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반레 지음, 하재홍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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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현대 작가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에 속한다는 반 레의 대표작이다. ‘바오 닌전쟁의 슬픔이 일군의 베트남 평자들에게 패배주의 문학으로 비판받았다기에, 베트남 평단에서 찬사받는 반 레의 작품은 어떤지 궁금했다

 좀 투박하게 규정하자면 반 레는 바오 닌과 대척하는 작가로 보인다. 바오 닌은 전쟁이 베트남인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남았는가 즉 전쟁의 보편적 고통에 집중했다면, 반 레는 승리를 위해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웅변한다. 마치 관변 문학처럼 상투적이라 할 만하다.

 작가 반 레는 조국해방전쟁에 모든 것을 던졌다. 그의 삶은 존중과 경외를 받아 마땅하지만, 그의 문학적 성취는 또다른 것이다. 소설 전반이 관념과 계몽으로 넘쳐나고, 인물들은 선과 악의 명확한 이분법에 따라 움직일뿐이다. 이런 평면적 인물들에게 전쟁의 갈등과 고뇌를 읽을 수는 없었다. 베트남 해방전사들은 오직 선의와 공동체 의식만 충만한, 윤리적 인간으로만 부각된다. 또 중간중간에 상투적이고 해설적인 대화 즉 작가가 개입하듯 설명하는 서술 역시 좋은 방법이 아니며, 문장 역시 전반적으로 수준있다 할 수 없다. 영혼계를 떠도는 응웬꾸안빈꾸에지’, ‘천년기의 설정도 소설효과를 반감시키는 구성으로 보인다.

 반 레의 다른 작품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작품을 전쟁의 슬픔과 비교하기는 무리이다.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이 얼마나 뛰어난 작품인지 다시 느꼈고, 전쟁의 슬픔20세기 최고의 전쟁문학으로 손색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전쟁에 참가한 작가가 전쟁의 참혹함을 증거하는 그 치열함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문학의 성취와 작가의 삶은 다른 영역이다. 세계 문학에서 베트남 문학의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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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슬픔 아시아 문학선 1
바오 닌 지음, 하재홍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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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베트남 전쟁 소설. 문학의 힘을 체감하는, 내 인생 최고의 책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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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맨 2023-11-23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전쟁의 슬픔‘,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등을 번역한 하재홍입니다. 노벨문학상 시즌이 되면 베트남 작가들끼리 재미 삼아 서로를 대상으로 노벨문학상 투표를 하곤 합니다. 그러면 항상 압도적으로 바오 닌 작가가 최다 득표를 받습니다. 그런 바오 닌 작가께서 항상 선택하는 작가는 응웬 빈 프엉입니다. 응웬 빈 프엉의 소설 ‘나 그리고 그들 ‘이 최근에 나왔습니다. 한번 읽어 보시고 고견 부탁드립니다.

파란-말 2023-12-06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영광입니다. 하선생님께서 직접 댓글을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꼭 읽어보갰습니다!
 
전쟁의 슬픔 아시아 문학선 1
바오 닌 지음, 하재홍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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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이 책 전쟁의 슬픔을 처음 읽었을 때, 깊은 슬픔을 느꼈고 낯선 충격을 받았다. 그 슬픔과 충격은 내가 접해 왔던 기존의 전쟁 소설과 영화에서 느낀 것들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시점의 변화였다.

이제껏 우리가 접해온 베트남 관련 소설과 영화는 주로 미국(혹은 한국)의 관점에서 생산된 것들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베트남 영화 중에 1986년 미국이 제작한 플래툰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기존의 전쟁 영화와는 달리, 전쟁의 참상을 휴머니즘 시각으로 살렸다며 전세계적으로 흥행했다. 전쟁을 영웅주의로 다루지 않고 인간성의 파멸을 잘 드러낸 영화라 했고, 나도 그렇게느꼈다. 아군 사이의 갈등이 전투 중에 동료살해로 이어지는 장면이 충격이고, 베트남해방전사들(베트콩(Viet Cong San)은 남베트남 공산주의자의 비하적 명칭으로, 1960년 이후에 남베트남의 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에 통합되어 북베트남 정규군의 지휘에 따름)에 포위된 미군이 탈출하지 못하는 장면에서 나도 안타깝게 몸을 떨었다. 미군이 정글을 행군하며 언제 어디에서 출몰할지 모르는 베트남해방전사들에 두려움을 느낄 때, 나도 그들이 안전하게 정글을 벗어나기를 함께 빌었다. 미군은 엄청나게 뛰어난 무기를 가지고도 베트남해방전사들을 두려워했는데, 그들은 죽음의 사자이고 악의 현현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그 베트남해방전사들이 미군을 두려워했다. 베트남해방전사들은 정글에서 미군을 마주할까봐 극도로 긴장하고 미군의 총격에 혼비백산하기도 한다. 최첨단의 포격과 헬기의 공격에 온몸이 찢기며 죽음의 공포로 정신을 잃곤 한다. 이제까지 접해왔던 영화나 소설에서와는 달리, 이 소설에서 두려움에 떠는 자들은 미군이 아니라 베트남해방전사들이었다. 베트남해방전사들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미군들이 두려워하던 그들이, 오히려 미군의 출현에 온 몸을 떨며 두려워했다. 미군은 죽음의 사자이고 악의 현현이었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내게 베트남인들을 한 인간으로, 전쟁의 참혹함과 고통을 느끼는 인간으로 만나게 했다. 죽음의 공포에 영혼이 찢기고 두려움 앞에 비열해지며 사랑의 욕망에 몸을 떠는, 그들도 인간이라는 이 당연한 사실을 내게 되돌려 주었다. 결국 미군들이 정글속 베트남해방전사들에 극도의 공포를 느낀 바로 그 순간, 베트남해방전사들도 극도의 공포로 몸을 사렸던 것이고, 서로 보이지 않는 그들은 제각기 상대방 때문에 공포에 떨었다. 전쟁의 참담함이다.

그리고 또다른 참담함도 있다. 서로가 두려움에 떨며 총을 겨누었기에, 그렇다면 이 전쟁은 양쪽 모두 어리석어서 일어난 일인가? 그렇지 않다. 베트남은 미국의 침략에 맞서 민족해방전쟁을 수행한 것일 뿐이다. 역사적 평가는 명확하다. 이 소설이 전쟁의 참상과 어리석음을 말한다해서, ‘침략에 맞선 해방전쟁이라는 역사적 평가가 부정되지는 않는다. 배트남 입장에서 전쟁은 참혹하니 전쟁을 거부한다며 미군의 침략을 용인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전쟁의 어리석음을 베트남보다 미국에게 먼저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토록 무의미하고 끔찍한 전쟁을 왜 시작했느냐고 말이다.

베트남은 프랑스의 오랜 식민 지배를 받다가 2차 대전 중에 프랑스가 약화된 틈에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일본 패망 후 프랑스가 다시 베트남을 지배하려 하자 디엔비엔푸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프랑스를 물리쳤다. 그런데 해방을 눈앞에 둔 시점에 미국의 간섭과 침략이 시작된, 피식민지배 역사 그 자체였다.

역사를 살펴보면, 프랑스와 미국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침략을 일상으로 해왔다.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시작하고 정의와 평화의 이름으로 정당화했다. 그들 정치인과 관료들은 결코 정글속 두려움을 마주하지 않는다. 그들은 피지배 국민의 찢어진 시체를 볼 일도 없고, 총알이 그들의 뱃속을 긁어낼 일도 없다. 그들은 저 멀리 책상에 앉아 가난한 나라의 전쟁터로 자기 나라의 힘없고 가난한 자들을 보냈다. 정의와 평화의 이름으로 자신의 권력과 자본을 불렸다. 힘없는 나라에, 힘 있는 나라의, 힘없는 자들을 보내, 모두를 파멸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전쟁의 또다른 참담함이다.

세계 제일의 강대국 미국을 물리친 베트남은 피식민국가들의 등대로 빛났다. 베트남은 자랑스러운 역사를 썼고, 그만큼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수많은 영웅의 이야기들이 넘쳐날 것이다. 그럼에도 승리와는 무관하게 고통과 절망이 넘쳐났기에, 전쟁은 역시나 참담한 것이었다. 세계 제일의 강대국은 베트남에 세계 제일의 고통과 비참을 뿌려 놓았는데, 전쟁의 슬픔은 바로 이 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승리한 기쁨이 아니라, 승리했지만 역시 비참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베트남의 권력자들은 이 소설의 제목을 사랑의 숙명으로 강제했고 오래 억압했다.

 

바오닌은 승리한 국가의 상처를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작가의 존재이유에 충실했다. 전쟁의 고통과 공포는 승리한 조국에도 깊다는 것을, 전쟁은 인간 보편의 비참이라는 것을 증거하기에, 바오닌은 위대한 작가이다. 바오닌은 자신의 분신인 끼엔을 통해 전쟁의 수많은 비참을 그대로 전해준다. 남베트남 첩보대가 민간인 여성을 강간 살해하자 끼엔 일행 역시 증오와 광기로 이들을 처치한다.(57). 전사한 전우 의 유품을 전해주러 들른 집에서 창녀로 살아가는 의 여동생과 조우(97)하게 되고, 신참인 끼엔을 이끌던 분대장 꾸앙이 끼엔의 눈앞에서 죽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끼엔은 전쟁후에도 자책을 멈추지 못한다. 포탄에 창자가 쏟아지고 온몸이 짖이겨진 고통에 제발 자기를 죽여달라고 총을 쏴달라고 끼엔에게 애원하던 꾸앙의 절규가, 전쟁이 끝나도 끼엔을 따라다닌다. 전쟁에 승리했다해서 끼엔의 고통이 씻기지 않는다. 끼엔은 이 전쟁의 공포와 비참과 무의미함을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못하기에 외롭다. 그것은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전쟁이 되어 버렸고, 자기 혼자만의 전쟁이 되어 버렸다”(70) 영광스러운 조국해방 전쟁에서 나약한 감상은 드러내지 말아야 했다. 그렇지만 해방전쟁의 전사들은 그동안 수없이 싸워 왔지만 솔직히 말해 한 번도 이 놀음을 영광스럽게 생각한 적이 없어”(36)하는 처럼 탈영을 시도하기도 한다. 가만히 앉아서 태연스럽게 전쟁의 녹이나 처먹는 영악한 놈들도 많”(35)은데 끝도 없이 싸우고 죽이고 하다 보면 인간성마자 잃게”(34)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깐처럼 탈영을 시도하다가 죽고 또 다른 탈영이 계속된다. 탈영은 유행처럼 번져갔다. 항미 전쟁의 위대한 전사들을 칭송하던 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이 이런 탈영과 죽음을 공식화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끼엔이 이를 자기 혼자만의 전쟁이라 한 것은, 인간성이 사멸되는 경험을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이를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하는 고독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 전쟁의 녹이나 처먹는 영악한 놈들은 모두 전쟁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이기도 하다며, 계급의식을 내보인다.

 

만약 싸워야 한다면 싸울 수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것처럼 베트남 남자들이 정말로 전쟁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을 좋아하는 자들이라면 다리 짧고 배가 불룩한 일부 중년의 지식층에 불과할 것이다. 평범한 일반인들에게는 최근의 짦은 전쟁도 족히 천 년은 지고 갈 깊은 고통이었다.”(99)

 

이 길고도 참혹한 전쟁중에도 청춘들은 사랑한다. 사랑이 그들을 견디게도 하고 파괴하기도 한다. 끼엔은 누나에게 느낀 어질한 풋감정과 말못한 이별(90)의 추억도 있지만, 프엉과의 사랑을 끝까지 품고 있다. 끼엔이 프엉을 사랑하는 마음은 나무 뿌리처럼 굳건하고, 프엉 역시 끼엔을 깊이 사랑한다. 전쟁의 경과에 따라 둘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지만, 전쟁의 광기만큼 이 사랑도 뒤틀린다. 입대 기차를 놓친 끼엔의 원대복귀 여정에 프엉이 즉흥적으로 합류하는 장면은 로드무비처럼 낭만적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답고 애틋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들이 있는 곳은 폭격과 살육이 난무하는 전장이다. 프엉이 항꼬역 기찬칸에서 성폭행당하는 장면은 작위에 가깝지만 실제 전쟁은 소설보다 더 작위적인지도 모른다.

전쟁후 끼엔이 돌아오자 프엉은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와 헤어져 끼엔에게 온다. 그들은 서로를 갈망하지만, 자책으로 그들 사랑은 뒤범벅되어 또다시 멀어진다. 전장에서 살아 남은 자들이 사랑을 살리지는 못했다. 끼엔과 (전쟁 중에 매춘생활을 하는 듯한) 프엉은 전쟁 중에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며 서로를 갈망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가로놓인 어둡고 깊은 심연 때문에 프엉이 먼저 끼엔을 떠난다. 그것은 바로 전쟁의 슬픔 속에 사라져 간 자신의 청춘, 이미 지나가 버린 자신의 삶이었다.”(113)

전쟁은 청춘남녀의 사랑만 조롱하지 않았다. 참전 병사들은 해방된 조국에서도 조롱을 느끼곤 했다. 전쟁이 끝나자 기쁨은 잠깐이고 병사들의 귀에다 대고 한껏 조롱을 퍼붓는 듯”(105)한 사람들과 끼엔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104) 라며 불안해진다.

 

전쟁이 끝나고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허망한 꿈만이 남았을 뿐, 전쟁 이후 그는 누구와도 섞일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끼엔은 자신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승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끌려가는 것만 같았다.”(109)

승리한 전쟁을 비참하게 그렸다해서 베트남은 이 소설의 출판을 금지했다. 이에 비해 또다른 베트남 전쟁 작가 반레는 항미해방전쟁에 임하는 베트남인들의 용기와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여 베트남 대표 작가로 인용된다. 반레의 작품은 너무나 애국적이고 충분히 전투적이다. 그렇지만 반레의 소설에서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은 뒤로 물러나 있고 오직 민족해방의 당위만이 앞선다. 그러나 바오닌은 전쟁의 무의미함에 집중한다. 승리한 전쟁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파멸되어 가는지를 말하며, 결국 전쟁의 승패와는 무관하게 모두에게 슬프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은 단지 슬픔, 거대한 슬픔, 살아남은 자의 슬픔, 전쟁의 슬픔만이 영혼을 뒤덮고 있다. () 끼엔은 전쟁의 무서운 얼굴과 발톱을 보았다. 추악하게 노골적으로 드러난 전쟁의 비인간성은 그러한 시대를 겪었다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고통의 기억에 시달리게 만들고, 영원히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만들고,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만든다.”(265)

끼엔이 글을 쓰는 것은 잊어서는 안 된다. 전쟁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죽은 자와 산 자, 우리 모두의 공동 운명” (142)에 대한 기록이면서 잃어버린 사랑과 잃어버린 삶을 위한 진혼이기도 하다.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 사는 것, 그 옛날 사랑의 길을 다시 더듬어 찾아 가는 것, 그 전쟁과 다시 싸우는 것이었다.() 그것이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었다.”(111)처럼 오직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자신이 잃어버린 사랑을 힘들게 다시 찾는 것처럼 전쟁의 광기와도 싸우는 것이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라 했다. 사랑을 회복하고 전쟁을 넘어설 때라야 진정한 해방을 맞는 것이다. 그러기위해 그는 이 모든 것을 기록하고 사람들이 기억하기를 바란다. 살아남은 자의 삶을 살기 위해 글을 쓴 듯하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우리동네 작가인 그’(끼엔)는 소리없이 떠나고 는 그의 방에서 바람에 흩어진 원고를 발견한다. ‘는 순서를 확인할 수 없는 원고를 놓여 있는 대로 한 장씩 읽어간다. 글의 맥락이 수시로 끊기고 하나의 줄거리로 이어지지 않지만 는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작품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우연의 연속”(322)이라 한다. 이렇게 바람에 흩어진 원고를 가 순서도 없이 모은 것이 전쟁의 슬픔으로 탄생한 것이란다.

이는 이 소설의 시간이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전쟁터의 시간과 끼엔과 프엉의 시간이 서로 섞이고 또 역으로 배치되어, 독자에게 퍼즐을 맞추도록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시간과 사건이 뒤섞여 결국 전체를 조망해야만 의미가 간신히 드러나는데, 전쟁이야말로 뒤죽박죽 퍼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전장에서 삶과 죽음도 우연히 결정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 전쟁을 하는지 이 전쟁이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떻게 끝나는지 누가 알 것인가? 전쟁에 휘말린 삶이란 우연과 뒤죽박죽 그 자체이리라.

 

한때 문학의 힘을 믿지 않았다. 방황하는 청춘에, 문학은 내 삶을 관통하지 못하는 무른 낭만에 불과했다. 나는 단단한 언어로 여겨진 철학을 중심으로 내 고통의 답을 찾으려 했다. 그러다 삶에는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행(利行)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그냥 유동하는 것, 그래서 고통의 이유라는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 그래서 질문이 없으니 답도 자연스레 해소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러고야 다시 문학이 읽히기 시작했다. 소설과 시는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이행을 펼쳐놓은 것이다

 나는 전쟁의 슬픔을 문학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삼곤 한다. ‘를 죽이려는 상대를 온전히 한 인간으로 체감하게 하는 문학에는, (건조한) 철학이나 역사의 언어로는 도달할 수 없는 삶의 느낌이, 힘이 있었다.

 이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20여년 전,1999년 예담 출판사의 반찬규 번역본이었다. 프랑스 번역본의 도움을 받은 이중번역으로 추정되고 있다지만, 당시 받았던 아주 강렬한 인상을 오래 기억하고 있었다. 베트남본을 저본으로 삼은 이번 번역을 계기로, 우리나라에도 널리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 아주 크다. 16개국 언어로 번역된, 베트남 문학의 최고봉일 뿐 아니라 세계 문학사에 남을 이 작품을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확장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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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11-20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넘 잘 쓰셔서 푹 빠져 읽었습니다
저도 베트남 전쟁 소설은 안정효의 작품 한 권 달랑 읽었지만요...
승자건 패자건 전쟁의 참담함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참담하게 느껴집니다.
전 그런 의미에서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모두 패자가 되는 이상한 논리가 가장 유효한 표현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다행히 도서관에 책이 있어요~~^^

파란-말 2023-12-06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은하수님^^
 
베트남 전쟁 -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
박태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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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전쟁과 우리의 관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는 책이다. 한국의 참전 이유-미국의 요구에 의한 참전일 거라는 대중 상식과는 반대로 한국이 참전을 먼저 제안한 이유가 새롭다. 그리고 참전의 결과로 발생한 안보 불안, 민간인 학살 문제, 국내 정치 영향, 그리고 경제 이득이라는 관점의 성찰까지를 짚어 낸다. 또 미국의 참전 이유,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 등 국제 역학까지 잘 서술되어 있다. 저자의 집필 목적처럼 베트남 전쟁에 대한 대중의 인식전환을 위한 입문서로 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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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10,000일의 전쟁
마이클 매클리어 지음, 유경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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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전쟁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책이다. 전쟁의 시작에서 확전과 종전까지의 정치적 상황, 특히 미국의 정책 결정과정을 아주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저자는 자료를 폭넓게 조사했다. 미국 대통령부터, 국방장관, 고위장군, 현장 장교, 일반 사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에 접근한다.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2차 대전 종료로 일본의 패망에 맞추어 베트남으로 돌아온 프랑스, 막후 외교 노력의 전개와 실패, 그리고 베트남의 비엔디엔푸 전투승리와 프랑스의 퇴각. 이렇게 보면 미국이 프랑스의 뒤를 이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미국은 그들 스스로 만든 도미노이론에 빠져 전쟁의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3세계 해방에 이론적 틀을 제공한 마르크스주의를 호치민은 베트남 해방을 위해 기꺼이 받아들였다. 냉전시기 대체로 우리는 베트남 전쟁을 공산주의 북베트남의 침략과 이에 맞선 미국의 충돌로 학습받았다. 그러나 호치민을 중심으로한 북베트남의 저항은 기본적으로 민족해방전쟁의 수행이었다. 호치민을 만나본 서방의 정보원들은 그를 민족주의자라고 보고하지만, 본국의 수뇌부는 주목하지 않는다. 미국의 수뇌부는 냉전질서에 눌려 공산주의에만 주목한다. 프랑스 드골이 미국의 개입을 경고했음에도 미국은 프랑스의 자리를 이어받는다. 베트남을 가볍게 생각했다.

미국의 정책 결정은, 대통령을 정점으로 국무장관과 국방장관, 베트남 주재 대사관과 장군들 그리고 정보부의 자료를 취합하고 토론하는 과정를 거친다. 그런데 관찰자의 시각에 따라 정반대의 보고가 올라오곤 한다. 그리고 도미노 이론에 빠진 워싱턴의 참모들은 참전으로 기울어진다. 덧붙여 미국의 중요한 관점 하나. 만약 미국이 남베트남을 지원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미국의 동맹국이 침략당했을 때 미국이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며 동맹국들이 미국을 신뢰하지 않게 되어, 결국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될 것이라는 계산이 크게 작용했다.

민주당원인 존 F 케네디는 베트남에 결정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지만, 군사 고문 파견을 확대하고 여러 군사적 개입을 진행한다. 후임의 민주당 존슨은 거대한 변화를 모토로 미국내 각종 치별을 개선하고 복지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진보적 정책을 폈지만, 베트남전의 확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며 미국을 수렁으로 끌고간다. 베트남전 철군을 공약으로 내건 공화당 닉슨도 철군을 미루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 완수하지 못한다.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면 선거 때의 공약이나 계획과는 달리 전쟁을 멈추지 못한다. 이것이 어쩌면 국가정책의 일관성 혹은 최고 결정권자의 책임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참모들의 의견과 정보의 해석에 따라 최종 결정권자는 기존의 정책에서 쉽게 방향을 틀지 못한다. 특히 미국내의 정치적 일정, 대통령 선거와 의회 구성에 맞추어 전쟁의 확대와 축소가 결정되곤 한다. 그 정치적 계산에는 언론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1968년 구정공세는 사실상 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의 패배로 끝났다. 해방전선의 기습에 미군은 곧바로 대응해서 수 만명의 해방전선을 사살하고 도시를 방어했다. 그러나 전투의 승패와는 무관하게, 도시가 공격받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미국 대중은 미군이 쩔쩔매는 것으로 인식했다. 결국 여론의 악화에 따라 미국은 철군계획을 짤 수밖에 없었다. 해방전선이 수 많은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노린 것이 바로 이것이고, 전투에서는 패배했지만 전쟁에서는 이긴 것이 되었다. 이는 구정 공세 직전의 케산 전투에서도 그러했다.

이런 상황에 현장의 미군장교들은, 해방전선이 자기들의 피해를 전혀 보도하지 않는데 비해 미국은 미군 병사의 죽음과 파괴를 대중에게 중계하는 전쟁에서, 어떻게 미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겠느냐며 불만을 토로한다. 언론이 국가이익에 반한다며 언론통제를 희망한다.

그러면 베트남 전쟁이 식민지 민족해방의 성격이라는 것을 미국 언론들은 왜 주목하지 않았을까? 식민지배에 대한 베트남의 해방 전쟁에 미국이 왜 참전해야하는가를 먼저 성찰했어야 하지 않을까. 미국은 일본, 프랑스에 이은 외세 침략자이고, 베트남 인민들은 반외세 전쟁으로 맞서고 있다는 점을 미국 언론들은 말하지 않았다. 수십만 명의 미군들(베트남의 미군들 중 10%만이 현장 전투에 참가)은 왜 먼 나라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1년 순환 복무만 끝내고 본국으로 무사귀환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자기 땅에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였던 베트남해방전선 전사들과는 각오가 같을 수 없었다.

남베트남의 대통령 구엔 반 티우는 이렇게 말한다. ‘미군은 자기들 판단에 따라 베트남에 들어와 미군의 전쟁을 치르면서 남베트남인은 소외되어 어떤 정책에도 주도적으로 참가하지 못했기에, 이는 미군의 전쟁이며 모든 것에 미군의 책임이 크다고 한다. 책의 서술을 따라가다보면 일정부분 그렇기도 하다. 중요한 정책결정과정을 미군이 일방적으로 결정했기에 남베트남 지도부는 소외되곤했다. 애초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국제 정책에 따라 미국이 주도한 전쟁이라서 처음부터 남베트남은 소외된 전쟁이었다는 이 지적 또한 짚어볼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베트남전 패배에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남베트남의 부패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미군이 베트남 재건을 위해 제공한 시멘트가 베트남 모든 도시를 뒤덮을 정도라는데 그것이 온데 간데 없단다. 미군이 남베트남에 지원한 무기만으로도 당시 세계 5위 군사국의 전쟁 물자와 맞먹는다는데, 이런 전쟁 물자 심지어 탱크까지 북베트남으로 유출되는 부패 앞에서는 답이 없지 않는가. 또 남베트남군 내부의 이질적 요소도 전투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남베트남군의 장교들은 주로 부유한 집안의 도시 출신들이었고, 장교를 경제적 혜택을 보장받는 직업으로 이해하며 축재와 외국으로 나갈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이에 비해 사병들은 대부분 가난한 농촌 출신으로 프랑스 식민시절부터 억압의 대상이었다. 이처럼 도시 지배계층을 대변하는 기득권자인 장교와 가난한 농촌의 사병이 단일대오를 갖추기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예를 들어 1966년 한 해에만 12만 명의 병사들이 탈영했는데 이는 남베트남 지상군의 21%에 해당한다. 남베트남 군대의 전투력은 형편없었다.

그런데 이 남베트남의 부패에도 미군의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미군이 너무 많은 지원을 한꺼번에 했기에 넘쳐나는 물자들이 부패를 만든 것이다. 수많은 물자와 돈이 들어오자 고위 관료부터 말단까지 모두 부패에 젖어버렸다는 것이다. 수액을 한꺼번에 주입하면 환자가 죽듯이 너무 많은 지원이 남베트남 패망의 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일리가 있는 듯하다. 그러면 이것은 미국의 잘못인가 남베트남의 잘못인가?

남베트남 패망 후 수많은 금괴와 비자금을 갖고 런던으로 망명한 남베트남 대통령 구엔 반 티우가 대저택에서 안락하게 여생을 마친 것에 비해, 호치민을 위시한 북베트남 지도부들은 검소한 생활로 일관했다. 남북 베트남 대중 모두에게 두 체제의 지도자는 이미 비교불가한 차이가 있었다. 정직하고 쳥렴한 독립투사인 호치민의 말 한마디에 목숨을 던질만큼 베트남 인민들은 호치민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남베트남은 부패한 응오딘지엠이 군부에 암살된 후 잦은 쿠테타와 지도부 교체로 도덕성과 정통성 모두 잃은 상태였다.

베트남 전쟁은 철저히 미국의 의도에 따라 전개되고 종결된 전쟁이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한국군에 대한 서술이 없다. 참전했다는 사실만 밝힐뿐 다른 부가 설명이 전혀 없다. 명분없는 전쟁에 용병으로 딸려온 한국군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 듯하다.) 이 책은 그 미국 각처의 자료와 인물을 통해 베트남 전쟁을 세밀하게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에 비해 북베트남 측의 자료와 인물 자료는 거의 없는 편이다. 접근성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의 완성도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베트남 전쟁을 객관적으로이해하는데 이보다 좋은 책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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