 그냥 '좋아', 그냥 '싫어', 그냥, 그냥, 그냥.... 분명 수없이

많은 이유가 존재 할텐데  '그냥'이다. 


사랑은 역시 어렵다. 모두들 자신이 하는 사랑이 제일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데 별반 다르지 않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이 쉬울 없다. 그렇기에 사랑 때문이 울고,

때문에 힘들어 하고, 사랑 때문에 죽기도 한다. 저자는 이를 고양이와 개의 사랑으로 비유한다.

처음 알게된 사실인데 개는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흔들고 고양이는 기분이 나쁘면 꼬리를 흔든다고

한다. 같은 동작인데 상황이 다르다.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론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없기에 상대를

낄수록, 상대와 오랜 시간을 같이 있고 싶을수록 우린 하기 어려운 말을 해야 한다.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힘들어 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길을 찾아도 그곳을 향해 걷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상 길이 아니다.'

그렇다. 아무리 삶의 방향성과 목적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것을 향해 날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모래성에 불과하다. 삶은 방향성과 목적에 행동이 수반하는 것이다. 한때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양심은 진심이 전하는 말인데 말을 듣고도

행동 하지 않는데 그것을 바른 양심이라고 해야 하나. 진짜 '양심' 깨닫는 것이 아니고 깨닫고

행동하는 것이다. 길도 마찬가지다. 길을 발견했으면 길로 나아가야 한다. 비록 길이 잘못된

길이라 다시 돌아와야 한다 할지라도 길을 걸어 사람과 걷지 않고 여전히 생각만 하는 사람은

분명 결과가 다르다. 인생은 한번의 성공과 한번의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여전히

길을 걸어야 한다. 그렇기에 '잠시 멈춤' 실패가 아니다. 재도약을 위해 잔뜩 웅크리는것이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숨고르기를 하며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비록 실패할 이유는

많지만 '그렇기 때문에'라며 낙담하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희망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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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동
김재천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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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잊지 못하는 장소가 있다. 아니 어쩌면 잊고 싶지만 지워지지 않는 곳일 수도 있다.

내게 강릉시 교동 강릉상고(지금은 강릉제일고등학교일거다) 고개 마루가 그런것 처럼 저자에게는

'공릉동' 그런것 같다. 내게 고개 마루가 국민학교(초등학교라고 하면 뭔가 이상하다)부터

중학교까지 9년의 추억이 담긴 곳이라면 저자에게 공릉동은 사랑하는 아내와의 추억과 아픔이

그대로 공존하는 공간이다. 


절절함이 묻어 난다. 구석구석 함께한 추억들과 켜켜이 쌓인 그리움이 저자의 속에 그대로

담겨있다. 죽은 아내에게 바치는 시인 '눈물 '에서 '이별이었다, 고마웠다, 깊었다, 익사했다'라는

단어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얼마나 간절했는지가 그대로 느껴진다. 책의 말미에 발문을

소설가 정종명은 이에 대해 남편이 아내를 여의고 애도하며 지은 , '도망시(悼亡詩)라고 하며

저자의 아내에게 바치는 최고의 헌사를 기린다. 도종환 시인이 '접시꽃 당신'에서 '당신을

생각합니다. 세상 어느 곳에도 없으나 어딘가에 살아있을 당신을 생각합니다'라고 했던 것처럼

저자는 떠나보낸 아내를 그리워 한다. 그랬던 그가 어느새 새로운 사랑의 대상을 찾았다. 어느것 하나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언제나 자리에 있는 '공릉동'이다. 


공릉동은 나에게도 익숙하다.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 근처의 교회를 다녔기에 주변의

거리가 익숙하다. 저자가 말하는 에이스 모텔도, 폐선로도, 산업대학도, 공릉역도, 공릉동 동사무소도, 

뿐인가 우중에 저자가 달려간 강진의 백련사도, 많은 추억과 아쉬움이 남은 안목해변도 통갈치 조림이

맛있는 탑동 앞바다도 나에겐 익숙하다. 예전에 기차가 다닐 때의 풍취는 없지만 철길 공원으로

꾸며 놓은 공릉동의 구석 구석이 제법 예쁘다. 철길 공원 주변으로 자리한 맛집을 보물 찾기 하듯

아내는 맛도 쏠쏠하다. 한가지 아쉽다면 공릉시장 이야기가 대목 있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공릉역에서 감겼던 눈을 번쩍 뜨고 내릴 떠난 사랑을 그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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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성장을 위한 8개의 질문
김종원 지음 / 나무생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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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는 늙고, 늙으면 죽는다'

이어령 박사의 말이다. 이것은 순리이고 자연의 법칙이다. 그렇기에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늙은이는

늙은이대로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야 한다. 힘이 넘칠땐 힘으로, 지혜가 넘칠땐 지혜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에 지금의 미래에 당당할 있다. 


'인문학적 사고'

우리의 삶은 결국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인문학은 문학, 철학, 역사를

통해 배우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삶을 통해 실천하며 살아내는 것을 말하며, 인문학적 사고는

이를 형성케하는 사고체계이다. 일상을 벗어나 한적하고 좋은 곳에서 사색을 즐기며 고민하는 것이

아닌 삶의 치열한 현장 속에서 부대끼며 시종일관 진지하고 거짓없이 실천되는 자기 철학의 모태가

바로 '인문학적 사고'이다. 사물을 사물 그대로 보기도 하지만 사물 이면의 모습까지도 넘나들수 있는

생각의 자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이렇게 치열하게 달리는 이유는

도착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멈출 곳을 찾기 위함이다. 달리는 사람은 속도가 빠른 사람이 아니라

멈출 곳을 발견할 있는 안목이 좋은 사람이다. 저자는 이렇게 살기 위한 지적 성장 동력을 개발하기

위한 8가지의 질문을 내어 놓는다. 열정, 언어, , 성장, 생각, 기쁨, 조화로운 , 관계.


'열정은 스스로 떠벌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인정 받는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열정은 그런것이다. 스스로 열정이 넘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 사람은 열정이 넘쳐 보여'

라는 소릴 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열정을 가진 사람은 '정진(精進)'한다. 어떠한 일을 하던지 지속

가능한 의지와 끈기가 있어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를 꾸준히 하면 하나가 다음에 가야할 길을

보여준다. 하나를 잡고 끝까지 가는 , 열정은 이것으로 증명된다. 그리고 중요한 하나는 모든

일의 중심에는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리의 주인이 되면 된다. 세상이 나를 위해 의자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내가 스스로 의자를 가져와 자리에 앉아 순간의 주인이 되면 된다. 그때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 사람 열정이 있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과 같이 있지만 유난히 돋보이고 우아하고 멋진 사람이 있다. 무얼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기운은 옆에 있는 사람마저 기분 좋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사람 주변엔 항상 사람들이

모인다. '기품' 사전적 의미는 '고상하고 독특한 품위나 품격'이다. 자신 있는 , 기품 있는 삶은

공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깊게 경험한 세월들이 켜켜이 쌓여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억지로 만들어 기품은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 기품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 수용할

아는 사람이다. 말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서도 열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

자신을 장에 넣고 문을 잠그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도 장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고의 폭이 유연하고 능동적이다. 일상은 배움이고 배움이 일상에 존재하듯이 우리는

끊임 없이 배우고 습득하고 연마해야 한다. 당연히 수없이 도전해야 하며 실패를 맛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세상을 향한 스스로의 품격이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모든 것을 수도, 모든 행동과 말이 근사 수는 없다. 굳이 숨기려 필요도 없고, 굳이 과장할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세상과 마주해야 한다. 우리는 부족하기에 채울 여지가 존재하고,

우리는 아직 여물지 않았기에 더욱 성장할 부분이 있고, 우린 깨끗하지 않기에 더욱 깨끗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모든것을 잘하지 못하기에 당연히 도전할 기회가 많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의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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