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성적, 엄마 하기 달렸다 - 조기원 교수의, 공부력을 확 끌어올리는 부모 코칭 실전 매뉴얼
조기원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시대에는 '엉덩이' 공부를 했다. 얼마나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느냐의 싸움이었고 엉덩이에

종기가 나도록 앉아 있던 대부분은 성적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의 공부는 전략이다. 형편, 상황,

환경, 여건에 따라 각각의 전략을 가지고 공부에 임해야 그나마 가능성이 높아 진다. 저자는

이와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코칭의 방법으로 '부모(특별히 엄마)'

선택하고 이에 대해 이야기 한다. 'Children see, Children learn'이라는 말처럼 아이들은 본대로

배우고 그대로 따라 한다. 좋은 것만 배우면 좋겠는데 나쁜 것은 빨리 쉽게 배운다. 그래서

부모는 좋은 길잡이이자 훌륭한 훼방꾼이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코치' '상담심리학자' 저자는 대부분의 부모가 가진 뚜렷한 한계를

경험하지만 한계를 뛰어넘기 보다는 끌어 안는 모습으로 접근한다. 와부로의 쏟아냄이 아닌

내면으로의 끌어안음이 어쩌면 저자를 힘들게 수도 있었을것 같다. 그만큼 힘들다. 


먼저 유사학문이긴 하지만 분명한 차이를 가지는 '코칭' '심리치료' 정의부터 명확히 필요가

있다. 심리치료는 환자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회복과 치료에 목적을 학문이고, 코칭은 사람의

내면의 재능과 탁월성을 발견해서 종국에는 문제를 이상 문제로 보지 않고 탁월한 삶을 살아가는

리더로 만드는데 목적을 학문이다. 시각도 다르고 목적과 접근 방법도 다른 학문인데 이를

당연하다는듯이 혼용하고 있는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저자는 부모들에게 두가지를 요구한다. '이해하기' '기다려주기' 그것인데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높은 내공' 가진 사람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생각과 바람이 구분되지 않는 상태에서 바람은

반드시 일어나야  일로 생각하는 'must be' '반드시'라는 인지왜곡을 가져온다. 삶에서 오는

시련과 인내의 차이를 이해하지 않는 상태에서 퍼부어지는 부모의 과도한 관심과 말은 거의 폭력에

가깝다. 자녀의 회복 탄력성은 제로에 가까운데 이에 배나 되는 압력으로 아이를 '푸시'하면

아이는 당연히 지쳐서 나가 떨어지게 된다. '회복 탄력성'이란 크고 작은 역경과 시련과 실패를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높이 튀어오르는 '마음의 근력' 의미하는데 이는 학습과 노력을

통해 어느정도 습득이 가능하다. 


'경청'

부모들이 가장 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부분에서 자녀들에게 실수 혹은

실패를 경험한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 주지는 않고 본인의 의지와 생각대로 먼저 말하다 보니

아이는 결국 말문을 닫아 버리고 '단절' 가져오게 된다. 단절만 경험하면 다행인데 아이는 결국

부모와의 충돌을 기피하려는 목적으로 '거짓' 말하기 시작한다. 이러면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무미건조한 형식적 관계가 된다. 


어짜피 생각도, 행동도 아이가 한다. 다만 부모는 그것을 있게 만들어 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를 마음대로 '핸들링'하려 하지 말고 아이 스스로 '멈추어 생각하기(stop &

thinking) 있게 해야 한다. 걸음이 '경청'이다. 듣고 듣고 , 듣고 다음에 말해도

늦지 않다. 저자는 '자녀와 대화하기' 강조하면서 다음의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눈을 바라보기,

고개를 끄덕이기, 끝말을 따라하거나 키워드를 반복하는 적극적 반응하기, 적어도 세계지만 잘해도

아이들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 것이다. 저자의   문장을 적어 본다.

'코칭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전히 사랑이라고 너에게 말할 거야 - 전 세계 젊은 작가 200명이 다시 사랑을 말하다
밥티스트 볼리유 외 지음, 자크 콕 그림, 김수진 옮김 / 더숲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만약 장미에 가시가 없다면 세상이 거짓말 하는 것인데 우리는 편리성을 이유로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한다. 있는 그대로가 아닌 가공하고 정제해 것들이 이미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기에

'있는 그대로' 머물 공간이 없어져 버렸다. 사랑도 그렇다. 순수와 열정이라는 본질보다는

계산하고 이리저리 재보고 마치 물건을 고르듯이 선택한다. 그러다 보니 사랑이 인스턴트화

되어 버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쉽게 싫증내고 다른 사랑을 찾는다. 그런 우리에게 200여명의

작가들이 자신의 사랑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한다. 


'사랑이란 너의 불완전함에조차 마음이 이끌리는 '

내가 좋아 하는 말이다. 사랑은 완성된 상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 역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사랑은 완성품 둘이 만나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미완성품 둘이 만나 서로를

채워가는 것이다. 여기에 계산은 필요없다. 서로를 갈구하기에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고

주면서도 주고 싶은게 사랑이다. 사랑은 거래가 아니기에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 윈윈이다.

가치를 정하지 않기에 주어도 모자라고 나누어도 아깝지 않은게 사랑이다. 원예사의 장미 가시에

대한 사랑처럼 가끔 찔려서 아프고 피가 나도 있는 모습 그대로가 사랑이다. 


'사랑은 거리이다'

무한한 우주 속에서 그와 내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다. 사랑하면 가까이 가고 싶다. 몸의 거리도,

마음의 거리도, 생각의 거리도 가까워지는 그래서 결국 하나가 되는 이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은 곁을 내어줌을 넘어 안에 그를 받아 들이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와 조건없이 가까이

다가가고 가까이 받아 들이는 것이다. 무언가 제한되고 꺼려지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다가가는 것이다. 곁에 있고 싶기에 전갈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고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하기에

여행 조차 행복해 지는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 덕분에' '너와 함께'이다.

사랑하면 언어가 달라진다. 평소엔 뜨거워 사용하지 못하던 단어를 사용할 용기가 생기고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가식이나 위선이 아닌 진심을 담아 ' 덕분이야' 전하며

'너와 함께' 청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책에는 무수히 많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 옳다. 그리고 모두 틀리다. 사랑은

각자 자기의 사랑이 있다. 그것은 도식화 할수도 정형화 할수도 없이 오롯이 그만의 것이다. 그래서

랑은 외롭다. 외로움을 함께 채워 나가는 이것이 사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분의 발견 - 오늘부터 가볍게 시작하는 일상 우울 대처법
홋시 지음, 정지영 옮김 / 블랙피쉬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몸이 무너지듯이 무겁고 정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싫은 , 잠을 자도,

동을 해도, 맛난 것을 먹어도, 심지어 약을 먹어도 그때뿐. 여전히 머리는 아프고 몸은 무거운

그런 말이다. 저자도 그랬던것 같다. 그래서 회사를 퇴사하고 '멘탈 해커(mental hacker))라는

독특한 일을 하는 '블로거'라고 해야 할지 '트위터리안'이라고 해야 할지 암튼 그런 사람이고

예전에 우울증을 앓았고 지금은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한 여러가지 방법들을 맵핑(mapping)한다.

멘탈 해커는 자신의 멘탈을 분석해서 개선하거나 자기 마음을 프로그래밍 하고 고치는 작업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 그의 첫번째 이야기는 이것이다.

 '의외로 실제 경험을 토대로 정보는 없다'. 이것이 저자가 우울증에 대한 맵핑을 시작하게된

동기이며 그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도처에 널려 있는 정보들은 무수한데

정작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는 정보는 별로 없어서 실제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몸소 느낀

저자 자신이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고 길을 걸으며 자신도 모르게 몸이 나아지는 효과를

덤으로 얻게 것이다. 


책에서도 우리가 듣고 알고 있는 멋진 하나를 만난다. 

'우리가 걱정하는 일의 90% 일어나지 않는다'. 정말 그렇다. 그런일은 결단코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머리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힘들어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불행한 환경에 마음이 완전히 익숙해져서 오히려 행복한 환경을 멀리

하게 한다. 의학계에서는 이것을 '노시보 효과(Nocevo effect)'라고 한다. 사람은 의외로 단순하기에

자신에게 주입된 생각과 사고에 지배를 받는다. 플라시보 효과의 반대 의미로 사용되는 노시보

효과는 이런 인간의 불완전하고 약한 심리를 지적한다. 


이런 우울증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많은 제안 유독 눈길을 끄는 단어가 있다. 

'본질적 사고'. 본질적 사고란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배분해서 '더욱 적게 그러나

더욱 좋게' 추구하려는 사고형태이다. 일반적으로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데 저자는

이를 우울증 치료에 사용한다. 본질적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비본질적 사고의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비본질적 사고는 인지 왜곡과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까지 가져와 결국 비효율적

삶을 살게 만든다. 이를 제거 해야하는데 이때 '리스트 ' 필요하다. 해당 목록을 기록하고

(사실 이것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치료는 시작된것이다) 천천히 급할것 없이 아주 천천히

하나씩 마주하면 된다. 이부분도 역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결과를 내야 한다는

집착 때문에 급해질 필요도,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함도 가질 필요 없이 천천히 그리고

걸음씩 비본질적인것들을 상대하다 보면 어느새 우울증과 부쩍 멀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저자는 여러번 이렇게 말한다. 

'아주 조금만 힘을 내면 있는 일부터 시작하기 바란다'

어떤 상황이라도 있는 일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멀리 돌아 간다고 느껴지는 거리가 실은

지름길이고 느리다고 느껴지는 시간이 가장 빠른 시간이라는 생각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우리에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어떻게?

'느릿느릿, 천천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곱셈인생 - 지식공학자의 ‘조금은’ 다른 관점의 이야기
허병민 지음 / 쉼(도서출판)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페이지에 작은 글씨로 이렇게 써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많은 의미를 담은 말이다. 어제의 나는 찌질하고 실수투성이에

욕을 얻어 먹는, 아니면 칭찬을 듣고 뭔가 거창한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그도 아니면 이런저런

큰일 없이 무난하게 보낸 하루의 나였을 것이고 오늘이라는 새로운 현실에 마주하고 있는 나는

어제와는 다른 관점과 생각을 가진 아니 어쩌면 그럴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나일 것이다. 자신을

과시하느라 '설마' 농락 당해 버린 어처구니 없는 어제의 나에게 던져진 오늘은 '어제 죽은

누군가가 간절히 살고 싶었던 바로 '이다.

 

저자가 첫번째로 등장 시킨 인물은 스티브 잡스(Steve Jobs). 혁신의 아이콘이자 젊은이들의

희망이기까지 했던 잡스를 표현하는 단어들은 무수히 많지만 역시 그가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했던 'Stay hungry Stay foolish) 'identity' 그를 기억한다. 그는 자신과 자신이 만드는

물건에 끊임없이 'identity' 부여하고 주문한다. 기술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인문학(교양)

결합시키고 애플이라는 회사의 정의를 '애플=기술+인문'으로 각인시킨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곳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했기에 가능한 일이고 일을 해낸 그를 우리는 정복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Who I You'. 자신있는 사람만이 심플해질수 있다는 말처럼 자신에 대한,

자기 자신을 바라 보는 , 정체성을 찾는 것은 세상이라는 정글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생각이다. '무의식의 화가' 불린 천재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지금 자신의 꿈은 살바도르 달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것 처럼 말이다. 그의 천재성은 달리 자신에게서 시작됐고 자신안의 천재를

발견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친절하게도 저자는 50년이라는 사건을 제시하며 만약 50년을

산다면 50()x365()x24(시간)x60()x60()=1,576,800,000 라는 결과를 알려준다. 평균 여명을

80세라고 가정하면 지금 30세인 사람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15억초 정도 밖에 안된다. 그보다 훨씬

나이가 있는 나는 적을 것이다.(계산을 보았지만 밝히고 싶지 않다) 막상 남아 있는 시간을

확인하니 시계의 초침 소리 하나하나가 무겁게 느껴진다. 마치 시간의 도둑이 시간을 갉아

먹고 있는 것처럼. 카이로스의 시간이 떠오른다.


재미있는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 '우리는 박경철이, 안철수가, 이외수가, 김난도가 아니다'. 맞다. 

나는 그냥 나일 뿐이다. 나와 다른 성향, 나와 다른 성격의 그들이 하는 것을 따라한다고 그들처럼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여야만 하고 이런 나는 나로서 존재할때가 가치가 있는 것이며 나의 삶의

주인은 결단코 나다. 나를 안다는 , 나를 알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매우 길고 어렵고 지루한

길이다. 하지만 결코 피할수 없는 길이다. 피할 없으면 즐기면 된다. 그게 답게 사는 길이다. 


저자의 책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법칙을 발견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저자가 단골로 다니는

구멍가게 사장님으로부터다. 사장님은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무슨 조커도 아니고' 항상 상냥하게

웃으신다고 한다. 친절함, 상냥함, 웃음은 의외로 강력한 무기다. 결국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따뜻한 햇빛이었던것 처럼 말이다. 하나는 2-3 정도의 정보가 피드백인데 말을 조금 틀어서

생각하면 잡스가 가졌던 자신이 판매하는 제품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정체성을 의미한다.

정확히 알기에 손님에게 자신있게 말할 있는 것이다. 어설픔이 아니라 정확함이 생명이다. 마지막이

손님을 ''으로 보지 않는 다는 점이다. 나와 상대하며 만나는 사람을 동일한 인격으로 생각하고

가족이나 이웃처럼 생각하기에 그곳엔 정이 넘칠 밖에 없고 옆에 현대식 가게가 있음에도

그곳을 찾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다.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알아야 자신의 가치를

장할 있다. 웃는 얼굴에 뱉듯이 친절함과 상냥함은 상대의 마음을 녹이는 비밀 병기이다.

중국 4 추녀이던 종리춘의 '엉뚱발랄'함과 '재치'처럼 말이다. 또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결코 사람을 ''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인생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레오(카아누 리브스분)에게 주어진 가짜 현실에

안주하는 파란 알약과 적나라한 진짜 현실을 있는 빨간 알약처럼 항상 우리 앞에 선택지가 놓인다.

그리고 선택의 몫은 오롯이 자신에게 있다. 저자가 말하는 곱셈 인생은 바른 생각과 바른 판단과

바른 선택을 통해 자신의 길을 가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구원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구원과 영생, 복음의 성경적 정의
존 오트버그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수의 삶이 우리 삶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P21

희생은 무언가를 잃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옮기는 행위다. P86

 

복음의 핵심은 구원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구원은 이상 최고의 가치가 아닌지 오래며

긴박성과 희소성 마저도 상실했다. 복음의 힘과 약속을 잃어 버리고 축소시킨 우리의 오류는

결국 하나님의 크기마저도 제한하고 작게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현실 앞에 던지는 저자의

'How Do I Know If I'm Really Saved?'라는 질문은 '다시 복음 앞에' 서야하는 우리에게 긴장과

기대감을 동시에 가져다 준다. 단순히 일정 수준 이상 도달하면 통과되는 통과의례가 아닌

세상의 소망으로서의 구원에 대해 말하는 오트버그(John Ortberg) 글은 하나의 도전이다.

 

10여년전 교회 청년부 헌신예배 설교 부탁을 받고 ' 땅에서의 천국' 대해 전한적인 있다.

예배를 마치고 다과를 하는 교회 담임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지금도 생각 난다. '목사님

자유주의 신학이세요?' 당시는 그랬다. 사후에 천국가는 복음이 최고의 가치이던 시절 혈기방자한

젊은 목사가 8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에 와서 땅에서의 천국을 이야기하니 놀라셨을 만도

하다. 그런 구원을 책에서 다시 만났다. 


구원의 핵심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의 문제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주시는 일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하나님 나라의 삶이 우리 삶으로 스며들어

안에서 연합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나는 지금도 여전히 이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또한 구원은

'하나님이 관해서 아는 '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말장난이 아니라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감사하게도 은혜의 선물로 내가 그분의 친구가 되는 것이고,

동행하는 것이고, 지금 나와 함께 계심을 믿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대해서 아는 사람도 이것을

안다. 차이는 그것을 누리며 사느냐이다. 누린다는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사용하며, 드러내며,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영생은 죽은 뒤에야 보험금을 받는 보험증서가 아니요

훗날 천국의 한자리를 보장해주는 마법의 면책특권도 아니고 옳은 답을 알거나 옳은 교리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명백히 밝힌다. 

구원은 철저한 은혜다. 구원은 단순히 우리가 내린 잘못된 선택들의 결과에서 건짐 받거나 나은

상황으로 구조되는 것이 아니고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변화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달라스 윌라드(Dallas Albert Willard, 기독교 사상가, 철학자,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은혜의 저자) '은혜' '노력'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얻는 '

반대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초대인 '나를 따르라' 앞에 마주선다. 함께 걸어가자고 초대하신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함께 걸어 가는 것이다.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며 그를 배우는 것이다. 삶과

생각과 마음과 뜻을. 그리고 그대로 사는 것이다. 다른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대로 그렇게 사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한 임재를 인식하는 '깨어남',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것들을 버리는 '정화',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깨달음', 그분의 임재가 현실이 되어

'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15:4) 이루는 '연합'으로 설명한다. 물론 과정은

직선적 과정이 아니다. 단계들을 통과하는게 목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렇게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분명한 이유요 목적이다. 


아주 흥미롭지만 무서운 내용 하나를 발견했다. "과연 우리는 천국을 간절히 원할까?" 단순히 꿈꾸고

기대하고 원하는 그런 곳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바로 천국 말이다. 천국에서는 하나님을

피할 방법이 없다.(이는 땅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은근슬쩍 이것을 용인하고 사용한다) 가끔,

아니 자주 '하나님이 이것만은 보시지 않았으면....'하고 눈가리고 아웅하는 우리에게 모든것이 그대로

공개되고 드러나는 천국의 삶은 마치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 헤매다가 겨우 만난 조각이 너무 불편해

슬그머니 자리에 내려두고 다시 길을 떠나는 이가 빠진 동그라미처럼 답답하고 불편할 있다.

숨어서 몰래 죄를 짓고도 아무도 모른다고 자위하는 우리에게 어쩌면 천국은 족쇄일수도 있다. 우리의

문제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천국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구원의

핵심은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우리에게로 가져오는 것이다'.

책은 열세가지의 질문과 대답으로 되어 있는 아주 작고 얇은 책이다. 그러나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은 '보물'이고 '정수'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이며,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정확하다. 그래서 책은 신학교에 들어간 후배들이 읽어 봤으면 한다. 그들의 신학이

고착화되기 전에 기초와 주춧돌이 되어 것이고 평생토록 사용할 아주 강력한 무기를 장착하게

될것이다. 나도 책을 올해 신학교에 들어간 제자에게 선물할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