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만 행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샛별(꽃샘) 지음 / 싸이프레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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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정책의 실패로 인구 절벽 현상을 겪고 있는 우리 현실에 난임이 아닌 자신들의 순수한

결정에 의해 아이 낳은 것을 포기하는 저자와 저자의 남편의 이야기는 묘한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출산을 종족 번식의 대표 수단으로 생각하는 우리 세대에겐 ''라는 의문이, 자신들의 자주적

권리와 자유를 강조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당연한 결정' 있는 주제는 앞으로 많은

이들이 고민하게 문제이다. 물론 아이가 없어도 행복하게 있고, 현재 누리는 만족과

자유는 얼마든지 유지 가능하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이를 낳는것이 아니라 낳는

것입니다.'


결혼 이유가 좋았다. '이별 하고 싶지 않아서'. 말이 너무 좋다. 어쩌면 우린 이별을

준비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에 만남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이별이 따라온다. 그런데

이별이 싫어서, 아마도 이별이 하고 싶지 않아서 저자는 결혼을 선택한다. 2년반이라는

시간동안 대화의 소재가 마를 날이 없었던(이건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다. 정도면 결혼해야

한다.)유순한 연애를 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했고 자신의 변화를 느꼈고 마침내 결혼이라는

고달프고 힘든 목표에 도달한다. 그것도 '완벽한'이라는 환상이 아닌 자신들이 꾸미는 '행복'

결혼식을 통해. 


그리고 이들은 자발적으로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결정한다. 세상은 그들에게 수많은 말들을

그것도 가볍게 뱉어 낸다. 다른 남자와는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었고 그의 옆에 있는 여자는 무조건

자신이어야만 했기에 결혼을 선택한 저자에게 '아이를 낳지 않을거면 뭐하러 결혼을 했냐' 질문은

무책임한 질문이건 같다. 결혼에서 둘의 행복보다 아이의 출산이 중요하고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그런데 이런 질문 앞에 저자는 여전히 당당하다. 그저 남편과 함께하는 현재의

삶을 사랑하여 한껏 껴안아 지키고 싶을 뿐이다. '저는 그냥 오늘 같은 일상을 살고 싶었거든요'


그래도 걱정은 있다. 대부분의 '딩크부부(딩크족, Double Income, No Kids')'들의 고민인 '노후' 문제다.

아이 없이 살기로 결정 만이 외롭게 늙어 가는 부분과 무엇이 닥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해

한없이 의연해 없는 상황이 걱정이 된다. 첫번째가 ''이다. 생활에 필요한 돈에서부터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자금은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 저자 부부는 실리를 택한다. 당장 지금의 것이

아닌 앞으로의 것들을 생각하며 투자하고 배운다. 조금은 막연해 보이지만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것

같다. 현실의 즐거움을 조금 참고 미래의 가치와 행복을 위해 투자하는 마음, 생각은 쉽지만 결단하고

행동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나가 아이를 낳지 않으면서 생겨난 '시간' 활용하는 것이다.

'안하고 살아도 되지만 왠지 해보고 싶은 그것' 찾아 남은 시간들을 투자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순수한 즐거움에 '즐길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손을 뻗어 앞에 떠다니는 기회를 힘껏 잡으려고 노력한다면 원하는 것이나 생각하지 못한것을

손에 있는 너무 많은 세상이다. 무엇이든 되고, 무엇으로든 돈을 벌면서 신나고 풍족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면 된다. 저자의 아버지의 결혼식 덕담처럼 '세상을 놀이터 삼아서 다른 사람들과

재미있게 살고 즐기면서 살면' 된다. 아이를 낳아야 된다는 세상의 오지랖에 대항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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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 동서양을 호령한 예술의 칭기즈칸 클래식 클라우드 18
남정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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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예술이 있고, 누구나 예술가가 있다.'

어쩌면 말은 무언가를 이룬자의 오만함으로 비춰질수도 있지만 나는 말이 좋다. 예술을

곳에 있거나 범접하기 어려운 것으로 치부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가까이 있는 그것이

예술이 되고 작품이 되어 우리 삶에 녹아 지는 , 그것을 예술이라고 한다. 그런 그이기에

모방이나 베끼기는 없다. 하나의 작품이 끝나면 그것에 대해 완벽히 지워버리고 새로운 작품에

대한 고민에 빠지기에 전에 없던 그것이 항상 그의 작품을 통해 드러난다.


우리는 백남준을 해외파로 알고 있다. 해외에서 배워서 해외의 문물과 예술 감각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맞다. 대부분의 성인시기를 그는 외국에서 보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이렇게 말한다.

'사실 인생을 결정지은 사상이나 예술의 바탕은 이미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모두 흡수한 거거덩'.

그도 그럴것이 그는 중학교 '도래미파솔라시' 7음에다가 화음을 곁들이면 완성되는 전통적인

음악을 배격하고 12 기법을 도입한 '현대음악의 아버지' 같은 존재인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nberg, 작곡가) 프랑스의 사회학자 레몽 아롱(Raymond Aron, 사회학자, 정직한 좌파는

머리가 나쁘고 머리가 나쁜 좌파는 정직하지 않다는 유명한 말을 남김) '지식인의 아편'에서

마르크스사상에 대한 지식인들의 무비판적인 수용과 그들의 행동을 아편중독자라고 평할 정도로

당시 지식인들이 심취했던 카를 마르크스를 경기보통학교에 들어가면서 접하게 되고 이는 그의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결국 그는 도쿄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더욱 쇤베르크에 열광하고

졸업논문을 쇤베르크에 대해서 썼을 정도며 쇤베르크를 알게 것을 자신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서

' 1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이 다니는 길로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백남준의 과거 미국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그는 어릴적에도 다니던 길이

아니라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길을 골라 다니곤 했다. 그는 침대도 없이 테이블과 온갖 잡동사니 뿐인

지하 창고에서 살았다. 혼돈의 세상 속에서 희안하리만치 멋진 예술을 창조해 냈고 세간의

이런저런 질타와 혹평을 받긴 하지만 그의 인생의 역작인 'TV 부처' 같은 대작을 만들어 낸다. 그는

진정한 천재다. 그래서 저자는 백남준을 '20세기의 다빈치'라고 부른다. 다빈치 시대에 다빈치가 미술,

과학, 음악, 종교등에 업적을 이루었다면 현대의 백남준 역시 그에 못지 않은 업적들을 방면에서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예술적 창조력은 폭이 광대하다. 저자는 이에 대해 '전위음악, 미디어아트,

사상, 노스텔지어, 플럭서스, 퍼포먼스, , 쌍방향 소통'이라는 단어들로 설명한다. 어쩌면 예술의

경지는 종교적 승화가 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백남준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파격, 괴짜, 광기, 변화무쌍'등이 아닐까 한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파격적이고, 그의 행동은 괴짜스럽고, 그의 예술혼은 광기에 가깝고, 그의 창조력은 변화무쌍하다.

이러한 그의 작품이 경기도 용인에 있는 백남준 아트센터에 있다. 이곳의 지번은 백남준로 10이다.

그곳에 가면 TV 물고기가 반갑게 맞아 줄것이다. TV 안에서 유영하는 물고기는 우리의 생각에 많은

물음표를 준다. 그리고 물음표는 백남준이 우리에게 던지는 없이 많은 질문 하나일것이다.

이곳 외에도 국립현대미술관과 원주 뮤지엄 산에 가면 백남준의 다른 예술 세계를 있다. 


참여와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은 예술은 독재 혹은 창작자 혼자만의 예슬이라고 말하는 백남준은

끊임없이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만 소통이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예술 세계에 가려져

소통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의 전향적인 소통 의지는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와 소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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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자의 그늘 아래 머물리라 1 - 하나님의 주권 전능자의 그늘 아래 머물리라 1
이재훈 지음 / 두란노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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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친숙한 것으로부터 분리를 요구한다. P31

하나님은 앞서지도 더디 가시지도 않는다. P122


전능자의 그늘 아래 머문다는 말이 좋다. 머물 공간이 있다는 곳과 머물 자리가 있다는 것은 사람에게

만족감과 위안을 준다. 그곳이 어디든 간에 말이다. 그런데 전능자의 그늘이라니. 보다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책을 들지만 마음 켠에 남은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는 복잡한

마음을 그대로 대변한다. 



'No Gain, No Pain'. '얻는게 없다면 고통도 없다' 말로 'No Pain, No Gain' 뒤집어 놓은 말이다.

저자의 말대로 '그야말로 진리다'. 소망이란 확실하게 얻을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현재의 고통을 참을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스러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망이 필요하고 우리는

소망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는다. 하나님은 예수를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의 사람으로 타락한

인류 가운데서 노아를, 그의 후손 셈을, 셈의 후손 가운데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을 선택하시고 그에게

손을 내미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내미심에 아브라함의 응답하고 순종한다. 친숙하고

익숙한 것에서부터 분리 시키시는 전능자의 주권에 그대로 순종한다. 아브라함에게 믿음은 분리

(separation) 의미했다. 믿음은 철저한 분리를 의미한다. 믿음의 삶은 이쪽과 저쪽에 걸치는 삶이 아니라

철저한 분리를 그래서 한나만 선택하고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실 그것을 바라보며 방향으로만 걷는 걸음이다. 


'회복'. 우리가 언제부턴가 자주 그리고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회복이란 '예전에 있던 그것을 다시

찾는다' 의미를 가지는데 정작 우리에게 '예전' 무엇이 존재 했는지가 문제이다. 가졌던 것이

없는데 무얼 회복한다는 말인가. 13:3-4에서는  '전에' '처음으로'라는 단어를 통해 이에 대해 분명히

말한다. 이렇게 예전의 무엇이 있어야 '회복' 가능하다. 지금의 우리와 같이 아무런 기억조차

없으면서 남들이 하는 말이 좋아 보이니까 쓰는 '회복' 어울리지 않는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벧엘과

아이 사이의 그곳' 처음으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 드렸던 곳이다. 아브라함의 영적 회복이

이루어진 그곳에 애굽에서의 실패를 깊이 깨달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나아오게 된다.

이때부터 벧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자리가 된다. 아브라함이 그리고 야곱의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영적인 '벧엘' 필요하다. 남들이 하니까 말로 하는 '회복' 아니라 진정한 영적

회복의 장소 말이다. 



'하나님의 침묵'. 예전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 우리는 너무나도 어이없는 상황 앞에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 짤린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지금 우리의 상황 앞에 이렇게

침묵하실리가 없는데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걸 보면 분명 하나님의 혀가 짤리셔서 그럴것이다라고

생각했다.(그래도 차마 하나님이 안계시다는 말은 못했다). 책에서 아브라함의 불신앙 앞에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다메섹에서 데려온 엘리에셀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몸에서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들의 방법으로 불순종을 저지른 아브라함에게

13년간 침묵으로 일관하신다. 즉각 잘못을 책망하셔도 될텐데 그냥 내버려두신다. 아브라함에게

시간에 영적 광야와도 같다. 하나님은 오래참고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조급함때문에 분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 같아 보여도

분은 조용히, 천천히, 쉬지 않으시고 자신의 일을 하고 계신다. 



참된 믿음은 자신의 고집을 포기하는 것이다. 믿음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실패와 아픔을 그리고

좌절과 고통을 수반한다. 믿음은 길게 보고 걸어가는 여정이다. 안에서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믿음이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웃음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비웃을 있다. 그러나 진짜

믿음은 이러한 불순종의 걸음을 멈추고 돌아오는 것이다. 자신의 고집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그분의

결정과 선택에 순종하는 이것이 믿음이고 아브라함은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C. S. Lewis

말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낚시꾼의 모습으로, 고양이의 모습으로, 사냥개의 무리처럼 다가오셔서

우리를 분과 조금 가깝고 친밀하게 만들어 가신다.


책은 요즘 새롭게 시작한 '말밥(말씀은 밥이다, 70 이상 되신 은퇴하신 장로님, 권사님, 안수집사님

성경 공부)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인생 노년기를 조금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아브라함의 삶은 도전이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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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의 편집 - 결정적인 순간에 이기는 대화법
김범준 지음 / 홍익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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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는 사람을 만든다. 말에는 사람의 일생이 담겨 있어 대화를 하다보면 사람의 삶이 유추된다.

말투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말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방식이나 느낌이다. 관계 속에서 나는

말투로 정의된다. 저자는 이에 대해 말투를 디자인하라고 주문한다. 예쁘게 다듬으라는 의미인데

억지로 꾸미라는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듣기 좋은 말투를 훈련하라는 의미이다. 


첫번째가 '간결함'이다. 단순함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필요 없는 말을 없애고 필요한 말에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명료하다' 말처럼 분명하고 또렷한 말투가 좋다. 짧되 핵심에 집중하는 명료한

말투가 복잡한 문제를 간단하게 정리하고, 결국 나의 일상을, 나아가 전체를 높여 준다. 주절주절

말하면 주접이 된다. 성공 철학의 거장 나폴레온 (Napoleon Hill)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해야 할지,

아니면 침묵을 지켜야 할지 망설이게 자신을 믿고 침묵을 선택한다.' 말할것 처럼 신중하게

선택해 간결하게 말하는 것이 번째이다. 하나는 긍정적이면서도 품위 있는 말을 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습관은 무서운 것이다. 의도적으로라도 그런 습관을 들이려는 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 노력에 의해 가질 있는 능력이다.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 하나를 만났다. '적절한 소통은 적절한 거리에서 나온다.' 실제로 그렇다.

너무 가까우면 거절도 어렵고 마지 못해 끌려가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러나 적절한 거리는 말과 하지

말아야 말에 대한 구분이 확실해지고 존중이 가능해진다. 거리라는 것은 충분히 따뜻해 질수도 차가워

질수도 있는 여지를 두는 것이다. 서로간의 거리는 상대를 존중하며 바라볼 있는 간격이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 무시하다 어려움을 겪거나 불필요한 논란을 만든다. 


시간을 근면함과 연결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겼던 미국 화폐 100달러의 주인공인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자신의 '시간 ' 지키려던 일화는 유명하다. 출판사를 경영하던 그에게

찾아온 고객의 거듭되는 할인 요구에 1달러, 1달러 50센트, 2달러의 가격을 제시하며 소중한 자신의

시간이 낭비되었으니 값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처음 일화를 들었을 자신의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으로 보지 않고 당당하게 가격을 책정하여 요구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단순하게 가격을 책정했다는 것이 멋진 것이 아니라 결정을 말로 표현했다는 것이 멋진 것이다.

단호하고 당당한 말투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심리학 용어에 제임스-랑게 이론(James-Lange Theory) 있다. 흔히 슬프니까 울고 기쁘니까 웃는다고

생각하지만 이론에 따르면 우니까 슬프고 기쁘니까 웃는다는 논리로 신체적 변화의 지각이 정서의

주관적 경험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표정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고 마음가짐에서 진정성

있게 표현되어야 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이다. 가식적인 표정은 '눈빛' '시선'에서 차이가 난다.

상대방에 대한 인상을 결정짓는 요인은 시각적 요소(이미지 바디랭귀지 비언어적 측면) 55%,

음성적 요소(목소리, 억양, 음색, 음조, 속도, 감탄사등) 38%, 대화 내용이 7% 이다. 결론적으로

시각적 이미지가 말의 내용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 커뮤니케이션 이론인 '메러비안의 법칙(The Low

of Mehrabian)'이다. 특별히 공적인 말하기는 상황에 맞는 매너와 어법등 신뢰감을 있는 요소들을

활용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청중의 감정과 생각을 보다

효과적으로 끌어 있다. 


책은 '말투가 바뀌면 삶이 바뀐다' 모토로 쓰여졌다. 말투를 바꾸면 '그냥 ' '괜찮은 '

바꿀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말은 삶의 가치를 바꾸는 힘이 있다. 나를 만드는 결국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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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버리기 연습 - 하루를 낭비하게 만드는 불필요한 시간을 내 여유시간으로 바꾸는 방법
와카스기 아키라 지음, 김은경 옮김 / 북스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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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속도를 찾기 위한 시간버리기 기술'

프롤로그의 제목이다. 인생의 속도. 20대는 20km 속도로, 30대에는 30km 속도로, 50대에는 50km,

60대에는 60km 속도로 흘러 간다고 말하는 인생의 시간, 이건 나이를 들면서 자연 체득되는 삶의

숙명과도 같은 현상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간가는게 빠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24시간 1440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여러 시행 착오를 겪은 저자는 자신의 과오를 통해 '낭비되는 시간을 버리고

내가 자유롭게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방법' 이야기 한다. 


우리는 바쁘다. 그래서 '바쁘다' 말이 입에 붙어 있다. 정말 바쁠까? 아니다. 우리는 바쁜것이

아니라 시간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사용하지 못해서 늘상 바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윤은기 박사가  '초테크'라는 말을 한적이 있다. 이제는 '시테크' 아닌 단위로 시간을

나눠서 사용해야 하는 '초테크' 시대가 열릴것이라는 전망이었고 실제로 그런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그런데 아쉬운것은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라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1440분이라는 하루의 시간 이런저런 이유로 낭비되는 시간이

우리에게 너무 많다. 시간들만 제대로 사용해도 우리에겐 최소 하루에 2-3 시간이 절약된다. 나름

일정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시간이 없는 우리에게 저자는 '없는 시간 짜내지 말고 숨어 있는

시간들을 찾아 내것으로 만들라' 말한다. 여유란 일을 완벽하게 끝냈을 생기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이 소비되는 시간을 덜어냈을 생기는 것이다. 


책을 읽다 요즘 한창 '미니멀 라이프' 약간은 다른 의견을 피력하는 저자를 발견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도 어느정도 '미니멀 라이프' 살려고 하지만 미니멀리스트들이 말하는 몇가지에

쉽게 동의 하기가 어려웠는데 동지를 만난 기분이다. 그중 하나가 '3 동안 안쓰는 물건은 버리라'

이다. 미니멀리스트들은 1년을 이야기 하는데 사실 그건 너무 짧은 같다. 계절로 치면 한번

지나가면 그만이 되어 버리기에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저자는 3년을 이야기 하며 나와

동일하게 1년은 너무 짧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3년이 길고 짧은 것이 문제가 아니고 기억에서

잊혀진다는 것을 말하는데 수긍이 된다. 기억에서 잊혀지면 자연히 사용 빈도도 거의 없어질 것이고

이때 과감하게 버리면 된다. 그러면서 조금 아쉬웠는지 저자는 '보류 박스' 말한다. 선뜻 결정하기가

어렵다면 과감하게 보류 박스에 보관하다 사용하게 되면 다시 꺼내 쓰면되고 아니면 버리면 된다. 


시간 버리기는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다. 의미없이 사용되어지는 시간 앞에 ''라는 의문을 가지는 순간

우리는 싸움의 승기를 잡을 있을 것이고, 헬라어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

(Chronos)' 시간이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시간인 '카이로스(Kairos, 목표물을 거의 정확하게 맞추는

지점 혹은 목표물을 향해 화살을 당기려는 순간)' 시간으로 바뀌게 것이다. 결정권은 시간에게,

미래에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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