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처럼 세계기독교고전 28
앤드류 머레이 지음, 원광연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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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그리스도인이라면 꿈꾸는 것이 있다. 바로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다. 그를 흉내내고 그를 닮고 싶고 그와 같이 살고 싶은것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꿈꾸는 가장 큰 소망일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 앞에 그 소망함을 단 1초도 유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늘 넘어지고 늘깨어지고 늘 범죄하는 삶이기에 날마다 우리는 바울의 고백과도 같은 십자가 앞에 날마다 스스로를 쳐서 복종케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그러한 좌절의 삶과 실패의 반복을 살아가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지는 도전이자 외침일 것이다.

 

특별히 눈에 들어 오는 구절이 있다.

많이 읽어보고 들어 보았음직한 구절인  빌2:3-8절 말씀에 대한 설명에 보면 이 구절이 상황적 오류에 대한 반박을 위한 진리의 기술이나 믿음을 강건하게 하는 목적으로 기술 된것이 아니라 여전히 교만해 있고 사랑이 결핍되어 있는 빌립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모범을 제시하며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하신것 처럼 그들도 자신을 낮추라는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 쓰여졌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이땅에 내려오심과 십자가의 굴욕을 통한 구속을 이루심과 이 땅에 살아가심등을 통하여 스스로 낮아지심의 모범을 보이시며 제자인 우리에게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고 명령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 주님은 단 한번도 당신이 먼저 가시지 않은 길을 우리에게 가라고 하지 않으신다. 항상 우리 보다 앞서 가시며 그 뒤를 따라 오라고 말씀하신다. 특별히 겸손과 낮아지심에 대해서 그렇다, 마지막 식사의 자리에서 친히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여 제자들의 발을 씻기 신다. 그 집에 하인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열정적으로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하심으로 스스로 낮아지심과 스스로 섬기심의 모범을 보이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누군가에게 자신을 따라오라라고 나를 본받으라고 말한다는 것은 그 자신의 삶에 당당할 수 있을 때이며 그 삶이 부끄럽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주님은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시며 나를 본받으라고 말씀하신다. 그 만큼 자신에게 철저하셨기에 그 스스로 복종의 삶을 사셨기에 그의 삶이 복음 그 자체이기에 가능한 말씀이다. 요즘과 같이  높아지기만을, 누군가 보다 우월해 보이려고 발버둥치기에 급급한 현실 속 우리들에게 주님은 여전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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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 나 좀 도와줘
헤더 히브릴레스키 지음, 김미란 옮김 / 걷는나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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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에게나 고민이 있다. 말 할 수 있는 고민이 있기도 하고 때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아야 하는 고민이 있다. 이럴때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있다면, 혹은 나의 이야기에 조금이라도 반응해 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항상 친절해 왔고 그렇게 사는것이 익숙하고 그래서 늘 손해보는 '친절한 호구'의 삶을 사는 이의 질문과 폴리의 대답은 현대를 살아가는 '친절한 호구'들에게 사이다와 같은 소리일것 같다. 대부분의 친절한 사람은 친절한 사람이면서 또한 분노로 가득 찬 사람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완전한 모순덩어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괜찮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존재들이고 너나 할것없이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화를 삭히길 잘하는 그래서 자기 속은 썩어 문드러지면서도 친절함을 가장한 호구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그마한 반항을 시작해 보라고 한다. 급진적이지 않고 천천히 조금씩 반응해 보라는 것이다. 대항도 해보고 반발도 해보고 아니다라고 말도 해보라는 것이다. 그냥 먀번 사람 좋은 호구만 되지 말고 때로는 강력한 반발을 시도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도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돌아보게 되고 굽힐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기분 나빠 했다고 자책하지도 말고 상대방의 인상이 찌푸려진다고 움츠리지도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차라리 매정하고 부당한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괜히 스스로를 썩어 문드러지게 만드는 호구가 되지 말고 차라리 매정한 사람이 되는 편이 본인을 위해 훨씬 좋다고 말한다.

 

동의한다. 괜히 우리 남의 눈치나 보는 '친절한 호구'는 되지 말자. 당당히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나타내면서 주눅들지 말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멋진 인생을 살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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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보낸 자 요셉 - 영화편 김남국 목사의 창세기 파헤치기 4
김남국 지음 / 두란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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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요셉을 부르는 다른 이름은 꿈꾸는 자였다. 그는 꿈을 통해 하나님의 하실 일을 보게 되고 꿈 때문에

지독한 고난과 아픔을 겪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 꿈을 꿈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성실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꿈꾸는 자가 아니라 "앞서 보낸 자"로 부르신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냥 만들어 지는것이 아니다. 시련과 아픔 속에서 성장하며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깍이고 다듬어지며 연단을 통해 만들어 진다.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환경을 탓하며 상황의 지배를 받아 세상과 타협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을 이기며 지배하는 승리자의 삶을 살았던 사람 그 요셉의 이야기가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특별히 눈에 들어 온 대목은 애굽에 식량을 구하러 왔던 요셉의 형제 "유다"에 대한 부분이다. 은밀하게 감춘 은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나온 이후 요셉과의 대화이다.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창44:16) 유다는 이 부분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언급함으로 지난 죄악에 대한 고백을 곁들인다. 결코 베냐민에게 왜 은잔을 숨겼느냐고 묻지도 않고 베냐민이 하지 않았다고 하는 말을 신뢰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죄를 찾아내셨다고 말한다. 과거에 요셉을 팔아넘긴 죄에 대해 물으신다는 것이다.

신앙이 성장하면 지난날 멋 모르고 한 죄에 대해 기억나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워지게 되는 것이다. 유다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이 자신들의 죄를 드러내셨다고 말하는 것이다. 변명이 아니라 하나님이 죄를 드러내심에 대해 솔직한 고백을 한다. 신앙은 결국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물어야 하며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 하며 하나님 앞에서 견디든지 버티든지 도망가든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다의 선택은 현명했다. 그의 이러한 선택이 요셉과의 관계에서 급속한 진전을 이어가며 화해의 물꼬가 터지기 시작한다.

 

문득 "coram Deo"라는 말이 생각난다.

모든것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산다면 우리의 삶은 조금은 덜 부끄러운 삶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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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줄도 읽지 못하게 하라 - 누가 왜 우리의 읽고 쓸 권리를 빼앗아갔는가?
주쯔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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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펜을 무기로 시대를 기록하고 갈등을 풍자하며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다.

이러한 까닭에 권력은 작가의 붓 끝을 예의 주시하며 자신들의 상황이나 의지에 맞춰 작가의 활동에 금서라는 재갈을 씌워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방패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은밀히 혹은 공공연하게 그 글들을 읽고 기록하고 나누며 또다른 가치관과 사고의 틀을 만들어 낸다.  이 책은 그러한 책들을 모아놓은 글이다.

 

특별히 먼저 영화를 통해 접하고 사실적 묘사가 궁금해져서 읽게 됐던 "북회귀선"이 그러하다.

정직하고 윤리적인 미국인들이 사회의 근간을 뒤 흔드는 홍수와도 같다고 생각했던 영어로 쓰여졌지만 프랑스에서만 출간되었고 사탄의 사주를 받은 악마라고까지 지탄을 받았던 헨리 밀러의 작품인 "북회귀선"은 작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처럼 자연주의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1인칭 서술의 방식으로 자신의 관점을 직접 서술하여 당시 사람들이 마음속에 꾹꾹 눌러 놓았던 외침을 토해낸다.

노골적인 섹스 묘사와 등장인물들의 입에서 나오는 '저속한 말' 들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당시 본인도 "좀 센데"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짙은 성적 농담과 사실적인 섹스 장면의 묘사 역시 당시에는 충격이었던 기억이다. 또한 현세대를 향한 독백과도 같았던 "멋대로 해. 즐거울 수만 있다면.네 멋대로 해. 기쁠수만 있다면"이라는 주인공의 독백은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유행과도 같이 번졌던 문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저자가 주목했던것은 너저분한 섹스도 거룩을 가장한 종교도 아닌 인간해방 그 자체였다. 무엇에도 종속될 수 없으며 어떤것에도 얽매일수 없다라는 저자의 자유작가 주의가 탄생 시킨 역작인 "북회귀선"은 금서로 지정되어 판매도 불가하고 출판도 불가했지만 전쟁 이후 사상이 초토화된 미국 땅에 새로운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었으며 비평가들이 어떻게 평을 하든 그의 작품이 동시대 그리고 다음시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책 이외에 수없이 많은 책들이 권력의 입맛에 따라 금서로 지정되어 사람들의 눈에서 벗어나게 만들었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러한 조치 덕분에 더 유명세를 타게 되고 오히려 "어둠의 바이블"이 되어 지성인들의 필독서가 되어 버린것은 역사의 아이러니 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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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12개 학교 - 인생의 단계마다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홍정길.박남숙 지음 / 북클라우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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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러 길이 있다. 그 길은 어떤 길이든 선택을 하게 되어 있고 그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게 된다. 그 책임은 자신의 삶 전체에 걸쳐 영향을 미칠수도 혹은 일부분에 영향을 미칠수도 있다. 그러나 그 책임의 무게는 분명 본인의 몫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인생의 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홍정길 목사의 의지가 담긴 책이다.

인생을 12개의 학교로 분류하여 각각의 학교의 필요성과 목적과 삶의 방법들에 대에 쉽게 풀어 나가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만의 방법을 발견하게 도움을 준다.

특별히 청년기의 자아정체감 확립은 혼돈과 불확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수 많은 청년 들에게 위안이 되는 글이 있다.

. "청년의 시기가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이다."

물론 익히 알고들 있을것이다. 그러나 아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성경에 "맛보아 알라"라는 말이 나온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아무리 귀한 음식이라도 그것을 맛보아 알기 전까지는 그 맛을 알 수 없다.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그 진미를 모르기에 소용이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청년의 때가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시기이며 그 시기를 잘 보내야지만 바른 자아정체성과 가치관이 확립 된다. 일방적인 지시와 강요로 보내온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무언가 자신이 결정해서 선택해야 하는 청년기를 맞는 이들에게 "정체감 유예"는 분명 찾아 오게 된다. 이 위기의 시기를 잘 견디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행 착오를 거치게 된다. 그 시행착오가 그들의 인생을 탄탄하게 만들어 줄것이고 이 시기가 그들의 황금기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기가 그들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학교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인물 다니엘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으나 왕의 명령보다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였고"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의 정확한 가치관을 세우고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않는 구별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도 청년의 시기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하고도 확실한 세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청년의 때는 분명 기다림과 인내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조급함과 성급함은 오히려 그의 인생에 큰 손실을 가져오게 된다. 기다려 주자. 그리고 견뎌주자. 우리가 기다려 주는 만큼 더 성장할 것이고 견뎌주는 만큼 더 깊은 자아 정체성을 확립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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