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존재감 있는 사람입니까? - 끌리는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다
김범준 지음 / 홍익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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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끌리는 사람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진짜 그렇다. 한때 PR시대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것 같다. 단지 달라진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스스로 자신을

알리기 위해 뭔가를 했다면 요즘은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통해 자신을 부각시키고 타인으로

하여금 (pick)하게 만든다는 정도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정확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나를 표현하고 존재감을 높일 있는 ' 브랜딩' 방법을 소개한다.

 

요즘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 인기는 어마어마하다. 얼마전 73세의 박말례 할머니의 왕성한

활동을 담은 책도 출간이 되었을 정도로 어린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파급력은 가히

메가톤급이다. 그러다보니 개인 아니라 기업도 대열에 동참하여 저마다 자신을 알리기에

광분(?)한다. 그들은 ' 브랜드' 알릴 아는 '프로페셔널 마케터(professional marketer)'

들이기에 클라이언트들이 무엇을 원하며, 어떻게 표현해야 좋아하며,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지

분명히 안다. 클라이언트의 클릭과  픽이 자신의 명성과 돈에 연관되기에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돋보이고 튀어 보이기 위해 자신만이 고유 무기를 장착한다. 그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워딩(wording)이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가 관건이다. 동일한 사물을 표현하면서도 밋밋하고

평이한 것보다는 조금 유치하더라도 자극적이고 강력한 단어를 사용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의 ''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부분이 예전 우리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다. 예전엔

스스로 자기를 드러내거나 잘난척하면 기피대상이 되고 비웃음 거리가 됐는데하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실감하게 된다. 능력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만 하고

있어봐야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자기 PR 시대라기 보다는 자기 어필(appeal)시대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인

시대를 살고 있다. 널리 알린다는 PR(public relation) 보다는 누군가의 흥미를 끈다는 의미의

어필(appeal) 어울리는 시대이다. 어필은 상대와의 소통을 바탕으로 상대방이 나의 장점에

대해 관심을 갖고 기뻐하도록 알리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자세이다. 그것이 쇼였을지

진심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옥탑방' 생활을 자처했던 이와 지독한 골초인데도 연장자인

상대국 대통령 앞에서 끝까지 담배를 피우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어떤이는 그래도 최소한

상대에게 어필하려는 의지는 보여준 것이다.

 

' 브랜드' 나만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가진다. 나만의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사람 하면 떠오르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없이 만나고 부딪히는 사람들 나를 기억

시키기 위해서는 나만의 특별함이 필요하다. 강수지씨의 '수지 맞으셨어요'라는 인사말 처럼

말이다. 나는 어떤 색깔로 살고 있는지, 나의 삶은 마디로 무엇을 말하는지 말할 있어야

타인의 끌림을 얻어 낼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면서 행복감, 희생, 만족감, 헌신, 여유,

열정, 지혜, 평화, 안정감등의 가치를 떠올릴 있어야 비로소 ' 브랜드' 되는 것이다.

 

그래서 ' 브랜드' 스페셜리티(speciality)' 된다. 앙드레 하면 우리는 '화이트(저자의

처럼 하양, 흰색, 하얀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이미지가 떠오르는것 처럼 '그의 화이트'

하나의 브랜드이며 색깔을 통해 창출해 각인된 이미지이다. 이것이 스페셜리티이다. 이것에는

품격이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드러나는 그런 기품이 있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

똑똑한 사람이야'라고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스페셜리티에는

만의 독특한 품격이 존재한다. 손이 부채 만으로도 단단함을 표현한 어머니의 모습이 그렇고,

앞치마에 당당하게 금장으로 새겨 넣은 고깃집 이름이 그렇고(아마도 저자는 우미학을 다니나 보다.

여기 엄청 비싸다), 클린턴의 배꼽이 그렇다. 그렇게 하므로 자연스레 품격이 드러난다. 어쩌면

우리의 품격은 우리를 그린 자화상이 아니라 자화상을 품에 넣은 '액자' 평가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에게는 내가 가진것 중에서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것' 추려내는 뺄셈 전략이 필요한데

우리는 반대로 가진 것보다 많은 것을 더하고' 곱해서 결국엔 아무렇고 아닌것이 되어버린 나를

상대방에게 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건 내가 아니다. 나를 알린다는것은 없는것을 만들고

포장해서 상대를 속이는 기만행위가 아니라 나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약점을 인정하는 진실함에서

출발하는 자기 어필이다. 실제로 면접 전에 올라온 자소서를 읽어 보면 무슨 다들 슈퍼맨이다.

못하는게 없고 안되는게 없는 초능력자들이 우글우글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면접관들에게 이들의

허위와 가식이 보인다는 것이다. 비단 자소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자신을 알리는 부분에 부풀리기와

뻥튀기가 존재한다. 다시 말하지만 자신을 알리는 일은 솔직함이 무기이다. 나를 되게 하는 ,

타인과 명백하게 구분되게 하는 것은 당연해서 지나치기 쉬운 기본에서 부터 시작한다. 존재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 지금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책은 나에게 많은 끄덕거림을 준다. 키즈존을 빗대어 말하는 '노목큰존(콧소리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는 ) 그렇고, 시트러스와 허브와 천연 소나무 오일로 만들어 교보문고의 책향(册香)

그렇고, 스티브 잡스의 'small' 그렇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그래서 저자의 책이

더욱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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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사심은 없다 - 이나모리 가즈오
기타 야스토시 지음, 양준호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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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 JAL 경영난으로 파산보류신청을 했을때 침몰해 가는 거함을 살리기 위해

투입된 인물이 바로 당시 78세였던 일본에서 가장 존경 받는 경영자인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이다. 그는 이미 몇명의 경영자가 경영 재건에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세계 공항 역사상 두번째로 커다란 사고를 일으킨 JAL 무급 CEO 자처하면서 회사

구제에 나서 불과 2 만에 기적적으로 회사를 회생 시킨다. 그때 그가 했던 말은 많은

이들에게 자극과 금언이 되었다. '소선(小善) 대악(大惡) 닮았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았다. 몇사람에게 선을 베푸는게 전체적으로 나쁜 결과가 있고,

사람들에게 아주 소리를 하는게 전체에 아주 좋은것일수도 있다는 말이다. 소선도,

대선도 도무지 없는 지금의 우리에게 던지는 경종과도 같은 말이다. 


그에게는 인생철학이 있다. 혹은 경영철학이라고도 불리는데 대표적인 몇가지를 소개하면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여주는 '진지하게 살아라', 그의 고객을 향한 생각을 보여주는

'고객의 머슴이 되어라', 삶의 행동 철학을 보여주는 '씨름판의 정중앙을 취하라', 그의 사업

철학을 보여주는 '이익이 없다면 사업이 아니다'등이 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수많은

이들에게 도전을 주는 말들이다. 


특별히 그의 인생철학이라 불리는 '인생 방정식' 그가 어떻게 경영하며 움직여 왔는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인생. 일의 결과=가치관x열의x능력이다. 어떤 가치관을 가졌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 일하는지',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조차도 희미해지고 지금하고 있는 일에 의의와

목적마저도 잃어 버린 지금의 우리에게 이나모리 회장은 바른 가치관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구조적인 문제와 척박한 상황을 떠나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가치관

생각이 바로 서야 한다는 말이다. 두번째가 열의이다. 열정적이고 뜨거운 마음이라는 의미인데

이나모리 회장의 일생을 지칭하는 말이 '열심히' 만큼 그는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JAL의 CEO

있을때 출퇴근 하는 시간이 아까와서 근처 호텔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가장 일찍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했다는 일화는 78세의 노구를 생각한다면  엄청난 열정이 아닐 없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고 책임지려했던 인물이다. 적당히 눈치껏해서 훌륭한 일을 있을 만큼

세상이 만만하진 않다. 그래서 그는 성실하고 진지하게 일했고 누구에게도 지지않는 노력을 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열의라는 단어에는 열심히 뜨겁게 간절히 자신의 일을

사랑하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그의 이러한 열정은 울보에 코찔찔이에 겁쟁이인 그가 골목 대장이

되고 조직의 수장이 되고 존경받는 기업인이 있었던 원동력이다.

 

마지막으로 능력이다. 여기에는 선결 조건이 있다. 뚜렷하고 바른 가치관이 있어야 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열정을 가져야만 능력이 제대로 빛을 발휘하는 것이다.

역시도 뛰어난 발명가도,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도 아니었지만 후천적인 노력으로 인생을

개척해 나간 인물이다. 아무리 능력과 열의가 있어도 마이너스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결국

커다란 마이너스로 돌아 오는데 마이너스 가치관이 바로 '사심'이다. 


'마음에 사심이 없다' 말은 사쓰마의 명군 시마즈 나리아키라가 좌우명으로 삼던 말이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길을 오로지 똑바로 걸었고

인간으로서 올바른 길을 결사적으로 걷고자 했던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삶은

후대에 더 높이 평가되고 많은 이들에게 본이 된다. 우리에게도 이런 존경 받는 경영인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과 부러움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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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김미향 지음 / 넥서스BOOKS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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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년을 시대의 딸로서, 누이로서, 여성으로서, 장애인으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대로 사회적 최약자의 삶을 살다 떠난 최여사(최정숙, 엄마) 그리며 작정하고

엄마편을 들기로 저자의 글을 통해 시대의 어머니들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엄마를 부르면 엄마 냄새가 난다'

엄마는 그런가 보다. 나도 가만히 있다가도 엄마 생각이 나면 괜히 눈물이 나고

가슴 한켠이 아려 온다. 저자가 느낀 회환과 자책이 추억과 함께 밀려오는데 주체할

수가 없다. 이름 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엄마'. 엄마에게선 엄마 냄새가 난다.

뭐라 말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엄마에겐 분명 엄마 냄새가 난다. 냄새는 푸근하다.

(포근하다고 말하면 왠지 작아 보여 일부러 푸근하다고 쓴다) 그래서 따뜻하고 편안하다. 

저자에게 엄마가 '영원한 히어로'이듯 우리 모두에게 엄마는 '슈퍼 히어로'. 따뜻하고

푸근한 마음을 가진 언제나 내편이고,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내가 부르면 무조건 달려오는

슈퍼히어로 그런 엄마가 보고 싶다. 


죽음은 지속적으로 삶을 환기 시킨다. 이것이 많이 고통스럽더라도 엄마를 그리는

일을 멈출 없는 이유이다. 그런 엄마의 죽음도 서서히 기억에서 지워져 간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고 지금 우리가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지만 불과 얼마가 지나지

않았는데 조금씩 흐려져 가는 엄마의 기억에 저자는 흠칫 놀란다. 자신만의 상실이 아닌

모두의 상실이라고 애둘러 말하지만 분명 우리의 기억에서 조금씩 지워져 간다. 죄책감도,

슬픔도, 안타까움도, 그리움도 어느새 강을 건너 버렸다. 그렇게. 이런 현실 앞에 저자는

다시 한번 엄마의 딸로 태어나 엄마와 함께할 있다면 기꺼이 다시 태어나 영원히 엄마의

딸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잠을 잔다. 꿈에서라도 제발 엄마를 만날 있기를 간절히 빌며.


책은 힘겹게 살다 엄마에 대한 저자의 자기고백이다. 아니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다 가신 모든 이들에게 드리는 감사의 글이다. 정작 자신은 위축되고 억압받고

천대받는 삶을 살았지만 자식에게 만큼은 세상에 지배 당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길 당부하는

커다란 따뜻함과 다정함을 가진 그런이가 우리의 엄마다. 죽음은 삶의 뒤편에 있고 삶은

언제나 죽음의 양면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아주아주 씩씩하게, 아주아주 훌륭하게

살아야하며 또한 그렇게 죽어야 하는 것이다. 

엄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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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고전의 숲 두란노 머스트북 1
존 번연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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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어려워도 지금 여러분이 옳은 길로 가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려 책을

원하시나요?'

번연의 초대이다. 우리는 신앙의 위기 시대를 살고 있다. 너무 가혹하게 폄하하는것

아니냐고 항변해 보아야 소용 없다. 현실속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예수' 전해 사람이면

알것이다. 그들의 냉랭하고 차가운 시선과 말을. 세상을 향해 존재하며 세상을 위해 기도하던

교회가 이젠 세상의 근심거리가 되어 있는 현실 앞에 번연의 '순례자의 '로의 초대는

적절하며 그와 함께 여행이 기대가 된다.


자신에게 선포된 저주와 멸망에 대해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 비통한 절규를 쏟아 내며 크리스천이

길을 떠나며 만나게 되는 첫번째 인물이 고집(obstinate) 변덕(pliable)이다.  대학 시절

은사님에게 선물 받아 읽었을 장면에서 오랜 시간을 멈췄었는데 이번에도 장면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다시 멈춰섰다. 그때보다 훨씬 고집스러워지고 변덕스러워진 나의 모습에

한숨이 나온다.

고집스럽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말하고 있는 '고집' 상대방을 살피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은 틀렸고 자신만 옳다고 말한다. 관용도 배려도 없다. 그저 자신의

생각과 주장만 존재한다. 비록 짧게 등장하지만 고집은 자극을 준다. 우리는 신앙 생활

곳곳에서 또다른 형태의 '고집' 만나게 된다. 신실함과 그리스도를 향한 고집이 아니라 처절하리

만치 이기적인 고집이다. 여기에는 사랑도 없고 희생도 없이 오직 자신만 존재한다. 누가? 바로

나와 여러분이다. 


뿐인가. '변덕'이라는 동반자는 어떤가. 처음에는 동반자인것 같은데 어려움 앞에 마음을

바꿔버린다. 조금만 어려워도, 조금만 힘들어도 돌아선다. 나간 탕자에게 제물이 많을

모여 들었던 사람들이 재산을 모두 탕진하자 떠나버렸던것 같이 고난과 고통 앞에 뒤도 안돌아

보고 떠나 버린다. 갈테면 그냥 가지 굳이 속을 뒤집어 놓고 기운 꺾는 소리를 하며 떠난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수없이 많은 변덕들을 만난다. 마음에 조금 맞는다고 수시로 교회를

옮기고, 삶에 어려움이 생기면 쪼르르 점집이나 신기 있다는 누군가를 찾아가고, 신앙에

문제라도 생길라치면 교회를 끊어버리는(무슨 학원도 아니고, 요즘 아이들은 이렇게 표현한다)

이들이 부지기수다. 이번에도 친구 때문에 나는 한참을 멈춰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많이 노력을 했음에 속에 자리한 '교만' '변덕'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그렇게 길을 가던 그가 도착한 자만(conceit)이라는 마을에서 만난 무지(ignorence)라는

청년과의 대화 '선한 생각'이라는 내용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 부분이다. 길을 걷는

내내 선한 생각만을 하고 걸었다는 무지에게 크리스천은 선한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생각이고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기 자신을 판단 가능한 것인데

이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3:10),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악할

뿐임을 보시고(6:5),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8:21)

근거로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무지는 여전히 무지하다. 마치 우리처럼 말이다.

없이 많은 선한 권고를 듣지만 대부분 흘려 버리고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붙잡고

그것이 믿음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무지와, 스스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도움이라도 청해야 하는데 지독히 이기적이고 잘나서 여전히 자기 팔을 흔들고 다니는

우리의 거만함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의롭지 않지만 의롭게 하셨음을 잊어 버리고

마치 스스로 의인인양 거들먹 거리는 종교인들에게 크리스천은 멋지게 먹인다.

"자네는 무지라는 이름이 정말 어울리는 사람이군".

그런데 아쉽게 소망의 말처럼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에도 무지와 같은 사람들이 아주 많고

집집마다 거리마다 넘쳐나고 그들은 어떻게든 죄의식을 억누르고 괜찮다며 최면을

무지를 누리고 있다. 

천성까지 함께 무지에게 천국에 들어 증표가 없자 두손과 발을 묶어 내치라고 명하시고

지옥에 던져 버리는 장면에서는 내가 성경에서 제일 두려워 하는 구절이 생각났다.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7:23). 


10여년 만에 다시 읽어 천로역정은 여전히 두렵고 떨림으로 다가왔다. 살아야 될것 같다.

앞에 섰을때 도무지 알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살아야겠다.

책은 우리 청년들과 함께 읽을 것이다. 청년의 때에 크리스천과 함께 떠나는 '순례자의 '

그들 인생에 분명 시금석이 될것이다. 놀랍게도 지난 예배 시간에 물어보니 34명의 청년

명만 책을 읽었다고 한다. 나도 놀랐지만 정작 본인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부디 우리

청년들이 '무지'에서 벗어나 진리이신 예수를 만나는 행복을 누리길 기대하며 기쁜 마음으로

서점에 두권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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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읽어야 할 도덕경 - 삶의 순리를 깨달을 때면 도덕경이 들린다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읽어야 할 시리즈
노자 지음, 박훈 옮김 / 탐나는책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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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도덕경은 5000, 81장으로 되어 있으며 상편 37장의 내용을 도경, 하편 44장의 내용을

덕경이라고 한다. 도덕경의 기본 사상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무는 '도는 언제나

무위하지만 하지 않는 일이 없다'의 무의이고, 자연은 '하늘은 도를 본 받고 도는 자연을

본 받는다'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으로 모든 거짓됨과 인위적인 것에서 벗어나려는 사상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발췌)


역설(逆說, paradox) 가르침인 도덕경이 오히려 순리로 다가온다.

도덕경에는 수없이 많은 욕설들이 나온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설들이 지금 우리에게는 순리이며 금언으로 다가온다.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 앞에

던지는 노자의 소리를 들어 보자. 


天下萬物은 生於有하나 有生於無니라 

도에서 나온 만물이 다시 도로 되돌아가고, 무에서 나온 유가 다시 무로 되돌아 가는 것과

같이 유가 유이기 위해서는 항상 무로 되돌아 필요가 있다. 살기 위해 아둥바둥 거리며

발버둥치는 우리에게 노자가 던지는 금언이다. 물은 없이 약하고 부드럽고 결코 자기를

내세우거나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지만 모든 어려움을 견디고 아무리 단단하고 억센 것이라도

결국 이겨 내는것 이것이 자연의 이치인것을 깨닫게 해주는 말이다. 부드럽고 약함은 모든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길 있는 참다운 강함이요, 진정한 부드러움인 것이다. 결국 유와

무는 무한한 것을 의미하고 무한함은 다시 유한한 인간 앞으로 다가온다. 노자의 이러한

사상은 얼핏 불교의 윤회와도 이어지는 같다. 뒤에 글귀가 붙으면 좋을

같아 적어 본다. 


故로 知足目足이면 常足突이니라.

도무지 만족 모르는 우리에게 던지는 노자의 다른 화두이다. 화로 말하자면 만족

모르는 보다 것이 없고, 허물로 말하자면 갖고자 하는 욕심보다 것이 없다. 그러므로

만족함을 아는데서 얻는 만족이야말로 참된 만족인 것이다. 만족할 모르기에 끊임없이

심을 부리고, 만족함을 모르기에 끊임없이 남의 것을 탐하고, 만족함을 모르기에  계속해서

다른것을 향해 눈을 돌린다. 하나를 가지면 두개를 가지고 싶고 두개를 가지면 네개를 가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지만 정말 우리는 만족을 모른다. 노자는 이러한 우리에게 만족함을

알라고 주문한다. 군주가 욕심이 많으면 백성이 고통을 받고, 가장이 욕심이 많으면 가족이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이야말로 평안함의 비결이다. 그래서 성서에도 '내

은혜가 내게 족하다'라는 말이 있나 보다. 


가득채우면 흘러 넘치는 것처럼 모든것은 '적당함' 필요하다. 물론 적당함은 어렵다.

넘치거나 모자람 없는 중용의 덕을 가장 표현한 '적당한'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노자가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아닐까 싶다. 부디 안분지족하는 '적당한'마음으로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면 좋겠다. 


끝으로 ''하기 좋아하는 우리에게 던지는 노자의 한마디를 적어 본다.

知足知는 上이오 不知足은 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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