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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서도 장난감을 놓지 못하는 무의식적 이유 - 신화를 삼킨 장난감 인문학
박규상 지음 / 팜파스 / 2016년 8월
평점 :
로보트 태권 브이만 있으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쎈 나라라고 생각했던 어린시절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로봇에 대한 향수는 아련한 추억 너머로 가버렸지만 가끔은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고 웃음을 지을 때가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랬다. 저자는 이책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또하나의 추억인 신화와 절묘하게 버무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신화에 대한
약간의 오류들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한다.
그 첫번째가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진 토끼처럼 불쌍하고 안타까운 호랑이다. 이 불쌍한
호랑이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단군신화에 나오는 그 호랑이다. 처음부터 불공평한
게임에 참여한 불쌍한 호랑이는 결국 성질 고약하고 참을성도 없으며 끈기와 인내 마저도
없는 그런 동물로 전락하고 만다. 사실 처음부터 불공평한 게임이었는데도 말이다. 사람이
되고 싶은 곰과 호랑이는 환웅에게 간청을 하게 되고 그 간청을 받아들인 환웅은 신령한
쑥 한 줌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수
있다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이미 불공정은 시작되었다. 마늘과 쑥은 초식동물의 먹이이다. 육식만을 하는 호랑이에게는 말도 안되는 조건이었지만 초식을 겸하는 잡식동물인 곰에게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한 조건이었다. 두번째로 100일동안 햇빛을 보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이다. 활동성이 강하고 365일 일어나고 자고를 반복하는 호랑이와 겨울잠이라는 어마무시한 방법을 통해 100일 이상
겨울잠을 잘 수 있는 곰은 처음 시작부터 불공정한 게임이었다. 어쨌든 이 불공정한 게임을
시작한 호랑이와 곰. 결과는 모두가 알듯이 호랑이는 21일도 버티지 못하고 동굴을 뛰쳐나가버리고 곰은 잘 버텨서 사람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불공정이 있다. 곰이 사람이 된것은
100일이 지나서가 아니라 21이 지나고 22일째가 되었을 때라는 사실이다.(물론 이 부분은 저자도 이야기 했듯이 학자마다 이견은 있다.) 만약 호랑이가 21일만 버티면 사람이 된다고 알고 있었다면 아마도 죽을 힘을 다해서 참았을 것이다.
그러나 환웅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그 나름의 이유, 바로 환웅이 이 땅으로 온 이유는 누군가 자신을 대신할 인물을 만들기 위해 온 것이고 그 대상으로 곰이 선택되었고 말도 안되는 게임이지만 게임을 통해 공정성을 유지하며 선택되어진 곰을 통해 '단군왕검'이라는 환웅의 대리 통치자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읽는 내내 '그럴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웅은 신이기에 인간계를 지배하고 다스릴 대리자가 필요했을 것이고 자신의 혈통을 이어 받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고 그것을 웅녀라는 곰의 변신을 통해서 가능케 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 졌다.
또 하나는 '창조적 파괴'를 이야기하면서 제시한 레고와 신화의 이야기이다. 레고는 물론 원래의 목적에 의한 형상물이 존재하지만 얼마든지 그 형상들을 해체해서 다른 형상물을 만들 수 있게 만들어 졌다. 이것을 성경의 창조와 파괴에 접목해서 자신이 만든 세상의 부패하고 타락함에
대한 파괴로 홍수를 선택하는 신의 결정과 그 결정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아의 방주 속
존재들에 의해서 새롭게 재 창조 되어가는 세상을 레고와 비교하며 표현한다.
그러면서 멕시코 고원지대에서 꽃 피웠던 아즈텍의 신화의 네번째 태양인 '물의 태양'을 이야기하며, 노아의 방주와도 같은 선택적 생존에 대해서는 그리스 신화인 데우칼리온을 대입한다.
그외에도 여러 가지 홍수 신화를 소개하며 이렇게 심판하여 모든것을 소멸 시킨후 신은 반드시 재창조를 하는데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레고와 흡사하다라고 말한다. 물론 완벽하게 없어진 후 새롭게 나타나는 재창조는 아니지만 설득력이 있고 고개가 끄덕여 지는 글이다.
책을 읽는 내내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웃음을 지었다. 추억이라는 기억을 붙잡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잃어버린 동심과 순수함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