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50만부 돌파 초판 무삭제 완역본) 데일 카네기 초판 완역본 시리즈
데일 카네기 지음, 임상훈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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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는 친구를 만들고 적을 만들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책은 간결하다. 간결하고 명쾌하다.

지지부진 하지 않고 단호하다. 책에서 소개하는 사람을 다루는 일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이고

가장 어려운 '임무'이다. 데일 카네기는 책을 발간하는 목적을 '습관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는 능력'

바로 능력을 깨우고 발견하고 개발해서 사용하도록 하는데 있다고 밝힌다. 교육의 가장 커다란

목적은 지식이 아니라 행동이다라는 말처럼 책은 행동을 위한 책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정신적 육체적 자산의 지극히 일부만 사용하고 있다. 이를 쉽게 풀어서 말하면

인간은 자기 능력의 한계에 훨씬 미친 살아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가진 자산을 습관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배움이란 능동적인 과정이다. 우리는 행동을 통해 배우고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알린다. 무언가 발견하고 배웠다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려 애쓰라'

어려운 주문이다. 우리는 천성적으로 자기 방어가 강하기에 먼저 자신을 생각하지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생각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카네기는 여기서 나아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하라고 주문한다. 사자성어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말이다.

그렇게하면 조금은 상대방을 이해할 있고 이해할 있다면 그만큼 관계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질수

있게 된다. 나의 입장, 나의 생각이 항상 옳고 항상 정답은 아니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는 ,

이것은 사람을 사람으로 만들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인간관계의 대부분은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고 만들어 진다. 그래서 사람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모두의 고민이고

관심거리였다.  저자 역시 책의 부분에 내용을 담고 있다. 가장 하기 어렵고 가장 곤란한

내용이 하나 있다.


 '솔직하게, 진심으로, 인정하고, 칭찬하라'.

쉽지 않은 주문이다. 솔직하게. 솔직함이 무기 일수도 있으나 솔직함은 바로 나에게 치명타로 날아

있는 부메랑이다. 나의 솔직함이 상대방에게는 어리석음으로 비칠 수도 있다. 물론 솔직함이

결국 이긴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것을 견디는 시간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솔직함을 포기한다. 그런데 솔직하게라고 말한다. 진심으로. 진심은 통한다. 분명 통한다. 그런데

언제인지 모른다. 당장 내일이 될지 아니면 다음 세상일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진심은 위험하다.

특히나 요즘 같은 세상에서 진심은 자신의 벌거벗음과 같다. 그런 수치를 드러내고 보여주면서까지

진심을 다할 사람은 별로 없다. 진심이 그대로 받아 들여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세상은 항상

우리를 시험한다. 그래서 어렵다. 솔직하고 진심으로는 정말 좋은 말이다. 그런데 너무 어려운 말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만 현실은 너무 멀다. 그래서 아쉽다. 인정과 아첨의 차이는 하나는 진심을 담고 있고

다른 하나는 진심이 없는 것이다. 하나는 마음에서 나오고 하나는 입에서 나오며 하나는 이기적이지

않고 하나는 이기적이다. 인정은 모든 사람이 칭찬하지만 아첨은 모든 사람이 비난한다. 다른 사람을

솔직하게 진심으로 인정하고 칭찬할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소중하게 받아 들이고 인정하게 될것이다. 


프로이트가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라 칭하고 듀이가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라

부르는 그것. 갈망은 누그러지지 않고 변함없는 갈망이다. 이는 인간의 본성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망이고 욕망은 사람을 미치게도 만든다. 그런데 욕망의 근원이 칭찬이라는 것이다. 칭찬 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주목 받고 싶고, 보이고 싶고 이런 생각의 파편들이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책은 생각보다 쉽다. 그런데 조금 깊이 들어가면 점점 어려워진다. 친절한 예화들과 쉬운 설명으로

쉽긴한데 A B다에 익숙한 우리에게 친절한 설명은 오히려 어려움을 준다. 그래서 많은 것을

고민하게 만든다. 워 버핏의 인생을 바꾼 책이라고 소개하기도 하는 책은 자신의 삶과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사람이 읽어 보면 좋을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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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갑이 되는 기술 - 상처 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코치 알버트 지음 / 북스고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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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정작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하고 병들게 하는 어리석은 우리에게 던지는

저자의 화두는 '착한 '이다. 착한 갑이 가능할까 라는 의문으로 책을 열었다. 


시작부터 흥미롭다. 용한 점쟁이가 되는 방법을 이야기하며 던지는 . '가까운 사람 때문에

문제를 겪고 있군요. ' 대부분의 사람은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중 대부분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들이고 사람은 우리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우리의 삶의 질은 관계의 질이기에 우리는

관계에 목을 맨다. 


우리는 순간 답을 구하면서 산다. 그러다 보니 답은 항상 판단의 대상이 되어 옳으니 그르니

내지는 틀렸는지 맞았는지에 대해 말이 많아 진다. 이에 대해 저자는 어떤 답을 하든 상관없고 답을

했다는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옳바른 인생을 살았느냐는 질문의 맹점을 파고 든다.

사실 옳바른 인생, 정답 인생은 어디에도 없다. 단지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지 어디에도 이것이

옳바른 인생이다라고 말할 있는 것은 없다. 정답이 존재하며 정답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강박과

착각이 우리를 가차없이 수렁으로 빠지게 만든다. 정답을 추구하고 찾으면 찾을 수록 스스로의 판단이

아닌 외부의 평가나 판단에 목말라 할것이다. 분명한 것은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거절에는 이유가 필요없다'

조금 삭막하고 인간적이지 않아 보이는가. 그래도 없다. 거절을 위해서 확실하고 완벽하고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를 너무 많이 지배하고 있다. 싫은건 싫은 것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거절하면 안된다는 신념은 우리를 병들게 뿐이다. 거절에는 이유가 없다. 거절하는 것도 거절

당하는 것도 필요하다. 적어도 정도의 존중과 허용을 서로 용인할 오히려 관계는 더욱

건강해지고 풍성해진다. 존중과 허용이 안전함을 만들고, 안전함은 자기도 몰랐던 솔직함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의사결정에 의해서 결정된다. 좋은 의사결정은 삶을 행복하게 만들고, 반대의 결정은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 설득이란 타인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설득으로 상대방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거나 불행하게 만들 있다. 긍정적인 설득은 타인의 삶을 훨씬 좋게 만든다. 설득이란 가치있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연결시키는 작업이고 이를 통해 나은 결정을 하게 한다. 


아쉽게도 저자가 말하는 '' 우리가 말하는 '' 아니라 영어의 '알파' 우리말로는 옮긴 것이다.

영어권에서 '알파' 특정 관계에서 우위의 포지션을 점한 사람뿐 아니라 관계에서 주도권을 가질 있는

사람의 자질을 의미한다고 친절하게 밝힌다. 그러면서 이렇게 주문한다. '상대방에게 도움과 이익을 주는

착한 갑이 되길 바랍니다. 저자가 말하는 착한 갑은 상대방의 처지에 공감하고, 장점을 칭찬해주며,

감사할 알고, 상대방의 가능성을 지지하고 인정해주는 진심을 담은 사람이다. 사실 뭉뚱그려져서

갑의 의미에 혼돈이 오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갑이 아니라고 해도 어느 사회에서든 인정받고

존경 받을것이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착한 '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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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 2 - 적이 없는 전쟁
김진명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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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속에 2부를 편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우리는 책에서 '살수대첩' 나올것을

익히 안다. 그런데 제목이 '적이 없는 전쟁'이다. 전쟁에 적이 없다. 피아간의 구분이 없는데

전쟁이라 있을까?


궁금증이 생겨 급히 책을 열어 읽기 시작한다. 시작부터 펼쳐지는 군사들의 사기를 충전하게 하는

장면이나 양측의 지략 대결은 마치 전장의 높은 곳에서 그들을 눈으로 보고 있는 착각이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모든 일은 하늘의 순리를 따른다고 하던가, 순리를 거스르고 ()으로

향하는 양광과 그가 하늘의 허락을 받고자 제를 올리는 대선사의 불의한 행동은 () 자체이며

고구려에게는 운이 따르는 행동들이다.

 

마침내 수의 황제는 을지문덕의 계략에 빠져 감정에 치우친 진격을 명령한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자들의 출군은 배고픔과 괴질, 수송부대의 좌초, 사기저하등으로 30만이 출병하여 겨우 10, 그것도

고구려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회군하고 만다. 결국 일로 양용은 폐세자 당하고 야심많고 음흉한

양광이 세자에 책봉되어 결국 형과 아버지를 죽이고 황제가 되니 그가 바로 수양제이다. 황제가

양광은 113만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정벌에 나선다. 당시 이에 맞서는 고구려 군은 16 정도

였으니 군사의 격차는 상상을 초월했고 이는 그동안 고구려를 지켜온 의기와 기상 만으로 상대하기엔

너무도 거대한 군사였다. 


수적 열세를 의지적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장군들과 중신들에게 던지는 을지문덕의 일갈은 정곡이었고

비수였다. 항복이 주는 환상을 일깨우며 숫자가 가지는 맹점을 짚어내는데 탄복하지 않을 없다.

113만이라 하나 군사들이 곳에서 싸울 없다는 맹점을 정확히 찾아내어 이를 전략으로 삼는

을지문덕. 그는 알고 있었을까. 여년이 흐른 자신의 후손인 조선이라는 나라에 이순신이라는

위대한 하나의 장군이 있었다는 사실을.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순신의 전공과 용맹이 자신의

통치에 해가 될까 두려워 경계하고 배척하고 시기하는 옹졸한 선조와는 달리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전쟁의 전권을 을지문덕에게 이양하는 지혜로운 영양왕이 있다는 사실이다. 백성을

위한다면 정말 나라를 위한다면 이래야 한다. 이들에게 군신의 벽이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인간과

인간으로서 함께 역사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죽을 것을 알지만 나라를 위해, 왕을 위해,

아니 을지문덕을 위해 최전방 수호를 자처하는 장군들의 모습은 뭉클함이 느껴진다. 


평양성을 내어주되 얻는 전략이나, 예상치 못한 별동대의 투입이나, 수가 군사를 일으키기도 전에

미리 둑을 쌓아 물을 모으는 전략들은 혀를 두룰 지경이다. 결국 수는 살수에서 대패하게 되고

양광은 낙양(洛陽)으로 돌아가라가 아닌 낙양(落陽)으로 돌아가라는 을지문덕의 조롱섞인 서신을

받고 퇴각하게 되며 고구려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 을지문덕은 자신에게 내려진 모든

명예와 권력을 받지 않고 건중만을 데리고 살수로 돌아와 전장에서 죽은 병사들을 생각하며 삼일동안

통곡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낭림산으로 들어 갔다 한다. 

'적들은 반드시 온다....남을 침하지도 그렇다고 당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이후 수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에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기도 했고 치욕의

시간을 보내야 했으며 고충은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부담되는 완순환을 반복했다. 

을지문덕 그는 지금의 시선으로 봐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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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 1 - 전쟁의 서막
김진명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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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치열한 싸움 속에서도 영웅은 영웅이고, 혼탁한 세상 속에서도

기재는 기재다.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만난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며 누리는 행운일진데

일국의 왕자로부터, '고구려 천년의 영웅이다'라는 소리를 들을 있는 을지문덕. 그는

분명 범인은 아니다. 수와 고구려의 대치 형국에서 벌어지는 말갈, 백제, 거란, 신라 등의 외부

세력과의 합종연횡은 지금의 정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말갈의 족장 하나인 아야진과의 우정은 수심과 번민 속에 머리가 아팠던 아야진이 문덕을

만나는 순간 기쁨을 감추지 못할 만큼 크고 강건하다. 아야진에게 문덕은 의지하고 마음을

나누고 싶은 친구이다. 아야진에게 던진 청년 문덕의 마디는 앞으로 펼쳐질 영웅의 일대기의

전조를 보여준다. '청년이라면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품어야 하는 아니겠나.' 불가능의

꿈을 품지만 그것을 가능해 만들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는 그런 사람이 청년이다. 이들의 만남은

양광에게 붙잡혀,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대족장인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마저 죽을 위기에

처했을 처음 시작된다. 죽음의 위기에서 구함을 받은 아야진은 이후 문덕을 마치 여인네의

마음처럼 사모하며 존경한다. 그리고 이제 다시 만나 미래를 준비한다. 


어느 왕조든 왕좌를 위한 목숨을 암투는 발생하고 모략과 술수가 벌어진다. 수나라도 그랬다.

세자 양용과 둘째 양광의 대립과 충돌은 마치 우리의 궁궐 역사를 들여다 보는 듯하다. 여기에

리의 역사 시간에 등장하는 '여수장우중문' 주인공 우중문도 등장한다. 


을지문덕과 건무, 아야진, 강이식, 갑정 이들은 비록 신분은 다르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에게 진실인 진짜 사내들이다. 어쩌면 조합만으로 이미 전쟁은 끝난것이나

다름없으나 수의 양광과 우중문, 석환 역시 만만치 않은 이들이라 서로 얽히고 설킨 용호상박의

대결이 사뭇 흥미롭다. 을지문덕. 그의 말은 진중하고 깊이가 있다. 한번 던져진 말은 천금과 같고

득도한 고승의 법어와 같으며 듣는 이로 하여금 묘하게 말려들게 하는 마력을 가졌다. 


책에는 백성은 모르고, 군사도 모르며, 감정이 메말라 화를 내고 부합하는 세력의 농간에 휘둘려

중심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인물하나가 등장한다. 그를 보고 있자니 밑에 아무리 뛰어난 장수가

있다 한들 패배의 길로 접어 밖에 없는 안타까움에 안쓰럽기까지하다. 이런 형과 아버지를

둘째 황자는 이상 지켜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대부분의 쿠데타는 이랬다) 드디어 이렇게 말한다.

' 황제가 되고 싶다'


이에 반해 고구려 왕실의 모습은 '연합'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총명하며 진중한 영양왕, 그런 왕을

보좌하며 견고하게 있는 왕자, 왕의 명령이라면 불속이라도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는 장군들,

왕에 대한 충성으로 의심하고 염려하고 걱정하는 대대로와 대신들, 거기에 전설의 치우검을 소유한

용맹한 지략가 을지문덕, 이들이 이루어 내는 하모니는 '화합' 자체이다. 


이렇게 수와 고구려 양측은 일촉즉발의 상태에서 고구려가 먼저 선공을 취하러 떠나는 장면에서

1부가 막을 내린다.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단숨에 읽게 만드는 김진명 작가의 필력에 다시금

감탄한다. 그리고 2부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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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울다
데이비드 플랫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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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누군가의 글에 ' 그대로'라는 단어를 썼던 기억이 있는데 책에서 다시 한번 '

그대로'라는 단어가 생각 났다. 처음부터 운다. 히말라야 트레킹(어쩌면 우리는 평생 꿈도 꿔보지

못할) 마치고 돌아와서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대고 한참을 운다. 모두를 잃어 버린

이들에게 있는 것이 없기에 주저앉아 통곡할 뿐이다. 그리고 눈물은 멈출 모른다.

예전 교회에서 사역할 이런 자매를 적이 있다. 청년부 예배 시간에 말씀을 전하는데 중간

정도에 앉아 있던 자매가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주변에서 달래려는걸 그냥 두라고 하고 말씀을

마치고 예배를 마쳤는데 여전히 울고 있다. 우리 모두는 자매를 위해 조용히 자리를 비웠고

시간여를 그렇게 울던 자매가 교역자실에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갑자기 눈물이 났고 주체할

없었고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는지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울어서 창피해서 어쩌냐며 부끄러워

하던 자매, 지금은 선교사가 되어 현장에 있다. 


지금 우리 현실은 그냥 암담하다. 우는 능력도 잃어 버렸고, 사용하라고 주신 폭탄은 폼으로 가지고만

있어 녹슬어 버렸고, 세상이 교회를 향해 외치는 소리엔 귀를 막아 버리고 자기들만의 축제에 열광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많은 수치, 많은 설교로는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 주변 사람들이 겪는 극심한 고통을 눈으로 똑똑히 보아야 하며 '세상 속에서' 말씀을 경험하여

말씀이 우리 가슴 깊은곳까지 파고드는 일이 필요하다. 이대로는 안된다. 무언가 바뀌어야만 한다. 


복음,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 어디에서는 흉기로 자신들을 위협하는 날카로운 무기로 때론 권력과 힘의

상징으로 보여져 척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왜곡과 오해가 섞여 하나님에 대해 멀어지고 반감만

가득하다. 정작 보여줘야 하는 '예수' 아닌 정복자요 오만하고 욕심많은 괴물로 비쳐지기도 한다.

복음의 최전방에 나선 우리는 '진짜 예수' 전해야 한다. 진짜 하나님을 전해야 한다. 오염되고 타락하고

인색하기 그지없는 변질된 복음이 아니라 죽음으로 값주어 '진짜 복음' 전해야 한다. 


900만명의 주민 예수님의 제자는 100명도 되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 들어 보지

못한 영적 빈곤과 아이들의 열에 다섯은 여덟살을 넘기지 못하는 육체적 빈곤마저 지닌 그곳, 예수라는

이름을 들어 본적이 있냐는 질문에 근처 어느 마을에 사는 누군가를 묻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

저자는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그래서는 안되는데 ' 거기까지라고' 생각하며

기도했다. 이해할 있을 같다. 우리의 사역 현장에서도 그래서는 안되는데 정말 그래서는 안되는데

그냥 거기까지라는 의무감으로 기도할 때가 있다. 물론 이내 돌아서서 다시 하긴 하지만 저자도 그랬던

같다. 사역자의 이런 고백이 낯설지만 반갑다. 인것 같은 이런 사실적 묘사가 좋다. 


물을 걸러 마실 간단한 필터가 없어 가족과 마을 주민 60명이 몰살당한 시잔,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7살의 나이에 산으로 도망쳤다 붙잡혀 헛간에 갇혀 나빈, 마을에 열두살에서 스무살 사이의

여자아이들이 모두 성노예로 팔려나갔지만 그래도 이곳 보다는 것이라는 묘한 믿음을 가진 부모들과

아이들이 팔려간 '오두막 식당' 참상을 읽으며 가슴이 아파오고 우리의 할머니들이 생각이 났다.

배낭에 먹을 것이 있음에도 주지 못하는(아니 없는) 가난의 민낯 앞에서 무기력한 저자의 모습은

소수에게 베풀어 다수가 배제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적나라하다. 가난한 자들에게 전할

복음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각각의 상황을 맞이하며 계속해서 주님께 묻는다. 'why' 'how' 사이에서 고민하며 묻는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선택 길이며 방법인지에 대해.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향한 진짜 사랑은 종교적 학습만 해서는 절대로 만들어 없는데 우리는 미친듯이 학습에 목을 맨다.


"답은 '무엇' 아니라 '누구'입니다."

잠시 멍해졌다. 무엇을 하였느냐에 집중하다 정작 '누구' 잃어 버린 사역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정작

그분이 행하시는 일임에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한것인양 한껏 폼을 내는 우리들 앞에

주님은 여전히 허리를 숙여 뭔가를 적고 계실 같다. 


이들의 예배에서 중국 선교사에서 드렸던 예배가 기억났다.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년을 기다리고

준비했다는 자매들,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삼일을 기차를 타고 왔다는 형제, 집회에 참석하려고,

참석하려고, 참석하려고... 히말라야 곳에서도 그랬다.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살을 애는 추위 속에서

삐끗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비좁은 산길을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올라왔다 세상 가장 불편한 자세로

가장 행복한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그들. 무엇이 이것을 가능케 하는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지만 즉시 가족에게 버림 받고 쫓겨났으면서도 '예수님은 가족을 잃어도 따를

만한 가치가 있는 '이라고 담대히 말하는 목사, 그냥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하는 간호사, 아이들의 육체적 필요와 영적 필요를 위해 자원해서 오지 중에 오지로

선생들, 자신들 부부가 곳으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당연한 응답이라고 말하는 송어

전문가 부부. 이들에게 예수면 된다. 예수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예수 이외에도 필요한

것이 너무나도 많은 우리의 현실이 부끄럽고 그런 그들이 부럽다. 


책은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고 저자의 깊은 고민과 가슴 설레는 묵상의 감동을 그대로

전해 준다. 궁극적으로 분을 위해서, 죄에서 구원하고 가장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영생을 주실 있는

유일한 분으로 세상에 알려져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이들이 그곳에 있다. 끝으로

저자의 당부 한마디를 적어 본다.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매일을 복음의 절박감으로 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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