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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빈곤 - 산업 불황의 원인과, 빈부격차에 대한 탐구와 해결책 ㅣ 현대지성 클래식 26
헨리 조지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5월
평점 :
고전을 만나는 것은 기대감 넘치는 일이며 동시에 염려스러운 일이다. 특히나 소설이나
문학 작품이 아닌 경제학이나 철학, 신학에 관한 고전은 생소한 문체와 어마어마한
분량에서 먼저 기가 죽는다. 이 책이 그렇다. 1871년 발표한 논문 '우리의 토지와
토지정책'에서 개진된 내용들을 토대로 써 내려간 '진보와 빈곤'은 583페이지를 빼곡히
채운 방대한 분량에 아울러 친절한 역자의 40여 페이지가 넘는 해제로 이루어진 책이다.
애덤 스미스, 토마스 멜더스, 존 스튜어트 밀 등으로 대표되는 고전 경제학 분야의
대가들과는 다른 경제 사상을 가졌던 헨리 조지(Hanry George, 1839-1897)는 산업 불황의
원인과 빈부격차에 대한 탐구와 해결책을 제시했는데 그중 정부가 지세를 직접 징수하는
단일세제인 '토지가치세'를 시행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당시 부동산 값이 폭등하여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주류에 편승되지
않은 이론은 그냥 이론에 불과할 뿐이기에 전방위적인 호응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조세방식인, 모든 세금을 면제하고 오로지 토지의 가치에만 세금을
부과하는 '토지가치세'는 아일랜드등 일부지역에서 시행되기도 했으나 마르크스 사상과
애덤 스미스등 주류 경제학자들의 의견에 밀려 결국 사장되고 만다.
이 책은 방대하다. 그러나 헨리 조지는 이 책의 출간 목적을 경제학 책이라고는 읽어 본 적도
없고 경제학은 생각조차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장 기본적인 진실을 각인시키고
싶어서 이 책을 출간한다고 밝힌다. 가난이라는 사회악을 다루며 가난의 퇴치와 더불어 인류
문명과 나아갈 길이 대해 논술하는데 역시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은 흥미롭다. 이미
100여년이 훨씬 넘은 시점에 쓰여진 글이라고 하기에는 이론이나 전개 과정, 설득 방법이
세련되고 매끄럽다.
사회가 물질적으로 진보하는데도 임금이 올라가는게 아니라 오히려 떨어지며 부는 기득권
층에만 집중되는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저자는 악순환에서 오는 빈곤의 문제를
부의 분배에서 찾는다. 생산의 3요소는 토지, 노동, 자본(저자는 이를 이자로 표현)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는 비율의 법칙에 의해 분배된다. 예를 들면 어느 하나가 40%를 가지면 나머지
두 부분이 60%의 몫을 가지고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요소에 대한 대가로 전체 생산물이
그 삼자 사이에서 분배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가 집중되면서 권력도 집중되는 이상 현상이
벌어지며 실질적으로 불공정한 부의 분배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현대문명의 저주 같은 위협인 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토지 사유제도 때문이라고 말하며
이러한 제도가 존속하는 한 생산력이 아무리 향상되더라도 일반 대중에게 항구적인 혜택을
부여할 수 없고 오히려 그들의 생활 조건을 더욱 악화 시킬 뿐이라고 말한다. 이 사회악을
제거하는데에는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는데 그것은 원인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부가
증가하는데 빈곤이 심화되고, 생산력은 높아지는데 임금이 줄어드는 이유는 모든 부의 원천이며
모든 노동의 터전인 토지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빈곤을 퇴치하고 임금을 정당한 기준에
부합하는 것으로 만들고, 노동자가 자신의 소득을 온전히 가져가게 하려면, 자유와 평등을
침해하고 노동자를 노예로 만드는 노예제와 군주제 같은 과거의 유물에 불과한 '토지 사유제'는
철폐하고 그 자리에 토자 공유제가 확립되야 한다. 저자는 이 방법을 현대 문명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부의 분배를 다스리는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제안이
현대의 사회 구조상 엄청난 반발(혹은 암묵적 무시)을 불러 일으킬 진리이기에 이미 100여년
전에는 날개도 펼치기 전에 소멸 되었다. 이 해결책이 진정한 방법이라면 그것은 진리에
부합되어야 하며, 현실에 적용 할 수 있어야 하고, 사회 발전의 경향과 부합하면서 다른 개혁
안들과도 조화를 이뤄야 한다. 아쉽게도 저자는 이 모든것을 증명해 보이는데 실패했고 일부 시
행되던 제도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책을 덮으면서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분명 이상적 가치는 높은 제안인데 기득권 세력의 조직적
반발과 사회 전반에 미칠 파장을 고려할 때 지금의 우리에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정치가들의 교묘한 기술이 발휘되어 노동의 임금과 자본의 소득으로부터 돈을 빼내가는
조세제도가 수립되었고 거의 모든 세금이 불특정 다수인 소비자에게 부과되는데 아주
작은액수에다가 아주 은밀한 방법으로 빼내가기 때문에 소비자는 자신이 세금을 내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따라서 저항할 생각도 하지 못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흡혈박쥐가
희생 동물의 혈관에서 피를 말아 먹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노동과 자본은 모두 충분히 보상 받아야 한다.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분배를 통해 사회 구성원들
간의 평등성을 높여주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부의 집중이 완화된다면 이런 곳이 우리가 꿈꾸는
그런 사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