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은 왜 고장난 자동차를 광고했을까? - 대중을 사로잡은 글로벌기업의 스토리 전략, 개정판
자일스 루리 지음, 이정민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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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나이키가 얼마나 흑자를 보았다거나 전략이 어떻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이키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이키의 인사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넬리 페리스의 말이다. 나이키의 생각을 읽을 있다. 그들은

생산과 판매망이 아닌 마음을 파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이 긍정적이지만 않다. 나이키 역시 맞춤

제작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노동 착취 기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도 했다. 이처럼 브랜드는

브랜드를 어떻게 스토리텔링 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그래서 기업들은 '우리 기업이

과연 얘기 거리가 있는가' 대해 심사숙고 하고 있다. 


소비자에게 각인된 브랜드는 기업의 강력한 무기이자 힘이다. 1987년에 있었던 영국 성공회 대주교인

테리 웨이트의 납치 사건이 그렇다. 시아파 무슬림 단체에 납치 웨이트 대주교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과 대화조차 없었지만 그가 그려준 펭귄 그림을 통해 펭귄 출판사의 책을 구할

있었고 1763 만에 풀려난 그가 '펭귄 출판사에서 출간 책은 어떠한 책이라도 상관없이 읽을

하다고 생각했다' 인터뷰는 펭귄 출판사의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이처럼 사람의 머리 속에 각인된

브랜드는 어지간 해선 바뀌지도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탁월한 상징은 독특하고 강렬한 인상을 준다.

마치 턱시도를 입은 토끼처럼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코카콜라의 뉴코크 사태'에서도 증명된다.

1980년대 펩시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위기의식을 느낀 코카콜라가 연구와 시음을 통해 펩시와 흡사한

맛을 내는 '뉴코크' 출시하고 기존의 콜라 생산을 중단하자 미국인들이 격분했고 항의가 빗발치고

결국 기존의 콜라를 다시 생산하기로 결정하는 일이 발생했다. 미국인들에게 코카콜라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몸에 익은 관습이고 생활방식 자체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 맛있다' 선택한 펩시가 아닌 코카콜라의 손을 들어 것이다. 결과 1985

1년을 제외하곤 지금까지 한번도 1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 있었다. 


'Keep it simple, Stupid'

적은 것이 많은 것이라는 말은 적은 것으로 많은 것을 생산하고 적은 비용을 들여 좋은 상품을

생산한다는 의미이다.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줄일수록 생산성은 높아지고 품질이 향상된다. 테스코의

'우리는 고객을 위해 누구보다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우리는 자신이 대우 받고 싶은대로 모든

사람을 대우한다' 기업가치는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단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보다 쉽지 않고

그렇게 어렵고 힘든 기업 가치를 실현한 그들이 세계적인 기업이 된것처럼 명확한 비전과 가치야말로

브랜드의 핵심이다. 


폭스바겐 비틀의 불량품 자동차 광고는 어떤것이 훌륭한 광고인지에 대해 보여준다. 서구에서 불량품을

의미하는 단어 'Lemon' 사용하여 과장과 조작이 난무하는 시장에서 자신들의 정직함과 진실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광고(앞좌석 사물함 크롬 도금에 작은 흠집 발견 교체 요망) 40년이 흐른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세계 최고의 광고' 선정되기도 했다. 비틀이 가진 장점은 실속있는 크기에

연비가 좋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경제성인데 여기에 요란한 겉치레가 없는 광고를 통해 신뢰성마저

얻게 된다. 이처럼 광고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무기는

'진실함'이다. 


책에는 수십개 기업들의 브랜드 스토리가 나온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적인 기업들이다.

브랜드 스토리는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많은 노력과 아픔을 가진 생생한 기억들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쌓아온 기억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며 선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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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쉼을 찾기로 했습니다 - 퇴색된 마음에 빛을 더하는 시간
김유영 지음 / 북스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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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쉼을 원하고 쉼을 말하지만 쉽지 않다. 어느 누구도 쉼에 대해 이것이 쉼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각자의 상황이나 환경과 위치에 따라 쉼의 형태는 다양하고 깊이 역시 천차만별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쉼은 예수와 연관되어 있고, 불교에서 말하는 쉼은 비움과 관계되며, 세상이

말하는 쉼은 '내버려 ' 닿아 있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 앞에 '자기와의 마주섬' 쉼의 주제로

삼는다. 그러면서 느린 거북이의 걸음을 이야기 한다. 걸음, 걸음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는 .


나이가 들었다는 것과 늙었다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은 그만큼 성숙해 짐을

의미한다. 나이의 무게 만큼 켜켜이 쌓인 삶의 경험들이 자신을 더욱 성장시키며 오롯이 ''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사람들을 보며 배우고 따르고 존경하는 것이다. 그러나 늙는다는

것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 점점 '꼰대' 되는 것이다. 영글은 열매처럼 시고

떫고 맛이 안난다. 시간이 지나 맛난 열매가 법도 한데 여전히 그대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게서

점점 밀려 나게 되고 손가락질을 당하게 된다. 멋지게 나이들어감은 삶에서 마지막 열매를 맺기 위한

노력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것에도 휩쓸리지 않고 오롯이 자기 자신이 되어 가는 것이다. 


울음은 슬퍼서만 우는 것이 아니다. 

울음은 사람의 감정이 극에 달하면 나온다. 그것이 슬픔 일수도 분노 일수도 기쁨 일수도 사랑일수도

있다. 울음은 슬픔의 결과물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가지는 감정의 최고점이다. 진정한 사람은 눈물을

흘릴 아는 사람이다. 제때 알고, 주변의 불행을 보며 눈물 흘릴 알고, 상대방의 최고의

기쁨의 순간 기꺼이 같이 울어 있는 사람이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다. 아쉽게도 지금 우리에게선

찾아 보기 힘든 일지만 말이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이 손을 내밀면 잡을 있는 곳에 있는데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멀리 곳을 바라 본다. 멀리 있는 곳에 있는 신기루를 행복으로 착각하고 그것을 잡으려고

애를 쓴다. 마치 파랑새를 찾으려고 세상을 돌아 다니다 집에 돌아와보니 바로 그곳에 있었던 처럼

행복은 가까이 있다. 내가 가진것 그것이 행복이고, 곁에 있는 사람 그것이 행복이고, 지금 누리는

시간 그것이 행복이다. 익숙한 것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살아가면서 어려운 하나가 '중심 잡기'이다. 마음의 중심도 생각의 중심도 여간해서 잡기가 어렵다.

중심을 잡는 다는 것은 자신이 바로 있다는 의미다. '바르다'라는 말에 어원을 보면 '바르게 있다'

의미와 '마음을 바로 잡다'라는 의미가 공존 하듯이 우리의 삶에서도 마음과 자세가 바르게 있어야

한다. 이렇게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 잡기' 가능해진다. 중심이 반듯한 사람의 삶은

멋지고 아름답다. 결국 쉼은 중심 잡기의 시작인 것이다. 바르게 쉼을 통해 마음과 생각과 행동의 중심

잡기가 시작되고 그런 사람의 삶이 멋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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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재즈를 듣게 되었습니다 - 인문쟁이의 재즈 수업
이강휘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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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는 어렵다. 우리의 통념이다. 아니 정말 어렵다. 클래식 만큼이나 어렵다. 듣기 좋고 부르기

편하라고 만든 곡이 점점 어려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재즈와 거리를 두게 되고 나라의

음악이 되어 버렸다. 그런 우리에게 인문쟁이 선생님이 제목도 그럴싸하게 '어쩌다 보니 재즈를

듣게 되었습니다'라는 책을 출간했고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고 이해시킬지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들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재즈를 이해하기 위해 미국의 역사와 상황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는 말부터 마음에 들고, 'Jazz'가는 단어가 얼마나 매력적으로 생겼는지 모른다는

설명도 마음에 든다. 그런 그가 소개하는 첫번째 뮤지션은 바로 '욕쟁이 거장'이다. 


우리는 흔히 거장이라면 이름에 걸맞는 품격과 지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욕쟁이는

우리의 그런 기대를 여지없이 부숴버린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1926-1991) 그런 인물이다.

재즈가 방향성을 잡지 못해 갈팡질팡 당시 비밥, 재즈, 하드밥, 퓨전 재즈라는 장르를 사람의

경력으로 모두 설명 가능케한 인물이 바로 그다. 그래서 세인들의 그를 '재즈의 (King of Jazz)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의 삶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당시 예술가의 전형적인 삶을 살았다고 하는

부류도 있고 오만하고 괴팍하고 욕을 입에 달고 살았던 약쟁이라고 폄하하는 부류도 존재한다.

음악적인 면에서도 그의 트럼펫은 분명 찢어질 날카로운 음색을 가져 처음 듣는 이들에게는

거부감을 수도 있지만 정적인 즉흥 연주와 만난 욕쟁이 트럼펫터의 날카로운 음색은 마일스

데이비스만의 서정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이런 거장 마저도 페르소나(Persona, 가면) 써야 했다.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 흑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시절에 그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거칠게 보이는 방법을 택했고, 흑인이 만들어 재즈라는 장르를 백인들에게 빼앗기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오만이라는 가면을 선택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이 '가면을 정체성' 만이

살아남은 시대, 페르소나의 시대이듯 당시의 그들도 그렇게 격렬하게 살아냈다. 


하나의 음반을 만난다. 저자의 맥주캔을 개나 따게 만든 에번스(Bill Evans, 1929-1980) 트리오의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이다. 피아노와 베이스가 경쟁을 벌이는 듯한 연주라든지 현장감을 너무

살려 어쩌면 오히려 손해를 수도 있는 현장 녹음이라던지 대체로 트리오에서 피아노가 전체를

리드하기 마련인데 베이스에게 길을 열어주는 느낌의 연주등은 재주를 좋아 하는 사람 대부분이

에번스를 좋아 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변화무쌍한 에번스의 피아노 연주는 원곡의

궤를 뛰어 넘어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수준이고, 과감한 스콧 라파로(Scott LaFaro) 연주는

보통 피아노 뒤에서 백킹(Backing)으로 리듬을 이끌어 가는 베이스의 역할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자신만의 연주 세계를 유영한다. 아마도 둘만 있었다면 서로간의 치열함이 너무 강해서 음악적으로

많이 부딪쳤을텐데 여기에 절묘하게 드러머 모션(Paul Motian) 자리하면서 서로의 치열함을

연합으로 이끌며 조화를 이루어 낸다. 특히나 그의 브러시 연주는 베이스와 피아노의 치열함을

'착착'하는 소리로 감싸 안으며 산으로 가려는 배를 수면 위로 향하게 한다. 그러나 정작 앨범의

진가는 관중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에 있다. 'Alice in Wonderland' 듣다 보면 쉴새 없이 잡담 소리가

들리고 심지어 어떤 여성은 고성을 지르기도 하고 어떤 관객은 기침으로 박자를 맞추기도 하는데

이게 연주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저자는 이게 재즈의 진면목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재즈는

점잔을 떨면서 고상하게 듣는 음악이 아니라 지친 노동자들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편하게 듣던

음악이다. 연주자는 연주자 나름대로 '그래. 너네는 떠들어라. 우리는 우리것을 하련다'하고 연주를

했을것이고 관객들은 연주를 안주 삼아 하루의 피로를 날리는 수다에 집중했을 것이다. 생생한

현장감을 담은 음반은 소장할 가치가 있다. 


인문쟁이 국어 교사의 재즈 수업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택한 저자의 접근이 신선하다. 딱딱하고 지루하고

어려운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복잡하고 난해하고 어려운 재즈를 가르친다는 편견과 선입견을 저자는

여지없이 깨버린다. '재즈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말처럼 그냥 있는 그대로 느끼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독특한 세계에 도달하게 것이고 그로인해

재즈라는 음악을 접하는 귀와 마음이 넓어지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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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 물욕 먼슬리에세이 1
신예희 지음 / 드렁큰에디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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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우 작가의 프리뷰 처럼 나도 정확하게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뚜렷한 관점으로 사실을

직시하며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표현한 글을 읽을 나는 희열을 느낀다. 신예희 작가가 '지속

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에서 보여준 글이 그랬다. 낭비 없는 동작으로 목표물을 조준하고

가성비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 낸다. 그런 그가 없는 것이 많고 필요한 것은

널려 있고 사고 싶은 것은 부지기순데라고 말하며 돈지랄에 대해 말한다. 기쁨과 슬픔에 대해.


돈지랄. 

우리에게 말은 좋은 의미 보다는 착한 소비나 현명한 소비의 반대되는 정도의 부정적 의미로

사용 됐다. 저자는 출발부터 다르다. 돈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쓰는 것이고 돈지랄은 '가난한 기분을

돌보는 '이라는 타당성 마저 들이댄다. 그래서 자신의 돈지랄을 넘어서 제대로 현명한

돈지랄을 시작한다. 책은 그런 책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솔직하게 말한다. '보여주고 싶고

티내고 싶고 자랑하고 싶다.'


'아끼면 된다' 나의 지론이기도 하다. 정말 그렇다. 괜히 이건 좋은거니까 나중에 라든지 이건 맛있는

거니까 나중에 라는 어설픈 쟁여두기로 버리고 망치고 손해 본게 두번이 아니다. 그냥 괜히 아끼다

똥이 되어 버리면 버릴 배의 아픔이 찾아 온다. 사실 아낄 물건은 아끼고 후딱 써야 물건은 얼른

써야 하는데 우린 반대로 때가 많다. 지금이 제일 맛있고 지금이 제일 예쁜데 아껴서 똥을 만든다.

물론 똥을 폄하 하거나 똥의 기능과 효용 가치를 절하 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냥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져

버린다는 의미다. 언제 올지 모르는 나중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말자는

말이다. 


저자와 나는 여행 패턴이 비슷하다. 20대에 잠만 자는 숙소 비용이 아까와 유스호스텔이나 난장도

불사했던것도, 30대엔 그나마 조금은 사람 사는(?) 공간 같은 저렴한 호텔을 사용했던 것도, 40

넘은 후론 독립적이고 편안한 집과 같은 레지던시나 아파트 같은 곳을 찾게 되는 것도 그렇다. 커피를

유난히 좋아 하는 나도 여행지 숙소의 선택 고려 사항 하나가 '스타벅스'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와

숙소 주변에 맛있는 커피집이 있느냐다. 맛있는 커피 잔이 주는 행복감은 하루의 컨디션을

좌우하기에 더욱 그렇다. 내가 여행에서 누리는 최고의 사치는 아마도 '커피' 것이다. 


세상에 '절대' 없다. 절대하지 않을거야라고 했던 말들 과연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나의 기준도 변한다. 결코 절대는 없다. 취향이란게 유행이라는게

원래 돌고 도는 것이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그냥 변하는 것에 맞춰 순응하면 된다.

억지로 벗어나려고 발버둥칠 필요도 몸부림칠 이유도 없다. 그래봐야 본인만 힘들고 지친다. 그냥

흐름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즐기면 된다. 저자의 마지막 말이 기분 좋다. 

'오늘도 내일 좋은 것을 욕심내며, 기쁘게 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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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많으니 그냥이라고 할 수밖에
을냥이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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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두려워 하지 . 단순하게 생각해. 실패하면 하면 되고 안되면 마는 거지 '

묘생 9년차의 말이다. 그만큼 살았으니 아는 것도 많고 지혜도 깊을텐데 어째 잔소리처럼 떠드는

어떤이들의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가? 인생에서 한번 실패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몰라서 그러는 걸까, 온갖 생각이 든다. 삶은 타워에서 떨어지는 것이나 울어 대는

새를 잡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과는 다른데라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책이 자꾸 책상의 구석으로

밀려난다. 이러다가는 언제 손에 잡힐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시금 집어 들자 내가 좋아 하는

'그냥'이라는 단어가 눈이 계속 밟힌다. 그냥 '좋아', 그냥 '싫어', 그냥, 그냥, 그냥.... 분명 수없이

많은 이유가 존재 할텐데  '그냥'이다. 


사랑은 역시 어렵다. 모두들 자신이 하는 사랑이 제일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데 별반 다르지 않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이 쉬울 없다. 그렇기에 사랑 때문이 울고,

때문에 힘들어 하고, 사랑 때문에 죽기도 한다. 저자는 이를 고양이와 개의 사랑으로 비유한다.

처음 알게된 사실인데 개는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흔들고 고양이는 기분이 나쁘면 꼬리를 흔든다고

한다. 같은 동작인데 상황이 다르다.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론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없기에 상대를

낄수록, 상대와 오랜 시간을 같이 있고 싶을수록 우린 하기 어려운 말을 해야 한다.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힘들어 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길을 찾아도 그곳을 향해 걷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상 길이 아니다.'

그렇다. 아무리 삶의 방향성과 목적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것을 향해 날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모래성에 불과하다. 삶은 방향성과 목적에 행동이 수반하는 것이다. 한때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양심은 진심이 전하는 말인데 말을 듣고도

행동 하지 않는데 그것을 바른 양심이라고 해야 하나. 진짜 '양심' 깨닫는 것이 아니고 깨닫고

행동하는 것이다. 길도 마찬가지다. 길을 발견했으면 길로 나아가야 한다. 비록 길이 잘못된

길이라 다시 돌아와야 한다 할지라도 길을 걸어 사람과 걷지 않고 여전히 생각만 하는 사람은

분명 결과가 다르다. 인생은 한번의 성공과 한번의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여전히

길을 걸어야 한다. 그렇기에 '잠시 멈춤' 실패가 아니다. 재도약을 위해 잔뜩 웅크리는것이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숨고르기를 하며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비록 실패할 이유는

많지만 '그렇기 때문에'라며 낙담하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희망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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