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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름 그륀 신부의 어린왕자
안셀름 그륀 지음, 이선 옮김 / 영림카디널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린왕자(우리는 아무도 그 이름을 모른다)는 영성 깊은
신부님 같다라고. 글 속이 등장하는 그는 깊이와 넓음을 모두 소유한 영성가의 모습이다. 사
물을 있는 그대로 제대로 볼 수 있으며 그 너머의 무언가까지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고,
관조하듯 툭 던지는 한 마디는 그 의미가 무궁무진한 득도한 고승의 법어와 같다. 그런
어린왕자를 안셀름 그륀 신부의 시선으로 만나다니 반갑기 그지 없다. 안셀름 그륀은 독일을
대표하는 영성가이다. 그의 통찰력과 지혜는 신학과 현대심리학을 아우르는 광대함을 가졌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삶을 놓치지 마라'는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는 스테디셀러이다.
우리의 내면에는 누구나 '어린왕자'가 존재한다. 내 속의 어린왕자가 책 속의 그처럼 멋진 말을
하지 못한다고 부끄러울 필요는 없다. 우린 각자의 어린왕자와 함께 지금도 여행 중이며
끊임없이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의 별에서 자란 세상에서 하나뿐인 장미꽃과의 대화는 우리내
모습과 흡사하다. 세상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넘쳐나지만 우리는 도무지 사랑할 줄 모른다. 꽃의
자만심과 잔꾀가 왕자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려는 사랑의 표현이지만 우리는 어린왕자처럼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저 한없이 친절하고 잘해주려고만 하다보니 쉽게 지치고 마음에
맞지 않는 행동에 화가 나기도 한다. 장미꽃과 어린왕자는 모두 사랑하는 방법이 서툴다.
사랑은 배워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아닌 내면으로 다가가는 방법과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고 사랑하는 사람의 행동에 숨겨진 갈망을 알려면 배워야하고 노력해야 한다. 사랑하는 것은
이유가 없다. 만약 사랑에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가 사라지거나 퇴색하면 사랑도 끝나는 것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어린왕자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모든게 황홀하다. 사람들이 그렇게 찾아 헤매는 그것을 한 송이의
꽃과 한 모금의 물에서 발견한다. '눈으로 보이지 않기에 마음으로 찾아야 하는 그것을'. 처음
어린왕자를 읽을 때 '내게 물을 줘'라는 장면에서 예수님을 떠올렸던 기억이 작가의 글을 통해
다시 떠올랐다. 예수의 그 물은 생수(생명의 물)이고 그 물을 마시면 결코 목마르지 않을 그런
물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마름을 해결할 물을 찾아 다닌다. 그런데 눈으로만 찾다 보니 보이지
않는다. 마음으로 물을 찾는 사람은 생명의 물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내고 그 물이 솟아 오를때 사
랑의 희열을 만끽하면서 생명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황량한 사막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인데 사람들은 여전히 다른 곳에서 물을 찾는다.
슬픔은 마지막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왕자가 비행사에게 별을 남겨 둔 것 같이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한다. 그 별을 보면 어린왕자의 맑고 순수한 웃음이 생각나고, 미처 그려주지 못한
양의 입 마개가 생각나고, 함께 했던 시간들이 살아난다. 프랑스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의
'사랑한다는 의미는 당신이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는 말처럼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기에
죽지 않고 살아내는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어린왕자를 읽었다. 매번 읽을 때 마다 느껴지는 감정이 다르다. 10대의 어린왕자와
지금의 어린왕자가 그렇다. 그런데 나는 조금은 더 성숙하고 의젓할줄 알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다. 어느새 어린왕자가 됐다가 여우가 되기도 하고 비행사가 되기도 하며 뱀이
되어 한바탕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이 말은 여전히 설렌다.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갑자기 가평에 있는 '쁘띠 프랑스'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