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10,000일의 전쟁
마이클 매클리어 지음, 유경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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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전쟁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책이다. 전쟁의 시작에서 확전과 종전까지의 정치적 상황, 특히 미국의 정책 결정과정을 아주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저자는 자료를 폭넓게 조사했다. 미국 대통령부터, 국방장관, 고위장군, 현장 장교, 일반 사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에 접근한다.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2차 대전 종료로 일본의 패망에 맞추어 베트남으로 돌아온 프랑스, 막후 외교 노력의 전개와 실패, 그리고 베트남의 비엔디엔푸 전투승리와 프랑스의 퇴각. 이렇게 보면 미국이 프랑스의 뒤를 이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미국은 그들 스스로 만든 도미노이론에 빠져 전쟁의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3세계 해방에 이론적 틀을 제공한 마르크스주의를 호치민은 베트남 해방을 위해 기꺼이 받아들였다. 냉전시기 대체로 우리는 베트남 전쟁을 공산주의 북베트남의 침략과 이에 맞선 미국의 충돌로 학습받았다. 그러나 호치민을 중심으로한 북베트남의 저항은 기본적으로 민족해방전쟁의 수행이었다. 호치민을 만나본 서방의 정보원들은 그를 민족주의자라고 보고하지만, 본국의 수뇌부는 주목하지 않는다. 미국의 수뇌부는 냉전질서에 눌려 공산주의에만 주목한다. 프랑스 드골이 미국의 개입을 경고했음에도 미국은 프랑스의 자리를 이어받는다. 베트남을 가볍게 생각했다.

미국의 정책 결정은, 대통령을 정점으로 국무장관과 국방장관, 베트남 주재 대사관과 장군들 그리고 정보부의 자료를 취합하고 토론하는 과정를 거친다. 그런데 관찰자의 시각에 따라 정반대의 보고가 올라오곤 한다. 그리고 도미노 이론에 빠진 워싱턴의 참모들은 참전으로 기울어진다. 덧붙여 미국의 중요한 관점 하나. 만약 미국이 남베트남을 지원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미국의 동맹국이 침략당했을 때 미국이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며 동맹국들이 미국을 신뢰하지 않게 되어, 결국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될 것이라는 계산이 크게 작용했다.

민주당원인 존 F 케네디는 베트남에 결정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지만, 군사 고문 파견을 확대하고 여러 군사적 개입을 진행한다. 후임의 민주당 존슨은 거대한 변화를 모토로 미국내 각종 치별을 개선하고 복지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진보적 정책을 폈지만, 베트남전의 확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며 미국을 수렁으로 끌고간다. 베트남전 철군을 공약으로 내건 공화당 닉슨도 철군을 미루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 완수하지 못한다.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면 선거 때의 공약이나 계획과는 달리 전쟁을 멈추지 못한다. 이것이 어쩌면 국가정책의 일관성 혹은 최고 결정권자의 책임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참모들의 의견과 정보의 해석에 따라 최종 결정권자는 기존의 정책에서 쉽게 방향을 틀지 못한다. 특히 미국내의 정치적 일정, 대통령 선거와 의회 구성에 맞추어 전쟁의 확대와 축소가 결정되곤 한다. 그 정치적 계산에는 언론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1968년 구정공세는 사실상 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의 패배로 끝났다. 해방전선의 기습에 미군은 곧바로 대응해서 수 만명의 해방전선을 사살하고 도시를 방어했다. 그러나 전투의 승패와는 무관하게, 도시가 공격받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미국 대중은 미군이 쩔쩔매는 것으로 인식했다. 결국 여론의 악화에 따라 미국은 철군계획을 짤 수밖에 없었다. 해방전선이 수 많은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노린 것이 바로 이것이고, 전투에서는 패배했지만 전쟁에서는 이긴 것이 되었다. 이는 구정 공세 직전의 케산 전투에서도 그러했다.

이런 상황에 현장의 미군장교들은, 해방전선이 자기들의 피해를 전혀 보도하지 않는데 비해 미국은 미군 병사의 죽음과 파괴를 대중에게 중계하는 전쟁에서, 어떻게 미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겠느냐며 불만을 토로한다. 언론이 국가이익에 반한다며 언론통제를 희망한다.

그러면 베트남 전쟁이 식민지 민족해방의 성격이라는 것을 미국 언론들은 왜 주목하지 않았을까? 식민지배에 대한 베트남의 해방 전쟁에 미국이 왜 참전해야하는가를 먼저 성찰했어야 하지 않을까. 미국은 일본, 프랑스에 이은 외세 침략자이고, 베트남 인민들은 반외세 전쟁으로 맞서고 있다는 점을 미국 언론들은 말하지 않았다. 수십만 명의 미군들(베트남의 미군들 중 10%만이 현장 전투에 참가)은 왜 먼 나라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1년 순환 복무만 끝내고 본국으로 무사귀환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자기 땅에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였던 베트남해방전선 전사들과는 각오가 같을 수 없었다.

남베트남의 대통령 구엔 반 티우는 이렇게 말한다. ‘미군은 자기들 판단에 따라 베트남에 들어와 미군의 전쟁을 치르면서 남베트남인은 소외되어 어떤 정책에도 주도적으로 참가하지 못했기에, 이는 미군의 전쟁이며 모든 것에 미군의 책임이 크다고 한다. 책의 서술을 따라가다보면 일정부분 그렇기도 하다. 중요한 정책결정과정을 미군이 일방적으로 결정했기에 남베트남 지도부는 소외되곤했다. 애초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국제 정책에 따라 미국이 주도한 전쟁이라서 처음부터 남베트남은 소외된 전쟁이었다는 이 지적 또한 짚어볼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베트남전 패배에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남베트남의 부패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미군이 베트남 재건을 위해 제공한 시멘트가 베트남 모든 도시를 뒤덮을 정도라는데 그것이 온데 간데 없단다. 미군이 남베트남에 지원한 무기만으로도 당시 세계 5위 군사국의 전쟁 물자와 맞먹는다는데, 이런 전쟁 물자 심지어 탱크까지 북베트남으로 유출되는 부패 앞에서는 답이 없지 않는가. 또 남베트남군 내부의 이질적 요소도 전투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남베트남군의 장교들은 주로 부유한 집안의 도시 출신들이었고, 장교를 경제적 혜택을 보장받는 직업으로 이해하며 축재와 외국으로 나갈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이에 비해 사병들은 대부분 가난한 농촌 출신으로 프랑스 식민시절부터 억압의 대상이었다. 이처럼 도시 지배계층을 대변하는 기득권자인 장교와 가난한 농촌의 사병이 단일대오를 갖추기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예를 들어 1966년 한 해에만 12만 명의 병사들이 탈영했는데 이는 남베트남 지상군의 21%에 해당한다. 남베트남 군대의 전투력은 형편없었다.

그런데 이 남베트남의 부패에도 미군의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미군이 너무 많은 지원을 한꺼번에 했기에 넘쳐나는 물자들이 부패를 만든 것이다. 수많은 물자와 돈이 들어오자 고위 관료부터 말단까지 모두 부패에 젖어버렸다는 것이다. 수액을 한꺼번에 주입하면 환자가 죽듯이 너무 많은 지원이 남베트남 패망의 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일리가 있는 듯하다. 그러면 이것은 미국의 잘못인가 남베트남의 잘못인가?

남베트남 패망 후 수많은 금괴와 비자금을 갖고 런던으로 망명한 남베트남 대통령 구엔 반 티우가 대저택에서 안락하게 여생을 마친 것에 비해, 호치민을 위시한 북베트남 지도부들은 검소한 생활로 일관했다. 남북 베트남 대중 모두에게 두 체제의 지도자는 이미 비교불가한 차이가 있었다. 정직하고 쳥렴한 독립투사인 호치민의 말 한마디에 목숨을 던질만큼 베트남 인민들은 호치민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남베트남은 부패한 응오딘지엠이 군부에 암살된 후 잦은 쿠테타와 지도부 교체로 도덕성과 정통성 모두 잃은 상태였다.

베트남 전쟁은 철저히 미국의 의도에 따라 전개되고 종결된 전쟁이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한국군에 대한 서술이 없다. 참전했다는 사실만 밝힐뿐 다른 부가 설명이 전혀 없다. 명분없는 전쟁에 용병으로 딸려온 한국군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 듯하다.) 이 책은 그 미국 각처의 자료와 인물을 통해 베트남 전쟁을 세밀하게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에 비해 북베트남 측의 자료와 인물 자료는 거의 없는 편이다. 접근성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의 완성도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베트남 전쟁을 객관적으로이해하는데 이보다 좋은 책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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