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생활보다 시간독립부터 먼저 하셔야겠습니다 - 일과 삶의 밸런스를 위한 ‘시간독립 프로젝트!’
이영직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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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독립'.

참 독특한 단어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에서 독립을 한다. 뭔가 자주적인 요소를

가지는 것 같은데 도무지 맥이 잡히지 않았지만 첫 장을 열면서 바로 문제가 풀렸다.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실천하는 것을 말하며 이렇게 하면 같은 일을

해도 훨씬 자유롭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의 주체가 되는 것이고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는 할아버지와 손자 관계이다.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가 아버지를 지하

감옥에 유폐시키고 왕이 된 다음에, 그 제우스에 의해 태어난 아들이 카이로스이다. 주로 시간과

관련된 일에 많이 사용되는 두 단어는 동일한 일상의 반복인 크로노스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간인 카이로스로 사용된다. 어떤일에 깊이 몰입하는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적 시간 개념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적인 시간과 붓다의 깨달음의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이다. 우리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크로노스적으로 보내고 아주 일부만 카이로스적 시간으로 보낸다. 시간의 공평함을

특별함으로 바꾸는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인 것이다.

'가장 힘든 일을 제일 먼저 하라'

'할머니의 법칙'(오브리 다니엘스), '프리맥의 원리'라고도 부르는 이 이론은 싫어 하는 일을 한

다음에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만들면 싫어 하는 일을 잘 해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심리학에서는 긍정적으로 강화된 행동은 반복된다는 학설이 존재한다. 힘들일, 지저분한 일일수록

깔끔하게 처리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 지듯이 막연하고 심각한 고민이라도 몸으로 부딪쳐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길을 찾아내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마크 트웨인은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살아있는 개구리를 먹어라. 그러면 하루 동안 그것보다 나쁜 일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겠는가. 우리의 삶은 어짜피 어려움의 연속이다.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쓰는 힘을 그것과

마주하는데 쓰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고민이 고민을 낳는다는 말처럼 고민에 너무 몰입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저 만큼 가있는 고민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하루 관리가 잘되는 사람이 1년도 잘 관리한다. 잘 관리된 1년들이 모여, 평생이 된다.'는 말처럼

우리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1440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평생을 결정짓는다. 자기

시간에 단호해 질 필요가 있다. 결국 그 시간은 자신의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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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년의 일상 탈출 고백서 - 어느 날 도망치듯 떠난 여행이 내 인생을 구했다
하이디 엘리어슨 지음, 이길태 옮김 / 탐나는책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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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안전지대 끝에서 시작된다(마이클 하얏트)'

이 책의 제일 첫 머리인 이 문장에서 저자의 생각이 오롯이 드러난다. 어떠한 인생을 살았으며

어떠한 인생을 살고 있고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평생에 걸쳐 안전지대라는

방어막을 벗어나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가끔 그곳을 탈출해 자신의 인생을 산다. 워낙 두텁게

쳐 놓은 장벽이라 쉽게 넘지 못하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기어오르고 뛰어 넘으려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일탈'이라 부른다.

'그린 몬스터'

저자의 캠핑카 이름이다. 요즘 나도 캠핑카에 관심이 가서 자주 들여다 보며 고민 중이다. 기발한

방법으로 수납 공간을 만들어 구석구석 쓸모있게 활용 가능하게 만든 내부는 정말이지 프렌스포터의

축소판이다. 창문을 넓고 많이 설치한 녀석(난방과 냉방에 단점이 있지만)도 마음에 들고 주방 공간이

넓직한 녀석도 마음에 들고(대신 침실 공간이 좁다) 침실 공간이 여유로운 녀석도 마음에 들고

(아쉽게도 이 녀석은 주방이 좁다) 충분히 규모있는 배치지만 그래도 뭔가 하나는 아쉽다. 그래도

다행인건 요즘은 전기 걱정은 안해도 된다. 저자도 많은 고민과 생각을 거쳐 그 녀석을 샀다. 그리고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겪은 똑같은 일을 겪었다. 자동차와 연결 케이블은 왜 그리 짧은지 결국 연결

케이블을 사서 고정했다고 들었는데 저자도 같은 일을 겪는것을 보며 그때 그 사람이 얼마나

당황했을지 이해가 된다.

'연애 그리고 청천벽력'

우리는 대부분 여행에 대한 환상이 있다. 홀로 떠난 여행지에서 홀로 여행 온 이성을 만나고 뜨겁게

하룻밤을 보낸 후 서로 연락처도 주고 받지 않고 각자의 길을 떠나는. 저자도 그랬던것 같다. 혼자

하는 여행은 늘 외로움을 동반하기에 누군가의 친절과 보살핌은 금방 가드를 내리고 경계심을 풀게

만든다. 저자가 캐나다인 이라고 지칭하는 이가 그런것 같다. 진심이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진심과 진실은 분명 다르다. 아무리 진심이어도 진실하지 않다면 상대방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몇일을 함께 보내고 몸을 나누어도 한순간에 무너진다. 참 신기한것은 그럼에도

기다려지고 그리워지고 반갑다. 연락이 안오면 궁금해진다. 내가 예전에 무전여행에서 만났던

그녀처럼 말이다. 갑자기 그녀 생각이 난다.

여행은 정해지지 않은 시간표다. 일정을 정해서 출발하지만 상황에 따라 형편이 따라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바뀌고 변한다. 일 년을 예상한 저자의 여행이 무려 오년으로 늘어 난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사람을 만나고 인생을 설계하며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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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불편한 용서
스베냐 플라스푈러 지음, 장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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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는 행위는 정의롭지도, 경제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용서는 말 그대로 복수와 보상의

포기다. 용서하는 사람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단념하고, 중지하며, 꾸짖기

(가르치고 알리기)를 멈춘다. 그러나 인간은 마법사처럼 순식간에 죄를 없앨 수 없다. 용서라는

개념의 한계는 다만 죄의 청산을 포기하는 것일 뿐 죄인의 죄는 그대로 죄로 남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들은 이 문제의 정답을 자신들이 아닌 '신적 존재'에서 찾는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용서의 문제에 대해 '용서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사실상 그것이야 말로 용서해야 하는 유일한 것이 아닙니까'라는

말로 설명한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만이 용서다. 이 말은 용서 할 수 있는 것은 침묵한다는

의미다. 가해자의 동기를 이해하고 자신이 그 입장이어도 똑같이 행동 했을 것이라고 확신할 때 용서는

이미 용서가 아니다. 어떤 행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순간부터 그 행위는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

화해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용서는 합리성의 경계 안에 머물며 존재한다.

용서라는 주제의 철학적 스펙트럼은 용서를 '이해, 사랑, 망각'이라는 의미에서 바라본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뜻이다라는 19세기의 문구는 이해=용서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용서가 가능해진다. 용서와

사랑을 연결시킨다면 우리는 '다른 경제학'의 개척자 프리드리히 니체를 만나게 될것이다. 사랑처럼

미쳐야 하며 답례도 못 받는 순순한 소비이어야 용서가 성립된다. 잊어 버려야 용서가 완성된다.

머릿속에서 영원히 기억되지도 않아야 하며 다시 떠올려 지지도 않아야 한다. 이를 기독교에서는

'도말(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처럼 없앤다)'이라는 표현을 쓴다.

용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행위다. 중개하는 제 3자가 필요하지 않다. 용서는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두고 진행되고 시간과 함께 완성되는 것이 용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용서는 죽었다(블라디미르 얀켈리비치의 '용서한다고?')'라는 말처럼 용서는 피해자

자신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는 '선물'이다. 용서하는 사람은 복수의 갈망이나

씁쓸한 보상의 요구에 지지 않고 자제를 한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정확히 계산하여 되갚아주겠다는

마음의 포기가 그의 '선물'이다.

용서. 참 어려운 말이다. 용서라는 의미를 정확히 알고 난 지금의 용서는 더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외적 용서라는 길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용서는 더욱 더 어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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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
김이율 지음, 박운음 그림 / 새빛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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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없이 약하고 흔들리는 나 언제까지 괜찮은 척 지내야 할까 정말로 이제는 잘 지내고 싶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는 감정이다. 예전엔 자기 마음의 적어도 삼푼은

갖춰야 한다고 배웠지만 이제는 절반 이상을 드러내서는 결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스스로의 감정에 족쇄들을 채운다.

잘 지낸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지내는 것이 잘 지내는 것이기에 우리는 연극을 해 가면서까지

그렇게 보이려는 것일까? 의문은 꼬리를 문다. 정말 저자의 말처럼 하루치의 그리움, 하루치의 일상,

하루치의 무게를 오늘도 잘 견디면서 잘 살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을 꿈꾼다. 작가에게는 마음껏 집필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화가에게는 온전히 그리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작업실이, 일상에 지친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안하고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저자에게는 '다락방'이 그런 공간이다. 다락방이

주는 느낌은 그리움이다. 어릴적 추억과 철없는 행동들이 기억되는 그런 장소가 다락방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만의 눈물이 머물고, 시간이 쌓이고, 비밀이 숨쉬는 공간인 다락방을 가지고

싶어 하며 그 안에서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금지된 것들. 우리는 일탈을 꿈꾼다. 거창하게 세상을 어지럽히고 누군가를 곤란에 빠트리는 그런

일탈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탈출과 벗어남을 의미하는 '일탈'. 해낼 수 있는 것들은 해내면

된다. 항상 문제는 금지된 것들이나 불가능한 것들이다. 언제나 마음이 문제다. 한 발 내 딛으면

되는데 그 한 발이 어렵다. 마음이 가르키는 그곳에 서 있으면 되는데 그 첫 걸음이 어렵다. 그래서

일탈은 일탈이다. 자신의 마음에서 먼저 뛰쳐 나와야 가능해진다. 우리는 금지된 욕망의 언저리에서

머물 뿐 그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에대해 '금지된 것, 갈망하며. 모든 불가능,

사랑하며'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날이 좋은 날 그 사람과 함께 걸으며 두 손 살포시 쥐고 지구 한 모퉁이에

둘 만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저자의 말이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누군가를 위한 '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에서 벗어나 진짜 잘 지내고 싶다. 나만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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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리스타트 - 생각이 열리고 입이 트이는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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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문명사회를 살고 있다. 이 사회는 멈춰섬에 대해 여유를 부여하지 않기에

멈춰섬은 도태이고 뒤처짐이 된다. 이러한 환경 속에 인문학은 사람에 따라 계륵이 될 수도 있고

활력소가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과 같다. 기술력이 증대되고 산업화가 가속도를 붙이게 되면 인문학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 들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 저자는 ‘리스타트’를 말한다.

저자는 지식체계의 기본으로서의 인문학을 말하며 인문학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인문학을 모르고서는

경쟁 사회 속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 인문학은 베이스다. 그 베이스 위에 어떤 집을

짓느냐는 본인에게 달렸지만 베이스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은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다. 학문이 발전하면

이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등 모든 분야에 역동적 힘을 공급하여 발전의 가속도를 가져온다. 인문학의

핵심은 역사, 철학, 종교이며 역사는 단순한 히스토리가 아닌 정치와 경제를 아우르는 사회 전반적인

것을 의미한다. 경제는 ‘인간이 생존 활동의 모든 것’이며 정치는 ‘경제를 조정하는 모든 것’이라는

저자의 설명은 역사가 어떻게 경제와 정치를 아우르는지에 대해 분명히 보여준다. 이렇듯 인문학은

인류의 삶 전체를 포함하는 그런 학문이다.

이 책의 내용은 평이하다. 어쩌면 ‘뭐 이래!’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굳이 ‘리스타트’라는

단어를 쓰며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저자의 의도는 분명하다. 익숙함과 알고 있음이라는 허점이

우리를 얼마나 허술하고 규모 없게 만드는지에 대해 지적하며 지식은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것 만이

아니라 입 밖으로 끄집어내 표현하는 것이기에 지금 우리의 앎은 너무 얇고 단편적이다. 이런 단편적

앎이 결국 오류를 만들어 내고 그 오류로 인하여 받게되는 고통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중도 포기하게 되고 ‘인문학은 어렵다’는 편견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런 현실 앞에 저자는

‘생각이 열리고 입이 트이는 인문학’을 이야기 한다.

인문학을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종교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종교는 왜 생겨 났으며 어떻게

발전했으며 인류에 어떤 형태의 영향을 미쳤는지는 인류에 신앙이라 불리우는 형태의 모습이

존재하면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늘 고민되어온 질문거리였다. 저자는 이에 대해 종교 탄생은 죽음에

대한 불안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다. 이 상황이 종교를

만들게 된 배경이라는 것이다. 모두에게 지극히 공평한 죽음은 모두의 숙제이자 피하고 싶은 현실이다.

지식은 생각이 아니고 삶 속에서 드러나는 모습이다. 지식은 겉모습이 아니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는 방법이다. 인문학 리스타트라는 독특한 제목의 이 책은 다시 한번 지식과 앎에 대해 고민해보게

하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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