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요셉을 부르는 다른 이름은 꿈꾸는 자였다. 그는 꿈을 통해 하나님의 하실 일을 보게 되고 꿈 때문에
지독한 고난과 아픔을 겪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 꿈을 꿈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성실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꿈꾸는 자가 아니라 "앞서 보낸 자"로 부르신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냥 만들어 지는것이 아니다. 시련과 아픔 속에서 성장하며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깍이고 다듬어지며 연단을 통해 만들어 진다.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환경을 탓하며 상황의 지배를 받아 세상과 타협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을 이기며 지배하는 승리자의 삶을 살았던 사람 그 요셉의 이야기가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특별히 눈에 들어 온 대목은 애굽에 식량을 구하러 왔던 요셉의 형제 "유다"에 대한 부분이다. 은밀하게 감춘 은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나온 이후 요셉과의 대화이다.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창44:16) 유다는 이 부분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언급함으로 지난 죄악에 대한 고백을 곁들인다. 결코 베냐민에게 왜 은잔을 숨겼느냐고 묻지도 않고 베냐민이 하지 않았다고 하는 말을 신뢰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죄를 찾아내셨다고 말한다. 과거에 요셉을 팔아넘긴 죄에 대해 물으신다는 것이다.
신앙이 성장하면 지난날 멋 모르고 한 죄에 대해 기억나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워지게 되는 것이다. 유다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이 자신들의 죄를 드러내셨다고 말하는 것이다. 변명이 아니라 하나님이 죄를 드러내심에 대해 솔직한 고백을 한다. 신앙은 결국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물어야 하며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 하며 하나님 앞에서 견디든지 버티든지 도망가든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다의 선택은 현명했다. 그의 이러한 선택이 요셉과의 관계에서 급속한 진전을 이어가며 화해의 물꼬가 터지기 시작한다.
문득 "coram Deo"라는 말이 생각난다.
모든것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산다면 우리의 삶은 조금은 덜 부끄러운 삶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