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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푼 영화 - 술맛 나는 영화 이야기
김현우 지음 / 너와숲 / 2022년 6월
평점 :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기억난다. 우리 대부분이 그렇다. 잊고 싶은데 너무도
지워 버리고 싶은데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인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는 말이 여운을 남긴다.
이 책에는 44개의 영화와 44가지의 술 그리고 44가지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술, 그 술에 얽힌 이야기와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애주가인 저자의 취향이
듬뿍담긴 설명, 그야말로 '쾌도난마'다. 단숨에 읽어 버렸다.
그 중 소설로 먼저 접하고 나중에 영화로 보며 충격을 맛 보았던 '실락원'(失樂園 / Paradise
Lost, 1997. 와타나베 준이치의 신문연재소설을 각색한 영화)과 사토마고(CHATEAU
MAREGAX)를 다시 만난다. 난생처음 진짜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모든 것'을 잃더라도 좋은
'죽어서라도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과 죽음 그리고 '메독의 여왕'이라 불리는 샤토마고는
마지막 섹스에서 남자의 입속에서 여자의 입속으로 전해지며 둘은 그들이 그렇게 원했던것
처럼 한치의 틈도 없이 죽어간다. 그들이 계획했던 지독한 소원 그대로. 와인의 황제라 불리는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는 샤토마고를 '벨벳 같은 질감의 탄닌으로 시작해 끝까지 힘과
우아함이 완벽하게 결합하면서 자신의 테루아(terroir)를 이룬다'고 평한다.
또 하나 나에게 미즈와리(水割り, 물을 타다(水を割る)의 명사형 표현으로 술이나 음료등에
물이나 잘게 간 얼음을 타서 양을 늘리거나 희석시키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사케, 소주,
위스키등의 술에 물을 넣어 1/2 이상의 농도로 희석시켜서 마시는 것)를 알게 한 사토리
위스키도 등장한다. 미즈와리 덕분에 한때 주량이 엄청 늘었던 기억이 난다. 세상 불친절한
통역이 더 기억에 남는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밥(빌 머레이)이 읊조리는 '나만의
여유, 산토리 타임'은 당시엔 어찌나 오글거리던지 잊고 지냈는데 이 책에서 다시 등장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명대사를 밀어 내버린 최고의 대사였지만 여전히 부끄럽다.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그저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도 편히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에세이입니다.'
그렇다. 이 책은 가볍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또한 깊은 여운과 과거로의 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두려움은 이제 그만 내려놓아도 될 충분한
이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