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의 인생 - 세상의 뻔한 공식을 깨부순 게임 체인저들의 44가지 법칙
데이브 아스프리 지음, 신솔잎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한국에서도 다이어트 커피로 각광받는

방탄커피(블릿프루프 커피) 만든 저자에게 성공의 동기는 우리와 달랐다. 흔히

사람들은 성공을 이루기 위한 강력한 동기가 돈과 권력 그리고 명성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자와 저자가 만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들은 자신들이 존재하는 이유 자체가

성공의 동기이자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몇가지 용어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이름이 낯설다. 저자는 자신이 속한 분야의 경계를 허물고  불가능을 가능의 영역으로 바꿔 놓고

새로운 규칙을 정립하고 한계를 확장하며 세상을 바꾸는 일에 일조한 이들을 게임 체인저라고

부른다고 설명한다. 저자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블릿프루프'(bulletproof)일것이다. 높은

수행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아가며 경험하는 새로운 상태를 가르키는 말로

자신의 몸을 직접 통제하고 몸과 의식을 향상시켜 서로 긴밀한 조화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이것은 이미 국내 여러 기업들에서 업무에 적용하고 있다. 

'미토콘드리아'

우리 몸의 뉴런은 에너지를 생성하는 세포 기본인 '미토콘드리아' 구성되어 있고 고대 박테리아에서

생겨난 미토콘드리아는 수가 수십억에 달한다. 이것은 신경계를 장악해 지능과 관계없이 생명체라면

생존을 위해 필요한 두려움을 느끼는 (Fear), 먹는 (Food), 종족 번식에 필요한 행위(Fuck)

무의식적으로 집중하게 만든다. 우리가 무의식 적으로 쫓는 권력, 섹스, 세가지 역시 미토콘드리아의

명령에 따라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성공이라 여기는 대부분이 고작

고대 박테리아에서 생성된 미토콘드리아가 시킨 일이라는 것이다. 1초에 수백만 번의 신호를 보내고

100조에 달하는 갯수의 미토콘드리아가 전부 위의 행동을 쫒을 , 의식을 가진 하나의 복잡한

시스템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를 에고Ego), 혹은 '자아' 부른다. 게임 체인저들은 에고 혹은

미토콘드리아가 이끄는 본능에 집중하는 대신 미토콘드리아에서 전해지는 에너지를 역으로 활용해서

자신의 본능을 초월하고 단속하는 법을 터득하고 이를 현실에 적용하여 ' 똑똑하게', ' 빠르게',

' 행복하게' 살아 간다. 

사람마다 목표나 바라는 것은 각기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순서'이다. 바늘 허리에 꿰서 쓰듯이

우선 순위가 명확해야 한다. 자신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정확한 의사 전달이 가능해지고

불필요하거나 원치 않는 일을 거절할 있고 거절에 능숙해야 자신에게 가장 의미있는 일에 오롯이

집중력과 에너지를 쏟아 부을 있다. 

'의지력 근육'

우리는 보통 어떤 사람은 태생적으로 의지가 강하고 어떤 사람은 의지가 약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는

명백하게 '틀린 '이다라고 말한다. 의지력은 근육과 같아서 노력에 의해 강하게 단련 수도 있고,

지나치게 사용하면 피로가 쌓이기도 한다. 의지력 근육이 피로해 우리는 나쁜 결정을 내린다.

의지력 근육은 관자놀이 근처 C 모양의 전대상피질(ACC, Anterior Cingulate Ccortex) 영향이

있고 과학자들은 ACC 의지력을 관장하는 영역이라 말한다. 


말의 힘은 세다. 말은 목표를 달성하기 만들기도 하고, 한계를 설정하기도 한다. 아니라 몸에도

우리가 지닌 잠재력에 대한 메세지를 전달한다. 말은 우리의 정신적 소프트웨어다. 의지를 담아

신중하게 말할 스스로 불가능 하리라 여겼던 것들을 이룰 있을 만큼 말이 가진 힘은 크다. 사람은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규정짓고 발목을 잡는 단어들을 사용하는데

저자는 이를 족제비 (weasel word)이라고 부른다. 

족제비 말의 첫번째는 못해(can't)이다. '못한다' 무언가를 이룰 가능성이 조금도 없다는 뜻으로 우리의

힘을 앗아가고, 혁신적인 사고를 가로막는 단어이다. 이에 저자는 '못한다' 거짓말이라고 한다. 족제비

말의 두번째는 '필요하다(need)이다. '필요한것' '원하는것' 차이이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개에 불과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필요하다' 단어를

문제의 해결책을 무의식이란 틀에 가두고 잠재의식에 스트레스를 준다. 족제비 말의 세번째는 '나쁜'

(bed)이다. '나쁘다' 어떤 대상을 향한 가치 판단이다. 실상 우리가 나쁘다고 표현하는 대부분은 그것을

싫어하거나 원치 않는 경우이다. '나쁜'이란 단어는 이분법적 사고를 초래한다. 족제비 말의 네번째는

'해본다'(try)이다. '해본다' 항상 실패의 가능성을 담고 있고 뇌에게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구실을 준다.

스타워즈에서 요다가   '한번 해본다는 것은 없다. 그저 뿐이다.' 말을 신중히 생각해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족제비 말들을 우리는 수도 없이 하면서 살았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러나 게임 체인저들 대부분은 피해야 말들의 리스트를 가지고 있고 이것들을 적극적으로

피함으로 자신만의 영역과 힘을 누린다 


이밖에도 '내가 선택한 신념이 나를 만든다' '진정 두려운 것은 두려움 자체다', '포기하는 때가 바로

실패하는 때이다' 등은 제목만으로도 이미 나의 잠재의식 속에 잠들어 있던 '도전의지' 충분히

자극해 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적 생활의 설계 - 넘치는 정보를 내것으로 낚아채는 지식 탐구 생활
호리 마사타케 지음, 홍미화 옮김 / 홍익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확실한 미래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함을 가지고 불안함으로 인해

막연한 준비를 한다. 저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불확실한 미래의 삶을 풍요하고,

지혜롭게 살기 위한 사고의 전환을 말하며 방법으로 '지적생활' 이야기 한다.

지적생활은 우리가 새로운 정보를 만나는 즐기고 새로운 정보를 확대 재생산하는

방식이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미술평론가 필립 길버트 해머튼의 '지적 생활의 즐거움

'(The intellectual life) 연상시키는 책은 '살아가는 기쁨을 만끽하려는 타고난 본성,

그것이 우리를 지적으로 만드는 힘이다'라는 그의 말에 충실하게 부합한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엄청난 양의 정보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연관성이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지니고 있으며 이것은 사실의 인식이나 전제가 되는 가치관이 정보를

발산하는 사람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 사이에 공유되어 전부를 말하지 않아도

얼마간의 정보를 전달할 있는 고맥락 문화(high context culture) 형성한다. 물론

세상에 알기 쉬운 정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저자는 ' 만나면 메모하고,

만나면 기록'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충고하면서 지적 생활의 축적은 고유한

개성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내며 나아가는

삶은 사람이 하나의 소설, 하나의 책인 것처럼 자신의 인생에 개별적인 의미와

줄거리를 부여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정보 분류법 요즘 내가 주로 사용하는 '해시 테크' 정리법이 있어

소개하고 싶다. 메모하고 수집해 놓은 정보의 양은 방대하고 범위도 넓기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부를 읽을 없다. 메모의 핵심들을 헤시태그로 정리해 놓으면 찾기도

쉽고, 원하는  정보를 얻기도 수월해진다. 이와같이 '정보' 관한 정보인 해시태그는

'메모 정보'라고 부르는데 이는 딱히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호한 것들에 이름을 붙이기

좋은 방법이다. 물론 이미 메모를 분류해서 정리해온 사람이라면 '굳이'라는 대답을 할지

모르지만 새롭게 기록을 정리하고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려는 사람이라면 방법을

권해주고 싶다. 훌륭한 자신만의 '지식 저장소' 가지게 될것이다. 


'책이 있는 곳을 쫒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것이 향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 캐나다의

전설적인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Weyne Gretzky) 말은 우리의 방향성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록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미래를 준비한 이들이

바라보는 그곳에 우리가 꿈꾸는 미래가 있음으로 안다면 분명 우리의 시선은 '지금 이곳'

아닌 '저기 그곳' 바라보아야 할것이다. 1년후, 5년후, 10년후 아니 평생이라는 로드맵은

다름아닌 내가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수지옥
마츠바라 준코 지음, 신찬 옮김 / 동아엠앤비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00 시대이다. 일본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도 장수 시대를  살고 있다. 예전엔 장수가 

  하나였는데  지금은 '오래 살고 싶지 않은 사람' 늘어날 정도로 장수에 대한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다. 이러한 상황 속에 '죽고 싶어도 죽을  없는 고령자' 많은 이른바 '장수 

지옥'대해  책은 가감없이  이야기한다. 

 

'well-dying'

이제는 well-living 보다 well-being 나아가 well-dying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마냥 장수가 

축복은 아니기에 어떻게 사느냐와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한 시기이다. 그런점에서 이 책은 독특하다. 

well-dying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well-dying을 위한 well-living을 이야기 한다. 쉽게 말하면 

잘 죽기 위해 잘 사는 방법을 말한다. 잘사는 것은 목적과 방향이 분명한 삶이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것이 잘사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계획도 잘 세워야 하며 이를 추진할 

의지도 필요하고 끝까지 완수할 안내도 필요하다. 

목적은 실현가능해야 한다. 허황된 꿈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꿈을 꿔야 하며 이를 위한 단계별 계획도 

필요하다. 단순히 나는 무엇이 될것이고, 나는 무엇을 할거야가 아니라 그 무언가가 되고, 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시테크의 대가인 

윤은기 박사는 '시테크'를 넘어서 '초테크'를 주장하기도 했으나 인생에 대한 자신만의 '마스타 플랜'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할것이다. 

뚜렷한 목적이 세워졌다면 다음은 실천하는것이 중요한데 여기에는 의지가 필요하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계획과 목적까지는 가지지만 '의지' 부분에서 꺽이기 쉬우며 포기자가 속출한다. 하지만 

뚜렷한 목적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미래가 있기에 어려움이 오더라도쉽사리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는 것이 well-living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고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이 책은 삶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노화와 죽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두렵다. 언제까지 살지는 신의 영역이지만 마지막 

떠나는 길을 고통 없이 맞이하는 일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고 준비할 수 있고 이렇게 하는건지 

well-dying이다. 

이제는 오래 사는 것이 두려운 시대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죽음을 준비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저자는 '좋은 죽음'을 위하여 알아두어야 할 10가지 지침을 소개하는데 그 마지막 제안인 

'지금을 즐기고 있는가'라는 항목이 눈에 들어 온다. 당첨확률 100%의 복권인 죽음을 준비하느라 혹은 

두려워서 정작 '지금'을 헛되이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죽으면 그만이다.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인지 사람마다 천차만별일테니 단언할 수는 없지만 잘 죽고 싶다면 

잘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사는게 중요하다. 지금 현재의 삶이 평범하더라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지금을 즐기고 누려야 한다. 

well-being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고 그때가 언제일지는 몰라도 

최선을 다해 현재를 살고 싶고 자신의 죽음을 향한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저자의 마지막 말이 

생생한 지금 나 역시도 그 여정에 함께 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한을 새롭게 알면 통일이 보인다 - 탈북민, 한국 교회에 심어준 하나님의 밀알
김상수 지음 / 두란노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한은 북한 사람들 조차 모른다. P79

북한 사역을 주의 점은, 남한 사람들은 섬기고 싶어 하고 북한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P170



같은듯 다른 그러나 결국은 같은 그런 나라가 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어쩔 없는

하나의 민족, 70여년을 다른 체제에서 살아 이제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노년층이거나

점점 수가 줄어가는 즈음, '통일'이라는 화두는 정치지도자의 폭주 기관차와 같은 행보로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다. 법과 제도적 통일 이전에 사람의 통일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는

이정미 판사의 말처럼 서로 알아야 하며 서로 관심을 갖아야 하며 서로 친해야 가능한 것이

통일 이기에 '통일 한국' 최전선에 있는 저자의 글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사랑은 관심이다. 

관심은 상대방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이고, 알고 싶어 하는 것이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은 행동이다. 어릴적 어떤

목사님께 들은 말인데 수십년이 지나도 잊혀 지지 않는 말이 있다. '사랑하면 지갑이 열린다'.

주선애 교수님도 사랑하기 때문에 수많은 거짓과 기만을 당하시면서도 여전히 지갑을 열고 계시는

것이다. 사랑하기에 가능하며 사랑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통일을 바라보는 경제적, 정치적, 민족적인 관점은 차지하더라도 참된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 세속적인 계산에 입각한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 맞게 통일을 바라 보아야 하며 통일 이전과 이후 모두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통일을

이루어 가야 한다. 복음보다 이념을 우상화하고, 복음의 자리에 하나님 대신 다른것을 앉혀 놓고

우선시하던 이분법적 사고에 의한 이념 프레임에 갖혀 이데올로기 논쟁에 빠져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C.S.Lewis 지적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주의(ism) 사상을 신봉하게 되면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관심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말은 거듭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세우신 목적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그들을 부르셨고 사용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의 '통일' 하나님의 어떤 계획하에

있는 것일까? 하나님 나라와는 무관한 정치적 이념으로만 똘똘 뭉쳤거나 극단적 민족주의의

신봉자이거나 충실한 박애주의의 헌신자라는 이유를 제외하면 과연 우리에게 통일은 필요한가.

! 한가지 빠졌다. 북한 땅에 무수히 매장된 지하자원과 남한의 우월한(?) 기술력을 결합하여

충분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있어 서로가 윈윈 있다고 생각하는 자본주의 경제 이론도 있다.

이러한 것들을 모두 제하고 나면 남는것이 별로 없다. 아쉽게도 '하나님 나라'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여전히 우리는 통일을 말한다. 갈길이 너무 멀다. 북한을, 북한 사람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에겐 의지도 노력도 없고 정보도 제한적이지만 통일의 열병에 빠져 있다.  실제로

북한교육현장에서 사용하는 자료의 대부분은 3 이전의 것들이고 10년이 넘은 자료를 사용하는

경우도 본적이 있다. 하루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 살면서 과거를 붙잡고 있는 기형적

모습이 아닐 없다. 


그런데 다행히도 우리도 그랬던 시절이 있다. 아무런 준비도, 생각 조차도 없던 그때, 인도로 가고자

했던 언더우드 선교사를 조선으로 인도하시고, 중국 선교에 관심이 있던 토마스 선교사에게 조선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 땅에 복음을 심었다.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고

가려 하지 않던 조선을 향한 '섭리'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섭리가

우리의 통일을 인도할 것이다.

 

'이는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55:8)

통일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캘러의 '내가 만든 ' 보면 '사람의 마음은 우상공장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선하고 좋은 것도 우상으로 만드는 나쁜 죄의 본성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통일'

분명 좋은 것인데 이를 통해 얻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이 통일의 본질마저 훼손시키고 결국 하나님의

섭리도 잃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대신 세상의 부와 이익과 권력들이 자리를

차지하면 이것이 우상이 된다.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 앞에 감옥이 열리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지만 도망치지 않고 자리를 지킴으로 옆에 있던 죄수와 간수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나의

유익과 세상의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선포되고 회복되던 곳이 하나님 나라이다.

나라에는 우상이 없다. 통일도 이것보다 앞서서는 안된다. 


책의 내용 중에 '도문교회 십자가와 밤에 넘어 할머니'와의 대화는 많은 도전을 준다. 너머 두만강

도문교회 십자가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자신의 예배이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며칠씩 걸어서

위험천만한 길을 걸어 온다는 할머니의 고백은 너무나도 편하고 안일하게 예배에 임하는 우리의 

형식주의와 일수찍기식 예배에 경종을 울린다. 1997 사천성 인근 마을에서 드렸던 예배가 생각 났다.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3일을 걸어온 자매들, 예배를 드리려고 일주일의 휴가(사실 돌아가면

자신의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넘겨져 직장을 다시 구해야 하는) 얻어 형제, 예배를 드리려고

일년을 기다렸다는 부부, 그들과 함께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중국 찬양을 부르는데 당시 가사가

쓰여진 궤도의 종이가 30여장이 넘어가는 곡이었다. 찬양을 인도하던 자매가 은혜를 받으셨는지

重做를 외치셔서 곡을 다시 불렀음에도 모두가 눈물 바다가 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도

할머니도 이랬을 것이다. 


진정한 예배는 형식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선하심을 맛보는 것이다. 탈북민

에게도, 우리에게도, 북한 땅의 동포들에게도 진정한 예배가 있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예배의 회복'

아니라 '예배의 시작' 필요할지도 모른다. 맛보아 알아야 하며 경험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타암(טַעַם)이라는 동사를 사용한다. 단어는 체험해서 직접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경험은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키고 믿음을 강하게 한다. 또한 알아야 한다. 초월적 존재에 대해 수는

없지만 구약성경은 940회나 소개 '야다(יָדַע)'라는 단어를 통해 '관계적 ' 이야기 한다. 스스로

드러내서 알게 하신 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신뢰하는 것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

'(34:8) 구절에서 피한다는 무서워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의 품에 안기는 것을

의미하며 그를 신뢰하며 의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언가를 받아야만 성공한 예배가 아니라 내가 드려지는 

그런 예배가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현실에 급급하지 밀고 ' 너머 ' 꾸어야 하며 꿈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누구나 꿈을 꾸지만 꿈을 이루는 이가 적은 이유는 꿈만 꾸기 때문이다. 꿈이 현실이 되도록

힘쓰고 애써야 한다. '통일 한국' 꾼다면 꿈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하며, 가운데

함께 이루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꾼다면 꿈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탈북민이 한국에

오는 자체가 통일의 과정이다라고 말하는 태영호 북한 공사의 말처럼 혼란과 갈등을 막을 있는

완충지대로 탈북민을 '먼저 통일' 이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해야 한다. 


책은 유독 북한 선교에 관심이 많은 자매에게 선물할 생각이다. 북한을 품게 하셔서 기도하게 하시고

준비하게 하시는 주님 앞에 묵묵히 순종하는 자매에게 도움과 도전이 같다. 또한 책은 통일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해야 모든 목회자들이 읽어 봤으면 좋겠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맞닥뜨리는

혼란이 아니라 섭리 가운데 다가오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되는 통일' 꿈꿔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일은 떡볶이
이민희 지음 / 산디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매운 것을 먹는 나도 떡볶이를 좋아한다. 하굣길 시장 어귀에서 파는 떡볶이와

호떡을 먹기 위해 어머니에게 문제집을 산다고 거짓말을 했던 적도 있고, 친구들과

떡볶이를 배터지도록 먹기위해 돈을 모았던 적도 있을만큼 떡볶이를 좋아 했다. 그러다

서울로 전학을 오면서 신세계를 발견했다. 늘상 가늘고 길쭉한 밀떡으로 만든 시장표

떡볶이만 보고 자란 나에게 연세로에서 만난 두툼한 가래떡을 썰어 만든 떡볶이는

새로운 문물이고 충격이었지만 아쉽게도 여전히 밀떡이 좋다. 밀떡에서 나는 밀가루

냄새도 좋고, 굵지 않아 잘게 씹히는 식감도 좋고, 뭐니뭐니해도 밀떡에 배어 있는 고추장

맛이 좋다. 하지만 나이에 따라 입맛도 변하는지 점점 먹는 횟수가 줄어 든다. 


저자도 그랬던 같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그때의 추억을 기억하며 열명의 떡볶이

요리사와 열개의 추억을 만들어 낸다. 공통점이 많다. 소중한 것은 원래 나중에 먹는거야라고

하면서 계란을 마지막에 먹는 친구나, 먹는 떡볶이 보다 맛있게 만들 자신이 없기에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을 포기하는  친구와 '경민분식'인지 '보람분식'인지 이름도 모호한

'교회 집사님'분식집에서의 추억도 비슷하다. 


'천당' '지옥' 경험하는 손수 떡볶이는 언제나 설레고 기대되지만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래서 '그냥 사먹을 '하는 아쉬움을 드러낸 적이 두번에 아니다. 처음 만들어 보는

떡볶이이기에 설래는 한편 두려움에 쌓인 친구는 힘든 날이면 떡볶이를 떠올리는 마니아이지만

직접 만들어 본적이 없기에 유명하다는 레시피를 동원해 보지만 이러저러한 기본 준비가

쉽지 않아 결국 자신만의 방식을 택하며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여자친구에게 떡볶이를 만들어

주겠다고 집에 초대해서는 제대로 만들 몰라 정신없이 헤매다 결국 밖에 나가서 사먹었던

나보다는 그래도 조금 낫다. 결국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저자의 말은 좋다.

'내가 먹으면 된다'


반가운 인물을 만났다. 언젠가 리뷰를 썼던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도서관 사서 실무' 작가

강민선이다. 처음 책을 읽었을 쉽게 쓴다고 생각했던 작가인데 저자의 지인으로

' 갚은 떡볶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흥미로웠다. 다른 책으로 만난 작가를 새로운 책의

챕터의 주인공으로 만나게 되니 반가웠다. 어린 시절 너무 먹고 싶은 떡볶이를 외상으로

사먹는 당돌함과 내심 마음 아파하는 여린 마음은 이미 그의 책을 통해 느꼈던 감정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자신의 집에서 떡볶이를 하지 못하기에 저자의 주방을 빌려야 하는 그는

물이랑 가스만 쓰고 간다. 칼질이 필요한 모든 재료는 썰어 왔고 냄비까지 가져와 떡볶이를

만들어 설거지까지 마치고 가져 것을 그대로 가져가는 강민선은 내가 그의 책을 읽으며

느꼈던 모습 그대로이다. 그리고 그가 기억하는 일회용 비닐을 씌운 초록색 멜라민 접시는

나의 기억에도 존재한다.

 

책은 순수하게 떡볶이 책이다. 저자의 떡볶이에서 시작해서 다른 사람의 떡볶이와 인생이 담긴

그런 책이다. 각자의 인생이 다르듯이 각자가 추구하는 맛과 사연도 다르다. 이렇듯 우리 삶은

다름의 연속이다. 열명에게서 느껴지고 보여진 열가지의 떡볶이 처럼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가운데 우리네 삶은 더욱 풍성해 질것이다. 잠시 동안 기억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