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됐을까 - 힘든 관계와 작별하고 홀가분해지는 심리 수업
일자 샌드 지음, 이은경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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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속에서 산다. 결코 사람을 떠나서 없으며 모든

사람과는 '관계'라는 것을 통해 연결되고 이어져 있다. 관계 맺음은 우리 삶의 가장 기본이며

이를 통해 사회 생활이 영위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다. '센서티브'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깊고 넓게 이해하길 바라는 글을 썼던 저자는 이번에는 폭을 넓혀 다른 사람을

향한다. 나를 넘어선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오는 아픔과 어려움에 대해 어떻게 하면 수월하게

극복하며 자유로워질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의 중에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다. 

'이별을 선택했다면 제대로 작별인사를 건네세요.'

우리는 누구나 이별을 한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아픔이고 상처가 된다. 미적거리며 제대로 이별을

말하지 못하는 이에게도, 단호하게 이별을 통보하는 이에게도  동일하고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이에게도 마찬가지로 아픔이다. 저자는 이에대해 단호하다. 제대로 작별인사를 건네라고 말한다.

'제대로' 작별인사를 건네는 것이 무엇일가에 대한 궁금함과 기대감으로 책을 읽어 나간다. 


인간 관계는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다는 말은 오답도 없다는 의미와 같다. 각자의 상황이 답이 되고

형편이 현실이 되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저자는 이렇게 복잡미묘한 우리의 인간관계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음의 네가지를 이야기한다. 마음점검, 대화하기, 문제해결, 떠나보내기. 사실 쉽지 않다. 그리고

떠나 보내기는 더욱 어렵다. 떠나 보내는 것이 눈에서만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도 지워

보내는 것이기에 더더욱 쉽지 않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제대로 라는 단어가 이해가 된다. 마음 한편에

편린으로 존재하는 기억에서 조차도 지워버리는 , 가슴 뒤편에 꼭꼭 숨겨두고 때때로 꺼내서

곱씹을 그것마저도 도말 하는것, 어쩌면 이게 '제대로'일텐데 우리에게 너무 어려운 과제다. 그래서

떠나보내기를 연습해 보는 이유는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있고, 관점이 바뀌면 불편했던

마음이 편하지고 답답하던 가슴이 자유로워질 있다는 저자의 말이 조금 낯설다. 


우리의 관계를 망치는 가장 원인 하나가 '분노'인데 정작 우리는 분노의 원인이나 이유를 정확히

모르거나 무작정 타인에게도 찾을 때가 많다. 분노는 자신이 상처 받거나 다치지 않기 위한 방어기재로

사용되는데 자주 자기기만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거나 못미칠때

여기서 오는 패배감이나 슬픔등이 분노로 표출되기도 한다. 이와같이 분노는 자신도 이유와 원인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에 자신의 마음을 닫게 만들고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 쉽다.

부정적인 생각이 반복되면 신념이 되듯, 분노가 반복되면 습관이 된다. 반복된 습관은 자신의

아니라 타인의 삶도 고통스럽게 만든다. 분노의 양날의 검이다. 관계를 망치는 주범이기도 하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탈출구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기' 주문한다. 자신의 감정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 놓음으로 새로운 관계 형성의 물꼬를 트게 된다는 것이다. 


책은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보라고 충고하며, 이상 회복하거나 치유 없는 관계라면 작별을

고할 것을 조연하고 제대로 작별을 고할 있다면 오히려 삶의 활력과 기쁨을 되찾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적거리다가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어정쩡하고 궁색한 만남에 대해 '제대로' 작별을

고해야갰다는 마음이 든다. 용기를 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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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역 - 현장에서 분투하는 청년사역자를 위한
양형주 지음 / 두란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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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전도, 양육, 기도가 기본이다. 169P

청년을 만날 있는 곳으로 가라. 88P

 

 

'청년이 없는 교회는 미래가 없다' 김회권 교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국 교회는 맘모스들만

살아 남고 나머지 교회들은 사라질것이다. 그러나 구호 역시 대상만 바뀌었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별로 데미지를 주지 못한다. 어쩌면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두운 것은 이와 같은

종에   기울이지 않으며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방관하는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저자와는 MEBIC'이라는 프로그램 때문에 심하게 충돌 적이 있다. 명성 교회라는 거대집단에서나

먹을 법한 도구와 장비를 동원하였고 고가의 온갖 인형과 음향기기까지 동원한 그들의 예배에,

예배실에 마이크 하나에 어디 사무실에서도 쓸법한 컬럼스피커를 하나를 사용하는 교회의 입장에서

솔직히 그림의 떡이어서 매직 1 세미나에 참석했던 몇몇 동료 사역자들과 ' 프로그램이 교회의

70%이상을 차지하는 소형 교회들이 사용할 프로그램 이냐며' 언성을 높여가며 부딪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양형주 목사 그는 분명 탁월한 디렉터이며 열정가이다. 그의 사역에 대한 뜨거움은 누구보다

강렬했고 영혼에 대한 열망은 누구보다 간절했던 그는 열정적 사역자다. 그랬기에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 예배' 부르짖으며 몸을 살랐던 것이다. 그런 그를 알기에

그의 청년사역 이야기를 담은 책이 기대된다.

 

저자는 청년 사역을 자동차에 비유한다. 멈춰 있을 시동을 걸어 가동을 시켜 저단으로 서서히

출발하고 일정 속도가 되면 기어를 변속해 주듯이 청년 사역도 멈추면 움직이게 해야 하고 저단 만이

아닌 때론 고속으로 때론 정속으로 주행할 필요가 있으며 연료가 떨어지지 않게 보충을 하듯 적절한

시점에 새로운 것들이 도입돼서 충전되어야 한다. 


청년부 무엇이 문제인가.

먼저 외적인 부분으로 저출산을 있다. 대학의 정원을 채우기 조차 버거운 실정인 '밀레니엄 키즈'

세대는 저출산의 표본이다. '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기르자' 구호는 옛날 옛적 고래당적 얘기고

지금은 집에 아이 한명도 제대로 없는 실정이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모바일 원주민', '디지털

네이티브' 불리는 이들의 사고는 현장 사역을 하는 나조차도 버거운 때가 많다. 정말 독특하다.

개교회 대부분의 대학부를 형성하는 이들이 소위 말하는 'Z'세대이다. 

이들보다 조금 나이가 들고 사회 생활을 하는 이들은 'Y'세대 혹은 '밀레니엄 세대'라고 하는데

욜로(YOLO) 워라벨, 가심비를 따지는 다른 인류이다. 소규모 교회에는 이들이 섞여 '청년부'라는

이름으로 모여 심하면 나이차가 15살까지 나기도 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원주제일감리교회 권용주 목사의 이야기는 청년 사역자라면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내용들이다. 역시도 몇가지를 배운다. 하나가 청년들을 사역의 실험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역자들이 넘치는 열정과 도전 의식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어 외부에서

좋다는 것들을 끌어 들여 판을 벌린다. 그리고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판은 머지 않아 식어 버리거나

사역자의 이탈로 그냥 멈춰 버린다. 그러다 보니 청년부에 오래 있었던 이들은 거쳐간 사역자들 덕분에

어지간한 프로그램 이름은 한번씩 들어 봤고 경험이 있기에 새로운 사역자의 열정이 부담스러워진다.

여기서부터 이미 간극은 벌어진다. 교회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떠한 시도 자체가 조심스러워진다. 


하나는 사역자 자신이 성장한 만큼 그만큼 청년들을 성장시킬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역자들이

그래야 되겠지만 특별히 청년 사역자들은 부단히 자기개발에 힘써야 한다. 끊임없이 영성을 추구하고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증거해야 하며 현실 상황에 민감해야 하고 삶이 투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요한것은 하나님이 대한 갈망으로 깊이 체험하고 인정해야 한다. 이런 사역자의 모습은 그대로

청년들에게 전달되고 이는 선한 영향력으로 전파된다. 


책의 내용 '변증적 지식에서 자라야 한다' 구절이 눈에 들어 온다. 청년들은 논리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논리적인 것을 쉽게 인정하고 마음을 움직인다. 이런 청년들에게 논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저자가 이야기 하는 '성경은 어떤 책인가', '하나님은 어떤분이신가',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구원이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종말은 언제 오는가'

교리 7 영역은 계시,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등에 대한 교리적 이해와 숙지를 통해

논리적 접근이 가능하다. 논리적인 질문에는 논리적인 답변이 필요하다. 이를 토대로 하나 하나씩

증명해 나가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그러나 쉽지 않은 만큼 결과는 청년들의 확신과 믿음으로

나타날것이다. 


'어떤 순간에도 설렘을 잃지 말라'

만남, 데이트는 설레고 긴장된다. 그러다 익숙해지면 설렘과 긴장이 풀려서 나사풀린 같은

모양이 된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설렘도 마찬가지다. 사역자가 먼저 설레야 한다. 말씀을 대하는게

설레고, 말씀을 선포하는게 설레고, 청년들을 만나는 것이 기대되고 설레야 한다. 사역자가 냉담하면

청년들은 즉시 눈치채고 멀어진다. 설레임으로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다.


앞으로의 청년 사역 여건은 분명 나빠질 것이다. 그러나 준비하는  교회는 살아 남을 것이고 청년이

든한 교회는 미래가 탄탄하다. '다음 세대' 외친지 벌써 십여년이 지나 아이들이 이제 청년이

되었다. 그들이 한국 교회의 미래이고 희망이다. 


책은 모든 청년 사역자 뿐만 아니라 교회의 담임 목사님들이 읽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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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거룩 - 신앙의 공회전을 멈추고 거룩으로
강정훈 지음 / 두란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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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있게 해주는 열쇠 구멍이다. P47

생활거룩으로 살아야 한다. P171

 

성화는 성품으로 시작하여 일상생활에서 드러나야 하고 성화가 드러나야 영역은 성격과

일상생활이다. 우리 성격이 십자가에서 계속 수술 받지 않고 입으로만, 교리로만 성화를 말하는

A. 토저의 말을 빌린다면 '종교적 소꿉 놀이' 불과하며 유치하게 짝이 없는 행동들이다. 


'이미' '아직'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믿었기에 '이미' 속하는 구원과 믿음 이후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아직'

속하는 구원. 솔직하게 말한다면 '아직' 아닌 희망사항에 불과 수도 있다. 믿기를 고백했기에

덧붙일 것이 없어야 하는 우리에게 구원을 볼모로 정체를 없는 제약과 제한들을 너무 많고

이는 개교회의 전반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성경 어디에 찾아봐도 구원의 다른 조건과 이유가

존재하지 않고 다른 이름 역시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면(믿으면) 된다. 저자는 부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 이후' 대해 말한다. 애굽과 가나안 사이, 홍해와 요단강 사이로

통칭되는 간극에 '구원 이후' 존재 한다. 신분 만이 아니라 삶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회심과 바로서기를 통한 '제대로 ' '성화의 ' 그것이다. 


처음 책을 받으며 기대했다. 내가 익히 아는 분의 책이기에 그의 촌철살인과 같은 직언과 폭풍과도

같은 과감함과 무딘 심장을 쪼개고 들어오는 강력한 드릴과 같은 묵직한 울림을 알기에 더더욱

그랬다. '교회학교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 '신수성가' 이은 '생활 거룩' 제목부터

도전적이다. 그런 기대감과 들뜸으로 장을 열었다.


예상했지만 프롤로그부터 독설(아니 이건 째찍이고 바른 소리다) 여기저기서 튀어 나온다. 복음의

수성과 교회의 거룩성을 맞바꾼 현재의 결과를 말하는 '불편한 진실' 그렇고, 고신대 박영돈

교수의 '많은 이들을 구원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거룩하게 하는데는 실패했다' 말이 그렇고, '오직

믿음이 아닌 오직 말뿐'이라는 구호가 그렇고, 교회 교패는 많은데 신패(信牌) 없다는 말이 그렇고,

박영선 목사의 '세상 사람들에게 팔린다' 말이 그렇다. 여기에 파이퍼(John Piper) 목사의

선언은 결정적이다. ' 속에서 거룩함을 추구하지 않으면 지옥에 것이다'. 입만 거룩한 우리는

말에 충격도 받아야 하고 무릎도 꿇어 져야 한다. 


지금 우리는 개혁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에서 '칭의' 몰입한

나머지 칭의만능주의를 살고 있다. 칭의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된다는 은총의 교리이다. 여기에는 다른 어떤 것도 첨가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필요하다. 그런데 '칭의만능주의' 빠지다 보니 칭의의 본질인 '죄인되었던 우리' 잊어

버리고 자신이 정말 의인인양 착각을 한다. 더불어 착각은 타인을 향한 정죄의 무기가 되어 전가의

보도인양 마음대로 휘둘러 여기저기서 상처 받고 고통받는 이가 속출하고 결국 교회(믿음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떠나고 만다. 매일매일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를 쳐서 복종케 하는

회개의 진심으로 나아가야 성화에 가까워 지는데 회개는 없이 죄에 대해, 거짓에 대해, 가짜에 대해

스스로 타협을 버린다. 마치 중세교회의 그들처럼. 그래서 칼뱅(John Calvin) 이렇게 선언한다.

'성화 없이는 칭의도 없다.' 물론 성화는 칭의의 열매로 반드시 나타나지만 성화가 칭의의 어떠한

근거나 조건이 될수는 없다. 


성공회 대주교인 헤르스 코트 박사는 구원을 셋으로 나눈다. 이미 받았고 이미 완성된 영혼 구원인

거형 구원(I was saved), 지금 받고 있거나 혹은 받아 가고 있는 현재형 구원(I am being saved),

미래에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미래형 구원(I will be saved)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것은 '현재형 구원'이다. 현재형 구원은 지금 이순간 이루어져가는 구원으로 삶에서 , 생활에서,

인격에서, 성품에서 이루어 내야 미완성의 구원이다. 사도 바울의 이에 대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 빌립보 교인들과 지금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

 

저자는 현재 한국교회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며 지식에만 집중되는 성경공부와 온갖 미신적 요소를

가진 주문을 외는 듯한 기도를 예로 든다. 실제로 교회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살펴 보면 교재

수준이 신학대학 수업 수준이거나 심한 경우 이를 뛰어 넘기도 한다. 여기에서 문제 하나가

발생한다. 성경공부 인도자(대부분 목회자 1) 내용을 충분히 그리고 정확하게

숙지하였느냐이다. 신학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들도 각각의 전공 분야가 있어서 자기 분야만

가르치는데 개교회 목회자가 무슨 만물박사도 아니고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고대근동문화,

고대역사, 지리, 거기다 문장의 해석에다 요즘에는 상담이나 심리학까지 등장하다 보니 어느것

하나 제대로 수가 없고 부실 밖에 없다. 가르치는 이가 부실하니 배우는 역시 부실하기

마련인데 평생 들어서 그런지 이런 저런 풍월은 많아 잘난척도 잘한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말씀을 배우는 목적은 말씀을 제대로 배워서 말씀 대로 사는 것인데 제대로 배우지 못하니

제대로 수도 없다. 제대로 살아야 영향력도 미치고 방주도 될텐데 여전히 우리는 교회다니는

사람이니 '생활 거룩' 요원하다. 지식으로만 성장하고 연륜만 늘어가는 현대판 바리새인이 되어

가는 현실이다. 


하나의 문제는 기도다. 샤머니즘과 유교적 사상이 토대이기에 우리의 기도에 무속의식이 잠재해

있는것도 문제지만 기도의 본질에 대한 오해 역시 무시 못할 부분이다. 하나님은 '자판기' 아니다.

자판기에 일정한 돈을 넣으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처럼 기도를 이만큼 했으니까, 봉사를 이정도하니까,

헌금을 예배를 이렇게 하니까라는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는 잘못된 생각이 우리의 기도를

하늘나라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게 만든다. 주님의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말씀은 그냥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고 암송을 하라는 1차원적 요청이 아니라 '그렇게 살라' 강한 명령이다. 그렇게

기도하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이것이 안되니 '생활 거룩' 수가 없다.

 

세상 사람들의 기독교 혹은 크리스천에 대한 기준은 명확하다. '남과 다르다' 것이다. 지금 교회가

욕을 먹고 손가락질의 대상이 된것은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이다. 같이 살아 보니 세상 사람이나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차이가 없기에 그들의 기대는 점점 교회로부터 멀어 진다.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명령하신 '거룩' 무게 잡고 어깨 힘주고 엄숙한 하는것이 아니라

'세상과 구별 생각, 행동, 삶으로 살아내는 '인데 거룩을 말로는 찬양으로는 쉴새 없이 부르지만

정작 중요한 '교회밖 거룩' 찾아 보기 어렵다. 저자는 이를 '신앙의 공회전'이라고 부른다. 이런

공회전은 연료만 낭비 뿐이다. 우리는 이런 공회전과 같은 게토(getto) 신앙에서 벗어나 '생활 신앙'

살아야 한다. 교회 자기들 만의 거룩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제대로 살아 내는 '생활 거룩'

살아야 한다. 


저자는 인생 1 밧단아람과 가나안에서의 130년과 인생 2 애굽에서의 17년을 이름마저도 '발꿈치를

잡는 '이자 희대의 사기꾼인 야곱의 등장시켜 그의 삶을 통해 개입하시는 하나님과 더디지만 성화의

길을 조금씩 이루어 가는 우리네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요즘 같이 빨리빨리를 외치는 시대면 속터져

죽을 만큼 더디지만 탄탄하게 다지며 길을 걸어 나간다. 때론 흔들리기도 하고, 때론 넘어지기도

하지만 어느새 그는 부쩍 앞으로 나가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이제. 하나님의 도움으로 나는 자신이

것이다'라고 말한것처럼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이름을 밝힘으로써 에서라는 마음의 가면을 벗고

오롯이 야곱으로서의 삶을 산다. 결정권을 내려 놓고 바라보며 지켜보는 입장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깊게 하나님께 들어 간다. 야곱의 이상 에서 행세를 하지 않고 야곱으로 살때 비로서 성화가

시작된다. 


우리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 안에 가진 '그것(혹은 우상) 내려 놓아야 제대로 성화가 시작된다.

하나님 보다 앞서 있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그게 우리의 '에서'이다. 성화 없는 열심은 광신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성화 없는 우리의 신앙은 브레이크가 파열된 폭주 기관차와 같다. '기독교인이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있게 해주는 열쇠 구멍이다' 최초의 미국인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 더욱

절실해 진다. 


책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다. 초신자는 초신자대로, 오래 믿은 사람은 오래 믿은 사람대로, 사역자는 

사역자 대로 각각 자신에 상황에 맞춰서 읽는 다면 분명 도전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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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 정말 풀 수 있겠어? - 단 100개의 퍼즐로 두뇌의 한계를 시험한다! 이 문제 풀 수 있겠어? 시리즈
홀거 담베크 지음, 박지희 옮김 / 북라이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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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유난히 싫어했던 나에게 '수학의 '이라던가 '문제 풀이의 희열' 사실 그림의 떡이다.

저자가 도입부에서 제시하는 첫번째 두번째 문제 역시 그렇다. 첫번째 문제는 이미 답을 알고

있기에 굳이 원을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반감이 생겼고, 두번째 문제는 저자의 '지금은

까다롭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그러나 아무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아하게 출구를 발견하는 경험을 가능한 많이

해보라는 말에 자극을 받아 문제에 도전해 본다. 나는 저자의 말처럼 수학을 좋아하고 머리쓰는

수수께끼 풀이를 즐기지도 않는다. 그런데 오기가 생긴다. ' 문제를 정말 있겠어?'라는

질문이 묘하게 자존심을 건드리는 도발처럼 들린다. 이제 문제를 주시한다. 저자의 말처럼 충분히

생각한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생각한다. 그러나 계속 꼬이고 혼란스럽다. 문제의 내용을 정확히

분석하려고 해도 말이 같다. 그냥 밀고 나가 본다. 다시 벽에 부딪친다. 체계적으로

생각하라는데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체계적인 건지 모르겠다. 엎친데 덮친다고 이젠 단순하게

생각하라고 주문하는데 머릿속은 이미 복잡하다. 나가 본다.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저자는 이를 창의적이라고 부른다) 길을 찾아 본다. 보는 시각을 바꾸고 구성을 달리 하라는

주문에 따라 생각을 정리해 본다. 생각이 너무 많이 나가 이제는 비틀기까지 해본다. 이번에는

앞에서 부터가 아니라 뒷문을 공략해 본다. 수납의 경험을 살려 정리를 하며 시도해 보고 도미노가

무너지듯이 연쇄적인 상상력을 통해 문제 속으로 들어가 본다. 저자가 주문하는 방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아쉽게도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다시 오기가 발동한다. 이건 정말 수학이 재밌고

문제풀이가 즐거운 사람들이 하는 놀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조금씩이라도 실마리가 보이는 것에

희망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 본다. 


장은 워밍업을 하라는 듯이 익숙하고 쉽다. 문제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린다. 창의력을 요하는 두번째 장에서 다시 커다란 벽을 만난다. 문제를 비틀어 본다. 정리도

해보고 깊이 생각도 본다.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문제라는물을 민낯이 드러나며 정체가 밝혀진다. 기분이 좋아진다. 이것이 수학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희열이구나 하는 맛을 정말 조금 맛 보았다.


책에는 모두 100문제가 등장한다. 문제들은 나름의 제목을 가지고 등장하는데 가장 어려운

문제라는 장에 등장하는 '미친 난이도를 가진 문제'라는 이름을 가진 문제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증명을 하라는데 감도 안잡히고 머릿속이 까매지고 뒷면의 답을 보아도 이해가 안된다. 결국

포기했다. 몇몇일에 걸쳐 문제를 풀어 봤고 거의 대부분의 문제를 풀고 이해했으나 결국 문제는

미완으로 남겨뒀다. 그러면서 저자가 한가지가 떠올랐다. '어느날 문득 불현듯 실마리가

잡힐 것이다'


얼마만에 이렇게 집중을 해보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닫고 살았던 수학의 눈을 조금 열었고

깊은 어딘가에 감춰두었던 창의력의 샘에 물이 조금 고인 기분이다.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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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시티, 유토피아의 시작 - 유튜브로 미리 보는 2025 라이프 스토리
정동훈 지음 / 넥서스BIZ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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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월이 세계가 들썩거리는 '소비자 가전 전시회(Customer Electronics Show) 열린다.

가전이라는 이름을 가지지만 결코 가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영역이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음을 행사를 주관하는 협회 이름의 변천에서 있다. 1924년에는 '라디오 제조사 협회',

1950년에는 '라디오-텔레비전 제조사 협회', 1957년에는 '가전 산업 협회', 1997년에는 '소비자

가전 제조사 협회', 1999년에는 '소비자 가전협회', 2015년에는 '소비자 기술협회' 명칭이

바뀐다. 이는 시대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혁신 기술의 흐름과 공간과 시간의 확대를 의미하고

시장이 인간 중심, 가치 중심으로 변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저자는 이에 대해 공간의 확장과

생활혁명, 콘텐츠, 기술이라는 분야로 나눠서 이야기 한다. 


제목이 '스마트 시티'이다. 스마트 하다는 , 너무 포괄적인 의미라 집어 이것이 스마트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사전적 의미로 '맵시 좋은, 깔끔한, 똑똑한, 영리한' 이라는 뜻을 가지는데

여기에 'city' 붙는다. 결국 도시가 맵시 좋고, 깔끔하고, 똑똑하고, 영리하다는 의미이다. 도시가

스마트하려면 필요한 몇가지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통신망이다. 긴박하게 움직여야 하는

수많은 기기들을 지연 없이 운용하기 위해서는 4 산업 혁명의 근간을 이루는 초고속 통신망인

5G 필수적이다.


스마트 시티, 자율 주행 자동차, 가상현실등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  혁신 기술의 대부분은 5G

전제로 한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5G 이동 통신에 필수적인 중대역(3.5GHZ대역) 초고대역

(28GHZ대역) 주파수 대역을 할당한 최초의 국가이기도 하며 2019 4 3 오후 11 세계

최초의 5G상용화 국가가 되었다. 5G 최대 다운 속도가 20Gbps, 최저 다운 속도가 100Mbps

이동통신기술로 1㎢ 반경 안에 있는 100만개의 기기에 사물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5세대

이동 통신 5G의 공식 명칭은 'IMT(International Mobile Telecommunications)-2020'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현재 사용하는 LTE보다 20배 이상 빠르고 끊김없이 많은 기기를 연결 할 수 있고

지연 속도가 현저하게 낮기 때문에 자율주행이나 원격의료등 무지연 네트워크를 필요로 하는

서비스에 최적화된 통신이다. 이제 우리는 '연결'의 시대를 넘어 모든 사람과 사물이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는 '초연결(Hyperconnectivity)시대'를 살게 된 것이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셜 미디어와 IT 디바이스의 발전으로 세계 사람들이 하나로

연결된 초연결사회는 사회 불안과 사이버 범죄와 사이버 윤리 문제등으로 골머리를 앓게 될것이고

개인정보 보호와 투명성 보장을 위해 사회 규범이나 법규등이 개선. 강화되어야 할것이다.

 뿐만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4 산업 혁명을 준비했고 지금 선도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의 '독점

혹은 독식' 문제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부분이다. 검색 엔진은 구글, 컴퓨팅 클라우드는 아마존과

MS, 사무용 소프트웨어는 MS, 스마트폰은 애플 삼성전자 화웨이 등이 세계시장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기반의 플랫폼 서비스 역시 부지불식간에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으며 이미

점령 당한 형편이다. 이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글로벌 기업들의 놀이터로

전락할 있음을 기억해야 할것이다.


앞으로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변화할 것이고 중심엔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존재할

것이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인것 처럼 산재해 있는 데이터들도 모으고 조합하고 나눠서

사용하는 현명함과 이를 토대로 인공지능을 운용하는 기술력을 가진다면 지금 우리가 꿈꾸는 것들이

현실로 이루어 지는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미래는 우리에게 이미 와있다. 단지 모두에게 있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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