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인터넷 - IoT 로봇 디디를 구출하라! 와이즈만 첨단과학 1
권용찬 지음, 툰쟁이 그림, 임춘성 감수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IoT(사물인터넷). 얼마전까지만해도 단어 조치도 생소하고 낯설어 이게 뭔가

했던 생경한 이름이었는데 어느 사이에 우리 삶의 곳곳에 자리하고 이미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음으로 보며 기술 발전 속도에 다시한번 놀라게 되고 어른들은

알지도 못하는 '코딩'이라는것을 초등학생들이 배우고 다루고 있음을 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느끼게 된다. 

이미 1980년대 초반에 인터넷 연결이 성공하며 각종 반도체들을 선도적으로 개발하고

대부분의 초집적 기술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우리나라 기술 현실은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국가의 개념이 무색해지고 지역 경계마저 무너뜨리는 글로벌이라는 새로운

사회가 등장하게 되면서 국가제도하에서의 기술 개발에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IoT(Internet of things) 사용자와 정보를 주고 받으면서 사용자가 지시하는 혹은

바라는 일들을 해주는 모든 것을 통칭하며 현재 왕성하게 진행중인 4 산업 기술과

접목되어 기술 산업 발전을 이끌고 있는 새로운 산업이다. 이는 시간과 비용의 절약은

물론 발생되는 서비스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져 생산성이나 기술혁신이 극대화 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개인의 사생활 대부분이 그대로 노출되는 사생활 침해와

자유권 침해의 소지가 남아 있고 이를 악용하면 충분히 범죄의 도구가 수도 있다는

맹점은 존재한다. 


사물인터넷이 바꾸어 놓은 직업의 세계에서 소개하는 네가지 직업군 세가지는 이미

존재하는 직업군인데 '윤리 기술 대변자'라는 직업은 생소해서 눈에 들어 왔다. 4 산업의

발전으로 벌어지게 인공지능들의 윤리적 판단등에 대해 적절한 조정자 역할을 하게

직업군은 항차 있을 로봇과 사람 사이의 불화를 미연에 방지하고 완화하는 직업이다.

산업이 발전하면 많은 직업군이 사라지고 앞으로도 사라질 것이고 새로운 직업군 역시

생겨나고 생겨날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그것도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집중해서 자신만의 특별함을 길러야 할것이고 이는

경쟁력으로 작용하게 될것이다. 사물인터넷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고 광범위하다. 넓은

세계에서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발견하게 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별의 언어
장한업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번진 말이 하나 있다. "틀리다가 아니고

다르다입니다"라는 말이다. 잘못된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것이라는

말인데 유행이 잘못된 언어 습관이 가져온 혼란을 많이 잠재웠던

기억이 난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존재하기에 언어를 잘못

잘못된 사고를 할수 밖에 없다. 저자는 이와같은 우리의 언어의 혼란을

경고하며 바르게 사용하길 요구한다. 


독서는 지식 습득의 보고라는 말처럼 읽는 내내 ' 이게 이런 의미와 뜻을

가졌구나'라고 느낀적이 한두번이 아니며 무작정 주입된 지식은 총과 칼보다

위험하다는 말을 절감하리만치 무심결에 잘못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이 많음에

놀랐다. 

중국인을 비하하여 쓰는 '떼놈' 북쪽을 가르키는 고유한 한국어인 ''에서

왔다는 것이나 우리가 그렇게 열광하는 '단일민족'이라는 단어가 사용된것이

불과 100여년 전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바른 표현이 아니라는 학자들의 의견은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것 같은 충격을 주었다. 심지어 국어사전에서조차

혈연이나 혈통은 민족을 구분하는데 적용되지 않음을 명시한 것은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사실을 진리인양 신봉해 왔었는지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다문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다문화시대라고 말은

하지만 정책에 불과할뿐 일상이나 현장에서는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어이 없는 이유로  외국인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이들이 다수이며 철저히 인권의 사각지대에 배치되어 심신을 유린당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이다.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차별적 언어와 행동에

익숙해 있는 이들에 의해 억울한 희생양들이 양산되고 있는 형편이다. 


책을 읽으며 '우리'라는 울타리에 자신을 꽁꽁 숨긴채 자행되는 저급한 패거리

문화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상생은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나온다. 함께

살아가야할 미래를 위해 편견을 거두고 다양성을 인정하여 정말 모두가 '우리'

되는 세상을 꿈꿔 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물의 중력 - 사소하지만 소중했고 소중하지만 보내야 했던 것들에 대하여
이숙명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어떤 물건이든 저마다 가진 사연들이 있다.

가슴절절한 사연도, 한껏 웃음짓게 만드는 사연도, 그리고 가끔은

'이게 왜 있지'하고 궁금해지는 사연도 있다.

그런 사연이 하나 둘씩 쌓여 집안 구석구석을 가득 채우는게 인생이긴 하지만

언젠가부터 버려야 한다는 중압감을 가지고 살게 됐다.


저자는 이러한 나에게 잘 버리는 방법을 제시한다.

과감하게 헤어지는 방법과 가차없이 처분하는 방법

그리고 아낌없이 줘버리는 방법을 제안한다.

한때는 그 물건들을 사고 흥분하고 좋아하고 혹은 엄청 욕을 먹었을법한데

막상 버려야 한다니까 하나 둘 추억들이 떠오른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테일러사의 미니 기타와 카메라 이야기는 절대 공감한다.

기타를 한창 배우던 시절 과외비 받은것 5개월치를 모아서 사버렸던

테일러사의 기타는 여전히 나의 서재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언젠가 주인이

만져주길 기다리고 있으며, 그림을 잘 못 그리는 대신 선택한 사진 덕분에

모아놓은 핫셀브라드, 라이카, 마미야, 니콘등의 카메라는 거실 장식장의

장식품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그때는 분명 필요에 의해(이건 확실치 않다.

필요에 의해서인지 욕심에서인지..) 샀을텐데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니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는 천덕 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지금 가지고 있는것은

그나마 추리고 추려서 남은것들이니 나의 소유욕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짐작할 만 하고 아직 나에겐 버릴것이 너무 많다.


저자의 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어제의 사물에서 오늘의 나를 발견하다" 그렇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어제의 나의 삶이 뭍어 있는 나만의 가치와 중력이 작용하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보며 과거를 떠올리며 웃음 지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떻게 능력을 보여줄 것인가 - 당신의 가치를 빛나게 할 능력 어필의 기술
잭 내셔 지음, 안인희 옮김 / 갤리온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상대방을 속이라는 것이 아니라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승패는

차이로 결정되기에 어떻게 하면 자신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가 믿게 만드는 완벽하게 의도적인 자기 표현 기술에 대해 말한다. 

"액자 없는 예술품" 가치를 알아 능력이 우리에겐 솔직히 없다. 2007 겨울

불과 사흘전 보스턴 심포니 홀에서 성황리에 연주회를 갖았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스트라디바리우스와 장인의 손길이 담긴 활을 가지고 작곡가

브라암스로부터 가장 경이롭고 해명할 길이 없는 작품이라는 극찬을 들은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 샤콘' 연주하였지만 정작 연주가 이어지는 43분동안 두명을

제외하고는 어느누구도 그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그가 연주하는

자리 옆에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죠슈아 벨의 연주"라는 팻말 하나라도 있었다면 아마도

자리는 수없이 많은 관객들로 가득찼을 것이다. (이것은 2014 홍보를 후에 그의

동료들과 지하철역에서 공연을 갖았을때 모여든 관중들로 증명되었고 그는 어느새 50

넘은 나이가 되어 중년의 멋을 한껏 풍기며 얼마전 내한 공연을 했다.)

별것 아닌것 같지만 여기엔 엄청난 진리가 숨겨 있다. 능력은 현재에 직면한 일에 필요한

재능과 노력의 조합인데 우리가 상대의 능력을 판단하는 근거는 대체로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들이기에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천재들이 무능력자로 낙인찍혀 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실에선 숨겨져 드러나지 않은 천재보다는 적절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액자로 꾸며 사람이 훨씬 능력을 인정받고 소위말하는 성공이라는걸

한다. 결국 저자의 말처럼 "성공하려면 보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라는 명제가

성립되는것이다. 

가장 조심스러운 겁쟁이들이 살아남는 세상에서 그나마 살아 있으려면 스스로를 포장하고

적절하게 꾸며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 필요한것이 역시 '말과 첫인상'이다. 그중에 '초두'

효과를 기억해야 한다. 30 만에 내린 판단이 5 동안 숙고하고 내린 판단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과 5 동안 하는 말이 결국 일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면접관들은 면접자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대략 5분이내에 사람의 당락을 결정한다고

한다. 그만큼 첫인상이나 초두가 중요하다. 강한 첫인상이나 강력한 초두는 본인의 가치를

극대화 시키는 마법이다. 이를 적절히 활용한 이가 게이츠다. 제품 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을 성사시켜 MS-DOS라는 당대 최고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판매하여 어마어마한 수익을 남긴 그는 분명 허세 가득한 꿈많은 젊은이였지만

허세를 뒷받침할 용기와 잠재력,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라는 화술의

대가였다. 그의 연설의 대부분은 강력하게 시작한다. 먼저 강한 펀치를 날리고 많은

펀치로 상대방을 눕힌다. 이렇게 대부분의 상대는 그에게 설득 당한다. 사람들은

가장 훌륭한 논리를 가진 사람에게 설득된다 것이 아니라 가장 확신을 가진

사람에게 설득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내셔의 "당신이 인정받지 못한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능력을 보여주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계속해서

머리 속을 흔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식의 영성 - 친밀한 사귐과 풍성함을 누리는 비결
강준민 지음 / 두란노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수 그리고 .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신다. 그냥 오라고 하신다. 이것저것 잔뜩 가지고 오라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고 하신다. 이것이 쉼의 영성의 출발이다. 초대는

그냥하지 않는다. 무언가 누릴것을 준비하고 한다. 주님은 쉼이라는 잔잔한 물가와

풀밭에서 잔치를 배설해 놓고 우리를 초청하신다. 초대엔 허울도, 명예도, 부와

권세도 필요 없다. 뭔가 거창한 선물 조차도 필요치 않다. 다만 있는 모습 그대로

가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서 우리의 첫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초대를 받고 보니 뭔가

잘나 보이고 싶어진다. 그래서 꾸미기 시작한다. 이것저것 치장하고 꾸미다 보니

본질의 나는 없고 내가 만든 괴물같은 나만 존재한다. 머리털까지 아시는 주님이신데

나를 만드신 그분 앞에서 가면을 쓰려고 한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그냥 오라고

하신다. 너의 짐이 무거우니 내려놓고 오라는것이 아니라 그대로 오라고

하신다. 잊지 말자. 그냥 가면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시면서 일의 영성을 가르치신다. '수고하고'이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전심으로 임하라는 것이다. 건성건성 대충대충이 아니라

있는 최선을 다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생각해 보라.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는 주님의 열심을 기억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의 두번째 문제가 드러난다.

우리는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칭찬 받는 이가 아닌 손가락질 받는 이가 되어 버렸고, 존경받는 이가 아닌 비난 받는 이가

되어 버렸으며 심지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는 세상의 지탄을 받는 근심거리가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자신의 일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도는 성도 다와야 하고 직장인은

직장인 다와야 한다. 교회는 다닌다고 하는데 성실하지 못하고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지 않은

이들이 너무 많다. 비단 직장 뿐만 아니라 매번 예배에 습관적으로 지각하는 이들과 뭐가

그리 바쁜지 예배 시간에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런 모습은

수고하는 모습이 아니다. 주님의 '수고하고'라는 말씀은 맡은 일에 죽을 힘을 다하라는 의미를

가진다. 마치 마라톤 선수가 42.195km 완주하고 결승선을 통과한 자리에 털썩 주저

앉는것처럼 죽을 힘을 다해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라는 것이다. 주님은 그렇게 하셨다.

밤이 늦도록 가르치셨으면서도 새벽 미명에 하나님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지셨고 한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셨다. 그렇게 사신 주님이 '수고한' 사람은 나에게 오라고 부르시는 것이다. 


주님의 초대에는 쉼이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사람들을 부르셔서 '' 제공하신다.

쉼이란 멈춤이다. 하던 일을 놓고 잠시 멈추는 것이다. 창조의 마지막을 쉼으로 가지셨던 처럼

말이다. 멈춰야 보이고, 멈춰야 들을 있고, 멈춰야 즐길 있다. 여기에서 우리의 세번째

문제를 발견한다. 도무지 멈추지 않는다. 쉼을 주신다는데도, 참된 안식을 주신다는데도 여전히

분주하여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관차처럼 폭주한다. 분주함이 제일 중요한 본질을 잊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주님께 가기가 어렵다. 쉼은 그런 분주함을 벗어나 주님께 온전히 집중시키는

것이다. 그분에게 시선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고 그분을 즐기는 것이 쉼이다. 


그런데 우리는 없다. 우리의 염려와 근심이 쉼을 제한한다. 쉬면 큰일이라도 나는것처럼

스스로를 들볶고 불편하게 한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관차의 마지막은 사고와 폐차인데도 여전히

질주한다. 온갖 근심과 걱정과 염려를 가득 실은 폭주기관차가 질주를 하다보니 주변에서 불안해

한다. 그리고 결국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주님은 이런 우리에게 친절하게 '너희 짐을 맡기라'

(벧전5:7) 말씀하신다. 맡기라는 표현이 밋밋해보여서 실감이 나지 않는가. 영어 성경을 찾아

보면 대부분의 번역본이 맡기라를 '던진다. 집어 던진다' 의미의 'cast' 쓰고 있음을 있다.

손에 쥐고 쩔쩔매지 말고 그냥 던져 버리라는 것이다. 저자는 상황을 헬무트 틸리케의 글을

인용해 염려를 손에 들린 뽑힌 수류탄으로 비유한다. 핀이 뽑혀 있어 금방 터져버릴 수류탄을

손에 여전히 들고 있을 바보는 없을걸 같은가? 아니다. 여전히 있다. 바로 우리들이다. 던져야

한다. 버려야 한다. 그렇게 주님께 맡겨 버리면 된다. 


" 많이, 크게, 빨리" 외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은 멈춤을 말씀하시고 쉼의 자리로

나오라고 초청하신다. 이상 밍기적거리지 말고 움직이자.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자. 걸음

마다 함께하시는 주님의 쉼과 안식을 누리게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