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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하는 장자 - 지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생 공부 ㅣ 슬기로운 동양고전
김세중 지음 / 스타북스 / 2022년 5월
평점 :
장자를 소개하는 책은 서점의 서가 하나를 다 차지할 정도로 넘친다. 실제 장자는 사마천이
쓴 사기의 한 귀퉁이에 아주 잠깐 소개된 것이 다임에도 오늘날 우리는 '장자'에 열광한다.
기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사람 '장자'라기 보다는 '장자'라는 책에 적힌 언어이다.
때로는 '의미'보다 '언어' 그 자체가 더 많은 것을 알려 준다.
장자의 글은 언뜻 쉬워 보인다. 그러나 그 쉬움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이내 그 깊이에 손을
들고 만다. 시간의 차원을 넘나드는 그의 광활함과 공간의 차원을 주무르는 그의 상상력은
가히 혀를 내두르게 한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시간과 공간 사이에 존재하며 사람들이 지닌
한계는 여기에서 온다. 소요유의 첫 면을 장식하는 '곤'과 '붕'이 그렇고 '영지'와 '매미'가
그러하다. 시간에 대한 유한한 의식은 매일같이 잃어가는 시간과 비례하여 기회와 인연을
지키기 위해 기다리는 만큼 성장하는 것이다.
루쉰이 '세상에는 원래 길이 없었다.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그대로 길이 된 것이다'고
말하기 훨씬 전에 장자는 '길이라는 것은 사람이 다녀서 만들어지는 것이다'고 말했다. 비록
지금은 '문을 열고 나서면 그대로 길이 있는' 상황이지만 이러한 길도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하면서 길이 된 것이다. 비록 지금 우리는 길을 만들어 가기
보단 걸어야 할 길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우리가 가는 어떤 길이라도 다른 사람이
이미 밟은 것과 같은 길을 걸을 수는 없다. 각자에겐 각자의 길이 주어지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삶이고 인생이다.
장자는 '말로는 뜻을 다하지 못한다'는 관점에서 언제나 언어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고갱이와
쭉정이'라는 단어를 통해 말로 할 수 있는 것은 사물의 쭉정이이고, 뜻으로 전할 수 있는 것은
사물의 고갱이라고 말한다. 고갱이란, 언어로 정확하게 전달하기 매우 어렵고 다만 뜻으로
전달할 수 있는것, 즉 사유를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도의 관점에서 보면 만물에는
귀천이 없지만, 사물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과 가까운 것은 귀히 여기고 남에 가까운 것은
천히 여긴다.
몸의 죽음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슬퍼할만한 것이지만 이것은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일이다.
그래서 장자는 천자방에서 '슬픔 가운데 마음이 죽은 것보다 더한 것이 없으며 사람이 죽어도
또한 그보다 못하다.'고 말한다. 마음이 죽었다는 것은 자아에 대해 긍정하는 마음을 잃었다는
것이고 자아의 자각적인 의식을 잃고, 생의 의지나 생의 추구를 잃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이
세상에서의 삶은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진다는 말이다. 장자는 이에 대해서
'마음이 재처럼 식은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번잡한 욕망이나 넘치는 지식등을 일절 배제하고
마음을 완전히 비워서 평정의 극치에 이른 상태라고 말한다. 바로 이때 사람의 마음 속은
죽은 듯 적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빛을 찾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렵다. 처음엔 그냥 읽기 쉬운 교양서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읽어 갈수록 한계를 느끼고
배움과 앎에 대한 막연함이 생긴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장자의 '의미'를
얻은 뒤에는 장자의 '언어'를 잊어도 좋다고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